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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라라트 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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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라라트 산 (시)   전창수 지음   우리 가족은 모두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무덤들이 참 이상하다 꽃은 없고, 풀 자물쇠들만 있다   - p. 17에서   아라라트 산, 은 시집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 시인의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는 전체적은 주제가 가족에 대해서이다. 가족은 결국 서로 싫어하면서도, 가족이기에, 진짜로 싫어할 수는 없는 운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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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라라트 산 ()

 

전창수 지음

 

우리 가족은 모두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무덤들이 참 이상하다

꽃은 없고, 풀 자물쇠들만 있다

 

- p. 17에서

 

아라라트 산, 은 시집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 시인의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는 전체적은 주제가 가족에 대해서이다. 가족은 결국 서로 싫어하면서도, 가족이기에, 진짜로 싫어할 수는 없는 운명들이다. 가족이기에 서로 상처를 쉽게 주고 받지만, 결국엔 가족이기에, 서로를 용서할 수밖에 없는 운명. 가족이기에 진짜 걱정도 되는 인생들.

 

나도 가족은 있다. 부모가 있고, 동생도 있고, 친척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족이든 친척이든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겐 누군가를 만난다는 그 자체가 부담스럽고 힘들다. 같이 대화를 나누는 게 별로 즐겁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나는 싫다.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기에, 나는 매일 글을 쓰면서 나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모든 대화가 가능하고, 모든 대화는 이 글을 통해서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글을 쓴다. 내 글 속에 내 인생이 있는 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나의 인생을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글이 나를 살아가게 하고, 글이 나를 살리고 있기에, 그러기에 어쩌면 다행한 일인 듯 하다.

 

그렇게 살아가는 오늘이고 싶고, 그렇게 살아가는 내일이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오늘의 내일을 내일의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살아가는 나이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는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의 나를 점검한다. 삶이 오늘 같지 않아서, 삶이 내일 같지 않아서 그렇게 살아나는 내가 되어간다.

 

 

- 시공사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h******o 2023.11.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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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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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은 루이즈 글릭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아라라트 산(Mt. Ararat)은 튀르키예의 동부에 있는 사화산으로, 성서에는 노아의 방주가 안착한 곳이라고 한다. 방주를 탄 노아가 방랑을 끝내고 안착한 곳, 루이즈 글릭 역시 방랑을 끝내고 한곳에 안착하고 싶었을까. 시인이 시 속에서 말하는 아라라트 산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시는 아버지, 남자, 언니의 죽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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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은 루이즈 글릭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아라라트 산(Mt. Ararat)은 튀르키예의 동부에 있는 사화산으로, 성서에는 노아의 방주가 안착한 곳이라고 한다. 방주를 탄 노아가 방랑을 끝내고 안착한 곳, 루이즈 글릭 역시 방랑을 끝내고 한곳에 안착하고 싶었을까. 시인이 시 속에서 말하는 아라라트 산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시는 아버지, 남자, 언니의 죽음과 그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소파에 누워 신문으로 얼굴에 덮고 있는 아버지와 여행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억지로 끌고 나갈 수 없어, 아버지와 함께 집에 남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줄 끊어진 풍선처럼 밖으로 나간다. 줄 끊어진 풍선처럼. 아버지가 어머니의 족쇄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풍선 같은 어머니를 잡아주는 손이었다.
죽은 자들의 이름은 더 이상 불릴 일이 없다. 아버지의 이름도, 언니의 이름도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산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들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지 않는다. 아주 가끔 혼자 마음속으로 부르며 씁쓸해질 뿐이다.

시집에는 똑같은 제목의 시가 있다. 첫 번째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_ Children Coming Home from School)>은 루이즈 글릭과 아들, 여동생과 딸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두 번째 시는 학교에 막 들어간 어린 시인과 유모차에 앉아 언니를 배웅하고 또 기다리는 여동생을 묘사하고 있다. 두 번째 시는 서로를 향한 자매의 질투와 오해를, 첫 번째 시에서는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한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화(A Fable)라는 시에는, 두 여자가 한 아이의 어머니라고 싸우는 솔로몬의 재판이 나온다. 시인은 이를 뒤집어 한 어머니를 두고 싸우는 두 딸의 이야기를 한다. 딸은 어머니가 나만을 봐주길 바란다. 어머니의 사랑을 자매와 나누고 싶지 않다. 어머니가 상처를 입더라도 자식은 나만 생각한다.

루이즈 글릭은 시인이 되기 전 점을 본 적이 있다. 점쟁이는 루이즈 글릭이 시집을 다섯 권 낼 것이라고 예언한다. 점쟁이의 예언에 따르면 이 책은 그녀의 마지막 시집이다. 물론, 루이즈 글릭은 시집 8권 더 출간했고 <아라라트 산>은 그녀의 마지막 시집이 아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 시집을 만드는 내내 점쟁이의 예언이 떠올라 괴롭지 않았을까. 이 시집의 주요 키워드가 <죽음>인 것도 이와 연관성 있어 보인다.

루이즈 글릭의 세 번째의 시집 <내려오는 모습 Descending Figure>을 읽고 아라라트 산을 읽었다. <내려오는 모습>은 내게 너무 무겁고 어려웠다. 그에 비해, 아라라트 산은 비교적 쉽게 읽혔다. 두 시집을 읽는 동안 루이즈 글릭을 조사하고 그녀의 시 분위기를 다소 파악했기 때문이다.

시를 쓴 것은 루이즈 글릭이지만, 나는 루이즈 글릭의 어머니 입장에서 시를 읽었다. 어머니는 첫 번째 아이를 떠나보내고 마음에 묻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릭 와이너 지음, 어크로스 출판사)에 묘지에 참배를 하러 온 부부와 딸 이야기가 있다. 참배객이 떠난 뒤 저자가 무덤을 보니, 무덤이 테디 베어 모양이었다는 이야기다. 에릭 와이너도 십 대 딸이 있고 나 역시 어린아이가 있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루이즈 글릭의 어머니는 첫째를 보내고 얻은 두 딸을 열심히 키웠다. 자매라는 걸 알려주려고 두 딸에게 똑같은 옷을 입히고, 자매의 초상화를 직접 그려 집안에 장식했다. 딸들은 커서 독립을 하고 어머니 곁에는 아버지만 남았다. 그러나 힘든 세월을 함께했던 말이 별도 없던 반려자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슬플 때는 억지로 즐거워 하기보다는 슬픈 영화나 책을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야 할 때도 있다. 아라라트 산은 슬픔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줄 책이다.

(시공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h*****3 2023.11.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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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 - 글릭을 시인으로서 존재하게 한 다섯 번째 시집
"아라라트 산 - 글릭을 시인으로서 존재하게 한 다섯 번째 시집" 내용보기
시집은 고대 철학가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후 화자의 솔직한 심정이 느껴집니다. 시인의 솔직함이 시를 읽는 저에게 큰 위로가 되어줍니다. 그리고 3, 4번째 시집의 시들과는 다르게 시인의 덤덤함이 더 좋게 다가온 시들이 더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좋게 느낀 시들이 더 많은 시집이었죠. '루이즈 글릭'의 시들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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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고대 철학가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후 화자의 솔직한 심정이 느껴집니다. 시인의 솔직함이 시를 읽는 저에게 큰 위로가 되어줍니다.

그리고 3, 4번째 시집의 시들과는 다르게 시인의 덤덤함이 더 좋게 다가온 시들이 더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좋게 느낀 시들이 더 많은 시집이었죠.

'루이즈 글릭'의 시들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써내려간 시들이 많아서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러 시들에서 상처와 고통을 이야기하고 망가진 자기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들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삶속에서 상처를 입고 각자 다른 망가진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은 시 '구제 불을 닮은 꼴'입니다. 제목만 보아도 대충 짐작이 가시죠 ?

그리고 시집의 마지막 시로 앞의 시들에서 이야기한 상처와 아픔들을 치유해줍니다. 그녀의 시집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사랑으로 말이죠 .


좋은 기회로 '루이즈 글릭'의 시집 3권을 같이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3-5번째의 시집들이죠. 5년 간격으로 꾸준히 시집을 출간했으니 1975, 1980, 1985년에 나온 시집들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시인의 삶에 변화가 있고 그 변화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시를 써낸 글릭입니다. 그래서 서서히 고통에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힘이 커져감을 느낄 수 있엇습니다. 아마 출간된 순서대로 읽지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번역가 정은귀씨의 친철한 해설과 꾸준히 '루이즈 글릭'의 시집을 번역 출간해준 출판사 '시공사'의 노력이 없었다면 못느꼈을 감동들이었습니다.

 

★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라라트산 #루이즈글릭 #번역 #정은귀 #시공사 #노벨문학상 #작가 #시인 #시집  #도서 #서평 #책과콩나무 #북리뷰 #도서지원 

 

 

j*******7 2023.11.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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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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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홍수물이 빠지면서 머물렀던 지명이다. 저자가 아라라트 산을 시집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아서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몇가지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첫째로, 이번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가족들이다. 이모와 조카를 더 넘어가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그들만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마찬가지로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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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홍수물이 빠지면서 머물렀던 지명이다.

저자가 아라라트 산을 시집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아서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몇가지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첫째로, 이번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가족들이다. 이모와 조카를 더 넘어가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그들만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마찬가지로 홍수 직 후 세상에는 아라라트 산에 정착한 노아를 포함한 8명의 가족 뿐이 없었다.

둘째로, 글릭의 시들은 죽음들이 많이 나오고 무덤이라는 단어도 종종 등장한다.
아라라트 산은 상징적으로 무덤의 봉분이라고 볼 수 있다. 노아 가족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죽은 무덤 위에 우뚝 솟은 봉분이다.

셋째로 아라라트 산은 죽음위에 세워진 것이지만  노아의 가족에게 있어서는  희망이며 구원이다.
글릭의 시가 시종일관 죽음의 그림자가 서성거리지만 결국은 극복이며 도약이고 승화였던 것이다

지난번에 읽었던 글릭의 시 [내려오는 모습]에서 느꼈던 암울한 분위기는 [아라라트 산]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 밝아지는 경향이 있고 죽음이라는 단어도 줄어든다.
그러다가 다음 시집[야생 붓꽃]에 이르러야 비로소 승화되어 꽃으로 피어난다.

시집 [아라라트 산] 마지막 시에서 그녀는 " 오래전  나는 상처를 입었다. 나는 살았다. 복수하려고 아버지에게... 어린시절 나는, 고통이란 내가 사랑받지 못했다는 뜻이라 생각했다 그건 내가 사랑했다는 뜻이었다"  <최초의 기억>

시인은 이렇게 자기의 전 생애를 온전히 수용한 후 다음 시집 [야생 붓꽃] 첫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내 고통의 끝자락에 문이 하나 있었어.
...그리고는 끝이 났지... 내 생명의 한가운데서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났네. 하늘빛 바닷물에 깊고 푸른 그림자들이. <야생 붓꽃>

작가의 치유 행진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어머니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동생을 수용하고 이모와 조카 그리고 할머니까지 품을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이 과정은 이 후 14번째 시집까지 계속 이어질거라고 추정해 본다.

글릭은 시들은 대체로 감정의 기복이 없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죽음이 친구처럼 편하게 왕래하고 기쁨 또한 극적이지 않다.

미국의 현대문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답게 그녀의 시들은 서정미가 넘친다.
아라라트산에서 어둡고 느리게 전개되는 서정미는 야생 붓꽃에서는 밝고 경쾌하게 진행된다.

상처는 반드시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전한 치유에 도달할 수 있다.

삶에 상처를 입었거나 마음의 질고로 고통 중에 있는 독자라면 아라라트산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봄이 어떠신지.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의적으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b*****n 2023.11.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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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를 떠 올리며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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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1943-2023.10) 그녀의 수사는 꾸밈없는 꾸밈으로, 수수하면서도 덤덤하게 다가오는 시와 심상의 색채에 비해 화려한듯한 타이틀로 먼저 만났습니다. 미국 현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면서 24년 만의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리고 퓰리처상 거기에 국내 시인들의 찬사와 번역으로 실린 일부의 시들은 명성보다도 먼저 만날 수 있어 왔는데 그 이름만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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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1943-2023.10) 그녀의 수사는 꾸밈없는 꾸밈으로,

수수하면서도 덤덤하게 다가오는 시와 심상의 색채에 비해 화려한듯한 타이틀로 먼저 만났습니다.

미국 현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면서 24년 만의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리고 퓰리처상

거기에 국내 시인들의 찬사와 번역으로 실린 일부의 시들은 명성보다도 먼저 만날 수 있어 왔는데

그 이름만을 알고 있던 여류 시인 루이스 글룩을 이 겨울에 드디어 봅니다.

아직, 야생 붓꽃<1993년 시집 The Wild Lris>도 접하지 못해서 최대한 많이 그녀의 시를 알고자 <내려오는 길>, <아라라트 산> 2 권의 시집을 한 번에 읽었네요.

먼저 읽은 <내려오는 길>을 읽고 나서야 <아라라트 산>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앞의 시집도 그랬지만 여운이 강한 시들은 여러 번씩 읽고도 오래 생각하게 되는 힘이 있습니다.

루이즈 글릭의 5번째 시집.

왜 <아라라트 산>인가? 시집의 제목이고 시의 제목인 아라라트 산은 무엇일까.

아라라트 산은 지명이면서 동시에 성경 속, 창세기에 나오는 산으로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표류하다가 닿은 그 산을 말한다고 합니다.

위치적으로는 튀르키예 보스포루스 해협과 지중해와 연결된 지점에 있는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아주 높은 산.

죽음의 수사, 담대하게 죽음을 응시하는 그녀의 성찰이 담긴<내려오는 길>이 형상의 낙하만을 일컫는 것은 당연 아니었고

신화의 배경이자 시들이 모인 책의 전체 배경이 된 듯한 제목 <아라라트 산>에서 엿볼 수 있듯

노아의 방주처럼 모든 삶들을 삼켜, 죽음 자체를 말하는 것도 같지만

반대로 이로 인해 새로 시작되는 출발, 희망을 말하는 것도 같아 두 시집이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시인은 어쩌면 이모와 엄마 그리고 화자의 '운명'처럼

인간의 궁극적인 숙명, 죽음을 안고 또한 그 곁에서 죽음을 묵도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살아있는 죽음(존재), 그러나 희망마저도 포함하고 있는, 인간 삶의 깊은 성찰이 깃들어 있습니다.

노래하는 시로서가 아니라 현상을 드러내 한참을 응시하는 어떤 다른 세계의 시선처럼. 그녀의 시는 화면이 한층 더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수십여 일 쏟아지는 대 홍수 속에서 익사하며 잠겨 죽는 인간의 끝을 생각하면, 컥컥 목이 막히는 것도 같지마는

사라지는 목숨으로 글을 쓰는 분필처럼 조금씩 닳아지는 인간 세계의 시간, 더 세밀하게, 나의 시간마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b*******r 2023.1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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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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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   23년 수능이 있는 날이다. 하늘이 많이 흐리다. 아주 오래전에는 입시 한파라는 게 있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변해가는 세월만큼이나 날씨도 참 변화무쌍하지라, 날씨마저 한쪽으로 간략하게 이야기 할 수는 없어보인다. 흐린 날이 지나고나면 다시 추워진다고 한다. 어쨌든 긴장해서 떨리는 마음들이, 한파로부터 잠시라도 멀어져 좋은 결과와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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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

 

23년 수능이 있는 날이다. 하늘이 많이 흐리다. 아주 오래전에는 입시 한파라는 게 있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변해가는 세월만큼이나 날씨도 참 변화무쌍하지라, 날씨마저 한쪽으로 간략하게 이야기 할 수는 없어보인다. 흐린 날이 지나고나면 다시 추워진다고 한다. 어쨌든 긴장해서 떨리는 마음들이, 한파로부터 잠시라도 멀어져 좋은 결과와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능 시험이 있는 날은 대한민국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더 간절해지는 날인가. 자식이무언지. 아이를 낳아 기르고 함께 살아가는 동안 명명되어지는 삶이란. 참 오묘하고, 참 어렵고, 또 참으로 거스를 수 없는, 그렇게 먼저 신이 예비해둔 길 같기도 하다.

 

72페이지의 시집을 읽어내기가 버겁다. 이토록 얇은 시집이 또 있을까. 겉으로 다가오는 시집의 분위기는 얇고 가벼우며 아담하다. 그러나 실은 거대한 반전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루이즈 글릭의 시집 중 두 번째로 읽어본 작품은 ‘아라라트 산’이다. 아라라트 산은 어디에 있는 산일까. 역자 정은귀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아라라트 산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신의 노여움으로 생긴 홍수로 표류하다 가닿은 산이라고 했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내가 아는 노아 할아버지는, 산에 가닿기 전에 비둘기와 까마귀를 날려보냈지 아마. 아니. 순서가 틀렸다. 까마귀를 먼저 보내고 돌아오지 않는 까마귀 대신 비둘기를 보냈다.

 

사람들이 말하길 돌아오지 않는 까마귀는 배신의 이미지, 그리고 푸른 잎을 입에 물고 돌아온 비둘기는 사랑과 보은의 이미지로 굳어졌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까마귀는 나름의 생존을 위한 스스로의 선택을 했을 뿐, 그것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다. 비둘기는 왜 인간에게 다시 돌아갔을까. 애초에 신이 비둘기에게 다시 돌아가라 가르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모든 것은 신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지 않은가 말이다.

 

‘아라라트 산’ 이라는 글릭의 시는 단순히 시집만을 읽었을 때와 역자의 해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우스갯소리이겠지만, 시집은 해설집과 나란히 옆에 두고 읽어도 쉽게 들어오지 않는 난해함을 가시처럼 품고 있는 시집이다.

역자의 해설에서 알게 된 정보를 공유하자면, ‘아라라트 산’이 출간된 시점은 1990년이었고, 지난주에 먼저 읽었던 시집 ‘내려오는 모습’이 출간된 시점은 1980년이었다. 물론 십년이라는 텀 그 사이에도 시인의 작품집은 계속 출간되었다는 것. 그리고 90년 이후 21년까지 그녀의 작품 활동은 현재행인 듯했다. 이런 부분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사유는 계속 달려가는 중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건가.

 

먼저 접했던 시집 ‘내려오는 모습’ 에서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이번 루이즈 글릭의 시 ‘아라라트 산’ 역시 삶과 죽음. 그리고 생이라는 ‘중간’지점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들, 육체를 떠나가는 영혼들을 끌어안는 어느어느 시선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느낀 변화라면 그 시선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내려오는 모습’에서 깊은 우물과 같은 곳으로 침잠하는 시인의 내적 자아의 모습이 자주 언급되었다고 한다면, ‘아라라트 산’ 에서는 전작보다는 더 넓은 시선을 보여준다고 느끼게 된다. 시인과 아버지. 시인과 어머니. 시인과 여동생. 그리고 시인의 아들과 시인의 조카. 마지막으로 어려서 죽은 언니까지.

시집은 어쩌면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라 했던, 역자 정은귀의 해설에 공감하게 된다. 아버지를 닮은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시인은, 아버지의 죽음과 마주하게 되면서 아버지를 닮은 자신의 모습을, 그 아버지를, 아버지를 덤덤하게 떠나보내는 반쪽뿐인 어머니를 비로소 온전히 받아들이며 사랑하게 되는가 싶다. 여기서 반쪽분인 어머니의 이미지는 죽은 언니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어머니, 그로 인해 어머니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한 채 성장한 시인의 유년시절 자아와 그 맥락이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뭔가가 바뀌었다:언니가 죽자,

엄마 심장은

아주 차갑고, 아주 딱딱해졌다.

자그마한 철 목걸이처럼.

 

내 언니의 몸은 자석이라고

그런 것만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엄마 심장을

땅으로 끌어당기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게 자라도록 말이다.

--------------------------- 아라라트 산 ‘잃어버린 사랑’ 일부 p23

 

 

내가 잘하는 게 하나 있었으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착해지려고,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죽은 아이한테서 엄마 관심을 분산시키려고 그렇게 했다.

난 마음껏 아이가 되고 싶었다. 여전히 그렇다,

멈추었다 갈 수는 있지만 방향은 바꾸지 못하는 장난감 같다.

----------------------------아라라트 산 ‘이모’ 일부 p29

 

 

조금. 조금만 이야기의 흐름을 넓게 뛰어보자. 너무 한 곳에 몰입해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까닭이다. 환기가 필요한 시점인가. 한편 시인은 매우 혼란스럽고 분열된 자아를 보여주는 듯 긴장감을 보이지만, 결국 그녀는 혼란의 강을 스스로 잘 건너가 종단에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반듯하게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기어이 이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시집 ‘아라라트 산’에서 기나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곳은, 혼란과 암울 혹은 역경이 아닌 그 난관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어느 하나의 긍정적 자아일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좀 희망적인가. 그러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그녀의 시집을 단 두 권밖에 보지 못했다는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단 두 권의 시집으로 시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역자 정은귀는 시집에 마지막으로 실린 작품 ‘최초의 기억’을 언급하며 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관을 제시한다. 수동적인 사랑이 아닌 능동적인 사랑으로 이해 해석하면 좋을법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이미지.

한편, 개인적으로 감히 역자의 이야기에 보태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눈여겨 본 텍스트는 ‘최초의 기억’ 바로 앞전에 실린 작품 ‘천상의 음악’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자. 이 화자의 이야기 안에 담긴 고백 같은 바람들. 어쩌면 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관의 진솔한 면면들이지 않을까.....

 

 

현실에서, 우리는 길가에 앉아서, 해가 지는 걸 본다;

이따금씩, 새소리가 정적을 뚫는다.

바로 이 순간, 우리 둘 다 설명하려고 애를 쓴다,

우리가 죽음에도, 고독에도 편안하다는 사실을,

내 친구는 땅에다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 애벌레는 움직이지 않는다

내 친구는 늘 온전한 무언가, 아름다운 무언가, 자기를 빼고도 삶이 가능한 어떤 이미지를 만들려고 애쓴다.

우린 아주 조용하다. 여기 말없이 앉아 있으면 평화롭다, 구도는 변함없고, 길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대기는 서늘해지고, 여기저기서 바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우리 둘 다 좋아하는 건 바로 이 고요함이다.

형식을 사랑하는 건 끝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라라트 산 ‘ 천상의 음악’ 일부 p69

 

인간이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드는 혼돈의 경계를 뚫고 결국 나아가고자 하는 곳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이데아의 한 지점일지도 모른다. 이것까지 신이 준비해둔 무엇이라고 생각을 돌려보면 그나마 이내 마음이 편해지려나. 어쩌면 노아가 떠나보냈던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은 것도, 까마귀를 믿지 못해 대신 날렸던 비둘기가 돌아온 것도 신의 뜻이요. 또 한편으로는 각각의 개체마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자위의 측면이 강해지는 가 싶다. 중구난방식 말도 안 되는 자위와 자조라고 해야하나.

 

마지막이다.

죽음에도, 고독에서도 편안할 수 있다는 시인의 말.

모든 것이 고요해질 수 있다는 시인의 마지막 말이 긴 울림으로 자리하는가 싶다.

 

 

 

 

 

 

 

p********n 2023.11.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라라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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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기 전에 먼저 내려오는 모습 시집을 읽었다. 같은 사람이 쓴 시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일단 두 시집 사이에서 느껴지는 시의 깊이가 다르다. 이 시집은 대부분의 내용이 가족에 대한 내용, 사적인 내용이 많고, 특히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더 많다. 작가의 가족에 대한 회상과 사랑, 연민과 분노,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담겨져 있는, 어떻게 보면 가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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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기 전에 먼저 내려오는 모습 시집을 읽었다. 같은 사람이 쓴 시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일단 두 시집 사이에서 느껴지는 시의 깊이가 다르다. 이 시집은 대부분의 내용이 가족에 대한 내용, 사적인 내용이 많고, 특히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더 많다. 작가의 가족에 대한 회상과 사랑, 연민과 분노,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담겨져 있는, 어떻게 보면 가족에게 보내는 은밀한 일기장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깊이가 얕다. 이 책에 비하면 내려오는 모습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모습이 좀 더 깊이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집이 다른 시집보다 더 일찍 쓰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의 시들이 이 두 권의 시집 모두 가족이 중요한 소재이긴 하지만, 다른 시인들에 비하면 심하는 생각도 든다. 왜 그럴까? 왜 가족이 시인에게는 그렇게 집착할 정도의 존재일까? 잔체적으로 느껴지는 가족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이기 보다는 회의적이다.

 

그리고 이 두 시집에서 느껴지는 시적 감각은 많이 다른데, 의외로 두 시집을 번역한 사람은 동일인물이다. 왜 그럴까 궁금하다. 시가 원래 다른 건지, 아니면 번역자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건지, 아니면 몇 년의 시간을 지나면서 작가의 시에 대한 번역가의 느낌이 달라진 건지 알 수 없다. 아무튼 다르다. 이 시집이 좀 더 건조하고 담담하다. 그래서 다른 시집보다 더 깊이가 없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두 시집의 원본의 본 적이 없으니 뭐라 말할 건 없다.

 

무튼 이번에 두 권의 시집을 보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내려오는 모습이 좀 더 깊이있는 시집이라 생각한다. 책 뒤에 보면 이 작가들의 많은 시집들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또다른 시집을 읽을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 될 수 있고, 어느 정도는 시인이다. 다만 표현이 서투르고 깊이가 다를 뿐이다.

h****m 2023.11.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