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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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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 날에 부쳐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찾다가 한 시간을 허비했다. 얼마 전 아들과 함께 들춰봤던 기억이 선명한데, 온데간데없다. 초등학교 5학년 도덕 선생님-기억이 분명치 않다. 과목별 교사가 없는 초등학교 학제 시스템을 고려할 때, 아닐 확률이 높다.-의 이름을 찾으려고 온 집 안을 다 뒤졌는데, 앨범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그 한 시간이 새로운 에피소드가 되었다.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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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 날에 부쳐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찾다가 한 시간을 허비했다. 얼마 전 아들과 함께 들춰봤던 기억이 선명한데, 온데간데없다. 초등학교 5학년 도덕 선생님-기억이 분명치 않다. 과목별 교사가 없는 초등학교 학제 시스템을 고려할 때, 아닐 확률이 높다.-의 이름을 찾으려고 온 집 안을 다 뒤졌는데, 앨범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그 한 시간이 새로운 에피소드가 되었다.


이름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이 내게 남긴 장면은 지금도 또렷하다.


5학년 어느 날, 국어 시간이었다. 1반과 2반이 함께 수업하던 날이었다. 최무선의 전기를 배우는 날이었고, 선생님이 내게 줄거리를 발표하라고 하셨다. 참고서가 없던 나는 교과서만 읽고 머릿속에서 새롭게 구성한 이야기를 대본 없이 발표했다. 표준전과를 베껴 온 아이들은 저마다 노트를 보며 똑같은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는데, 내 발표는 그것과 달랐다. 몇몇 아이들이 비웃었다. 틀렸다는 듯이.


그런데 뜻밖에도 선생님은 나를 칭찬하셨다. 글 전체를 완벽히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의 자연스러운 발표라고. 전과 한 권 없이 오직 교과서만으로 공부했던 내게, 선생님은 “너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았다. 두 반이 함께 모여 있던 자리에서.


그 선생님의 이름을 나는 오늘 끝내 찾지 못했다.


『화산도』를 마치고 나서 읽기 시작한 소설 『해루질』을 덮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주인공 강철이 아니라, 1990년 여름 교실에서 다리를 절며 좌우로 까딱까딱 걷던 국어 선생님 때문에.


강병철 선생님은 내 중학교 3학년 담임이다. 전교조 해직의 낙인을 훈장처럼 달고 복직한 소설가였다. 걸을 때마다 다리를 약간 절었고, 교과서 대신 「직녀에게」나 「아침이슬」 같은, 한때 금지되었던 가락을 가르쳐 주셨다. 그분이 쓴 자전적 장편소설이라는 걸 알고 읽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소설이 아니라 그 시절 선생을 읽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강철의 착한 심성이 반복적으로 드러날 때마다 나는 그 시절 교실로 돌아갔다. 모질지 못하고, 끝끝내 착하기만 했던 그 사람. 꼭 매를 들어야 할 때면, 어쩔 수 없는 미안한 표정을 짓던 분. 소설 속 강철의 표정이 선생님의 얼굴 위에 겹치는 순간들이 많았다.


집에서 키우던 개 타이거가 팔린 뒤 성렬이 형을 심하게 저주하고도 끝내 사과하지 않던 강철. 착하기만 한 아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에게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고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평생 교직에 몸담으면서도 시와 소설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 그 고집의 다른 얼굴을 설명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더 오래 마음에 품은 인물은 정환이었다. 가난하지만 자존감이 높고, 옳다고 생각할 때는 그 어린 나이에도 물러설 줄 몰랐다. 남이 버린 누에를 길러 판 돈으로 운동화를 사던 아이. 다리가 불편한 동생의 지팡이를 찾아 분노하던 아이. 민물 장어 새끼를 잡아 집으로 향하던 칠흑 같은 밤, 대야와 양동이를 쏟을 때 나도 울컥 눈물을 쏟았다.


축구에서 진 뒤 풀이 죽은 친구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던 그 아이. 머리가 좋고 현실적이었지만, 끝까지 꿈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그 캐릭터가 참 마음에 든다. 내 어린 시절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가난은 불편한 것이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정환이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준다.


강철에게 서숙자, 노승방 같은 좋은 스승들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이름을 잊은 초등학교 5학년 도덕 선생님, 중학교 시절 이복순 도덕 선생님, 그리고 강병철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나이 들수록 더 또렷해진다. 그분들이 지금 어디 계시는지, 살아 계시기나 한지 모르겠다.


누구를 탓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부족한 공부와 학벌로 인한 삶에 회한이 들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중학교 수학 선생 이XX. 장난기 많던 순진한 학생의 따귀를 그는 무슨 철학으로 그리도 있는 힘껏 올려붙였던 것일까. 그날 이후 나는 수학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좋은 기억보다 상처를 준 이름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는 것, 그게 인간의 방식이기도 하다.


강철이 1등 강박에 짓눌려 자살을 시도하는 결말은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그 벼랑까지 가는 길이 서사 안에서 충분히 쌓이지 않아, 독자인 나는 준비 없이 그 자리에 서게 된 느낌이었다. 당혹감이 먼저였다. 진심으로 읽은 사람만이 이런 불만도 갖는다고, 그렇게 변명해 두겠다.


그럼에도 작가의 말에서 선생은 썼다. “개인과 나라 모두에게 신산했던 그 질곡의 역사들을 해피엔딩으로 처리한 건 순진한 작가의 심성으로 이해해 주시길 당부한다.”라고. 그 고백이 강철의 착한 심성과 포개졌다. 소설 속 그 아이가 곧 작가였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내 기억 속 선생들이 줄줄이 호명되었다. 좋은 이름들이 있고,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이름들이 있다. 좋은 기억보다 상처를 준 이름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는 것, 그게 인간의 방식이기도 하다.


강병철 선생님은 평생 교사로 살면서 시와 소설을 놓지 않으셨다. 나는 글을 직업으로 삼으려다 직장인이 되었고, 선생님은 교사로 살면서 끝까지 작가로 남으셨다. 선생님이 먼저 살아낸 그 길이,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불을 켜고 있는 것 같다.


올봄 페이스북에서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중학 시절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선생님과의 오랜 통화를 마치고 선생님의 이름을 검색했다. 읽는 내내 그 통화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름을 잃어버린 그 5학년 도덕 선생님, 누이와 동창이었던 이복순 선생님도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해루질 #강병철 #도서출판등 #스승의날


https://brunch.co.kr/@litcrit/45

YES마니아 : 로얄 m****s 2026.09.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