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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육지에 올리고 나면 씻어 내고, 녹과 따개비를 떼는 ‘깡깡이질’이 시작돼. 아파트 4~5층 높이에 매달려 3킬로그램이 넘는 망치를 들고 두드리는 일이야. 이 힘든 일을 누가 했을까? 근육이 우락부락한 아저씨들 아니, 그 망치를 든 주인공은 바로 여성들이었어.
깡깡이마을은 나의 고향이다. 몇해 전 《알쓸신잡》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눈에 익은 바닷가 동네를 소개한 적이 있다. 부산에서 가장 큰 섬 영도, 그 중에서도 대평동 일대를 “깡깡이 마을”이라고 소개하였다. 깡깡이 마을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었다. 100년도 더 전에 그러니까,
1887년에 다나카라는 일본인이 깡깡이마을 건너편, 지금의 자갈치 시장 근처에서 나무배를 만들었대. 그리고 1912년에 그의 아들이 지금의 깡깡이마을 자리에 다나카 조선철공소를 열고 엔진이 달린 나무배를 만들기 시작했어. 그 뒤 나카무라, 마쓰부지 등 일본인 조선소들이 깡깡이마을에 생겨났지. 이 조선소에서 만든 배들은 바람도 없고 노를 젓지 않아도 통통통통 소리를 내며 움직이니 얼마나 신기했겠어? 그래서 엔진 달린 나무배를 통통배라고 불렀대. p.10
2022년인가 애플TV에서 방영된 『파친코』에도 이 깡깡이마을이 등장한다. TV를 보지 않아 책으로 접한 『파친코』에 깡깡이마을과 지금은 영화 『변호인』으로 유명해진 흰여울마을이 나온다. 한국전쟁 때는 우리나라의 조선소들이 전쟁피해를 입어 부산의 조선소들이 바삐 움직였다. 군수 물자와 구호 물자를 옮겨야 되어서 배가 많이 필요했고, 참전한 유엔군 배도 수리해야 했다. 이 즈음 깡깡이마을 조선소의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달하였다고 한다.
1970년대 원양어업이 늘어나면서 배가 더 많이 필요해졌고, 깡깡이마을에서도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에 큰 조선소들이 여럿 생겨나면서 규모가 작은 깡깡이마을 조선소들은 그동안 쌓은 기술을 활용해 배를 수리하는 조선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육지의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타고 놀 때, 나와 또래들은 통통배 위에서 놀았다. 어른들 몰래 배에 올라 그물 위에서 뒹굴기도 하고, 높다란 돛대를 기어오르곤 했다. 술래잡기를 하다 미끄러져 바다로 그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의 놀이터가 되어준 녹슨 통통배는 또한 우리 부모님의 일터이기도 하였다.
바다를 오래 항해한 배는 녹이 슬고, 조개나 따개비 같은 것들이 많이 붙어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깡깡이마을 조선소에 긴 항해를 마치고 배가 들어오면 집집마다 대야를 들고 가서 배 밑에 붙은 담치, 따개비 등을 떼어 왔던 일이다. 동네 친구들과 우리 형제들과 아랫 집 순이, 뒷 집 철이, 옆 반 명희까지 모두 나와 호미로 담치를 떼어 담아 갔다. 역한 기름 냄새나는 담치를 깨끗이 씻어 맑게 끓여내면, 호텔 뷔페 부럽지 않은 우리 가족 저녁 만찬이 되곤 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해가 밝으면 이번엔 머리에 수건을 두른 동네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깡깡이마을 조선소로 가는 긴 행렬을 이루었다.
줄에 매단 나무판자에 걸터앉아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옮겨 다니며 한 번 올라가면 2시간씩 일해야 했지. 망치로 치고 긁어내면 나오는 쇳가루와 먼지를 마시고, 수천 번씨 내리칠 때마다 울리는 큰 소리도 피할 수가 없었어. 예전에는 수건 하나 얼굴에 감고 그렇게 망치질을 했는데 여름 땡볕에 일하다 보면 온통 땀띠가 났대. 무엇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는 것이 가장 겁나는 일이었는데 제대로 된 안전 장비라고는 없었대. p.21
이 분들을 깡깡이 아지매라 불렀다. 아지매는 아줌마의 부산말이다. 지금 부산은 화려한 도시가 되었다. 밤이면 광안대교의 화려한 불빛과 해운대 마천루의 야경이 부산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내게 부산은 여전히 눈물과 회한의 땅, 가난과 싸워 나간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전쟁터이다. 이 한 장의 그림을 보고 눈물이 났다. 남자들도 하기 힘든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긴 줄 하나에 매달려 매일 아파트 4~5층 높이를 오르락거린 우리 어머니들의 지난한 삶이 떠올라 마음이 숙연해졌다. 책 속 예쁜 그림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내 고향 깡깡이마을. 그림 속 풍경과 지금은 사뭇 달라졌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깡깡이 마을과 그 곳에서 삶을 일구어낸 우리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으니 참 감사하다. 그림 뒤에 숨겨진 그 날의 땀방울과 눈물을 이제라도 기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 책을 우리 어머니께 꼭 보여 드리고 싶다. 녹슨 통통배처럼 패이고 주름진 어머니 손을 꼬옥 잡고 이 글을 읽어드리고 싶다. 깡깡이 아지매, 울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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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살고 있어서 부산영도구를 배경으로 하는 깡깡이 마을 역사 여행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관심이 가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영도에 할머니께서 살고 계셔서 자주 갔는데도 깡깡이마을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보았기에 궁금했습니다.영도가 바다와 가까운 섬이라 옛날에 많은 어머니들이 망치로 배를 고치는 일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어머니들이 멋지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부산 사투리로 깡깡이 아지매(아주머니의 사투리)라고 불렀다는데 사투리는 알면 알수록 재미난 단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영도다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긴 도개교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되고, 엔진이 달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처음 생긴 곳은 깡깡이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기로 활발하게 돌아가던 영도 깡깡이 마을이 지금은 인구소멸지역이라니, 뭔가 마음 한켠이 씁쓸합니다. 요즘 영도에는 바다풍경을 따라서 새로생긴 카페들로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어요. 저도 조부모님과 가족과 함께 영도 카페를 간 적이 생각납니다. 오래전 섬 안팎으로 사람을 나르던 도선이라는 배는 깡깡이 마을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유람선으로 부활했다는데, 조만간 영도 할머니댁에 가게된다면 영도 유람선을 타보고 싶습니다. 영도도, 깡깡이 마을도 예전처럼 다시 사람들로 시끌벅적해졌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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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부산시민이 다 함께 책을 선정하여 읽고 토론하는 원북원이다. 우연히 그림책을 알게 되어 대출을 했다. 부산 영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읽으면 좋은 책이다.
깡! 깡! 쇠 부딪히는 소리, 윙~윙~ 기계 돌아가는 소리. 여기는 못 고치는 배가 없다는 곳. 부산시 영도구에 있는 깡깡이마을이다. 옛날 부산이 동래, 부산포, 부산진 등으로 불리던 시절, 영도는 ‘절영도’라고 불렀다. 1876년 일본과 조약을 맺었다. 일본인들이 인천, 원산, 부산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교역을 하고, 살 수도 있게 됐다. 사람과 물건이 많이 오가려면 큰 배와 항구가 필요하니까 바다를 메워서 항구를 만들고 영도와 육지를 잇는 다리도 만들었다. 영도다리는 우리나라에는 처음 생긴 상판을 들었다 내릴 수 있는 도개교였는데 다리를 보러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엔진이 달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처음 생긴 곳도 바로 깡깡이마을이다.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됐다. 강제 징용이나 돈을 벌기 위해서나 여러 이유로 일본과 외국에 나가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일본이 만들었던 전철, 건물뿐 아니라 어묵이나 섬유 공장, 조선소 같은 시설들이 남았다.
해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한국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동안 임시 수도가 되었고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온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급한 대로 판자나 천막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 다른 지역 조선소들이 전쟁 피해를 입자 부산의 조선소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깡깡이마을 조선소의 기술은 철강으로 만든 배를 수리할 정도로 발전했다.
배를 올리는 일을 ‘상가’라고 하는데 제일 어려운 기술이고 힘든 일이다. 바닥이 평평하지도 않고 300톤이 넘는 배를 넘어지지 않게 육지에 올린다고 상상해보자. 이 어려운 과정을 이끄는 전문가를 ‘도크마스터’라고 부른다.
바다를 오래 항해한 배는 녹도 슬고, 조개나 따개비 같은 것들이 붙어 있다. 새로 페인트칠하기 전에 우선 이물질들을 떼어 내야 하는데 찌꺼기나 녹을 뭘로 뗐을까? 바로 망치다. 사람 손으로 쇠망치를 들고 쇠로 만들어진 배를 치니까 깡깡 소리가 울린다. 수리 조선소에서 배를 수리하는 깡깡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리니까 사람들이 깡깡이마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배를 육지에 올리고 나면 씻어 내고, 녹과 따개비를 떼는 '깡깡이질' 이 시작되고 망치를 든 주인공은 바로 여성들이었다. 줄에 매단 나무판자에 걸터앉아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옮겨 다니며 한 번 올라가면 2시간씩 일해야 했다. 망치로 치고 긁어 내면 나오는 쇳가루와 먼지를 마시고, 수천 번씩 내리칠 때마다 울리는 큰 소리도 피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수건 하나 얼굴에 감고 그렇게 망치질을 했는데 여름 땡볕에 일하다 보면 온통 땀띠가 났다. 무엇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이 가장 겁나는 일이었는데 제대로 된 안전 장비라고는 없었다.
하루 하루 일한 일당을 한 달치 모아서 받았지만 4대보험이 되는 직장은 아니어서 위험한데도 제대로 된 안전장치는커녕 마스크, 보호 안경, 귀마개도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청락부'라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깡깡이 아지매 200여 명 중 70명이 넘게 가입을 해서 건강검진이나 임금 인상을 받아 내기도 했다. 20년 넘게 있었던 노동조합은 90년대에 조선소 사장들의 방해로 없어지고 말았지만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했던 아지매들 멋지지 않나
한동안 조용했던 마을도 다시 시끌벅적해지고 있다. 쇠 깍는 냄새, 먼지 날리던 마을 골목과 공장 벽 여기저기에 독특한 그림이나 작품이 생겼다. 앉아 쉴 곳 없던 길거리에 재미난 벤치도 생겼다. 오래전 섬 안팎으로 사람을 나르던 도선이라는 배는 깡깡이마을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유람선으로 부활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요즘 바쁜 것이 노래와 춤을 배워서 공연도 했고, 시를 배워 쓰기도 하고 살아온 이야기로 책도 만들었다. 마을이 궁금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들려주신다. 깡깡이마을에서 힘들게 일하고 자식들 키우느라 주름진 할머니가 되어서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셨다. 부산 지역 활동가이자 문화 기획자인 박진명 선생의 친절한 설명과 부산에서 나고 자란 김민정 작가의 그림은 마음이 포근해진다. 초등학생 이상 널리 읽으면 좋겠다. 조선소 여성 노동자들의 감동적인 삶도 생생하게 만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