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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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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알 수록 복잡하고, 사람들은 세상을 다양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세상에 다양한 돋보기를 대보며 더 정확한 이해에 다다른다. <생각의 요새>저자 고명섭은 다양한 학자들의 저서와 고전도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최신 연구작까지 다양한 저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요새'를 파고든다.   1장 '사유의 숲길'에서는 주로 서양 철학을 논하고, 2장 '생각의 요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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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알 수록 복잡하고, 사람들은 세상을 다양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세상에 다양한 돋보기를 대보며 더 정확한 이해에 다다른다. <생각의 요새>저자 고명섭은 다양한 학자들의 저서와 고전도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최신 연구작까지 다양한 저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요새'를 파고든다.

 

1장 '사유의 숲길'에서는 주로 서양 철학을 논하고, 2장 '생각의 요새'에서는 사회사상을, 3장 '사상의 기원'에서는 서양 사상과 신학을, 4장 '회통에서 개벽으로'에서는 동아시아 사상을, 5장 '마음과 우주'에서는 문학과 과학철학을, 6장 '지혜의 시대'에서는 대립의 극복을 다룬다. 자세한 도서목록이 궁금하다면 목차를 참고하면 된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자신과 자신의 일치, 자신에 대한 자기적응에 균열을 냄으로써 '자아'의 마비에서 빠져나오는" 탈합치 개념을 창안했다. 리처드 도티<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에서 우연적인 사건을 거듭해온 사회가 자유주의라는 가장 좋은 사회를 만들었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며 잔인성을 최소화한 사회를 추구해야 함을 주장한다. 알랭바디우는 정치, 과학, 예술, 사랑이라는 영역의 사건들에서 기존의 여론의 지배를 깨뜨리는 보편성을 창출하면서 진리가 출현하며 혁명 집단과 같은 세계 내부의 몸체에 개인들이 합류할 때 개인은 진리의 주체가 된다 말한다.

 

이와 같이 사유의 근본 사고를 건드리는 책들을 읽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만나게 된다. 로티가 말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겐 모든 것을 초월한 특정한 진리라는 것은 없으며 각자의 자기창조 활동을 이어나가며 세상을 발전시킬 뿐이다. 바디우는 자신을 주체로 일으켜 가장 완전한 이상을 마음에 품고 진리의 주체로 나아가는, 이념화를 통해 이념의 빛을 따라 나아가는 삶을 참된 삶으로 보았다.

 

세상에는 어떤 진리가 필요한 것일까? 그저 진리는 중요하지 않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세상은 어떤 수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자살론>과 같은 저서로 '사회'라는 틀로 많은 현상들을 바라본 뒤르켐의 이야기와 그의 사고를 비판하면서, 모든 것을 사회로 수렴할 수 없으며 총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마르셀 모스의 주장도 소개된다. 모스는 사회적으로 인행 신체의 기능이 바뀐다는 <몸 테크닉>을 저술하며 브루디외 이전에 교육,관습,유행,신분에 따라 태도,외관,복장,습관이 달라진다는 비투스 개념을 발견한다.

 

로고스 주의를 바탕으로 여성/남성과 같이 이분법으로 개념을 나눠 한 쪽을 무시했던 사유를 바꾸고자 한 엘렌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와 남녀의 확실한 이분법을 나누는 운동을 비판하며 이분법을 없애는 작업, 즉 공생적 시각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 내부, 외부 모두에게 논쟁을 일으킨 도나 해러웨이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여기서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는 그저 기능적 존재인가, 사회 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 근본 원인이 되는 존재인가 하는 질문과 더불어 사회가 작동하는 법칙과 관성적이고 불평등한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운동을 벌여야 하는가의 질문이 이어지게 된다.

 

동방의 선교를 위해 인토르체타가 고민하여 번역한 <중용>은 역으로 서양 계몽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화두였는데, 이를 우상숭배로 금지해야 할까, 그저 문화현상으로 보고 이해 해야할까? 타자의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린 두 가지의 것을 대립으로 볼 수도,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새로운 학문>을 쓴 잠바티스타 비코는 당대 사회가 신이 만든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불경하다 여긴 것과 달리 "인간의 사회와 역사는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인간의 지성으로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고 보았다."(p.259) 사상의 기원은 이와같은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다양한 학자들이 계몽에 대해 논하는데, 여기서 "과감히 알려고 하라!"라고 말하는 임마누엘 칸트의 정신이 돋보인다. 그에겐 인간은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율적 주체였다. 우린 이성이란 무기로 세상을 이해한다.

 

이도흠의 <18~19세기 한국문학, 차이의 근대성>에서는 원효의 화쟁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원효는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 곧 대대하는 것들을 아울러 더 큰 하나로 회통하는 방법을 내세웠다. 통합을 위한 것. 모든 존재는 서로의 영향을 받아 존재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이데거와 불교를 비교한 권순홍<불안과 괴로움>에서는 '존재의 의미'를 묻게된다. 니체의 허무주의를 기반해 사고한 "하이데거에겐 현존재의 실존은 '던져져 있음'으로 요약된다."(p.342) 그의 사고에는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교와 달리 "실존의 불안,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막혀버렸다" 고 비판한다. 인간 존재란 무엇일까.

 

과학적 사고도 그저 이성의 산물이었을까? 뉴턴은 '중력'의 근원적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 그의 중력 사고의 배후에는 연금술과 점성술 같은 마법적인 사고가 있었음을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과학의 탄생>에서 말하고 있다. 토니 로스먼은 <빅뱅의 질문들>에서 우주의 많은 현상과 특히 기원에 대한 설명의 어려움을 말하는데, 여기서 결국 뉴턴을 포함한 수많은 우주과학자들의 질문들은"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있는가?"하는 질문으로 귀결된다."(p.465)고 말한다. 여기서 저자는 과학과 철학의 경계가 지워진다 주장한다. 다양한 가설로 우주를 설명하듯, 다양한 가설로 사회를, 세계를, 인간을 설명한다. 결국 세상에 대한 과학적 질문들도 철학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우리는 지혜를 어떻게 다루고 평가해야 할까. 백낙청은 민주주의, 평등주의가 제대로 구현되려면 '지혜의 등급'은 반드시 필요하다 말한다. 평등주의 이념에 따라 지혜조차 모두 평등한 것으로 취급하면 모든 말이 같은 취급을 받아 난장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삶과 세계가 얼마나 넓게, 얼마나 깊게 통찰되느냐가 지혜의 등급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p.477)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혜의 질서는 고정되지 않고 역동적이고 가변적이어야 한다. 언제나 옳고 위계를 가진 지혜는 없으니 말이다. 지혜의 세계에서는 이런 모순관계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순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 대신 그가 말한 것처럼 통찰의 힘과 노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

 

<생각의 요새>는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소개로 마무리하는데, 고병권은 민주주의는 제도라기보단 제도에 대응하는 힘의 표출로 인식하며, 대의제 강화와 완성을 목표로 내세우며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내리치는 최장집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비판한다. 고병권은 최장집이 추구하는 완벽한 대의제 같이 제도적으로 완성된 '완성된 민주주의'란 존재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는 민중의 힘과 함께하는 것으로 여겼다. 제도와 운동은 보충관계 혹은 평행관계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안으로 설명되는 고병권의 발언에서는 자아실현을 외치는 자유주의적 마르크스의 유토피아와도 겹쳐보인다. 결국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구체성과 설계의 문제다. 인간은 여기서 수만가지로 뻗어나간다. 헤겔과 같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까지도 다른 생각을 한다.

 

깊은 사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때론 극단을 지양하며 사고의 통합을 추구했던 학자들의 이야기와 민주주의 논의로 마무리되는<생각의 요새>를 곱씹은다면 현재 사회에 함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평생을 연구해온 이들의 생각과 노력을 적은 돈을 들여 손쉽게 들여다본다. 이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세계와 인간을, 현명한 삶의 방식을 더 잘 이해한다.

 

*읽고싶었던 도서인데 교양인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받아 읽었다 감사하다 :)

 

YES마니아 : 로얄 d********9 2023.08.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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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거점을 밝혀 주는 지도를 손에 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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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거점을 밝혀 주는 지도를 손에 넣다 - 《생각의 요새》를 읽고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   내가 읽은 《생각의 요새》는 작전 지도와 같았다. 작가에게 이 책은 오랜 시간 여러 책을 읽고 사유하며 구축해 놓은 ‘생각의 요새’라면, 독자에게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지도가 되어준다. 이 요새를 독자와 함께 나누면서 독자는 이 ‘요새’를 출발점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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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거점을 밝혀 주는 지도를 손에 넣다

- 생각의 요새를 읽고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

 

내가 읽은 생각의 요새는 작전 지도와 같았다. 작가에게 이 책은 오랜 시간 여러 책을 읽고 사유하며 구축해 놓은 생각의 요새라면, 독자에게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지도가 되어준다. 이 요새를 독자와 함께 나누면서 독자는 이 요새를 출발점 삼아 새로운 책읽기의 고지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셈이다. 물론 작가는 독자의 생각을 일일이 대신 해줄 수는 없다. 이 작업은 독자가 스스로 생각을 전진시킬 수 있도록 길을 밝혀놓은 작업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은 한 권 한 권이 읽기 만만치 않은 사유의 결과물들이다. 다만 저자는 독자 보다 먼저 지적 모험을 경험하며 여러 거점들을 찾아 두었고, 이를 바탕으로 개별적이고 지속적인 책읽기작전에서 중요한 고지를 독자를 위해 밝혀 놓은 것이다.

 

우선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의 특징은, 저자가 각 저작의 핵심 개념을 명료하게 요약해놓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요약 잘하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책의 핵심적인 내용에 작가가 파악한 책의 가치와 맥락을 더하여 책읽기 작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도서들의 위상을 제시하여 독자가 이 책을 지도삼아 따라가다 방향 감각을 잃었을 때,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개별적인 도서의 이해뿐만 아니라, 해당 작가의 사상, 또는 사상의 변화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내용은 생각의 요새에 보관되어 있는 일급비밀의 작전 계획서 같다고 느꼈다.

 

특히 이 책은 철학, 정치 및 사회, 종교, 문화, 동양 사상, 과학, 문학 및 비평 등 폭넓은 사유의 고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작전 지도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독자가 요새로 삼고 싶은 사유의 거점을 먼저 정하면 좋을 것이다. 이 작전 계획서를 기반으로 독자가 사유의 거점을 정하고 이를 향해 나아가 이를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본문에서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추방당함으로써 비로소 실존하기 시작했다’(29)실존의 의미를 소개하고 있듯이, 결국 독자는 저자가 마련해놓은 요새를 언젠가는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는 자신이 선정한 거점을 찾아 익숙한 요새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생각의 요새는 독자의 책읽기 작전을 도와주는 작전 지도이면서, 이 탐험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든든한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한다.

 

1장에 소개된 철학서들을 보면, 내가 이 책들을 읽고 이해하려면 족히 몇 년을 걸릴만한 책들이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해당 철학서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모르는 철학자들의 저작도 많지만, 이름을 들어보았더라도 막연히 이 철학서들이 어려울 것이라 여겼던 책들도 있다. 여기서 저자의 소개를 듣다보면 왠지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철학서 읽기에 실제로 도전한다면, 현실은 다를 것이다. 곧바로 가수면 혹은 혼수상태에 빠져들 테다. 그러므로 생각의 요새을 읽을 때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이 철학서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유지하되, 저자가 마련해 놓은 생각의 요새를 출발점삼아, 다른 사유의 거점들을 향해 과감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철학서들에 대한 저자의 소개를 따라가며 몇 권의 거점을 발견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 철학적 사유의 거점들에 도전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수학 예찬, 그리고 신유물론 입문, 폭력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들이다. 언젠가 이런 사유의 거점들을 탐험하게 될 때, 나는 저자가 공들인 독서 및 사유의 시간과 글쓰기의 시간에 힘입어 그가 밝혀 놓은 길을 따라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또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꾸준히 묻고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저자가 밝혀 놓은 다양한 사유의 거점들 가운데, 우선 나의 관심을 끄는 분야는 과학이다. 그래서 5마음과 우주라는 사유의 거점을 먼저 탐색해보았다. 이 지점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작가는 D. H. 로런스와 괴테, 뉴턴, 그리고 일본에서 존경받는 지식인이자 물리학자인 야마모토 요시타카다. 뉴턴의 경우, 올해 새로 완역 출간된 프린키피아가 소개되고 있어 반가웠다.

 

이 장에서 이 책의 전반적인 특징 하나를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가 책을 소개할 때, 유명 작가의 저작과 해당 작가의 면모를 다룬 저서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D. H. 로런스의 저작 아포칼립스를 소개한 후, 이어서 로런스의 면모와 그의 사상을 연구한 백낙청 교수의 저작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을 함께 소개하는 식이다. 이렇게 관련 있는 주제아래 함께 읽기를 하면 로런스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보다 깊어질 것이다. 나아가 저자가 보여준 것처럼 해당 주제에 대한 나름의 맥락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른 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볼 수 있다.

 

같은 장에서 이렇게 동일 작가나 작품을 짝을 지어 다룬 방식은 관련 주제나 작가에 대해 특정한 맥락 속에서 이해를 깊게 해줄 수 있는 읽기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독자가 괴테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 수 있도록, 관련 도서를 짝지어 놓은 느낌이다. 괴테는 일생의 역작 파우스트60년 가까이 쓰고 고쳤다.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한 광범위한 해설서 불멸의 파우스트를 소개한다. 이어서 이 작품과 관련하여 괴테의 면모를 좀 더 파악할 수 있는 괴테와 융이란 저작을 또 다른 사유의 거점으로 제시한다.

 

생각의 요새가 지니는 장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전에 파우스트를 읽었을 때,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레트헨은 과오 많은 파우스트를 인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파우스트가 구원을 얻었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가 많은 남자를 무슨 근거로 구원했는지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파우스트가 구원을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는 독문학자 전영애의 견해를 소개한다. 파우스트자체가 대문호의 방대한 사상이 응집된 작품인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도 전문 연구자들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하는 저자의 예민한 안목이 놀랍다. 이처럼 생각의 요새는 독자가 이미 읽었더라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 놓기도 한다. 나는 조만간 이 책을 출발점 삼아, 파우스트라는 높고 중요한 고지를 향해 다시 탐험에 나설 예정이다.

 

이 책에 재인용된 D. H. 로런스의 말 중에서 마음에 든 한 문장이 있다. 소설 읽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소설이란 감정의 모험의 기록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사유의 모험이기도 해야 한다.”(391) 이전에 로런스의 고백적인 에세이와 소설 일부를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처음부터 로런스의 문장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작가의 지성적인 측면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책에 인용된 로런스의 말은 생각의 요새가 표방하는 사유의 모험이란 취지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로런스는 당대에 외설 작가라는 비난과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계급적이고 기득권적인 제약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병적인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었다. 나는 저자가 설명해준 것처럼, 로런스가 자기다움의 실현을 추구했다는 점에 공감했다. 로런스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작가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사유의 모험이라는, 지적인 면모를 분명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분야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사유의 거점은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는 작가와 그 저서였다. 저자 고명섭은 이 놀라운 작가의 여러 저작물 중에서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이라는 제목의 과학사 서적 1·2권을 소개한다.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일전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던 역작 과학의 탄생을 우연히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저자 고명섭은 소개하는 도서와 작가에 대한 이해를 마찬가지로 저자 나름의 맥락에서 알려준다. 역시나 그는 요시타카의 다른 저서인 과학의 탄생16세기 문화혁명, 그리고 나의 1960년대일본 과학기술 총력전후쿠시마, 일본 핵 발전의 진실까지 묶어서 독자에게 소개해주는 꼼꼼함을 잃지 않는다. 이제 여기에 최근 출간된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3권까지 포함하면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근대 과학사 3부작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과학 분야에서 탐험할 사유의 거점은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로 정했다.

 

생각의 요새을 읽는 독자마다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나는 내 책읽기 여정에서 하나의 거점을 발견하여 모험해보고 싶은 분야를 먼저 골랐다. 이후 관심이 가는 저자나 책을 선정하면, 이를 내 사유의 거점으로 삼는 방식으로 삼았다. 우리는 인생에서 저자가 소개한 인물 사마천, 마키아벨리, 단테처럼 언제든 궁핍해지거나 실존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어떤 이에게 이 책은 궁핍한 시기에 잠시 머물며 숨을 고를 수 있는 견고한 생각의 요새가 될 수도 있겠다. 내게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사유의 거점과 가는 길을 밝혀주는 작전 지도와 같다. 그러므로 한 번 읽고 덮어 두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언제든 새로운 사유의 거점을 탐험할 때 참고가 되고 새로운 모험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책 속으로]

[1] “집을 떠나는 것은 바깥에 서기, 곧 실존하기를 가로막는 기존의 자기적응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해 탈합치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관성대로 살지 않고 진정으로 실존하는 삶을 사는 길이다.”(29)

- 탈합치 (프랑수아 줄리앙) 소개 글 중에서

 

[2] 억지로 고안해낸 언어는 대가의 말을 바보처럼 반복하거나 멍청하게 모방하는 광신적 신봉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예술에서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철학에도 텍스트를 위한 텍스트의 시기, 따라서 철학을 위한 철학의 시기가 있는 것이다. 이 시기가 바로 텍스트 종교가 나타나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글쓰기는 기도가 되고 사고는 주문이 되며 방법은 비이성이 된다.(45)

-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미셸 옹프레) 소개 글 중에서

 

[3] 인종은 백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유색인종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지 백인 자신들을 향해 쓰이지 않는다. 백인은 인종의 하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다. “다른 사람은 인종이고 우리는 그냥 인간이다.” 이것이 백인들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백인은 언제나 특수성을 넘어선 보편성 자체로 자신을 드러낸다.(167)

- 화이트 (리처드 다이어) 소개 글 중에서

 

[4] “자연 현상에서 신의 존재를 유추하는 것도 분명히 자연철학의 일부다뉴턴이 중력의 배후에 신이 있다고 믿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야마모토의 책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자연철학의 신학적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데, 뉴턴의 고백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459)

- 프린키피아 (아이작 뉴턴) 소개 글 중에서

 

[5] “훌륭한 책은 독자의 뇌를 흔들어 깨운다. 뉴런에 충격을 가해 깜짝 놀라게 한다. 새로운 생각이 담긴 훌륭한 책은 독자를 사유의 새 길로 이끈다. 책을 읽다가 독자는 문득 자기가 낯선 길로 들어섰음을 깨닫게 된다. 훌륭한 책은 문장들을 외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책을 통째로 외우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한다면 그 책은 틀림없이 훌륭한 책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훌륭한 책은 독자의 대결의식을 불러일으킨다.”(531)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고병권) 소개 글 중에서

 

 

 

#생각의요새 #고명섭 #교양인 #gyoyanginbooks

 

YES마니아 : 골드 n****o 2023.08.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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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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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축 영역'이란 사랑의 감정이 응집되는 대상 곧 사랑의 파트너를 말한다. '정박 지점'이란 사랑이 닻을 내리는 지점 곧 사랑하는 이유다. 문제는 응축 영역과 정박 지점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슈미츠는 '먼저 죽은 파트너를 생각나게 한다'는 이유로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사례로 든다. 그 경우에 사랑의 대상은 현재의 여자이지만 그 사랑의 목표는 과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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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축 영역'이란 사랑의 감정이 응집되는 대상 곧 사랑의 파트너를 말한다. '정박 지점'이란 사랑이 닻을 내리는 지점 곧 사랑하는 이유다. 문제는 응축 영역과 정박 지점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슈미츠는 '먼저 죽은 파트너를 생각나게 한다'는 이유로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사례로 든다. 그 경우에 사랑의 대상은 현재의 여자이지만 그 사랑의 목표는 과거의 여자다. 응축 영역 곧 사랑의 대상과, 정박 지점 곧 사랑의 이유가 분리돼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랑은 파국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84/사랑은 왜 깨지기 쉬운가) "

 

 [그앨 정말 좋아하나 / 너를 닮아서 사랑하나 / 흔들리는 마음은 점점 알 수가 없어]

오래 전 한 가수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사랑의 딜레마'는 이리도 가까운 곳에서 '응축 영역'과 '정박 지점'의 어긋남을 노래하고 있었다. 읽으면서 쉽지 않다고 몇번을 되뇌이고 있다가 직관적으로 '이건 나도 예를 들어서 설명할 수 있겠는데?' 싶은 깨달음이 온 부분이다. 어렵지만 어렵지만은 않다. 

 

 '생각의 요새'는 약 500여쪽에 달하는 인문학 도서다. 책의 소개로는 '오컴의 면도날'같은 간결하고 선명한 언어로 사상가들의 생각과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단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어려운 말 쓰지 말라고 화내는 것보다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배워가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천천히 읽어보려 도전했다. 나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에게 좀 더 유혹적인 리뷰가 되었으면 해서 다가가기 쉬울 감상을 소개글보다 먼저 넣어보았다. 면도날은 아니더라도 가위정도는 될만한 시선이었다면 좋겠다.

 

" 루만은 사회적 체계가 '소통'(커뮤니케이션)의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소통은 정보를 알려주고 그 정보를 이해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통은 '정보-통보-이해'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누군가 생각 곧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통보하면, 그것을 받아들여 이해하는 순간에 소통이 성립한다. 생명체가 끊임없는 신진대사로 자기를 유지해 가듯이, 사회적 체계도 끊임없는 소통의 반복으로 자기를 유지해 간다. 만약 소통이 사라지면 사회적 체계는 소멸한다. (106/체계이론과 주체 없는 사회학) "

 

 요즘 SNS를 처음 이용해봤는데, 허공에 아무말을 말해보는 기분이 들어 사람들이 왜 이런 걸 하는걸까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친구라 서슴없이 부르고 '소통'하자며 하트를 남기는 것을 부럽게 바라보며 SNS 초보는 혼자 궁금했던 것이다. 우리는 왜 가장 깊고 내밀한 공간에 들어앉아 그림자 같은 상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내고 소통을 이야기할까. 소멸되고 싶지 않은 사회적 체계가 우리 내면 무의식에 자리잡아 어디로든 무엇이라도 발신하여 수신을 얻어내라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부 흡충이나 촌충이 숙주를 조종하는 것처럼.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 오늘날 민주주의는 유권자가 선거로 대표를 뽑는 '대표제 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를 뜻한다. 그러나 대표제 민주주의는 '인민의 직접 통치'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열등한 민주주의라는 평가를 받는다.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할 여건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채택한 차선의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124/대표제의 길, 민주주의의 길) "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홉스와 루소의 사상이 충돌하는 부분에 이르러(126) 요즘 시기에 이 부분의 내용을 읽는다면 공감도 되고 생각할 점도 많을 것이다. 

 

 " 대표제는 다수의 의지로부터 떨어져서 대표자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허용한다. 나아가 스스로 의지를 드러낼 수 없는 것을 대표해서 행동하는 것도 대표제에서는 가능하다. 그런 차원의 대표제가 적용될 수 있는 사례로 이 책은 환경. 생태 문제와 미래 세대 문제를 든다. 지구를 대표해 온난화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는 것,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대표해 보호를 요구하는 것이다. (127/대표제의 길, 민주주의의 길) "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를 대표해 지금 세대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다.(128)"로 이어지는 책의 내용은 꽤 강렬하게 다가왔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떠올리며 대표제의 명암을 가늠해보았었는데, 지난 24일을 기점으로 연일 이어지는 뉴스를 보며 특히나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었다. 

 

 책의 몇몇 부분과 함께 나의 짧은 감상을 정리하며 리뷰를 남겼는데 어떤 부분은 좀 멀리 떨어져서 흐린눈을 하고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생각이 알 수 없는 곳으로 튀어 한동안 멀거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몸 테크닉(142)'과 '헤게모니 투쟁과 대중문화(149)' 부분을 읽으며 언급되는 하비투스, 대중문화에 대해 생각하다 이런 속도로는 연말에나 완독하여 리뷰를 쓰겠구나 싶어 초반부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추천글을 남긴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도 많고 생각이 튀어가는 지점이 재밌으면서, 빨리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처서가 지나고 날이 선선해지는 시기가 오고 있으니 당신에게 사유를 선물할 '생각의 요새'를 하나 지어보는 것도 좋겠다. 

 

m******j 2023.08.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101권의 모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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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는 언어가 현재 내 수준이라고 믿는다. 유유상종의 과학도 믿으니 가능하면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고 싶다. 이 야망 때문에 매일 괴롭다. 인내심은 얕아지고 짜증은 표면 부상하고 화가 울컥거린다. 소리를 지르거나 못된 말을 더 날카롭게 벼려 던지고 싶을 때도 적지 않다.   6개의 챕터를 하나씩 차분히 읽으며 8월의 더위 속에서도 생각을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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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는 언어가 현재 내 수준이라고 믿는다. 유유상종의 과학도 믿으니 가능하면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고 싶다. 이 야망 때문에 매일 괴롭다. 인내심은 얕아지고 짜증은 표면 부상하고 화가 울컥거린다. 소리를 지르거나 못된 말을 더 날카롭게 벼려 던지고 싶을 때도 적지 않다.

 

6개의 챕터를 하나씩 차분히 읽으며 8월의 더위 속에서도 생각을 표정을 서늘하게 식히고 싶었다. 101권의 책들이라니, 한 권에 담아낸 것이 신기할 정도다. 성실하고 치밀한 사유를 좋아한다. 전달하는 방식이 친절한 문장들이 좋다. 연결의 고리 어디쯤에서 생각의 갈피를 놓치기도 했으나 즐거운 독서였다.

 

기적이란 (...) 이 세계의 현상을 종교적 태도로 본다는 뜻이다. (...) 이를테면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눈으로 보면 가장 놀라운 기적일 것이다.”

 

인류는 이렇게 많은 생각의 흐름을 기록하고 배우며 살았는데, 우리는 왜 여기에 도착했을까 때로는 혼란스럽고 억울했다. 사유와 기록은 정말 힘이 있는 것인지, 혹시 나처럼 도피나 피난의 수단으로 삼은 독자들이 더 많았는지, 생각할수록 내 생각이 더 가난해졌다.

 

인간이 해방될수록 그 해방이 낳는 욕망의 보편성이 역으로 인간 자신을 위협한다. (...) 비극 예술은 세상에 넘쳐나는 비참을 이해하게 해주는 눈이자 인간의 자기파멸 위험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나 같은 독자의 질문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독서란 곤궁한 마음에 생각의 씨를 뿌리는 일이라 한다. 그 문장에 힘을 얻어 계속 읽었다. 목차 말고 말미의 도서목록을 보고 있으면 읽을 수 있는 책과 시간과 기회가 모두 있다는 것이 더 큰 행운이라 느낀다.

 

인간은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주체가 되고 그 진리를 향유하는 자가 된다.”

 

자본주의와 얼마든지 가스라이팅이 가능한 현실의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논리는 인권과 철학의 외피를 하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단 한 가지 이유를 감춘 이들은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사기를 거침없이 정당성으로 내세운다. 위기는 한 지역이나 한 국가의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심장이 팽팽해지고, 기분이 우르릉 거리고, 눈앞이 흐려지는 날들이 반복된다. 나만 그런 건 아니라 위로가 되고 더 불안하기도 하다. 변화를 위한 새로운 생각은 태어날까, 변화를 위한 동력은 어딘가에 축적되어 있을까. 지구가, 아니 인간의 영토가 무척 좁아졌는데 여지는 남았을까.

 

종이책을 오래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노년의 마지막 시간들에 나는 누구의 책을 읽고 있을까. 몇 살이면 제대로 정리하며 생각하는 법에 익숙해질까. 그때도 몰입할 집중력이 있었으면, 새롭게 배우는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다. 재미가 없어서이긴 하지만 TV를 드물게 보고 산 것도 조금 도움이 되기를.

 

나이 덕분에 어떤 내용의 문해는 조금이나마 늘었겠지만, 좋은 번역 덕분에 예전보다 덜 어렵게 읽는 책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남은 시간 하루 종일 책만 읽어도, 만나지 못할 사유의 대가들이 많겠지만, 어쩌면 책은 친구처럼 결국 적은 수의 오래 대화하는 한 명이 남는 건지도 모르겠다.

 

 

 

k****k 2023.08.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과감히 알려고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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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 기자님의 네 번째 서평집 < 생각의 요새 >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는 읽기의 모험   올해 여름 교양인 출판사에서 출간된 <생각의 요새>는 고명섭 기자님의 네 번째 서평집이다. 그간 서평집으로는 <지식의 발견>(그린비, 2005), <담론의 발견>(한길사, 2006) , <즐거운 지식>(사계절, 2011)을 먼저 선보였고 중간중간에 평전, 시집, 철학 대담집 등도 출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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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 기자님의 네 번째 서평집

< 생각의 요새 >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는 읽기의 모험

 

올해 여름 교양인 출판사에서 출간된 <생각의 요새>는 고명섭 기자님의 네 번째 서평집이다. 그간 서평집으로는 <지식의 발견>(그린비, 2005), <담론의 발견>(한길사, 2006) , <즐거운 지식>(사계절, 2011)을 먼저 선보였고 중간중간에 평전, 시집, 철학 대담집 등도 출간하였다. <담론의 발견>은 철학박사 강유원과 함께 '2008년 학술출판 평론, 학술상' 출판 평론 부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고명섭 기자님의 역작이라 일컬어지는 <니체 극장>(김영사, 2012), <하이데거 극장 1, 2> (한길사, 2022)을 펴냈다. <니체 극장>과 <하이데거 극장>은 일반 독자들은 선뜻 도전하여 읽기 어려운 니체와 하이데거라는 서양 철학사의 걸출한 두 인물의 내면과 사상을 깊이 있게 탐사하였는데 독자뿐만 아니라 강단의 교수들에게도 극찬을 받았다. 어느 독자의 후기 글에서 <니체 극장>은 전 세계 통틀어 가장 훌륭한 니체 연구이며 독일 사람들을 위해 번역해서 수출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 것을 본 적이 있다.

 

101권의 책을 통과하여 오르는 사상의 성채

<생각의 요새>는 철학, 종교, 사상, 과학, 문학 분야에 걸쳐 인류 정신에 길을 낸 총 101권의 저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목차에서도 101권을 확인할 수 있고 책 말미에 도서 목록이 따로 실려 있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 제일 처음 소개된 책은 프랑수와 줄리앙 <탈합치>이다. 이 글에서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간결하고 명료한 소개(고대 그리스 철학과 중국학을 함께 연구 → 서양 바깥에서 서양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움 + 동서 사유를 아우르는 시야를 가지게 됨) 한 뒤 '탈합치'라는 개념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마비된 자아에서 빠져나오기 <탈합치>_프랑수아 줄리앙

'탈합치(De-coincidence)'란 인간 삶의 근본적 작동방식을 '합치(coincidence)'에서 이탈(de)함'으로 이해하는, 줄리앙 자신이 창안한 개념이다. (p27)

이런 탈합치는 인간 실존에서도 발견된다. (중략) "탈합치는 자신과 자신의 일치, 자신에 대한 자기적응에 균열을 냄으로써 '자아'마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을 떠나는 것은 바깥에 서기, 곧 실존하기를 가로막는 기존의 자기적응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해 탈합치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관성대로 살지 않고 진정으로 실존하는 삶을 사는 길이다. "우리가 환경, 집단, 군집에 퍼져 있는 암묵적인 합의의 결속에서 풀려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존의 요청을 포기하는 셈이다." 낡은 것과 결별하는 창조적인 삶을 살려면 탈합치의 실존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p28~29)

<생각의 요새> 1장 첫 번째 글, '마비된 자아에서 빠져나오기 _ <탈합치>_프랑수와 줄리앙'

왜 첫 번째 글로 프랑수아 줄리앙의 <탈합치>를 소개하고 있을까? 물론 책을 만들어 낼 때 서평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하였겠지만... 혹시 독자들로 하여금 책읽기를 할 때 항상 '탈합치'를 염두에 두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첫번째 글로 안성맞춤이라 본다.

 

 

나는 아직 앎과 읽기가 너무나 부족하여 새로운 책을 만날 때 대결의식보다는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이 분은 무슨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으신 걸까? 어떤 커다란 질문을 품고 계신 걸까?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을 어떻게 깨부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균열을 내어주실까? 감히 내가 고명섭 기자님과 접점을 찾았다고 말하자면... 나도 과감히 알려고 한다는 것이 아닐까? 나의 무지는 너무나 커다랗지만 그래도 계속하여 알고자 하는 무지라서 때로는 기특하다. 나의 앎은 너무 더뎌서 때로는 가엽지만 그래도 고명섭 기자님의 글을 통해 계속하여 용기를 얻는다.

 

 


 

#생각의요새 #고명섭기자 #교양인출판사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것이 안개 속인 시대의 요새에 구원군은 언제 오는가?
"모든 것이 안개 속인 시대의 요새에 구원군은 언제 오는가?" 내용보기
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58 : 생각의 요새, 고명섭 저, 202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및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Ride for ruin...and the world's ending!...(중략)...Forth! Eoringas!" (폐허뿐인...세상의 종말을 향해 달려라!...(중략)..
"모든 것이 안개 속인 시대의 요새에 구원군은 언제 오는가?" 내용보기

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58 : 생각의 요새, 고명섭 저, 202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및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Ride for ruin...and the world's ending!...(중략)...Forth! Eoringas!"

(폐허뿐인...세상의 종말을 향해 달려라!...(중략)...진격하라! 에오를의 후예들이여!"

이 대사는 영화사상 최대의 전투씬으로 회자되는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에서 수세에 몰린 인간들의 요새(미나스티라스)를 위해 달려온 "로한"의 왕, 세오덴이 휘하의 기병대를 이끌고 수없이 펼쳐진 모르도르군을 향해 일격의 돌진을 하며 내뱉은 말이다. 물욕과 야만으로 더럽혀진 인간들의 마지막 전투를 위해, 각지에서 모든 영웅들과 요정들(엘프, 드워트 등)이 합심하여 거대한 전투를 벌이는 명장면이다. 백척간두의 미나스타리스를 외면하지 않고 달려온 세오덴은 이 전투에서 끝내 장렬히 전사하지만, 악의 세력을 굴복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위대한 여정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며 전설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된다.

요즘 나는 최근의 우리 사회와 세계의 흐름속에 위 장면이 자꾸 겹쳐져 보인다. 이미 어느덧 우리의 현실 속에 "전쟁"은 다가와 있고, 각 국의 정치 상황은 점차 극단으로 치닫기만 하며, 이를 반증하듯이 지구 기후마쳐 파멸의 전주곡을 우리에게 들려주는것 마냥 연일 뉴스 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이쯤에서 다음의 질문이 우리 마음속에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류 보편의 화합과 공생을 온데간데 없고 급기야 "지속가능성"이란 처절한 단어까지 우리의 생존을 위해 꺼내야만 했으며, 여기에 더해 가혹하게도 "COVID 19 펜데믹"마져 우리 모두의 삶을 움켜쥐고 송두리째 뒤흔들었지 않은가...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빛의 서광이 내려오듯이 우리는 결국 이 펜데믹을 극복하고, 그동안 우리를 둘러싼 어떤 것들에 대해 조금씩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예외없이 드러워진 "양극화", 이에 편승한 "혐오의 정치"등 구 체제의 모순들이 드러나고,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의 연구와 테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의 개별적인 외향과 근원은 다르지만 나는 이들 모두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위의 질문이다. 아직은 누구도 어떤 것이 우리의 미래에 답을 줄거라고 성급히 예단할 수 없으며 여전히 논의가 진행중이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의 가슴 속에 위 질문이 공통적으로 자리잡았다는 데에 있다. 더이상 현 체제로는 이 산적한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없다는 데에 적어도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반증일테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건 이 "전간기"ㅇ[ 해당하는 시기에 과연 어떠한 담론이 자리를 잡는가이다. 그동안의 역사 흐름을 보면 이 전간기의 논의가 이후 수십년간의 역사 향방을 결정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더욱 치열하게 우리는 생각해야만 하고, 끊임없이 토론하며 사유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의 수많은 사람들이 서점가나 온라인 컨텐츠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여러 담론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양과 속도는 실로 어마어마해서 일반 시민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다. 따라서 이러한 담론들을 정리하고 비교적 적절하게 전달하는 "지식유통"의 역활이 최근들어 급격하게 주목받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생각의 요새"도 이러한 맥락안에서 읽혀져야 하는 텍스트인 것이다.

2. 저자의 의도...

본 책의 저자는 기존 철학자, 학자들의 사상이나 이 시대의 담론에 기여할만한 인물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사유와 실천을 꾸준히 조명하는 기자 출신의 작가이다. 또한 그동안 담론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온 서구 사상에 대비하여 동양 사상내지는 한국의 사상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독자들에게 그 소개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저서는 앞서 밝힌 전간기의 시대에 놓인 우리들에게, 보다 더 다양하게 지적 사유를 자극하는 인물들의 대표작들을 선별하여 제시해주는 일종의 선집의 성격을 띄고 있다. 크게 보아 6개의 대단원으로 구성되어, 각 장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주제로 구성된 것이 엿보인다. 각 장에서 선별된 인물들과 대표작들은 짧은 호흡으로 명료하게 끝나는 글들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장대한 구성을 따라가며 책의 막바지에 이르면, 어느덧 철학, 사회, 종교, 예술/과학을 넘어 역사적 통찰에 이르도록 하는 거대한 "통섭"의 흐름을 저자는 의도한듯이 보인다.

3. 인상적인 부분...

일단 이 책을 처음 본 독자들은 그 압도적 분량에 적잖이 당활할 수도 있겠다. 더욱이 저자의 의도대로 지적 사유의 미로속에서 방황하며 돌파구를 찾고자하는 독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이 책의 진가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발휘된다. 기자 출신답게 독자들의 호흡을 충분히 감안하고 쓴 문장들과 그 명료한 표현에 어느덧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문학 그 특유의 레토릭과 복잡한 서술 구조를 최대한 자제하고, 빠른 속도에 익숙한 현 세대들에게 충분히 배려한 서술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선정한 인물들의 위대함을 크게 잘 포착하여 전달하고 있으며, 향후 더 발전된 독서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도 효율적으로 인물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이는 다년간의 필력을 짐작케하는 저자의 진면목이며, 기존 인문학 책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구구절절한 설명"에 지친 독자들에게 신선함을 준다.

또한 통섭을 방불케하는 주제간 연결 고리를 전개함에 있어, 매끄러운 진행과 유연한 사고의 매력이 인상적이다. 그동안 전문 분야의 학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지나친 "자기과시적 현학"이나 특유의 "아집"에 진절머리가 난 독자들도 다수일거라 사료되는 바인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꽤 적절치 못하게 느끼는 대목이다. 자신의 분야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과 독선적인 "자만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100년간 우리는 이전 시대의 모든 인류들보다 훨씬 더 거대한 "지식의 소비"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활자 매체를 넘어서 디지털 혁명으로 유래된 정보의 우위가 무너진 시대아닌가.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훨씬 거대한 지적 네트워크에 접속 가능하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수많은 정보를 취득하는데 익숙한 현 세대에게 학자의 오만함만큼 시대착오적인 것도 없을테니 말이다. 마치 프랑스 혁명이 휩쓸고 지나던 그 시대 지식인들이 오히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 "헤겔"의 지적을 다시한번 떠올려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최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담기위한 전략으로 유연합을 택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싶다.(이는 기자 출신의 이력이 작용한 측면에서도 이해가능한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의도 중 가장 돋보이는 점은 특정 인물들을 선정하는 "기준"이라고 보인다. 저자가 직접 서문에서 밝히듯이 심연을 뒤흔드는 "경계의 사고"에 독자들을 과감히 끌여들일려는 노력의 흔적들을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이트"의 리처드 다이어드나 "공-산의 사유"로 파란을 일으킨 도나 해러웨이 같이 도발적인 지식인들도 기꺼이 지면을 할애하여 과감하게 소개하는 대목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오해하기 쉬운 백낙청 선생의 그 독특한 사상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룸으로써 결코 대한민국이 지적 담론의 장에서 더이상 변방으로만 머물고 있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지적 사대주의에 열등감을 느끼기 쉬운 우리들에게, 충분히 우리의 것들도 "세계적"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듯이 말이다. 이번 펜데믹에서도 나타났듯이, 대한민국은 더이상 우리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것처럼 작은 나라에 머물고 있지 않다. 동북아라는 위치와 크기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서서히 서구 중심의 인식 체계에서 균형감을 찾아야 진짜 우리의 모습을 비로소 볼 수 있음을 저자 또한 동의할 것이다. 

4. 아쉬운 부분...


앞서 지적했듯이 이 책은 정말 다양한 인물들과 저작들을 담고 있다. 이는 저자의 통섭적인 사유의 지향점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일부 독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대목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꾸준히 독서를 해오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인물들이 등장이 난무하고 다양한 분야의 담론에 흽쓸려 자칫 거대한 대양의 한복판에 갖힌 느낌마져 들 수도 있겠다는 우려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독자들을 위하여 일종의 "나침반"을 제시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든다.(물론 이러한 시도가 독자들에게 저자의 선입견을 강요하듯이 느껴질수도 있겠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든다.)

또한 어섯 개의 각 장으로 구성된 부분이 다소 모호하게 다가온다는 점이 눈에 띈다. 평소 다독을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저자의 숨은 의도를 읽고 그 흐름에 맞춰 저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서의 깊이가 깊지 않고 분야가 넓지 않다면 각 장의 의도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선정한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소개와 글은 매우 짧은 흐름으로 되어 있어, 각 장의 의도를 모른다면 "파편화"된 지식들을 피상적으로만 느낄 소기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각 장의 의도와 인물들의 선정 기준을 보다 더 명확히 드러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각 장다마 따로 짧은 서문을 할애하여 앞서 지적한 저자의 의도를 제시하였어도 충분히 그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럼으로써 저자의 의견을 강요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독자들이 저자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는 측면을 제공해줄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이 책의 제목인 "요새"라는 단어에서 나는 자칫 "사고의 고착화"가 유래할수도 있다는 우려가 든다. 일찍이 프로이센의 계몽 군주인 "프리드리히 대왕"의 전략의 일화를 예로 들어보자. 당시 사방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프로이센의 지리적 한계로 인해 기존 전략인 요새 위주의 "거점방어"를 기반으로 한 공격 전술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간파한 프리드리히 대왕은 과감한 결단은 내린다. 그것은 요새를 최소화하고 최대한 "기동전술"의 활용을 골자로 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이에 기존의 장성들과 참모들은 큰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하였지만 젊은 프리드리히 대왕은 직접 선두에 서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꿋꿋히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다.   

"요새에 의존하는 기존 전략은 우리 군을 스스로를 수동적으로만 행동하게끔 제약한다. 우리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유연함이 필요하고 그 핵심은 기동 전술이어야 한다."

이 주장은 이 책의 저자에게도 해주고 싶은 조언이다. 얼핏보면 요새라는 든든한 벽으로 자신의 사유의 힘을 강화시키는 좋은 수단이지만, 반대로 그 요새라는 벽 안에 스스로의 사유를 가두는 한계 또한 존재한다. 더욱이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듯이 사유의 유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요새라는 벽을 허물고 과감히 돌진하는 선두의 "지향점"을 독자에게 제시했으면 어떨까하는 제안을 해본다. 흔히들 말하는 "공감의 시대"에 맞춰 독자들을 위해 잘 차려진 식탁위로 인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으나, 모로도르군을 향해 돌진하는 세오덴의 모습을 원하는 독자들도 상당히 존재할 것이다. 모든 것을 과도한 상대주의적 관점으로만 대한다면 정작 이 혼돈의 시대에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갈증을 해소하는 한 줄기 빛을 보여주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저자는 좀더 과감히 현실세계로 나아가 실천적으로 어떤 것들을 제시하여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5. 나오며...

다시 반지의 제왕으로 돌아오자. 앞서 말했듯이 로한의 왕 세오덴은 자신이 이끄는 기병대와 연합군에 피가 끓어오르는 명연설 후 맹렬하게 돌격한다. 거침없는 돌격으로 힘입은 연합군은 치열한 전추 끝에 승리하지만, 세오덴은 장렬히 전사하며 다음의 말을 남긴다.

"이제 위대한 선조들의 전당에 들어가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다..."

이때, 세오덴의 얼굴에는 이 세상 누구보다 더 평온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장엄한 전투의 승리자로 기록되며 전설의 반열에 오른다. 이 장면이 책을 읽는 내 기억속에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토록 거대하고 장대한 사유의 군단을 통솔하고 배틀라인으로 일렬로 서게하며, 독자들에게 마치 거대한 구원군처럼 보이게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아닐까... 물론 이렇게까지 느낄 수 있도록 치열하게 읽고, 토론하였으며 누구보다도 더 격렬히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접하며 준비했을 저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백척 간두의 미나스타리스 요새에 갖힌 우리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달려와 준 저자에게 심심한 감사의 표시를 하고싶다. 분명 나와 같은 독자들은 저자가 위대한 사상의 선조들이 모셔진 전당으로 들어갈 자격이 충분히 되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생각의요새 #고명섭 #교양인 #철학 #인문학

f******8 2023.08.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생각의 요새
"생각의 요새" 내용보기
물질적인 빈곤과 결핍은 결국 생각의 결핍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며 삶을 살지 못하면 생각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삶이 이리저리 휘둘리기 때문이다. 몇년전부터 도서 시장에서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문해력, 집중력과같은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는 말도 이젠 식상할 지경이다. 그걸 넘어서 그 안에서 쉽게
"생각의 요새" 내용보기
물질적인 빈곤과 결핍은 결국 생각의 결핍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며 삶을 살지 못하면 생각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삶이 이리저리 휘둘리기 때문이다. 몇년전부터 도서 시장에서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문해력, 집중력과같은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는 말도 이젠 식상할 지경이다. 그걸 넘어서 그 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숏츠, 릴스, 틱톡 등의 숏폼 콘텐츠는 우리의 뇌건강 뿐만 아니라 삶을 방해하기 딱좋은 매개체이다. 이로인해 무엇인가에 대해 사유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긴 소설이나 동영상 시청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었으며, 누군가가 요약해주거나 간단히 말해주는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을 어렵지않게 찾을 수 있다.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책읽기'이다.

제대로 된 독서는 제대로 된 책에서부터 시작한다. 처음부터 마냥 어려운 책을 접하려고 한다면 금세 지쳐 포기하고 말것이다. 수천년간 이 땅위를 오고간 지성인들의 지혜를 모두 탐독할 수는 없지만 이를 간단히 맛보고 단 한가지의 주제, 단 한명의 사상가만이라도 그의 생각과 대화를 이어나간다면 이보다 더 귀한 경험과 삶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의 조금 아쉬운 점을 밝히자면 소개하는 책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생각날때마다 책을 꺼내어 부분부분을 읽는다면 상관 없겠지만, 간단히 저자를 알아간다고 이해해도 그들의 삶에서 시작해서 해당 저서에 이르기까지의 스토리를 매페이지에서 접하다보니 피로감이 조금 느껴지긴 했다.

아무튼 우리 모두는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진득히 한가지에 몰입하는 기쁨, 깨달음의 행복, 새로운 지식 습득의 희열 등등... 공허한 현대 사회에 부족함을 채워주기에 그들의 생각과 저서는 충분하다. 훌륭한 저자들과 그들의 작품, 그들의 사상을 느끼게 해준 작가님의 노고와 수고에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P51 수학에서 난제의 해법은 지난한 탐구 끝에 어느 한순간에 계시처럼 들이닥친다. 예술 작품도 번득이는 영감 속에 빚어진다. 사랑이라는 열정도 두 사람의 우발적인 만남에서 비롯하며, 정치적 진리도 '바스티유 함락'처럼 돌연한 사건으로 시작해 돌이킬 수 없는 변화로 이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몯느 진리 과정에 인간들이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주체가 되고 그 진리를 향유하는 자가 된다.

P66 기적이란 데이비드 흄이 말한 대로 '인과적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사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현상을 종교적 태도로 본다는 뜻이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자연법칙에 지나지 않는 것이 종교인의 눈으로 보면 기적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눈으로 보면 가장 놀라운 기적일 것이다.

P85 슈미츠는 사랑에 관한 긴 현상학적 분석을 마친 뒤 마지막에 "사람들이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을 돕는 것"이 책을 쓴 이유라고 밝힌다. 사랑은 구조상 깨지기 쉬운 것이기에 원숙한 사랑에 이르려면 환상의 베일을 벗고 사랑의 취약성을 잘 들여다보아야 하며, 그렇게 들여다보는 데 현상학적 사유와 훈련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P316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 자야말로 가장 군주다운 군주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한 것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지배한다는 '도의 역설'이 정치의 영역에서도 똑같이 성립하는 것이다.

P410 인간이 해방될수록 그 해방이 낳는 욕망의 보편성이 역으로 인간 자신을 위협한다.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비극 예술은 세상에 넘쳐나는 비참을 이해하게 해주는 눈이자 인간의 자기파멸 위험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f*******7 2023.08.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