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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작가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페소아> 편으로 알게 된 작가다. <페소아>를 읽을 때는 작가의 그림 실력을 알지 못했는데, 이 책과 작가의 또 다른 책 <비수기의 전문가들>을 사서 읽으며 작가가 뛰어난 그래픽 노블 작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책섬>은 책을 만드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만드는 사람, 지금 여기에 없는 새로운 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의 이야기이다.
"난 책 병에 걸렸어요. 태어날 때부터. 모든 펼쳐지는 것들을 책으로 착각했어요." (22쪽)
책은 하나의 섬이다. 하나의 섬으로 가면 그 섬에 영영 머무르고 싶어지기도 하고, 다른 섬이 궁금해져서 다시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같은 섬도 어떤 사람은 눈에 보이는 풍경만 가볍게 훑고, 어떤 사람은 땅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간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섬에 새로운 공간을 짓거나 자기만의 장소를 발견하기도 한다.
책은 배이기도 하다. 돛 없는 그 배는 바람 따라 물살 따라 이리저리 떠돌다 마침내 어느 해변에 도착해 낯 모르는 사람의 손길에 닿는다. 그렇게 도착한 배가, 책이 나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줄지 매번 궁금해하고 기대하는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언젠가 나도 책이라는 배를 타고 머나먼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책은 오솔길 / 문장 나무 사이로 난 / 오솔길을 걷다 보면, / 걸려 넘어지는 문장이 있어. / 그 문장 앞에서 넌 작아지지. (8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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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섬을 일구는 사람들, 수많은 책섬을 찾기 위해 표류하는 사람들 <책섬 - 김한민>
책이라는 건 참 신비하다. 이렇게 말한다면 너무 거창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아마도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쌓으면 저 우주까지 뚫고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의 세계는 무한하고 놀랍다. 가장 신기한 것은 독자가, 책에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에 대해서 나름대로 파악하고 무엇인가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 이 작가가 좋다", "이 작가는 이런 마음으로 책을 썼을 거야."하는 생각, 표면적인 텍스트가 시공간을 초월하기 시작한다. 역시 이렇게 말해도 참 거창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동의할지도 모른다. 책을 펼칠 때의 두근거림, 설렘을 아는 사람이라면. 간혹 하나의 책이 어떤 사람의 마음을 진하게 울리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감흥이 없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절대적으로 '좋은'책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통계적인 수치로 가늠할 수는 있겠지만, 각자에게 좋은 책이 역시 존재한다. 우리의 취향이 각자의 책을 고른다. 똑같은 문장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분위기와 느낌을 변형시킨다. 어쩔 때는 많은 부분을 함축한 짧은 글로, 어쩔 때는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린 줄글로 쓰이는 '책'.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마음은 혹 다를지도 모르지만, 책 속에 담긴 글, 책을 쓰기 위한 노력과 그 마음은 아름답고 각자 생동감 있는 색깔을 가지고 있다.
책 속에서는 저자이자 시인이자 만화가인 주인공이 자신의 독자가 되어줄 눈먼 아이를 찾아내고, 책을 짓는 과정 - 책섬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 한 가운데에 섬을 개척하는 그들, 작은 영감 하나로 백지에 글을 채워 넣는 책 짓기가 바로 이렇지 않을까? "영영 끝이 안 보일 것 같았건만, 돌아보니 어느덧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는 책 그리고 책섬. 독자인 우리는 이 바다 한복판을 누비면서 다양한 출신 그리고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는 책섬을 골라 표류한다. 그리고 내 마음에 들어온 책섬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물론 그 전달은 때로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책은 오솔길 문장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걸려 넘어지는 문장이 있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책의 함정, 그리고 자칫하면 책을 놓아버리게 만들 수도 있는 그 구덩이는 어느 책들에나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할 때쯤 작가는 가와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작가의 마음을 따라가게 만드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책에 빠져든다. 밀당의 천재, 책에 이름을 붙인다면 아마 이것도 적당할 지도.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한 페이지를 꽉 채우고 있다 -)
'책섬'이라는 소재가 참 와 닿았다. 저자는 책을 일궈내는 것,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애정을 이 책에 듬뿍 쏟아냈다. 책에 대한 애정이 함축된 짧은 글(만화)이지만, 그것을 읽고 책과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이 떠올렸다. 책섬을 일구는 사람들, 수많은 책섬을 찾기 위해 표류하는 사람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찾아낸 책섬을 듣고 다시 한번 홀려 책섬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 한마디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아마도 수많은 책섬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세상의 바닷속에서 천천히 떠다니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책섬. 이제는 건질 일만 남았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책 병에 걸린 사람들 - 언제까지나 새롭고 멋진 책섬을 만나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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