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성호 작가는 옥한흠목사의 장남으로 기독교 출판계에 해성같이 등장하여 부족한 기독교시리즈를 |
|
오늘 아침 일간지에서 목회자 아들의 교회세습에 관한 생각을 읽었습니다. 저 역시 자식들이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이어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개신교 목사님들 역시 아들이 대를 이어 목회자가 되는 것을 큰 축복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목사님이 맡고 있는 중대형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물려주는 경우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 세습도 문제가 되는 세상인데, 기업이 아닌 교회를 ‘지상의 왕국’으로 만들어 아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동아일보 3월 21일자 기사, [김갑식 기자의 뫔길]축복일까 특혜일까… 목회자 아들의 교회세습)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저는 종교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깊이 알지 못합니다. 그저 언론에 보도되는 정도를 스치듯 읽고 마는 수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무슨 일일까?’싶은 정도의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옥성호작가님의 <서초교회 잔혹사>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작가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가상의 스토리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우리나라 교회에 배태되어 있을 수 있는 현실들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버무려넣은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마침 작가님이 사랑의 교회 설립자인 옥한음목사님의 장남이라 하셔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 저의 직장이 있는 서초구에 ‘서초교회’라는 가상의 성전을 무대로 일어난, 한 마디로 사기극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한편의 황당사건을 읽으면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서초교회를 수만명의 신도가 모인 회상으로 키워낸 정지만목사님이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김건축목사님을 영입하여 물려준 것 까지는 앞서 말씀드린 교회세습이라는 꼴불견과는 거리가 먼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 일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지만 목사에 이어서 서초교회를 담임하게 된 김건축목사의 인품이 제대로 검증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일은 김건축목사님을 선정한 정지만 목사님에게 귀책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만, 하느님을 모시는 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할 교회가 신도를 확대하고 수익의 창출을 지상의 가치로 삼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장세기목사님은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대학에 다니면서 인연을 맺은 서초교회에서 간사를 맡았다가 새로 부임한 청년부 담당목사와 갈등을 빚으면서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목사가 된 다음에 서초교회 청년부를 담당하게 된 것인데, 내세울 것이 없는 장세기 목사의 순수함을 주목하여 발탁해준 교역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현실과 타협하여 김건축목사님의 사기극에 빠져드는 그에게서 인간의 나약함을 봐야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소설 속의 김건축 목사가 개인의 야심을 쫓는 사기꾼인지, 아니면 하느님을 믿는 방식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떠나 현대적 감각을 입힌 신지식인인지 애매하다는 점입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성전을 짓고 수익사업을 벌이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성스러운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기 때문에 절차나 방식에서 거짓과 속임, 모략과 배신, 협박과 폭력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용서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팩트에 기반한 르포르타주가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도 수 늘리기에 급급한 일부 대형교회와 욕망에 사로잡힌 목회자의 위선적 태도를 비유적으로 성토하고 금기와 성역으로 무장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에 대한 도전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한국 교회의 사역자들이나 신도들 가운데 공감하시는 분들도 있는 반면, 반발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께서는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단 한순간이라도 도대체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길 바란다.”라고 적었습니다만, 작가가 창조한 인물 장세기 목사처럼 종교란 나약한 인간이 마음을 의지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문화적 소산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 교회에 다닌다는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
교회하면 떠오르는 건,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겠다고 그 앞을 기웃거리던 장면이다. 간식이나 문구 세트 등이 귀할 때, 교회에 친구를 데리고 오면 그런 것들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 따라 간적도 있고, 친구를 데리고 가 본적도 있다. 하지만 믿음이 약했는지 아니면 선물의 유혹만 강했는지 이후에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강요된 믿음이 싫었고,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천당에 갈 수 없다는 묘한 논리가 왠지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기도와 노래가 울려 퍼지는 묘한 느낌의 성. 어린 시절 내가 느끼는 교회의 인상이라고나 할까?
서초 교회에 새로 부임하게 된 담임 목사 김건축. 그는 특유의 화법과 카리스마로 교회의 신도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아프리카 한인 교회에서 하던 요루바 족의 언어로 찬양을 가르치고, 글로벌 미션(세계 선교)라는 이름으로 전 교역자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겠다고 말한다. 교회 내에 부서들을 만들고 그에 따른 직책을 부여하고, 글로벌 미션을 수행할 핵심 요원들을 뽑는다. 이어 김건축 목사는 ‘글로벌 마인드로 정복하는 영어 회화’라는 책을 출판해 더욱 유명해진다. 하지만 인터넷 언론에 익명의 제보가 날아든다. 바로 책의 진짜 저자는 따로 있다는 것. 과연 이들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미션을 수행할 것인가?
이 책은 사랑의 교회 설립자이며 원로목사였던 옥한흠 목사의 장남이 쓴 소설이다. 사실 나는 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의 스토리는 잘 모른다. 다만 예전에 다니던 설계사무소에 교회 건축만 담당하는 부서가 있어 교회 이름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목사의 아들이면서 교회를, 아니 한국의 기독교를 비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용기를 낸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내 입장에서 교회를 보면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물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신을, 종교를 강요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거북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떤 종교든 규모가 커지면 그 안에서 이권 다툼을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세력을 모으는 모양이다. 목사 사회에서도 명문대, 학벌이 우선 되는 모습을 보니 쓴웃음이 나온다.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물질적인 것으로, 규모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는 김건축 목사라는 사람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글로벌 미션을 품은 이 서초교회 성도들은, 입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아니라 지갑을 열어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223) 우리는 오늘 이 시간부터 무엇보다 물질을 초월해 하나님 앞에 내가 가진 재산을 아까워하지 말고 다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36) 교회를 다니지 않으니 모든 교회가 이렇게 말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가진 것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은 그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인가? 교회만 다니면 천당을 간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같은 천당이라도 돈 있는 사람은 천당 중에서도 편한 요직에, 돈 없는 사람들은 천당 문지기나 잡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권력과 세속에 물든 교회를 향해 작가가 날린 한 방이 시원하기도 하지만 이런 한 방을 맞고도 반성하지 않을 교회들이 많다는 것에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화자인 ‘나’ 역시도 속물이다. 자신이 서초교회에서 잘릴 위험에 처해 있을 때엔 믿음을 위해 교회를 나갈 것처럼 말하지만, 자신이 교회의 핵심 멤버가 되고 부터는 싹 달라진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김건축 목사를 찬양하고, 그의 허수아비가 되어도 좋아를 외치게 된다. 사람들을 시켜 교회에 유리한 증언을 하거나, 여론을 몰아가는 수법을 보면 여느 정치판보다 더 정치적이다. 신은 과연 있는 것인가? 교회에 다니면 정말 천당에는 갈 수 있는 것일까? 교회에 얼마나 많은 헌금을 냈느냐에 따라 혹 천당행 열차가 급수별로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읽는 내내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종교가 없는 내 입장에서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믿음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거슬리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기독교는 분명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규모와 양적인 팽창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진정한 믿음에 대해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
진작에 이런 책이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종교를 건드리면 안될 성역이자 비판은 금기시된 영역이라고 가이드를 친다. 왜 비판을 하면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종교단체도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고 잘잘못이 있으면 실정법에 따라 처분을 받는 건 당연한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성도들에게 가르칠 때는 그 교회 내 시스템도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형화되면 될수록 성도들이 낸 헌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작년에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시사프로그램들이 연달아 나왔다. 실제로 최근에 법적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에 모범이 되어야 할 지도층에 있는 분이 언론상에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신문으로 사실과 다르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더 맑고 투명하게 개선시킬 것은 개선시키고 공개할 것은 공개해야 한다. 뚜렷하게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면 그건 신앙이나 믿음을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초교회의 새로운 담임목사인 김건축 목사는 어떤가. 오랜기간 아프리카 선교활동을 하다가 정목사 후임으로 온 사람인데 교회가 망가지는 건 순간이라는 걸 느꼈다. 핵심 요원, 잉여 요원, 건전지 요원으로 목사들을 분류한 것은 사실상 정리해고와 다를 바 없고, 낙하산 인사와 인사교체도 벌어진다. 그 뿐만 아니라 글로벌 미션을 한다면서 목사들보고 일주일 안에 토익점수로 판단하겠다는 건 또 뭔가?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목사를 전무목사, 부장목사, 과장목사로 나뉘거나 언론홍보팀을 꾸려 언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교회가 세속에 물든 전형적인 모습이다. 정작 본인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서 갖은 핑계를 대다가 기도를 드릴 때 립싱크로 영어로 말하는 척 속이는 부분도 어이가 없었다. 교회가 이렇게도 망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씁쓸했다. 대형교회 교역자 내부에서도 이럴진대 일반 성도들은 또 어떨까 싶다. 맹목적으로 설교시간 모습만으로 믿는 일반 성도들이 안타깝게 느껴졌고 책에 나온 서초교회만의 일일까 싶다. 이보다 더 심한 일을 한 교역자들의 사례를 언론상에 나온 기사로도 많이 봤었다. 비기독교인이 개독교라며 욕하는 걸 들을 떄마다 속으로는 불쾌함을 감출 수 없지만 밖에서 그렇게 비춰지는 이유가 있으리라 본다. 그건 교회가 깨어지지 못하고 세상과 닮아버린 탓이다. 교회는 스스로 참회하는 심정으로 이런 비판들을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받아들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교회라면 더 이상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아닌 세상과 격리된 채 그들만의 신앙을 지켜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답답했는데 중세시대의 마르틴 루터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그 당시 교회는 면죄부를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일을 주수입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만큼 교회가 부패했다는 것인데 마르틴 루터는 이에 대항하여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가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개신교를 만드는 초석을 만들었다. 개신교는 부패해져 가는 기존 카톨릭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나님 중심에 서서 신앙을 지켜가려 한 신념으로 목숨 걸고 지켜나갔었다. 신앙도 세대와 시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어느새 교회는 세상과 결탁해서 세를 불리는 느낌이다. 교회의 대형화가 자랑거리가 되고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기준이 된다. 이제는 참 신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이제는 되짚어봐야할 시간이다. 내 신앙은 폐쇄적인지 아니면 표용적이고 관용적인지 되물어보자. 맹목적인 신앙보다는 내 신앙의 기준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가야 할 때이다. 내가 믿는 종교, 내가 믿는 교회를 언론이 비판적으로 다루면 극렬한 저항이 따른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후진적인 사회일수록 성역과 금기가 넘쳐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뭔가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금기와 성역은 필연적으로 위선과 거짓을 양산하는데 그것이 신의 이름으로 포장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위선과 거짓이 난무한다고 하는데 한 시사프로그램을 통해서 여실히 보고 느꼈던 부분이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통렬하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교회는 비판을 자유롭게 받아들일만큼 건전하고 투명한가? 아니면 어떠한 비판도 용납되지 못할만큼 폐쇄적이고 맹목적인지. 아무래도 뜨거운 화두로 던져놓은 저자가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라는 점이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의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
|
부자 동네에 있는 교회 하나, 서초교회라 부른다. 서초교회의 담임목사인 정 목사가 후임을 결정하고 은퇴를 선언한다. 그 후임 목사는 아프리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김건축 목사다. 오지의 땅에서 아프리카 주민들을 하나님 곁으로 인도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찬양하고 보살핀다. 주인공인 나, 장세기 부목사는 서초교회의 청년부 목사다. 서초교회에서 간사로, 목사로 20여 년을 함께 했다. 대단한 스펙은 없지만 오로지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과 믿음으로 함께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종교생활을 하는데 그 신앙심만큼 우선시될 수 있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듯하다. 김건축 목사가 부임하기로 한순간 교회 안에서 살생부가 돈다. - 서초교회에 남아야 하는 목사(핵심 요원) - 김건축 목사가 부임하기 전에 나가야 하는 목사(잉여 요원) - 있어도 되지만 없어도 별 상관이 없어 언제라도 대체 가능한 목사(건전지 요원) ‘나’는 어디에 속하는 목사인가 의문을 가진다. 가장 안타까운 대상인 잉여 요원일 것인가, 아니면 건전지 요원일 것인가. 분명한 건, ‘나’는 핵심 요원은 아니라는 것. 서초교회 이외의 곳에서 종교생활을 한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 것. 당장 생계 때문이라도... 김건축 목사가 부임하더니 서초교회는 많은 것이 물갈이된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이루어진 것이다. 전에는 목사, 부목사 두 가지로 불리던 사람들에게 직급이 생긴다. 담임목사, 전무 목사, 과장 목사, 목사(강도사, 전도사), 파트타임 목사(강도사, 전도사)로 철저하게 수직 편성된다. ‘글로벌’이라는 슬로건으로 교회 내에서 영어가 필수 언어가 되고, 좀 더 크고 확실하게 하나님의 사업을 하기 위해 언론에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해외파 목사를 영입한다. 교회에 홍보를 담당하는 부서가 생기고, 김건축 목사의 비서 역할을 하는 이가 생기고, 이런저런 사업이 확장된다. 그 과정에서 일부 목사는 제 뜻을 찾아 서초교회를 나간다. 이제 서초교회에 남아 있는 인물은 충성을 기본으로 하는 장교 출신 목사와 글로벌에 맞게 영어가 되는 목사, 두 부류다. ‘나’는 장교 출신도 아니고 영어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초교회에 아직 남아 있다. ‘나’의 바람은 처음부터 오직 하나였다. 서초교회 청년부에 뼈를 묻는 것. 하지만 서초교회에 ‘내’가 남아 있어야만 그 뼈를 묻을 곳이 되지 않겠는가.
TV 고발프로그램에서나 봤음 직한 이 소설의 내용이 생생하게 들리면서, 교회가, 종교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한다. 종교라는 단어에 여러 가지 정의와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마음을 의지하고 바로 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멘토였다. 교회로 보자면 그 멘토가 하는 말은 성경과 찬송일 수 있겠고, 목사의 설교일 수도 있고, 직분자(장로, 권사, 등등)들의 진심 어린 한 마디일 수 있다. 그렇게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모인 곳, 하나님이라는 대상과 교회라는 공간은 ‘우리’라는 연대를 형성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믿음직스러운 이유가 된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분모는 하나님인데 오히려 다른 이유로 그 믿음이 깨지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 믿음에 틈이 생기는 순간, 어떤 이익의 계산이 틀어진 순간, 누군가의 거짓이 드러나는 순간, 각자의 마음은 여러 갈래로 길을 나눈다. 그 순간 ‘우리’는 와해한다. 그렇게 흩어진다. 떠나는 사람, 남은 사람이 완전히 정리되고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이건 하나님도 막지 못하는 일이 된다. 사람의 마음이라,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20대의 몇 년 동안 교회에 다녔다. 내가 믿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가족이 같은 종교를, 그것도 꼭 개신교를 믿어야 한다는 말을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러면서도 한 가지 바람은 있었다. 언젠가 종교생활을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으니, 비록 이렇게 종교생활 시작하지만 결국은 내 의지로 선택한 종교가 되길 바랐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교회와 교회 사람들의 여러 가지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마음이 그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멈추고, 뒤돌아서게 만든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들려오는 말은 이거였다. ‘교회라는 곳이 사람을 보고 다니나, 하나님 보고 다니는 거다.’ 그들 말대로라면 하나님을 보고 다녀야 하는데, 나는 그 하나님이 제대로 보이기도 전에 사람들이 쏟아내는 상처가 더 먼저, 더 많이 보였던 거다. 그런데 그들의 말에 모순이 있는 게, 내가 경험하고 봐온, 교회를 떠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만장일치 사고방식이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가족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끼리 결혼해야 한다, 교통사고가 나도 하나님이 벌주셔서 그렇다는 말까지 들었다. 내가 경험한 교회와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이란 조건을 붙여 말하기를 좋아했다. 무슨 일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마다 ‘하나님 일인데’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은, 그 일을 해야 하는 개인의 선택이고 결정인데 당연함을 강조했다. 교회에 서너 번 갔을 때 나에게 성가대에 앉으라고, 나에게 주일학교 교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는데, 하나님 일인데 성가대도 안 하고 주일학교 교사도 안 한다고 인상을 쓰더라.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일이 매번 강요되는 게 옳은 것인가 상당히 의문을 품었었다. 동시에 이렇게까지 내가 교회에 나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엄마 얼굴 생각해서 제대로 말을 못하고 있자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즈음 해서 어느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가 끝나고 교회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목사가 식판을 들고 와서 내 앞에 앉았다. 그러더니 묻는다. 자매님은 어떤 남자가 좋으냐고,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주겠다고. 나는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목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교회에 안 다니는 남자가 좋습니다.” 목사가 뜨악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고개 숙이고 식사만 했다. 그 이후로 교회에 안 갔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는데 그동안 너무 화만 키웠던 듯하다. 진심이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교회에 다니든 절에 다니든 종교에 대한 강요가 없는 사람이 좋다는 거다. 남자 여자를 떠나서, 교류하는 데 있어서 종교에 대한 강요가 나올 경우 나는 더 말하지 않는다. 내가 교회에 다니지 않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이유는 교회라는 공간과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서다. 언젠가부터 그 치유에 대한 희망마저 없었고,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 앞에서 끝까지 이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제가 중요한 걸 하나 알려드리지요.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도 이게 없으면 결코 일하실 수가 없어요. 그게 뭘까요? 여러분의 헌신이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이 마음을 다해 바치는 헌금이에요. 물론 하나님께 돈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말씀으로 모든 걸 하실 수 있어요. 그래도 이걸 아셔야 해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고 싶어 하시거든요. 그러려면 하나님도 돈이 있어야 해요. 여러분의 헌신이 필요해요. 여러분, 아끼지 말고 헌금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헌신을 통해, 여러분이 바치는 재물을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222페이지)
이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의 장세기 목사가 끝까지 서초교회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과정이 내 안의 상처를 끄집어냈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것은 장세기 목사라는 인물이지만, 그 중심에 있는 내용은 서초교회의 중심이 된 김건축 목사와 그를 둘러싸고 함께 하는 목사들, 신도들이 함께 하는 이야기다. 교회가 여러 사람의 신앙심을 중심으로 어우러져 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목적, 이윤 추구를 위해 확장하는 기업처럼 거대해지고, 그 이면에서 이루어지는 부조리들이 사람들의 진심을 짓밟고 있었다. 말 그대로 ‘잔혹사’다. 끝까지 그 잔혹함을 내려놓지 않는 모습에,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내일을 그리는 건 어려웠다. 한 교회가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사람의 심리가 누군가의 욕심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그 안에서 권력이 어떻게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보게 한다. 그들의 위선과 거짓, 그 안에서 형성되는 권력에 지배당하는 무지하고 순진한 백성이 된 듯한 기분, 순수하게 믿음으로 다가서려 하는 사람들에게 뒤로 돌아서게 하는 종교라는 딜레마. 상투적인 말이지만,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 풀어내도 전집 시리즈로 거뜬히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그 양상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내 안의 상처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 보면, 이 책이 소설임에도 소설로 읽히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는 소설인가? 소설이다. 저자가 그렇게 썼으니, 소설이라니까 소설인 게지.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이야기가 소설이 가지는 허구라는 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이 책이 비단 소설로 읽히지 않는 사람이 나뿐일까.
별것 아닌 이 리뷰를 열 번도 넘게 고쳐 썼다.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다. 자체검열 하느라 고쳐 쓴 부분도 많다. 가슴 속 말들을 토해내듯 쏟아내고 봤더니 단편소설 분량이 나온다. 지나간 시간은 기억에서 머물지 않았다. 그 안타까움과 불편함, 이해불가의 일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진행형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종교는 여전히 성역이자 금기’라고 말했다. 필연적으로 위선과 거짓을 양산하는 게 금기와 성역이라 말했다. 저자의 아버지가 존경받는 목사인데 저자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게 놀라울 수도 있지만, 저자의 이런 생각 때문에, 저자의 이런 글 때문에 한국의 교회, 종교가 발전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종교를 대함에서,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비상식이 상식을 지배하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적어도 종교에서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
교회를 옮기고 싶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했던 생각임에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은 사람들은 공감을 못하겠지만 십 수 년을 다니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모태신앙(태어날 때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이거나 오랜 기간 한 교회에 정착해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사실 교회라고 해봐야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보다 더 나은 교회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무슨놈의 교회 안에서 문제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 옥성호씨의 에필로그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이나 내가 그 동안 교회에 다니며 겪은 일들은 뉴스나 시사고발프로그램에서 보도된 것들 보다 더 심각하고 다양하다. 군사독재시절 폭발적으로 증가한 교회의 숫자와 교인의 숫자는 언제인지 정확하게 특정할 수는 없지만 90년대 들어서부터 정체되거나 급감하고 있다는 것은 정설이다.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의 뒤통수를 보면 한국교회의 심각함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이 지긋한 교인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70,80년대 폭발적 교회성장을 낳은 1세대 목사들 이후 2세대 목사들이 등장하면서 교회는 무작정 대형화되는 것을 멈추고 수평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교회 옮기기 현상이다. 토속적 기복신앙과 이상하게 결합된 한국교회의 특이한 교리는 더 이상 젊은 교인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 교인들은 보다 새롭고 젊고 신선한 교회를 찾아 떠났다. 90년대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런 현상은 이어졌다. 홈플러스와 이마트가 등장한 이후 골목상권이 깡그리 없어지게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 젊고 신선하고 새로운 교회에 교인을 빼앗긴(?) 기존 교회들은 교회 내 수평이동을 조장하느니, 뭐니 하면서 비판을 했지만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떠나는 젊은 교인들을 잡아둘 수는 없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올해 교회 설립 100주년을 맞는 교회다.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고 명망 있는 교회다. 몇 년 전부터 교회 설립 100주년을 준비했는데, 올해 100주년을 맞아 하는 행사들과 행태들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자세히 언급하기조차 싫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교회의 위상과 곪을 대로 곪은 지역 사회와의 갈등을 풀기 위해 젊은 교인들이 여러 가지 제안을 했지만 모조리 무시되었다. 최소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100년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다가오는 101년을 준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교회가 과도한 예산을 들여 하는 이상한 일들을 보면서 말들이 많다. 한 번씩 인터넷을 달구거나 하는 교회내의 싸움과 분열과 숙청(일부 교인들이 대거 쫓겨나는)의 가장 큰 이유는 이런 100주년이다 교회 건축이다 하는 큰 문제와 관련이 되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큰 교회 몇 군데는 이미 그런 일들로 홍역을 치렀다. 교회 내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욕심이다. 한 교회에 있는 목사를 비롯한 교역자에서부터 장로, 권사, 집사, 일반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욕심을 교회 건물 안에서 이루려 하니 각기 상충하는 욕망들이 충돌하는 것이다. 교회도 똑같다.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다. 당연히 갈등이 있고 욕망이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이상하게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목사와 장로의 세력 다툼, 장로와 장로의 세력 다툼 등으로 왜곡되어 이용된다. 사실 이런 것들을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다. 교회와 목사와 장로가 이야기하는 것은 도그마이고 교리이며 교회의 법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 교회 형에게 열심히 드럼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떤 장로가 창문을 벌컥 열더니 “그런 쓰레기 같은 노래 집어치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정말 이상한 걸 배우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대학 때 성경을 몇 번 읽고 많은 신앙서적을 읽으며 신앙관이 180도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교회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이후 교회 청년부 활동을 하며 이런저런 일들을 시도해보고 내가 다니는 교회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모두 헛수고 였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제 지쳤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더 이상 뭘 건의하거나 교회 내 어른들을 만나 대화를 하거나 목사나 전도사님을 만나 토론을 해보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렇다.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 책 「서초교회 잔혹사」는 출간되기 전부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거웠던 책이다. 출간직후 그 유명한 사랑의 교회에서는 명예훼손이다 뭐다 해서 난리를 쳤던 모양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의 교회가 일으킨 분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주제와 내용이다. 아마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책의 저자가 고(故)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고 사랑의 교회가 서초동에 위치하고 있으니 지레짐작으로 ‘아~ 우리교회를 비판하는 내용이구나’ 싶었겠지만 전혀 아니다. 저자 옥성호씨는 책의 처음과 끝에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 한다. ‘사랑의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고 한국교회 내 전반적인 모순과 문제들에 대한 풍자’라고 말이다. 나도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책을 읽으면 별 내용도 아닌데 왜 호들갑들인지 모르겠다. 목사라고 별 수 있나 “기억하게. 교회를 살리는 길이야. 교회가 살고 담임목사님이 살아야 하나님이 일하시지. 교회가 없고 담임목사님이 없는데 하나님이 어디 있나? 안 그래? 여기서 열심히 해야 결국 자네도 언젠가는 담임목사로 교회를 섬길 거 아냐?” (p.284) 대형교회 중 대형교회인 서초교회에 김건축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다. 서초교회가 국내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고 많은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를 만든 사람은 정지만 목사다. 정지만 목사는 교회 내 교인들은 물론 국내 많은 교인들과 목회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단한 목사다. 그런 그가 담임목사를 그만두고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김건축 목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서초교회에서 일하는 교역자(목사와 전도사)들이 수백 명에 이르는 교회이다 보니 후임 담임목사에 대한 이런 저런 의구심과 이야기가 오갔지만 워낙 막강한 영향력과 존경을 받는 정지만 목사의 굳은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김건축 목사가 서초교회 담임목사가 된 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그런 의구심과 이야기는 현실이 되었다. ‘글로벌 미션’을 기치로 내걸고 교역자 회의에서부터 영어로 회의를 하고 유학파 목사와 한인2세 목사들을 대거 영입해 영어바람을 일으킨다. 김건축 목사는 부임하기 전부터 서초교회 목사들의 동향을 파악해 자신의 부임 이후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목사들을 요직에 앉힌다. 엥? 무슨 조폭두목도 아니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교회는, 더군다나 교회의 목사는 하나님에게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거 아냐? 순진한 소리다. 정지만 원로목사 시절 기를 펴지 못하고 한직에서 맴돌던 목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김건축 목사의 눈에 들기 위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김건축의 종’이 된다. 담임목사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김건축 목사의 눈에서 벗어나면 다른 교회의 목사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이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는 목사들에게 그들의 신앙은 헌신짝이 된다. 오히려 자기합리화를 한다. 김건축 목사의 ‘글로벌 미션’과 이런 저런 일들을 방해하는 무리는 사탄이라고 확정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어 버린다. 목사라고 별 수 없다.
“기업으로 치자면 서초교회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그 큰 교회의 청년부를 내가 총괄하게 되다니!” (p.10) “사실이 그랬다. 좋은 대학을 나와 미국의 신학교에 유학까지 갔다 온 목사들이 즐비한 서초교회에서 간사 출신인 나는 남들 눈에 그저 그런 신학대학원을 나와 운 좋게 교회에 남게 된 사람으로 비춰졌다.” (p.23) 더군다나 장세기 목사 같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청년부 부서 담당 목사를 채용하는 데 이력서가 수십 장이 접수되었다고 하니 서초교회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장세기 목사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하나다. 어떻게 해서든지 김건축 목사의 눈에 드는 것. 처음 김건축 목사가 부임하고 그의 이상한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던 목사들도 점차 순응하기 시작한다. 도저히 못해 먹겠다고 교회를 뛰쳐나간 목사들의 행보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장세기 목사도 마찬가지다. 김건축 목사가 부임하기 전 서초교회에서 자신의 롤모델이 되었던 선배 목사들의 충고도 이젠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교회의 정치화 - 아멘 하는 교인들 “‘서초교회 김건축 목사의 베스트셀러 <글로벌 마인드로 정복하는 영어회화>, 자신이 직접 쓰지 않았다!’” (p.147) 김건축 목사와 그가 요직에 앉힌 목사들은 교묘하게 언론을 이용한다. 부임 초기 ‘글로벌 미션’을 앞세우고 영어 회의를 하고 아프리카 찬송을 부르고 하는 등의 우스갯거리가 언론에 대서특필 된다. 서초교회는 물론 다른 교인, 일반인들에게까지 단번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욕심은 멈추지 않는다. 김건축 목사는 베스트셀러를 집필하는데 이것 또한 대박이 난다. 그런데 대필 의혹에 휘말린다. 직접 대필을 한 사람의 내부고발이 있었음에도 결국 탁월한 언론플레이로 무마해 버린다. 이후 ‘글로벌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땅을 사들이는 일도 내부고발로 밝혀지게 되는데 이것도 넘겨 버린다. “여론을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야 해. 댓글은 철저히 PC방이나 중국 쪽 우회 서버를 통해서 달아야 해. IP 추적을 해도 절대 알 수 없도록. 절대 실수하지 마. 이 사이트는 교회와 별개인 자발적 사이트여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p.286) 마치 지난 대선 전 짠~ 하고 등장한 십알단이 생각나는데, 차마 실제로 저런 것이 지금의 교회 안에까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장세기 목사는 대언론 전을 담당하게 된다. 이런 저런 의혹과 폭로에 휘말리지만 김건축 목사에게 치명타는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멘~ 할렐루야’라고 대답하는 교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조용기 목사와 전병욱 목사의 설교에 아직도 크게 ‘아멘’을 외치는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교회 내에서 올바른 비판을 하고 교회와 목사, 장로와 집사가 정치화 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세력이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쉽게 묻힌다. 그대로 가위로 오래내듯 들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는 월드컵 4강이라는 ‘결과’로 모든 것을 보여줬다. 나는 청년부의 부흥이라는 결과로 내 존재 가치를 보여 줄 자신이 있었다.” (p.137) 장세기 목사가 김건축 목사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청년부를 계속해서 담당하게 된 후 하는 다짐이다. 한국교회에서 생각하는 부흥은 교회의 대형화와 교인의 증가다. 한국교회에만 존재하는 부흥의 해석이다. 그래서 교인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에 목사와 교회는 아주 민감하다. 장세기 목사도 그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김건축 목사의 라인을 잡았으니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청년부의 부흥이다. 청년부의 부흥은 무엇으로 증명하나. 청년부 구성원의 숫자가 증가하는 것이다. 서글픈 일이다. 교회 내에서도 물신(物神)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고 성장과 증가가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
청년의 씨가 마르는 한국교회 “목사님, 아직은 뭐라 말하기가 좀 이릅니다. 청년부 회원 상당수는 이런 보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어요. 사실 지금은 다들 취업이다 뭐다 해서 정신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한 회원하고 얘기를 해봤는데 그는 그런 건 관심이 없고 혹시 청년부에 간사 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묻더라고요.” (p.157) 책을 읽으며 자꾸만 장세기 목사가 담당하는 청년부 회원에 대한 언급을 찾게 되었다. 서초교회가 분명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청년들의 모습을 저자가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했다. 결국 청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가장 슬프고 암담했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80년대 청년들은 교회 내에서 민주화 운동과 독재투쟁에 대해 공론화하고 함께 기도하고 실제로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지금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지역 교회의 실정은 더 형편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들이 너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 다른 정치적 아젠다에도 관심이 없는 청년들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슨 관심을 쏟을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김건축 목사의 비위와 거짓말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청년부 간사자리를 물어보기에 이른 것이다. 요즘 대학의 동아리 활동은 무척 위축되었다고 한다. 학회 활동도 그렇다고 한다. 학생들이 그런 학내 활동과 문제들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학점과 취업에만 매달린다고 한다. 이들을 탓할 수 없다. 사회와 국가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청년부 예배를 본 후 소그룹으로 나눠져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하는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의 참석률은 저조하기 이를 데 없다.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냥 관성으로, 부모의 간섭으로, 친구 만나러 교회에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청년 교인들을 나무랄 수 없다. 지금 한국교회는 젊은 교인들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없다. 그냥 저냥 지금의 교회 몸집 유지하는 것에 급급하다. 이 소설의 결말은 암울하다. 김건축 목사는 여전히 굳건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고 떠들던 언론도 조용하다. 심고 만든 댓글부대도 견고하다. 목사들은 김건축의 눈에 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교인들은 그저 ‘아멘~’ 한다. 청년들은 제 밥그릇 찾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교회 내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모든 조건이 완성된 것이다. 교회 내 문제에 대해서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던 내가 보기에도 이 책의 내용들 중 ‘진짜 이렇겠어? 소설이라 과장을 한 거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저자 옥성호씨는 이 책의 내용은 극히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곪아있는 것인지 답답하다. 이런 책은 교회 목사님은 물론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청년들을 비롯한 젊은 교인들은 필수적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한국 교회의 치부를 그냥 덮어버리고 모른 척만 하다가는 정말 희망이 없다. 돌이키고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많이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신의 일을 예측하거나 예상할 수 없으니 말을 줄인다. 이 책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 교회에 비판적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 넓이가 한국 교회에 있기를 바란다.
|
|
옥한음 목사님의 장남 옥성호 작가님의 책으로 발간되었을때 무척 이목을 받았던 책이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기독교 신자로서 이 책은 참 불편했고 물론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현실감이 있는 부분이 많다 보니 참 무섭고 두려움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꼭 금서를 읽는 느낌이 들더군요 알아서는 안되는 정말 불편한 진실이 있는 그런 책으로 이 책을 덮는 순간 참 많이 슬펐습니다 그냥 주님의 이름이 망령되어 불리는 모습에 분노가 일어났고 세속에 찍든 모습에 한숨만 나왔습니다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오히려 참 기독교인이 모습이 어떠해야하는지 꼭 다시금 새기게 해주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인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불편하지만 그래도 기독교인이라면 꼭 읽어야할 책인 것 같습니다 |
|
교회라는 집단에서 벌어지는 일이 가끔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내가 그 집단에 속해있지 않아서 알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 집단에 속해있다면 이런저런 상황이 이해가 될까? 마찬가지로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집단에서든 크고 작은 문제로 시끄럽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의 문제가 가장 크게 와닿기도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초교회 잔혹사'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금서를 보는 듯 주저하는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표지만 보았을 때, 이 책의 첫인상으로는 다큐의 이미지가 강했고, 읽다보면 괜히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현실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요즘 기분이 너무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푹 빠져드는 흥미로운 소설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이 소설, 정말 흥미롭다. 몰입도가 뛰어나다. 흡인력이 대단하다. 재미있어서 키득키득 웃으면서 읽게 된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씁쓸한 썩소를 날리게 된다. 어쩐지 현실에서 있을법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기분이 묘하다. 이 책은 교인이 아니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은근히 웃기니까. 교인이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다니는 교회 이야기는 아니니까. 교회에 대해 큰 관심이 없어도 상관없다. 이 책에서 교회라는 곳은 다른 의미로 다가올테니.
이 책을 읽다보면, '설마 그렇게까지야'와 '어쩌면 그 이상 세속에 물들어 있는 집단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오간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제각각 동상이몽으로 서초교회라는 곳에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있다. 교회는 그저 장소일 뿐. 그들의 행태를 바라보면 그저 웃음이 난다.
'그래, 소설이야, 소설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기를 마쳤다. 그런데 나에게 작가의 말은 반전과도 같은 느낌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긴장감을 주는 것이었다. 작가가 다녔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영화니까 당연히 재미를 위해 내용을 꽤나 과장했을 거라고 사람들이 오해한다는 점을 이야기 한다. "그 학교를 다닌 사람은 누구나 영화가 과장은커녕 오히려 실제로 그 학교 내에서 있었던 많은 일을 완곡하게 표현했다는 쪽에 동의한다." 그러면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이, 세상에 이런 교회가 어디 있어?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편견이라고! 아, 그래도 되는 것일까? 저자는 목사님 아드님이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단순하게 예측 가능한 부분만 있지는 않다. 세속과 음모, 권력 싸움 등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 책을 보며 사람들의 얽히고 설킨 탐욕을 바라본다. 어떤 집단이든 김건축 목사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또한 어떤 집단에서는 장세기 목사처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유쾌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핵심을 찔러주는 책이다. 다들 자신의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남 얘기 보듯 읽어나갈 것이다. 통쾌씁쓸한 책이다. 현실에서 이런 교회는 없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싶어진다.
|
|
대형 교회, 대형 교회. |
|
《서초교회 잔혹사》
나는 종교가 없다. 그러나 주위에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많아 그들이 자기 나름의 신앙을 가지고 각기 속한 장소에 가 기도를 하고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종교 자체에 관심이 있어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종교의 보고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종교들이 각자의 교단과 교인을 거느리고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간혹 '일부' 몰지각한 신자들이나 성직자들 때문에 그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이 불거지곤 하는 것을 볼 때 정말 우리나라 종교계가 썩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종교는 성역이자 금기라 그 안에 위선과 거짓이 자리 잡기 딱 좋은 곳이다. 특히 적극적으로 전도를 하는 각 종교의 신도들의 온, 오프라인 활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과격할 때도 많은데 그중 내가 가장 경악했던 것은 사고 나서 죽은 사람 앞에서 신을 믿지 않아서 벌 받았다고 하거나, 전생에 죄를 지어서 그렇다는 둥 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럴 때면, 그들은 과연 종교와 신을 대체 어떻게 믿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이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는 일단은 썩을 대로 썩은 교회 단체와 목사들, 이에 광적이고 이성이 마비될 만큼 현혹되는 어리석은 신도들을 담은 소설이다. 저자가 밝힌 데로 소설 속 서초교회는 특정 교회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서울 강남의 서초동이 지닌 부유함이라는 상성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겨우 4년제 대학을 마치고 이 교회 청년부 평신도 였다가 간사로, 나중에 목사가 되어 청년부를 이끌어가게 된 '장세기' 부목사다. 이 교회가 이처럼 대형교회로 클 수 있었던 이유는 교회를 개척하고 키워온 '정지만' 목사의 공로가 큰데, 그는 수많은 교단으로 쪼개진 개신교 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 교단을 초월해 존경받는 목사다. 그런데 사건은 연로한 정 목사가 전격 은퇴를 선언하고 그가 후임자로 '김건축' 목사를 지목하면서 시작된다.
김 목사는 홀로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교회를 세우고 선교활동을 한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서초교회로 오기 전부터 교회는 분열의 조짐을 보인다. 그가 정식 부임 전부터 이 교회의 목사들과 간사들 중에 남아야 할 사람, 내 보내야 할 사람,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을 골라내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일명 '살생부'가 떠돌고, 그의 행적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그는 별 탈없이 담임목사가 된다. 그 후부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데, 교회의 캐치프레이즈를 '글로벌 미션'으로 정한 뒤, 아니 기도로써 주님의 뜻을 받은 뒤, 모든 목사들은 영어를 배워야 했고, 회의도 영어로 진행시킨다. 그리고 언론 담당 부서를 만들어 언론 플레이를 시작하고, 교회를 마치 회사를 경영하듯 직위를 만들어 (대표 목사, 부장 목사, 과장 목사 등으로) 운영한다. 이를 위해 영어 회의를 주제하다 영어를 못하는 김 목사의 립싱크 기도 사건, 영어 회화 책 대필 사건, 마지막에는 글로벌 미션 영어타운 땅 투기 사건까지 겹치면서 일은 점점 커진다.
그 와중에 극중 화자인 장세기 목사는 초기의 순수한 마음이 점점 퇴색되고 쫓겨 날 뻔 했던 위기에서 담임목사의 최 측근이 되고, 나중에는 그 더러운 권력에 앞장서는 존재로 까지 변질 된다. 그러나 그는 돈이나 권력에 눈 먼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가족을 사랑하고 교회와 청년회를 사랑한, 그저 불의와 광기를 자신의 신앙과 믿음으로 덮어 보고자 했던, 어리석고 힘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는 그 더러운 곳을 빠져나올 기회가 있었지만 한번 발을 빠뜨린 후에는 그의 불합리한 행동도 믿음과 주님의 뜻이라고 합리화 하며,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부르듯 더 큰 논리와 이유를 만들어 가게 된다.
소설을 읽다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가 말하듯 소설은 교회와 종교에 대한 풍자이며 블랙코미디 이지만 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나라 사회전반, 혹은 우리나라의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이야기를 빼다 박았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다. 글로벌을 외치며 영어를 마치 모국어처럼 써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더라? 일이 터질 때마다 거짓말로 언론 플레이로 벗어난 사람은? 조직적으로 인터넷을 점령하고 댓글로 선동한 사람은? 나는 그 누구와 그 어느 당이 떠올라서 정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 선동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신도들은 바로 우리 국민이 아닌가 해서 말이다.
비단 서초교회 뿐이겠는가? 어디 종교뿐이겠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