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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출근하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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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반씩 등하교를 하던 시절, 오로지 이동에 들이는 시간이 너무 길어 안타까웠다. 버스에서는 무얼 하자니 멀미가 났고, 지하철은 그야말로 ‘지옥철’과도 같았기에 말짱히 서 있는 거조차 버거워 무얼 할 수가 없었다. 세계 최강의 인터넷 기술 보유국이라는데, 집에서 수업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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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반씩 등하교를 하던 시절, 오로지 이동에 들이는 시간이 너무 길어 안타까웠다. 버스에서는 무얼 하자니 멀미가 났고, 지하철은 그야말로 ‘지옥철’과도 같았기에 말짱히 서 있는 거조차 버거워 무얼 할 수가 없었다. 세계 최강의 인터넷 기술 보유국이라는데, 집에서 수업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실제 재택근무를 경험하자 사람들의 의견이 달라졌다. 일을 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쉬는 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 모두가 질린 것이다.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마저 집에 머물고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아이 밥을 차려주고 학습을 봐주다 보면 내 일은커녕 하루가 후딱 흘러갔다. 지금은 직장과 집은 분리되어야 하되, 거리는 가까운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쉴 수 있는 삶은 알고 보니 축복이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집에서 일을 한다. 어딘가에 고용돼 급여를 받는 형태가 아닌 이들이 대개가 그러하다. 그 중 저자는 예술가 집단을 주목했다. 인터뷰에 나선 까닭은 저자 본인도 집에서 일을 하는 입장이어서인 듯 했다. 어떻게 해야 일과 일상 사이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유사한 사례를 통해 지혜를 얻고자 함이 커 보였다. 실제 전형적인 형태의 사업체가 존재하지 않아서, 작업장을 구하자니 비용 부담이 커서 등 집에 머물며 노동하는 이들의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그럼에도 읽다 보니 동질성을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차이점이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부부가 함께 가정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정에 머물며 일을 하는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가사 노동은 여성의 몫인 경우가 다반사요, 남성이 집에 머무는 것은 무능력으로 해석하는데 반해 여성에 관해서는 으레 전업주부려니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나 또한 이와 같은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가 못했으니,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을 방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한다는 사실에 무의식적으로 안도했던 듯하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 가는 게 일반적인데, 이들의 공급은 수요와는 따로 노는 형국이어서 더욱 멋져 보였다. 제 아무리 기기가 발달했을지라도 인간의 손에 꽤나 의존적인 분야여서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다분히 비효율적인 형태의 공급이 가능했던 이유가 컸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제3 자의 위치에 선 나였기에 취할 수 있는 태도였다. 수입이 들쭉날쭉 했다.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닌 나의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돈이 필요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가사도 하고 양육도 해면서 일해야 했기에, 군침을 흘릴 법한 제안을 거절하는 일도 잦았다. 누구보다 냉철하게,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언지를 따져야만 하는 삶은 예상 이상으로 치열했다.

사진 속 풍경은 정갈했다. 충분히 정리하지 못해 엉망이라고 했지만, 왠지 살림에조차도 예술혼을 불어 넣은 거 같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많은 걸 소유해야 멋있게 살 수 있을 것처럼 굴었던 내겐 사고 전환의 기회와도 같았다. 능력이 허락한다면 보다 넓은 집, 작업 공간과 생활 공간이 완벽히 분리된 형태의 집 등을 갖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친 경우도 있었지만, 현재의 모습도 값은 비쌀지 몰라도 우중충하기 이를 데 없는 아파트에 비해 훨씬 멋졌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부러움을 선사했던 건 마당이었다. 공간의 드넓음 혹은 비좁음은 크게 중요치 않았다. 집 앞에 마당이 있으며, 나무와 꽃이 자라는 그곳에 나비와 벌이 이따금씩 날아든다는 사실이 아름다웠다. 바닥조차도 시멘트로 뒤덮여 온전한 의미의 자연을 즐기는 게 사치가 되어버린 도시인이라서 그랬다. 일을 하다가 머리가 아프다거나 졸음이 쏟아지려 들 때면 아담한 나만의 정원(마당)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니, 집에서 일하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은 결코 적지가 않았다.

스스로 관두지 않는 다음에야 정년까지는 지금의 이 모습을 유지하지 싶은 나와 달리, 이들의 삶은 유동적이었다. 인터뷰를 행한 후 한 권의 책으로 엮기까지의 시간 동안 누군가는 작업실을 구했으며, 이사를 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가치를 잃는 게 세상의 이치라지만, 여전히 따스한 온기를 품은 이야기만은 달랐다. 어떤 선택이었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에 대한 답이었으리라 믿는다. 이제부턴 남들보다 뒤쳐져서 초라하다고, 다른 사람만큼 많은 돈을 벌지 못하므로 무능하다고 타박할 시간에 ‘지금 나는 행복한지’를 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q*****2 2024.03.0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