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에 취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 과오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 책이다. 조선시대를 이상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하는 드라마와 역사책들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조선초 과학기술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저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무엇이 중한건지 모르던 사회지도층의 과오가 생각난다. 조선시대는 흠모보다는 반성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세금이 무서워 자식의 귀중한 곳을 잘랐다는 정약용의 시 애절양. 그게 18세기 조선의 현실이다. 애절양(哀絶陽, 양경을 자른 것을 슬퍼하며)>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밭마을 젊은 아낙 통곡소리 그칠 줄 모르고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청문을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정벌 나간 남편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예부터 남자가 생식기를 잘랐단 말 들어 보지 못했네 舅喪已縞兒未?(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상에 이미 상복 입었고 애는 아직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조자손 삼대가 다 군적에 실리다니 薄言往?虎守?(박언왕소호수혼) 급하게 가서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里正咆哮牛去早(이정포효우거조) 향관은 으르렁대며 마구간 소 몰아가네 |
|
국뽕에 취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 과오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 책이다. 조선시대를 이상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하는 드라마와 역사책들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조선초 과학기술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저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무엇이 중한건지 모르던 사회지도층의 과오가 생각난다. 조선시대는 흠모보다는 반성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세금이 무서워 자식의 귀중한 곳을 잘랐다는 정약용의 시 애절양. 그게 18세기 조선의 현실이다. 애절양(哀絶陽, 양경을 자른 것을 슬퍼하며)>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밭마을 젊은 아낙 통곡소리 그칠 줄 모르고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청문을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정벌 나간 남편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예부터 남자가 생식기를 잘랐단 말 들어 보지 못했네 舅喪已縞兒未?(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상에 이미 상복 입었고 애는 아직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조자손 삼대가 다 군적에 실리다니 薄言往?虎守?(박언왕소호수혼) 급하게 가서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里正咆哮牛去早(이정포효우거조) 향관은 으르렁대며 마구간 소 몰아가네 |
|
하루 시간을 내서 책을 완독을 하였다. 항상 나는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관심이 많다. 책을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나고 선조들의 선입견과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유지한 것 자체가 많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많이 놓친 것이 많이 아쉽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면서 얻는 교훈은 다시는 아픔을 겪지 않고 실수를 반복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를 배운다고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나라도 많이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학연, 지연, 혈연 중심으로 사교 모임이 형성되어있고 ‘가족 경영’이라는 타이틀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사회가 미래로 가면서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역사를 배우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키고 배우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을 하고 싶고 역사를 바로 알고싶은 독자들은 무조건 읽었으면 좋겠다. |
|
예전에 KBS에서 안내상 배우가 나와서 고종이 비자금으로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방영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국뽕같은 미디어로 인해 역사적 진실은 가려지고 만다. 자기의 화려한 생일 잔치를 위해서 지금으로 따지면 수십억을 쓴 고종이 아닌가? 백성은 굶주려 죽고 어쩔수 없이 만주로 떠나가는데.... 그저 자기의 왕권 보존만을 추구했던 고종은 매국노나 다름없다. 역사적 진실을 파해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
|
제목 : 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저자 : 최중경 출판사 : 믹스커피 우리 역사 서술과 역사교육은 은폐, 과장, 왜곡,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 ![]() ![]() 경영학 박사, 행정고시를 거쳐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국제금융국장, 세계은행 이사, 기획재정부 제1차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지식경제부 장관 등을 지내고 석좌교수를 역임한 분이다.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정말 대단한 이력이 아닐 수 없다. 경제계에서는 정말 알아주는 인물일 커리어를 지녔지만 저서로는 뜬금없이(?) 역사책을 저술하는 것을 보아 역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모양이다. 최근 최태성 선생님의 '다시, 역사의 쓸모'라는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중 하나는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한 글을 읽을 때였다. 최태성 선생님은 그 때 승자의 품격을 이야기하며 용서와 관용이 가져오는 결과를 이야기했다. 백제 성왕을 배신한 신라와 이를 잊지 않은 후대의 의자왕이 대야성을 함락하며 왕족이던 성주를 잔인하게 죽인 사건이었다. 이후 이에 분개한 김춘추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음에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으려 했지만 여의치않자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를 멸망시킨 이야기이다. 이 간단한 얘기만 봐도 알겠지만 그 책은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을 얻는데 목적이 있다. 예전부터도 최태성 선생님이 추구하는 역사관인 것 같다. 역사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지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성왕의 패착과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킬 때 고구려는 무얼 하고 있었나 하는 점이다. 그런 리뷰를 쓰고 얼마 뒤 책 정리를 하며 목록을 훑어보던 중 이 책에서 그 궁금증을 다룬 것을 봤다. 안 읽어 볼 수가 없었다. 전통적으로 고구려의 대 중국(여러 국가들의 침입이 있었고 다 말할 수 없어 중국으로 통일함)전략은 청야 작전이었다. 험준한 지역이 주를 이루다보니 산성을 중심으로 농성을 하고 주변의 식량을 모두 없앤 후 농성을 하는 전략이다. 적군은 보급로가 길어지다보니 보급이 원할하지 못하고 대군의 경우 더욱 힘든 상황이 된다. 고구려도 소수림왕 이후로는 군사 자체가 약한 국가는 아니다보니 그렇다면 충분히 승리해낼 수 있다. 수나라와 살수대첩이 그 결과 나왔고, 당태종의 침입도 안시성에서 막아낼 수 있었던 이유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보급을 해결하지 못한 전쟁은 이긴 적이 없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똑같은 이유로 러시아 원정을 실패하지 않았나. 이 청야작전이 가능한 이유는 중국이 요동지방을 건너서 오기 때문이다. 요서지역에는 어느정도 평야가 펼쳐지다 요동으로 넘어오면서 험준한 지역이 시작된다. 고구려는 여기서부터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다. 조금 더 접근하면 전투를 벌이는 방식을 가지며 중국의 전선이 늘어지고 보급로가 길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백제가 멸망하면 또 얘기가 다르다. 남쪽에서 신라와 연합하여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662년 당 소정방이 남쪽에서 고구려를 공격하던 중 식량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김유신이 급하게 식량을 보급하지 않았다면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고구려는 이 위기를 왜 모르는 척 하며 백제를 돕지 않았을까? 저자는 4개의 가설을 세워본다. 가설 1. 상황파악 지연 너무 늦게 전황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일본 천황도 군대를 이끌고 출정한 것으로 보아 고구려까지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가설 2. 당나라의 기만전술 고구려를 공격할 것처럼 하다가 백제에 기습 상륙하여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미리 군대를 준비해 놓았을 가능성이 높기에 돕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설 3. 고구려 조정의 오판 고구려는 신라를 신하국 정도로만 판단하여 고구려까지 공격할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가설 4. 백제의 돌발 상황 백제가 의외로 너무 일찍 무너졌다. 웅진성주 예식진의 배신으로 너무 일찍 무너져 고구려가 원병을 보낼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백제부흥운동 시에도 고구려가 원군을 파병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원병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가설 3이 적절한 판단이라 생각하고 있다. 또한 신라가 승리함으로써 한민족의 활동 범위가 줄어드는 것을 아쉬워한다.
이 챕터에서 생각해볼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저자의 역사관이고 두번째는 저자의 가설이 맞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20세기 들어 형성된 전통적인 민족사학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통일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는데 넓은 만주와 요동 지역에 대한 미련이 있어 하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현대적인 관점이다. 과연 당시 삼국이 자신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했을까? 찾아보면 알겠지만 문화와 전통도 다르고 고대 삼한 지역인 백제, 신라와 고조선의 영토를 영유하던 고구려가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것 같다. 고구려의 경우 한민족이라 보기도 힘든 것이 말갈 등 다른 민족을 많이 정복했기에 다민족 국가로 봐야 옳다. 신라의 경우 자신들의 생존이 최우선일 것이고 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고구려와 백제가 잘못한 것이다. 두번째는 고구려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이다. 얼마 전 책을 읽고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해 본 바이다. 저자는 고구려 조정의 오판이라 했지만 사실 너무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다. 난 고구려가 이런 선택을 한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제시한 상황 파악 지연, 당나라의 기만전술 등 간단한 이유가 아니다. 분명이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여유가 없었다. 고구려는 당시 당태종부터 이어진 계속된 침공을 받고 있었다. 660년 당시 당나라와 대규모 전투를 벌인 기록은 없지만 전쟁을 지속적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주력 부대는 요동에 있었을 것이고 수도인 평양을 지키는 군대와 당나라가 바다로 상륙할 것을 견제한 수군이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원군을 위해 대규모 군사를 파견하는 것은 너무나 무리이다. 두번째로는 현실적으로 원군이 갈 수 없었다. 백제와 국경을 맞닿지도 않고 백제와 전쟁중인 신라 땅을 건너거나, 당나라가 전격적으로 상륙하고 있는 해로를 따라가는 길 뿐인데 두 길 모두 너무 위험하다. 자칫 백제와 합류하기 전 큰 피해를 볼 수 있고 그렇다면 그 자체로 고구려에게 너무나 큰 위험이 될 것이다. 사실 피해를 보지 않더라도 백제의 본군과 만나지 못하고 지연되기만 하더라도 파병이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세번째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아무리 대군이라도 당나라군은 원정을 온 상태이고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할 터였다. 그리고 신라는 애초에 군사력이 그렇게 강력한 국가는 아니었다. 게다가 일본의 구원군까지 오고 있으니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유일하게 간과한 것은 웅진성주 예식진의 배신이다. 그가 배신하여 의자왕을 사로잡고 배신하지 않았다면 농성과 모이지 않은 지역 군대의 공격, 일본군의 지원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이때도 어렵다면 고구려가 신라를 공격해 병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나라도 장기간 원정이 부담스러워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2, 3장의 전체적인 목표는 같다. 중국이 격변하는 시기에 국가 대전략을 실패해 만주와 요동지역 정벌 및 지배의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원명 교체기에는 요동 정벌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했으나 이성계의 쿠데타 이후 정권을 잡는데 집중하면서 요동을 정벌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고, 명청교체기 시기에 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유지하지 못하고 친명배청 정책으로 요동과 만주를 얻기는 커녕 병자호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고구려가 삼국 통일을 했어야 하고 만주 지역까지 우리 영토였어야 한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책 표지에 그려진 우리나라 지도만 봐도 만주 지역과 요동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걸 보면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요동 정벌은 현실성이 있는 얘기일까? 우선 원명 교체기를 보면 1370년 공민왕 시기 요동을 잠시 정벌에 성공한 적이 있기는 하다. 일시 정복을 하기는 했지만 이후 전투 중 군량이 불타며 철수를 하게 된다. 역사에 만일은 없다지만 만약 당시 요동 지역을 정복하고 있었다면 유지할 수 있었을까? 당시 원나라는 워낙 어수선한 상황이었고 명나라는 이제 막 태동한 상태였다. 각 지역의 군벌들이 활동하던 시기였으니 분명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요동 정벌시 동원된 군사는 15000명이 전부였다. 더 많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 확인된 바는 없다. 고려 말 국력을 생각했을 때 더 많은 군사를 동원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의문이다. 왜적도 활개치던 시기이고 여진족의 침입도 고려해야한다. 게다가 요동을 정벌하는 일은 국경선을 넓히는 일이라 더욱 많은 병사가 필요할 것이다. 심지어 요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고려의 지배를 원했을까? 주민들이 협조적이지 않다면 방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국력이 쇠약해져있던 고려가 이 땅을 지킬 수 있었을까? 명청교체기는 더더욱 어렵다. 애초에 만주 지역은 청 왕조가 생겨난 곳이라 신성시하던 공간이고 한족의 이주 자체도 금지시켰다. 임진왜란 직후의 허약한 조선이 무력으로 절대 점령할 수 없는 땅이며, 외교적으로는 넘겨줄 이유가 전혀 없는 지역이다. 이후에도 한국사의 아쉬운 부분을 짚으며 역사를 다시 되짚는다. 4장 세계사 흐름을 바꾼 조선의 해금정책 5장 성리학 질서에 매몰된 일류 과학기술 6장 여전히 서성이는 재조지은의 망령 7장 신립 장군의 결정이 옳았던 이유 8장 이순신은 과연 민족 성웅인가 9장 계백 신화, 어디까지 진실인가 10장 고마워해야 할 당사자는 명나라다 11장 19세기 조선이 놓친 두 번의 기회 12장 군주의 배신으로 방관자에서 희생양이 된 조선 13장 일본은 어떻게 조선을 넘었나 14장 무장독립투쟁은 애국심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15장 식민지근대화론은 틀렸다 이후에도 꾸준히 조선이라는 나라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많은 주제를 할당하고 있다. 후반부는 근대사에서 아쉬운 점을 얘기한다. 모든 주제를 다 이야기할 순 없기에 조선 체제의 문제점과 고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 전에 특이한 주제가 하나 있다. 그럼 이순신은 민족의 영웅이 아니란 얘긴가? 사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건 아니다. 이순신의 훌륭한 점을 나열하고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노량 해전이다. 이미 승리한 전쟁이고 도주하는 적을 쫒다 사망한 장군이 안타까워 얘기한 것이겠지만 마지막 선택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이미 저물어가고 있는 조선이었고, 흔들릴대로 흔들리고 있는 조선을 상대로 역성 혁명을 일으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진정한 영웅이라면 전란 이후 백성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영웅의 역성 혁명을 이야기한다. 다만, 이순신이 노량에서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역성혁명을 일으켰을까? 우선 성품이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 별 이유 없는 고문과 백의종군 이후에도 자신이 필요해지자 12척의 배만 가지고 싸우러 나간 장군이다. 주변의 권유가 있어도 결단코 역성 혁명은 일으키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조선은 고려의 한계를 바탕으로 건국됐지만 모순이 많은 정권이었다. 온 국민이 믿고 있는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면서 시작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교는 사실 종교라기보다 삶의 방식에 가깝다. 당시 불교의 힘이 약해지고 있었고 성리학이 막 들어오던 시기라 신흥 지식인들에게 유교 가치에 입각한 국가를 세우는 것이 너무나 이상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왕의 입장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인것은 분명하다. 기존 체제라면 왕에게 반발할 수 있는 기득권 세력 위에 군림하는 명분을 주는 좋은 제도이다. 고려 시대 초기 지방 호족들을 포섭하기 힘들었고 이후에도 새로운 세력들이 계속 등장해 왕권이 힘을 못쓴걸 생각하면 옳은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다만 너무 유교 시스템에 심취한 나머지 명나라를 군신의 예를 갖춰 따르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체제만 생각했지 국가의 발전 방향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추위와 더위가 뚜렷해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으며 산지가 많은 한반도는 생존을 위해 농업이 중요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북쪽으로는 여진족들이 있어 지속적인 침입을 받고 주변에 우리보다 약한 국가도 딱히 존재하지 않아 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고 인구 증가를 꾀하며 자급자족을 위해서 농업은 특히 중요하다. 하지만 사농공상의 순서만 봐도 알듯 공업과 상업을 너무 등한시했다. 상업은 명, 청과 조공무역이 유일했고 이는 상업으로 나라의 부를 늘린다는 개념보단 자급자족이 되지 않는 물건을 받아온다는 개념이 강했다.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기술공들을 천대하다보니 기술이 발전할 수 없었다. 농업을 통해 자급자족하는 삶에 만족한다면 이 또한 좋은 가치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국력을 키우기 위해선 상업과 공업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발전할 수 없다. 실제 고려때 직지심체요절을 만드는 기술력은 조선 후기에 와서는 주변국들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국가로 만들었다. 고려시대 존재했던 벽란도는 어디갔나? 중국, 일본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들, 이슬람 상인들까지 오던 국제 무역항을 조선시대에는 자체적으로 벽을 쌓고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역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었지만 사전에 많이 차단된 모습이다. 조선의 발전을 보면 세종, 성종, 정조 등 몇몇 명군을 제외하면 크게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생산력은 점점 증가해 인구는 늘어가는데 농업 생산성 증가에는 한계를 보이고 조선 후기에는 기아도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다. 물론 이는 백성들을 착취하기 바쁜 위정자들에게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한 해의 농사가 실패하면 먹고 살 방법이 없어지는 현실이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로는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임진왜란때도 약 200년간 침입자가 없었던 대가를 톡톡히 치뤘는데 이후에도 딱히 나아진 것이 없다. 병자호란때도 전투다운 전투도 벌어지지 않고 임금이 있던 도성까지 한번에 뚫린 것을 보면 말이다. 붕당 당파 싸움을 하기 바빴지 국가 내실은 전혀 다지질 못했다. 영조, 정조가 나오기 전까지는 나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고 그나마도 정조의 죽음으로 우리나라는 나락을 향해 나간다. 세도정치의 시작으로 정말 암울한 19세기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 정점이 우리나라 마지막 왕인 고종이다.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는 어렸기에 친정을 하지 못하여 평가가 어렵지만 22세에 친정을 시작한다. 그렇다고 직접 정사를 논한 것은 아니고 왕비의 외척이 또 득세하게 된다. 정조 사후 외척의 세도정치로 50여년을 망치고 겨우 흥선 대원군의 친정 시기에 그 세를 죽여놓았더니 자기가 왕권을 휘두르자마자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이다. 이후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를 끌어들이더니 1884년 동학농민운동때도 또 청나라군을 끌어들인다. 이후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승리하자 이번에는 일본, 이후에는 러시아 편에 들어 자기의 안위만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애초에 임오군란이 일어난 원인도 외척의 예산 횡령에서 시작된 것을 생각해보면, 국가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었고 군주가 딱히 신경쓰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단 한번이라도 외국 군대를 막으려는 시도를 하거나 군대를 재편해 싸워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전형적인 소인배가 왕위에 오르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나라의 19세기와 20세기가 보여준다.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것이 1876년이고 을사조약을 맺은게 1905년이다. 무려 30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민생을 돌보지 않고 발전에 힘을 쓰지 않으니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 등이 일어난 것이고 이 때마다 왕위 보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외세를 끌어들인 점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러는 와중에 고종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는 에피소드나 냉면, 커피 등을 좋아했다며 방송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인가 싶다. 망국의 군주를 비판하고 반성하지는 못할 망정 저런 자질구레한 정보들을 얘기하며 재밌어하는 것도 참 한심하다. 아마 역사 학자들은 이런 식의 주장을 자주 보며 옳고 그름을 판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인인 나로썬 이런 주장들이나 의견을 접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런 책을 읽어보는 것도 너무 재밌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나와 다른 생각도 있고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는 내용 등도 있었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라 비슷한 서적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역사는 암기가 아니라 상황,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반성하고 교훈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한국사를 깊게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 저자는 역사 전공자는 아니지만 역사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계백의 황산벌 전투나 신립 장군의 편은 설득력이 있고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이 책의 내용 중 동의가 안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것 역시 내가 그만큼의 역사 지식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독을 추천 드린다. |
|
역사는 해석의 관점에서 매우 어려운 분야이다. 작가가 어떤 방향성을 설정해 집필 하는 지가 독 자들에게 심각한 왜곡 현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볍게 읽으면서 한국사의 흐름을 되짚어 보는 구조이다. 요즘 상황을 보면 정치와 역사가 미래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영향을 주는 지 알 수 있기에 중요한 소재인 듯 하다. |
|
논리적 추론으로 왜곡의 여지를 탐색하고 추가 사료를 발굴해 응자의 왜곡을 시정하고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건 후세를 사는 우리의 의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가고 아쉽게 느껴졌던 역사의 그 순간에서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하는 비판의 인식을 가지고 역사를 바라보야야겠다.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에서 15장면의 선택을 돌이켜 생각해본다. |
|
한국사에서 아쉬운 사건들을 평소 생각해 보았는데 이 책으로 접하게 되니 좋.네요^^* 사견이 많이 포함된 책이니 참고하세요^^ 학교에거 필요해서 구입하게 되었는데 요즘 책 값이 많이 올랐네요. 가족들이 함께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