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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미국. 민스크 출신의 19세 청년 이사크 레즈니코프가 뉴욕항에 도착한다. 레즈니코프는 이민자 티가 나는 러시아 식의 긴 본명 대신 당대 최고의 부호인 록펠러의 성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이민국 직원이 이름을 물었을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잊었는데요"라는 뜻의 이디시어 "Ikh hob fargessen(이크 호브 파게센)"이 입에서 나왔고, 이민국 직원은 그의 이름을 "이커보드 퍼거슨(Ichabod Ferguson)"이라고 적었다. 그렇게 이커보드가 된 그는 어찌저찌 미국 사회에 정착해 아들 셋을 얻고 그중 하나가 스탠리다.
스탠리는 로즈라는 여자와 결혼해 아치라는 아들을 얻는다. 스탠리는 가구 및 가전제품 판매점을 운영하고, 로즈는 사진관에서 일하면서 사진을 배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소설이 20세기 초중반의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가족사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다 조금씩 이상함을 느꼈다. 방금 전에 읽은 챕터에서는 스탠리의 판매점에 불이 났는데 지금 읽는 챕터에서는 무사하다든지, 이전 챕터에서 사진관을 그만뒀던 로즈가 다음 챕터에서는 계속 사진관에서 일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챕터 간의 내용이 직렬로 연결되지 않고 일종의 '평행우주'처럼 병렬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이 소설의 전체 구조가 눈에 들어 왔다. 이 소설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의 1은 1부의 2가 아니라 2부의 1, 3부의 1, 4부의 1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1부의 2는 2부의 2, 3부의 2, 4부의 2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서 이 소설은 주인공 아치 퍼거슨이라는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아치 퍼거슨이 될 수도 있었던 네 사람(퍼거슨 1, 퍼거슨 2, 퍼거슨 3, 퍼거슨 4)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두 가지 방식의 독서가 가능하다. 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퍼거슨 1의 이야기를 읽은 후에 퍼거슨 2, 퍼거슨 3, 퍼거슨 4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다.)
네 가지 버전의 이야기에서 아치 퍼거슨은 각각 다른 삶을 산다. 어떤 삶에서는 아버지를 영원히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어떤 삶에서는 아버지와 반목하고 절연한다. 어떤 삶에서는 어머니가 사진 작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지만, 어떤 삶에서는 어머니가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살아가는 데 만족한다. 어떤 삶에서는 에이미가 아치의 연인이 되지만, 어떤 삶에서는 배 다른 남매가 된다. 유년기에는 대부분 부모와 친척들에게 일어난 사건 또는 그들이 한 선택에 의해 아치의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치가 청소년기를 지나고 청년이 된 후에는 아치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 또는 아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변화가 대부분이다.
가령 어떤 삶에서 아치는 소설을 쓰고, 어떤 삶에서는 소설 대신 신문 기사를 쓴다. 어떤 삶에서는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고, 어떤 삶에서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떠난다. 어떤 삶에서 여성만 사랑하지만, 어떤 삶에서는 남성을 사랑하고, 또 어떤 삶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를 사랑한다. 어떤 삶에서는 성 구매자이고, 어떤 삶에서는 성 판매자가 된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삶이 품을 수 있는 다양한 조건들을 일종의 가능성 또는 선택지로 보고 개연성 있는 이야기로 구성해 보여주는 점이 이 소설의 미덕이자 장점이다. 구성 자체가 특이하고 특별하지만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다시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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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폴 오스터의 신작이다. 러시아 태생 유대인 가족의 이민 3세대인 아치의 네 가지 인생 여정을 다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다중우주의 개념인데 여기선 각각의 분기점이 아치의 선택이 아닌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총 7장으로 구성되며 각 장에 네 가지 다른 삶을 사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관계로 매 장이 끝날때마다 주인공 주변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기록하면서 읽어야 했는데, 꽤 번거로운 작업이었지만 한 번에 4권의 다른 소설을 읽는 특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아치라는 유대인 이민자의 성장 소설의 형태를 가지지만 아치의 할아버지가 미국에 도착한 1900년도 부터 시작하는 이야기가 양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냉전, 베트남 전쟁, 케네디 서거 등 역사적인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는만큼 대하소설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 한 명의 주인공이 저 모든 사건들로 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면 흐름이 부자연스러웠을테지만, 주인공이 네 명이나되서 서사가 역사적 배경에 잘 녹아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폴 오스터가 왜 이 책을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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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폴 오스터의 소설을 접했던 뉴욕 3부작.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그의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독특한 제목 만큼 이야기의 구성도 꽤 낯설었습니다. 같은 배경으로 시작하는 퍼거슨의 이야기는, 그의 선택에 따라 네 가지의 삶으로 뻗어 나가게 됩니다. 덕분에 어떤 퍼거슨은 아버지와 의절하기도 하고, 또 다른 퍼거슨과는 좋은 관계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작가의 역량, 혹은 욕심을 쏟아 부은 듯한 이 소설 때문에 오랜만에 인물 관계도까지 필기 해가며 읽었습니다. 즐겁게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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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으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게 엊그제 같은데 그의 마지막 장편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다. 2017년에 발매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폴오스터에 진심인 열린 책들이 바로 정발 해주겠거니 했는데 한참을 걸린 이유.. 이번 한정판을 받아보고 알았다.. 볼륨이 어마 무시 했던 것.. 그리고 사전 지식 없이 읽다가 적잖아 당황한게.. 0장에서 유대계 미국인 이야기라 이 형 또(?)자전적 이야기 인가.. ..이러다 또 갑자기 노숙자 되는 이야기인가..했는데.. ..뭐지 왜 약간씩 인물 관계가 달라지지?? 뭐야.. 삼촌들이 갑자기 없어지네.. 했더니.. 요즘은 식상해진 다중우주 이야기.. 나중에 시간나면 퍼거슨1,2,3,4 따로 읽어봐야지,. ![]() 한 정판음 페이퍼 북이라 좋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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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마지막 책 4 3 2 1 한정 세트 왠지 별도 네 개가 딱 맞을 듯한 그런 느낌 이야기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단권이나 인물 별로 각 권 구성 좋았을까 싶다가도 이제 없는 폴 오스터 읽은 책들 떠올리면 헛갈리던 젊은 날들 겹쳐지는 작은 위로 언제부터 동어반복 느낌도 좀 있었지만 동서고금 좋은 얘긴 고만고만 같았겠지 고운 상자 끌어안고 고마움만 기억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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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소설 《4 3 2 1》은 삼대에 걸친 러시아계 유대인, 퍼거슨 가문의 미국 정착기로 시작된다 원래 록펠러라는 라스트 네임을 조언받았으나 이민국 직원의 질문에 ‘이크 호브 파게센 Ikh hob Fargessen’ 잊어버렸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이사크 레지니코프였던는 이제 미국 땅에 이커보드 퍼거슨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이어 이커보드 퍼거슨은 삼형제인 루와 아널드와 스탠리를 낳았고, 스탠리는 로즈와 결혼하여 아치 퍼거슨을 낳았다.
“...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고, 일이 한 가지 방식으로 일어났다고 해서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게 다를 수 있었다. 세상은 똑같은 세상이지만, 만일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그에게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을 것이다... ” (p.102, 1권)
하지만 소설은 퍼거슨 가문의 미국 정착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퍼거슨의 미국 도착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아치 퍼거슨이 태어난 이후 하나의 뿌리를 둔 서로 다른 이야기로 줄기를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이야기에서 아치 퍼거슨의 아버지 스탠리 퍼거슨은 죽고, 나머지 이야기에서는 죽지 않고 살아간다. 어떤 이야기에서 퍼거슨 부자는 불화하고, 또다른 이야기에서는 그렇지 않다.
“...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었고, 이어진 며칠 동안도 계속 아무 말이 없자 퍼거슨은 아버지가 원고를 잊어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아버지가 큰 문제가 아닌 그 문제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있나 하는 것이었고, 퍼거슨은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그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건 점점 더 중요한 문제,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아주 중요한 문제로 커져 갔다.” (pp.168~169, 2권)
또한 《4 3 2 1》은 소용돌이치는 미국 현대사의 한복판인 60년대를 관통하면서 다양한 사건들을 훑고 지나간다. JFK와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의 사망, 말콤 엑스와 루터 킹 목사의 사망, 베트남 전쟁과 콜롬비아 대학의 시위를 비롯한 반전 시위, 그리고 흑인들의 시위를 다룬다. 아치 퍼거슨의 대학 입학 이후, 맺어지는 다양한 관계 그리고 퍼거슨 본인의 활동은 이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
“...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을 통합하는 일, 그게 퍼거슨이 하려는 일이었다. 가자 헌신적인 현실주의자처럼 세상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동시에 다른 시각으로, 조금은 왜곡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만들어 내는 일, 익숙한 것만 파고드는 책들은 필연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만 가르쳐 줬고, 낯선 것만 파고드는 책들은 알 필요가 없는 것들만 가르쳐 줬다. 퍼거슨이 무엇보다 원했던 건 감각적인 대상과 무기력한 사물만 있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세상뿐 아니라, 보이는 것 뒤에 숨은 거대하고 신비한, 보이지 않는 힘까지도 담고 있는 이야기를 쓰는 일이었다...” (p.143, 3권)
소설에는 스포츠, 영화, 문학과 관련된 내용들도 무수히 등장한다. (미국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좀더 감응하며 소설을 읽었을 것이다.) 야구와 농구를 직접 겪는 퍼거슨을 통해 기념비가 될만한 스포츠 경기가 언급되기도 하고, 상실감에 사로잡힌 엄마와 함께 간 영화관에서 시작된 미국 영화 그리고 프랑스 영화 편람도 꽤 된다. 직접 소설을 쓰는 퍼거슨이 있으니 거론되는 문학 작품도 만만치 않음은 물론이다.
“같지만 다른, 그러니까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네 명의 소년들, 같은 몸과 같은 유전적 자질을 지녔지만, 각각 다른 동네의 다른 집에서, 각각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소년들. 이런 식으로 짜놓으면, 그 서로 다른 환경 때문에 책이 진행됨에 따라 소년들은 서로 멀어지기 시작하고,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기의 초반에 이르기까지 각자 기거나, 걷거나, 숨 가쁘게 달리며 점점 더 다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한 명 한 명은 각자의 길을 가지만, 그 모든 각자는 여전히 같은 인물, 그 자신에 대한 상상으로 만들어 낸 세 개의 버전이고, 그다음엔 그 자신이 네 번째 자아로 투입되어 상당 부분 이야기되겠지만,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그도 아직 모르고, 자신이 무얼 하려는지는 책을 시작한 후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p.444, 4권)
실토하자면 1권을 모두 읽을 때까지는 네 명의 퍼거슨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였다. 엄청난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그저 갑작스럽게 결정된 운명에 의한 삶의 방향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퍼거슨이 쓴 「솔 메이츠」라는 제목의 행크와 프랭크라는 양쪽 신발이 주인공인 소설이 감명 깊었고, 대부분의 퍼거슨 주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에이미라는 인물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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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를 처음 읽은 게 아마도 10여 년 전이었나. 빵굽는 타자기를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하고 근처 카페에서 게걸스레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선연하다. 그렇게 뉴욕 3부작,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등을 집어들었고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고, 폴 오스터는 내게 많은 작가 중에 하나로 사실상 잊혀지는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 4321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폴 오스터의 최근 모습을 찾아보게 되었다. 맙소사 내가 알던 그 총명하고 잘생긴 청년은 온데간데 없었고 원로의 노인이.. 시간이 흘렀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너무나 많은 감정에 휩싸인다. 4321도 주인공의 생애를 토대로 긴 대장정을 항해하는 작품이다. 그가 밝히길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그간 작품활동을 해왔던 것 같다고 했다. 노년의 작가가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엄청난 장편이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시간을 응축한 작품이다 보니 그 또한 소회가 남다르리라. 아직 책은 완독하지 못했지만, 트렌드에 잠깐 올라타고 사라질 작가는 분명 아님을 이번에 확신하고 있다. 차기작은 언제 나올지, 되도록 많은 작품을 더 내주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