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9%
  • 리뷰 총점8 31%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4)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4321을 읽는 당신의 인생은 얼마나 달라지게 될까?
"4321을 읽는 당신의 인생은 얼마나 달라지게 될까?" 내용보기
1900년 미국 땅에 정착해서 <퍼거슨>이라는 성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집안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퍼거슨의 할아버지는 재킷 안감에 1백 루블을 꿰매 넣은 채 자신이 태어난 도시 민스크를 걸어서 탈출 했다. 서쪽으로 함부르크를 지나고 바르샤바와 베를린을 거쳐 중국 여제라는 여객선에 올랐다. 배는 사나운 겨울 폭풍을 헤
"4321을 읽는 당신의 인생은 얼마나 달라지게 될까?" 내용보기

1900년 미국 땅에 정착해서 <퍼거슨>이라는 성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집안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퍼거슨의 할아버지는 재킷 안감에 1백 루블을 꿰매 넣은 채 자신이 태어난 도시 민스크를 걸어서 탈출 했다. 서쪽으로 함부르크를 지나고 바르샤바와 베를린을 거쳐 중국 여제라는 여객선에 올랐다. 배는 사나운 겨울 폭풍을 헤치며 대서양을 건넜고, 20세기의 첫날에 뉴욕항에 들어 왔다. 엘리스섬의 이민국에서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동료 러시아계 유대인 한 명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 남자가 말했다. 레즈니코프라는 이름은 잊어버리세요. 여기서는 아무 도움도 안 될 겁니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미국 이름이 필요해요. 좋은 미국식 울림이 있는 그런 이름.]

 

미국 엘리스 섬에 도착한 열 아홉 살 유대계 청년 이사크 레즈니코프는 영어를 단 한마디도 알지 못했기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록펠러>라는 성을 잊어 버리고 이민국청 직원에게 이디시어로 '이크 호브 파게센이라고 대답한다.

이 단어를 전혀 알지 못했던 이민국청 직원은'이크 호브 파게센이라는 발음 소리를 고스란히 영어로 이민청 신고 등록 문서에 새겨 넣는다.

[이커보드 퍼거슨]

록펠러 집안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청년 이커보드 퍼거슨은 맨해튼, 브루클린, 볼티모어, 찰스턴, 덜루스, 시카고 일대에서 부두 노동자, 대형 선박의 선원, 유량 서커스단의 동물 조련사, 통조림 공장 생산 라인 노동자, 트럭 운전수, 막노동자, 야간 경비원들으로 일하면서 스물 여섯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낳는다.

1923년 3월 7일 시카고 한 가죽 제품 공장에서 야간 경비원을 하던 중 강도가 쏜 총에 맞아 마흔둘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죽은 퍼거슨의 아들들 중 스탠리라는 이름의 퍼거슨은 서른 한 살의 나이에 10살 연하의 아름다운 로즈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세 아들을 낳는다.

 

딱,여기 까지 이야기를 읽고 나면 미국 땅에서 살기 시작한 [퍼거슨]이라는 인물의 삼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20세기 전 세계 역사 어디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반 평생 글쟁이로 살았던 작가 폴 오스터는 책 속에 누군가의 인생 역사를 파 묻어 놓고 하나 씩 꺼내 보인다.

미국 이민청의 맨해튼 기록 보관소에서 찾아낸 <지상의 삶의 기록>에 적혀있는 퍼거슨이라는 이민 청년의 삶의 기록은 1944년 4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있기 정확히 두 달 전에 로즈라는 여성과 결혼 했다고 적혀 있다.

이듬해 8월 15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떨어지고 세계 대전이 끝이 난다.

평화의 시간이 지난 3년 후 1947년 3월 2일 오전 10시 퍼거슨이 일하러 나간 사이에 아내 로즈는 세 번째 아들을 낳는다.

드디어 이 책의 주인공인 47년생 아치볼드 아이작 퍼거슨이 등장한다.

3살 때 처음으로 기억하는 순간부터 거슬러 올라가 20대로 성장하기까지의 삶이 퍼거슨 1. 퍼거슨- 2.퍼거슨- 3. 퍼거슨 -4.퍼거슨 순서로 이름도 같고 같은 시대에 살며 비슷한 인생으로 출발한 각기 다른 네 명의 퍼거슨의 파란만장한 삶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간다.

어떤 퍼거슨은 손가락 두 개를 잃고, 어떤 퍼거슨은 날마다 친구들에게 얻어맞고, 또 어떤 퍼거슨은 의붓 여자 형제와 깊은 관계를 갖고 어떤 퍼거슨은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

 

이 네 명의 퍼거슨의 공통된 하나의 생각, 즉 살면서 터득한 인생 철학은 다음과 같다.

 

“어떤 질문에는 대답이 없고,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고,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보다 훨씬 더 생생할 수 있음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4명의 각기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퍼거슨의 삶 속에 등장하는 고정된 인물들은 아버지, 어머니, 삼촌, 고모, 형제들, 의붓형제들, 양아버지,선생님, 학교 친구들, 야구 그리고 섹스로 1950~60년대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JFK 대통령 암살,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인종 갈등, 타살, 격렬한 시위 현장의 역사적 사건들이 시계 추 처럼 함께 움직이면서 어른들의 배신, 경제적 파산, 충동적인 연애질, 이별, 도주, 도망을 치는 네 명의 남자의 예측 불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인생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모두들 인생은 책과 비슷하다고 퍼거슨에게 말했다. 1면에서 시작해 주인공이 죽는 204면이나 926면까지 계속 나아가는 이야기였지만 이제 그가 상상했던 자신의 미래가 달라졌으므로 시간에 대한 이해 역시 달라졌다. 시간은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있는 것임을 그는 깨달았고 책에 담긴 이야기는 오직 앞으로만 나아가기 때문에 책의 비유는 말이 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인생은 타블로이드 신문의 구조와 좀 더 비슷했다.]

 

작가 폴 오스터가 서술한 것 처럼 여기, 이 책의 주인공인 [퍼거슨]이라는 인물의 삶은 지하철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는 타블로이드 신문의 뒷면 쯤에서나 발견 할 수 있는  어느 인물의 인생처럼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열이 38.7도까지 올랐던 어린 퍼거슨(1)은 베이비시터를 따라 야구중계를 보면서 야구에 빠지고. 높은 열이 편도염 탓이었던 퍼거슨(2)은 완치 된 후 뒷마당 참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져 깁스를 하고 집안에서 머무는 동안 사촌 누나 '프랜시'가 들려준 핵전쟁과 냉전이란 세상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어린이가 되지만 여름방학을 맞아 떠난 캠프에서 안타까운 사고로 열세 살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난다.

젊은 시절부터 두 형의 뒤치다꺼리를 했던 아버지가 자신의 가게를 지키려다가 결국 형의 방화로 숨진 비운의 가계를 둔 소년 퍼거슨 (3)과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두 형과 거리를 두고 지냈던 아버지 아래서 성장한 퍼거슨(4)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부모님과 정서적 교감을 하지 못한 채 성장한다.

이렇게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른 사람들과 조금씩 다른 세상에 살던 '퍼거슨'은 결국 글 쓰는 일에 빠져 버리고 한 여자 '에이미'를 사랑하게 되고 독자들은 시점 부터 결국 이 책 <4321>은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퍼거슨(4)이라는 한 남자의 기나긴 인생 여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만약 한 권의 책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만약 한 권의 소설이 누군가의 마음과 정신과 세상에 대한 가장 깊은 감정에 이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소설을 쓰는 건 과연 한 인간이 평생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 분명했다.]

 

결국 퍼거슨(4)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어떤 삶도 살 수 있었지만 책을 쓰기 위해 두 개의 무거운 짐 가방과 배낭을 든 채 2월 3일 버스로 뉴욕을 출발 해서 몬트리올로 건너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파리로 향한다.

 

퍼거슨(4)은 5년 5개월 동안 파리 5구 데카르트가의 방 두 개 짜리 아파트에서 4명의 퍼거슨 처럼 먹고 마시고 자고 그리고 한 명씩 가족의 숫자가 줄어 들어가는 걸 지켜보며 출간될 작품의 제목이 ‘1 2 3 4’가 아닌, 한 명씩 줄어드는 ‘4 3 2 1’로 결정하고 1975년 8월 25일 네 명의 퍼거슨의 삶이 담긴 대 장편 1133페이지의 원고를 완성한다.

 

2022년 10월,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 장편 소설 <Baumgartner>작품을 탈고 한 폴 오스터는 암 선고를 받고 기나긴 투병 생활을 하며 세상의 모든 인간의 마지막 종착지인 죽음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

 

1947년생 폴 오스터는 대학에서 현대 영문학을 전공하며 석사과정까지 밟았지만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에 질식할 것 만 같아 양아버지에게 추천 받은 추천서로 선박회사에 취직해서 목돇을 쥐고 여자친구와 프랑스로 건너간다.

그는 그곳에서 부유한 미국인의 시골 별장을 관리하며 낮에는 허드렛일을 하고 밤에는 시를 쓰고 번역을 하며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에 전념해야 할지 깨닫고 미국으로 돌아 오지만 극한의 생활고와 연달아 출판사로 부터 퇴짜를 맞고 교사 시험에 고학력자라 떨어지고 아내와 이혼하고 허름한 아파트에 세 살 짜리 아들과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간다.

튜더식 건축물로 지어져서 여러 건축 잡지에 소개 될 정도로 부유한 부동산 사업가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느 날 폴 오스터의 전체 인생을 바꿀 정도의 유산을 상속 받게 된다.

폴 오스터의 인생에서 선택 받은 길과 선택 받지 못한 길이 있었다.

만일 그가 미국을 떠나 프랑스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

미국으로 돌아와 아내와 이혼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버지로 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 받지 않았다면 ....

그는 글 쓰는 인생, 퍼거슨(4)의 인생의 길을 선택했을까...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것들이  눈 앞에서 스쳐 지나간다.

그 것들은 어떤 사람들일 수도 있고 사고 일 수도 있고 그리고 어떤 시점에 결정한 자신의 선택 일 수도 있다.

그토록 바랬던 것들이 눈 앞에 나타 날 수도 있고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노력을 해도 도저히 성취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단 한번의 기회로 그토록 원했던 것을 손 안에 넣을 수도 있다.

 

'주홍색 노트에는 주홍색 노트를 사기 전까지 나의 인생에서 말해지지 않은 단어들을 모두 담을 것이다.'

 

작가의 길을 선택한 폴 오스터는 자신이 살아 보지 못한 인생, 목격한 인생, 그리고 상상했던 인생에 드리워진 비극, 재앙, 역사적인 격변, 살인 죽음, 전쟁의 그림자 속에 인간의 생이 얼마나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지 반 평생 동안 타자기를 두드려서 자신의 아버지,어머니, 어머니의 두 번째 남편,스쳐 지나갔던 사랑들, 연인들, 이혼한 아내, 극단적인 삶을 살다 불행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 아들,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손녀의 이야기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져 내려 갈 수 있는 책 한 권으로 완성 해서 마지막 죽음의 종착지에 다다랐다.

 

 

'세상이 출렁이고 있었다. 모든 곳에서 모든 게 요동치는 중이었다.'

 

열 여덟 살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세상도 출렁거리고 있었다.

수능 시험 결과 통보를 받았던 그 날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어 비자 인터뷰 시간을 예약하고 논술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논술 시험 당일 날, 시험이 시작 되기 직전까지 논술시험과 전혀 관련 없는 영어 책을 읽고 있었다.

만일 이 논술에 합격하지 못하면 세 곳을 지원 한 대학 중 한 곳으로 가게 되거나 이 땅을 떠날 것이다.

아니면 논술에 합격해서 면접을 보고 그리고 합격을 하면 다음 해 대학생이 될 것이다.

그해 내가 지원했던 논술 시험을 치루는 대학의 그 학과는 하늘의 별을 따야 가능했을 정도로 모집 인원 수가 적었고 지원자는 넘쳐 났다.

논술 시험지를 받자마자 두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놀랬는데 시험 직전까지 읽었던 영어 책의 지문이 고스란히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면접에 통과 했어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능 점수, 내신 등수로 가까스로 합격점에서 벗어나 추가 합격 대기자 명단에 올라갈 수도 있고 써낸 답안지가 엉터리여서 합격선에서 영원히 멀어져 버릴 수도 있다.

 

2월의 어느 날 문자 통보를 받았다.

추가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나는  지원한 대학의 그 학과에 겨우 턱걸이로 합격했고 3월 대학생이 되었다.

3월의 분주한 시간이 흐른 후 화창한 5월의 어느 날 학과 사무실 앞에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는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찾아 갔다.

나를 기다렸던 그 사람은 **대학의 의대생으로 내가 합격한 학과에 최고 점수로 합격했던 학생이였다.

그 학생은 자신이 지원을 포기한 자리에 어떤 학생이 합격했는지 궁금해서 연락했다는 말을 했다.

만일 그 학생이 의대를 포기 하고 내가 추가 합격한 학과를 선택했다면 나는 어느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열 아홉의 나는 인생의 선택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사관에서 신청한 비자를 받았지만 막상 한국 땅을 떠나서 어떤 대학에 지원 해야 할지 어디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심란한 시간을 보냈다.

열 아홉의 내 앞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다.

열심히 학교에 다니면서 학과 공부에 충실해서 그 다음 해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것, 방학동안 뼈 빠지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동안 모아 놓은 용돈을 탈탈 털어 비행기표를 사서 이 땅을 떠나는 것

아니면 휴학을 하고 의과 대학을 목표로 재수 학원에 다니는 것

열 아홉의 나는 어느 길도 선택하지 못한 채 이곳 저곳 기웃 거리며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진짜 세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 내가 원하는 것들 중에 이루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만 했다.

만일 어느 누가 열 아홉의 나에게 어떤 길을 가라고 제시 해 주었다면 나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직 신만이 네가 바른 선택을 했는지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다는 뜻이야. 불행하게도 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절대 말해주지 않아. 신에게 편지를 쓸 수는 있지. 하지만 그건 아무 소용이 없잖아. 주소를 모르니까.”

 

나는 매일 학교 도서관에 앉아  세계 각지에 널리 퍼져 있는 그러니까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와 교류를 맺고 있는 대학에 지원해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다는 편지를 줄창 써 댔다.

쓰는 동안에도 만일 어떤 대학이 이 편지를 받게 되어도 나 같은 학생에게 지원서를 보내 줄 것 같지 않다는 우스운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매일 내가 누구인지 어떤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할 예정인지 쓰는 동안 서서히 미래를 내 손으로 그려나가고 있었다.

각 대학 총장에게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는 동안 열 아홉의 나는 스물 살의 나, 스물 한 살의 나 그리고 마침내 스물 두 살의 나이에는 앞서 선택한 목표를 성취한 인물이 되겠다는 아주 무모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이렇게 매일 편지를 쓰고 학과 사무실로 달려가 교류 협정 맺은 대학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조교 선배를 귀찮게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조교 선배는 그동안 준비해 왔던 외무고시를 포기 하고 이번 학기에 영국 대학 총장이 방문하면 그 총장을 만나 무조건 그 대학에 석사 과정에 입학 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대사 면담 신청을 한 날 나를 끌고 갔다.

 

'같지만 다른, 그러니까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네 명의 소년들, 같은 몸과 같은 유전적 자질을 지녔지만, 각각 다른 동네의 다른 집에서 각각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

 

같은 출발점, 같은 학과 같은 학번 비슷한 나이의 내 동기생들을 벗어나 이듬해 나는 한국 땅을 떠났다.

일찌감치 영국 땅 남부와 서부에 있는 대학에 다녔던 형제들은 부모님에게 막둥이 두 달이면 집으로 돌아 온다며 '내기'를 걸었고 나는 공항에서 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마음 속으로 외쳤다.

 

영국 땅을 밟은 나는 열 아홉 살이 아닌 열 여덟 살이 되어서 한국에서 지원해서 합격한 대학에 들어갔다.

그렇게 또 한 번 영국 땅에서 열 여덟 살이 된 나는 가방 속에 넣어 온  여러 장의 추천서로 모든 것들이 해결 될 줄 알았다.

배정 받은 기숙사에 도착한 첫 날, 사무실 직원으로 부터 지금 당장 기숙사에 머물 수 없다는 청청벽력 같은 말을 들었고 늦은 밤 사무실 직원과 함께 내가 머물 방에서 나오지 않은 학생과 실강이를 벌일 때 바로 옆 방에서 학생들이 튀어 나왔다.

그 중 침착한 얼굴의 한 아시아계 학생이 몇 몇 친구를 설득했고 그 날 밤 나는 그 학생이 머물렀던 방에서 첫 날을 보냈다.

 

'처음 한 달 동안 퍼거슨은 자신이 그곳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의식하지 못했다. 눈 앞의 활동에 너무 빠져 있었기 때문에 멈춰 서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고, 현재에 사로잡힌 나머지 과거나 그 너머를 볼수 없었고 운동 시합에서 잘했을 때 상담사인 하비가 말했던 것 처럼 현재 만을 살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게 행복의 진짜 정이 인 것 같았다.'

 

내 방이 아닌 방에서 잤던 첫 날 밤 앞으로 영국 땅에서 펼쳐질 내 인생이 암담하게 느껴졌지만 다음 날 나에게 방을 내준 그 친구에게 찾아가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보다 1년 먼저 영국에 온 그 친구는 대만에서 이름이 알려진 배우로 학교에서는 이미 스타 였고 영국 일간지에도 얼굴이 나올 정도로 꽤 유명했던 인물이였다.

그 친구의 재치와 영민함, 마당 발로 학교 생활은 물론 척박하고 낯선 땅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외국인으로 아시아인으로 겪게 되는 무수히 많은 차별 조차 그 친구와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여러 친구들 덕분에 슬기롭게 헤쳐나갔고 열 아홉의 나는 그 친구들을 따라 바다 건너 유럽 대륙의 체코 프라하에서 전혀 뜻하지 않았던 선택을 하게 된다.

카프카의 생애에 관한 다큐를 찍겠다는 그 친구는 배우의 길이 아닌 연출 공부를 프라하에서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고 함께 공부하자며 나를 어학원에 등록 시켜버렸다.

열 아홉 살 여름 방학 동안 프라하에서 어학원을 다녔던 나는 하루 4시간 씩 체코어를 공부하고 프라하 시내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다 친구들과 살 집을 찾기 위해 프라하에 있는 여러 부동산 사무실을 줄창 찾아 다녔고 그렇게 해서 겨우 함께 살 집을 찾았다.

인터넷 선을 설치하기 위해 설치 업체에 연락해서 예약한 날에 설치 기사가 찾아 왔다.

그 설치 기사는 영어가 너무나도 유창했는데 호주에서 건너와서 자신의 친형과 함께 인터넷 통신회사를 차렸다며 프라하에서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며 반가워 했다.

이 호주 출신의 사장은 우리가 머무는 집에 몇 일 동안 찾아 와서 컴퓨터 설치 부터 고장난 전기선까지 전부 수리 해주어서 고마움에 어학원에서 만난 다른 외국인 학생들을 줄줄이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도움을 주고 받다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함께 먹으며 틈나는대로 그 호주 사장의 회사에도 놀러가다 친하게 된 직원들에게 그동안 프라하에서 살 곳을 찾아 헤매다 알게 되었던 토막 부동산 정보를 알려주며 그 직원들이 살 집을 함께 찾아다녔다.

프라하를 떠나기 전날 밤 호주 사장은 나에게 자신의 삼촌이 영국 런던에서 부동산 업체를 운영 한다며 혹시 일자리가 필요하면 그 곳에 가보라며 명함 한 장을 주었다.

당시 나는 별 생각 없이 호주 사장이 준 그 명함을 수첩 사이에 끼어 넣은 채 런던의 부동산 사무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내 일상으로 돌아 갔다.

그러던 중 친구들이 촬영한 다큐가 상영하는 장소를 찾아 가다 그 호주 사장이 명함을 준 그 부동산 이름이 적힌 빌딩 앞에 발길을 멈췄다.

그 날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갔고 명함을 꺼내기도 전에 호주 사장의 삼촌은 몇 년 전부터 알던 사이 인 것 처럼 반갑게 내 이름까지 부르며 악수를 청했다.

당시 런던에서 살겠다고 몰려 온 아시안계들도 넘쳐 났고 값비싼 런던을 벗어나 파운드로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프라하로 건너가려는 영국인들도 넘쳐 났다.

가을 학기 동안 학교가 끝나자 마자 부유한 중국 공산당 간부의 아이들을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어학원 등록 절차 부터 살 집을 찾아 주었고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 마자 부동산 사장과 함께 또 다시 프라하로 건너갔다.

어학원에서 배웠던 체코어를 런던 사람들의 집을 찾아 주면서 쓰게 되었고 프라하에 갈 때 마다 영상 연출을 공부 하고 있는 친구보다 더 유창하게 되었다.

스무 살이 되었던 3월. 부활절 방학 기간 프라하 시내 중심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 날, 엄청난 시위대 무리가 몰려 왔고 순식간에 나타난 무장한 경찰들이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반대편에서 달려 오고 있었다.

나는 급히 어딘가 몸을 숨겨야 겠다는 생각에 길 건너 서점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시위대를 진압하는 걸 지켜 보던 서점 주인은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 문을 걸어 잠갔고 그렇게 나는 몇 시간 동안 서점 안에 갇혀 있었다.

서점 안에 진열 되었던 수 많은 체코어로 쓰여진 책들 중에서 그 때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왔던 책은 바로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으로 그 서점에서 유일한 영어 책이였다.

 

나는 시위대와 경찰들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 책을 읽었고 거리가 한산해졌을 때 그 책을 구입하고 서점 밖을 나왔다.

그렇게 처음으로 프라하에서 만난 폴 오스터는 런던에서 그가 출간한 거의 모든 책을 구입하게 만들었고 런던 내셔널 시네마 특별 상영 기간에 폴 오스터가 직접 각본을 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매일 그 영화를 보기 위해 학교가 끝나자 마자 극장에 가는 동안 극장 앞에서 그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

학기 마지막 날, 그 날도 어김없이 극장으로 향했고 폴 오스터의 그 영화 표를 구매 하려고 매표소 앞에 섰다.

항상 손만 보였던 매표소 직원은 영화표 한 장을 달라는 내 말을 못 알아 들었는지 갑자기 매표소에서 불쑥 튀어나와 어디론가 가버렸다.

내 뒷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오늘 영화표 살 수 있나?'

'아니, 직원이 갑자기 자리를 비우다니 급한 일이 있나?'등등의 말들이 오고 갔다.

내 뒷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폴 오스터가 각본을 쓴 저 영화(벽에 걸려진 영화 포스터를 가리키며)를 보려는데 오늘 표를 안 팔려나봐요.'라고 말하자

''저 영화 어제 상영 끝났어.'

'무슨 소리야! 상영 하는 영화 포스터 벽에 붙어 있는데 !'라고 외치며 폴 오스터의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는 광고판으로 달려갔다.

 

방금 전 매표소 밖을 튀쳐 나갔던 그 직원이 나에게 다가와

'오늘 꼭 이 영화 봐야 해?'라고 물었다.

'응, 오늘 꼭 봐야 해.'

잠시 후 몇 명의 직원과 대화를 나누던 그 직원은 옅은 미소를 띄우며

'오늘 상영할 꺼야.'라는 말을 했다.

그 날 나는 그 영화관 지하에서 마지막으로 폴 오스터의 영화를 봤다.

영상 마지막 자막에 연출자 이름이 주르륵 올라가고 마지막 각본가 폴 오스터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바로 내 옆에 누군가 다가와 앉았다.

마침내 조명이 들어오자 이곳 지하실 영화관에 관람객이 나와 그 매표소 직원 단 두명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 어디가 좋아.'

'그냥, 좋아.'

몇 초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 영화 오늘 정말 마지막 상영이지?'라고 그 매표소 직원에게 묻자

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매일 와도 돼.'

청소 도구를 들고 직원들이 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장 밖을 나오고 나서야 극장 표값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급히 극장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청소하는 직원에게 매표소 그 직원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퇴근 하셨는데요.'

'아까 본 영화 표값을 지불하지 않아서'라며 지갑을 꺼내는데 그 직원은 횡설 수설을 하며 바삐 사라져 버렸다.

내가 매일 폴 오스터의 영화를 보러 간다는 걸 알고 있는 친구들이

'어떡해, 이제 상영 안 하는데.'

그 날 무작정 학교 영화관에 찾아가 관계자들에게 폴 오스터의 영화를 학교에서 학생들이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상영 스케줄에도 없고 영상을 상영하려면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날 기숙사로 돌아가 무작정 폴 오스터 책을 출간한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메일주소를 클릭했고 영화 포스터에 찍힌 영상 제작사 인터넷 주소를 찾아 구글 메일함을 열었다.

메일을 보내기 전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내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하고 우스워서 메일 창을 닫아 버렸고 그 다음날 폴 오스터의 독백이 여전히 귓가에 울리는 그 영화를 떠올리며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깟 영화 한편, 그깟 책 한 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아니 바꾸는 인생도 있다.

학기 말에 과제 리포터로 제출했던 친구가 연출한 카프카 다큐에 관한 이야기가 학교 신문에 실렸고 그 신문을 읽은 친구들이 프라하로 몰려 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학교 신문에 내 글이 실리기 시작하자 글쓰기 재미 아니 유명세를 떨치는 재미에 사로잡힌 나는 그동안 읽은 책, 여행한 도시 등등에 대해 썼고 이 모든 글감이 바닥이 나자 그동안 매일 극장에서 폴 오스터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그 감동을 활자로 재현했다.

내가 쓴 폴 오스터 글에 열광했던 친구들이 영화 상영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그리고 드디어 12월 겨울 학기 종강 날 폴 오스터의 그 영화가 학교 영화관에서 상영이 되었다.

학생들이 주도 해서 영화가 상영이 되었으니 주도적으로 움직인 학생(나를 포함해서)들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상영 축하 기념으로 마시기 위해  여행지에서 사온 샴페인과 포도주들 가져갔다.

상영이 끝나고 모두들 한 자리에 모여서 내가 준비 해간 샴페인과 와인 잔을 기울이는 동안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폴 오스터 영화를 보러 갔던 마지막 날 매표소에서 튀어나왔던 그 직원이 그 자리에 있었다.

영화관 담당자들이 이 분의 도움으로 상영하게 되었다는 말을 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이들이 그 매표소 직원에게 열렬한 박수를 쳤다.

 

폴 오스터의 거의 모든 작품들은 어느 한 인물의 인생에서 발생하는 우연의 일치와 그 우연의 일치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어져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정해진 계획대로 살 수 없고 누군가 정해질 길을 따라 살 수 없다.

게다가 어디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도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한국 땅을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 그리고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 프라하로 가서 그곳에서 호주인을 만나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연히 들어간 부동산 사무소에서 다시 프라하로 건너가 폴 오스터의 책을 만났고 그 책을 읽은 나의 인생은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갔다.

학교 신문에 글이 기고 되고 학교 소개 책자에 내 얼굴이 실리자 돌연 어느 신문사 기자에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 왔다.

기자랑 약속한 장소로 가던 도중에 극장 매표소 직원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그 매표소 직원은 약속 장소를 잘못 알고 있다며 기자랑 만나기로 한 곳까지 나를 바라다 주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장소에 나온 그 기자는 나를 보자 마자 반갑게 악수를 청했고 나를 바라다 준 매표소 직원은 유유히 사라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헤어지는 순간에 그 기자가

'방금 전 함께 왔던 그 사람하고 잘 아는 사이야.'

나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 날 그 기자에게 믿기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폴 오스터의 영화를 보여 주었던 그 매표소 직원, 내가 다녔던 학교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게 해주었다는 그 매표소 직원이 그 극장 주인이자 ***협회 아들이라는 걸 그날 기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늦은 시간에 길에 마주쳤던 그 매표소 직원은 너무나도 멋진 자동차에서 내렸고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나를 향해 반갑게 달려 왔다.

 

카프카의 인생을 추적 하러 간 친구는 '너의 인생을 영화로 찍어야 겠다'고 외치며  프라하의 삶을 청산하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 왔고 영화를 사랑하고 연출을 공부하는 그 친구까지 합류해서 매표소 직원이자 극장 주인의 극장에 매일 갔다.

런던에 사는 동안 나는 영화를 공짜로 봤고 유럽 곳곳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꼬박 참석하며 인생의 궤도에서 점점 이탈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방황하는 눈의 탐험이라고 부른 그 작업은 일급 초상 사진에 필요한 정교한 조작을 포기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과의 우연한 만남에 열려 있는 것이다.]

 

극장 주인의 엄마가 **패션 일간지 편집장으로 이탈리아 ***브랜드 패션쇼 행사에 '나'를 추천했다.

수 십 벌의 옷을 입어야 했던 나는 수업이 끝나면 모델 워킹을 배우러 다녔고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무대 위에 섰다.

 

졸업장을 쥐고도 영국 땅에서 취업하기 힘들었던 그 시기에 나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창문을 열면 미라보 다리가 보이는 곳에 살게 되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미라보 다리를 바라보았던 나는 내 주변의 펼쳐진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 시절 나는 내 안의 여러 명이 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 런던으로 건너간 나, 프라하를 돌아다녔던 나, 그리고 파리에서 살고 있는 나.

 

[그건 좋은 삶, 그들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삶이다. 하지만 좋다를 편하다로 착각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우호적인 환경이라고 해도 열심히 일하는 건 신발의 숙명이고, 뉴욕 같은 곳, 몇 달 동안 잔디밭이나 부드러운 흙에 밑창이 닿을 일 이 없는 곳, 극단적인 더위와 추위가 장기적으로는 가죽 제품의 상태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파리를 떠나 뉴욕에 도착 했던 첫 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 폭탄이 쏟아졌다.

미로처럼 쌓아 올려진 눈 벽을 지나 건널목 앞에 서서 신호등 불빛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신호등 불빛이 바뀌고 길을 건너가던 도중 털 모자를 귀밑까지 푹 내려 쓴 덩치가 큰 한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갔다.

 

'폴 오스터다'

 

흥분한 나는 저 멀리 가고 있는 그 덩치 큰 남자를 향해 힘껏 달렸고 어떤 건물로 들어가는 그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폴 오스터'

 

방금 전 내 눈앞에 나타났던 그 남자 폴 오스터.....

 

어느 날 그는 적었다.

왜 내가 도와줘야 하지?

자신에게 쓰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왜냐하면 네 도움이 필요하니까.

첫 번째 목소리가 대답했다. 미안,

두 번 째 목소리가 대답했다.

너한테 필요한 건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멈추는 거야.

변하려면 뭐가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해.

그런데 넌 누구지?

나는 너야 . 당연하지. 내가 누구일 거라고 생각한 거야?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은 어떤 초인적인 힘으로 움직여지기도 하고 스스로 그 운명의 방향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타고난 운 속에서 각자의 의지와 선택으로 운세의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고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생의 주인공은 '나'자신이고 과거 현재 미래 생사가 담겨있다는 운명을 좌우 하는 운전대는 내가 잡고 있다.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일 자체가 처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영화가 시작되었고 퍼거슨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프랑스 영화 중에 최고야

영화관에 불이 들어오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던 퍼거슨은 왼쪽으로 세 좌석 떨어진 자리에서 키가 크고 짙은 색 머리를 길게 기른 남학생을 발견했다.

대단한 영화지? 낯선 친구가 말했다.

대단한 영화네. 마음에 들어.]

 

만일 삶이라는 꿈이였다면 깨어났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뉴욕에서 폴 오스터 사인회가 열렸던 서점으로 향해 걸어 가는 동안 열 아홉 살의 나로 돌아가 폴 오스터라는 작가가 내 인생에 나타나지 않았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내 눈 앞에서 자신이 쓴 책을 읽고 있는 폴 오스터를 바라보는 동안 비로소 비어 있었던 내 인생의 책 속의 한 페이지가 채워지듯 인생의 한 단계를 지나 또 다른 인생의 한 단계에 올라 섰다.

66세 부터 3년 동안 대 장편 <4321>에 매달렸던 폴 오스터는 모든 인생이 책과 비슷하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인생이라는 책은 첫 장 부터 넘겨 볼 수 있고 두 번 째 장 부터 펼쳐 볼 수 있고 맨 마지막 장 부터 읽을 수 있다.

그렇게 인생이라는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의 흐름은 양방향으로 움직여서 미래로 건너갈 때마다 과거의 기억과 함께 맞물려 움직이는 동안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의 모습, 내 인생의 빛과 방향도 달라진다.

함께 같은 공간, 같은 시대를 살아도 각기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시간을 가로 질러가는 그 여정 속에서 우리 모두 다른 세상,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어떤 앞날이 펼쳐질지 전혀 알지 못한다.

누군가 생을 마치면 또 다른 어디선가 새 생명이 탄생한다.

만일 인간이 단 한번의 인생이 아니라 여러 번의 인생을 매년 다시 살게 된다면 과연 행복의 종착지를 향해 갈 수 있을 까....

2017년 런던에서 폴 오스터의 <4321>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영웅도 나오지 않고 위대한 인물도 나오지 않는 천 페이지 분량이 넘는 4명의 퍼거슨들은 오로지 자신만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인물이 되고 싶어 했다.

 벽돌 크기의 이 책은 또 한 번 내 머리와 심장을 거세게 내리쳤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누군가의 마음과 정신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추천 하지 않을 것이다.

2017년-2018년-2019년-2020년-2021년-2022년 그리고 2023년 마지막 끝자락에 <4321>을 다시 펼쳤다.

 

70세를 앞두고 자신의 인생의 대작을 완성한 폴 오스터도 인생의 주인공이자 영웅이 되었고 나 역시 앞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일이 없다 하더라도 나는 전과 다름 없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될 것이고 영웅이 될 것이다.

 

"삶은 어디에나 있고, 죽음도 어디에나 있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그렇게 합류한다."

f*******d 2024.01.03. 신고 공감 1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4 3 2 1(2) - 폴 오스터
"4 3 2 1(2) - 폴 오스터" 내용보기
책에 실려 있는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에 의하면 ‘끝까지 읽는 분들에게만 말하겠다. 이 소설의 분량은 너무 적다.’라고 했다. 작품을 쓰는 와중에 이 책을 다 읽었다는데, 그 부지런함에 감탄하게 된다. 폴 오스터가 10년 전부터 매일 3년 동안 손으로 쓴 소설이라니, 그 분량에 놀라고 부지런함에 놀란다. 100여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나, 소설은 꽤 잘 읽히고 재미있다. 퍼거슨의 탄생
"4 3 2 1(2) - 폴 오스터" 내용보기
책에 실려 있는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에 의하면 ‘끝까지 읽는 분들에게만 말하겠다. 이 소설의 분량은 너무 적다.’라고 했다. 작품을 쓰는 와중에 이 책을 다 읽었다는데, 그 부지런함에 감탄하게 된다. 폴 오스터가 10년 전부터 매일 3년 동안 손으로 쓴 소설이라니, 그 분량에 놀라고 부지런함에 놀란다.
 
100여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나, 소설은 꽤 잘 읽히고 재미있다. 퍼거슨의 탄생과 성장 배경에 쉼 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 완독을 놓쳤다는 게 아쉽다.
 
 
(읽는 중)
 
#4321 #폴오스터 #열린책들 #책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영미문학 #영미소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24.12.28.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폴 오스터 최고의 역작
"폴 오스터 최고의 역작" 내용보기
이전 폴오스터의 산문집 "낯선 사람에게 말걸기"의 리뷰에서, 조만간 폴 오스터의 신간 소설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었는데, 드디어 나왔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이 출간된 것처럼, 같은 연배인 폴 오스터도 선셋파크 이후 10년만에 폴 오스터 필생의 역작이라는 평과 김연수의 추천을 담고서 이 소설 "4 3 21"이 출간되었다. 내가 1990년대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폴 오스터 최고의 역작" 내용보기

이전 폴오스터의 산문집 "낯선 사람에게 말걸기"의 리뷰에서, 조만간 폴 오스터의 신간 소설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었는데, 드디어 나왔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이 출간된 것처럼, 같은 연배인 폴 오스터도 선셋파크 이후 10년만에 폴 오스터 필생의 역작이라는 평과 김연수의 추천을 담고서 이 소설 "4 3 21"이 출간되었다.

내가 1990년대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시대와 폴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처음 읽고서, 이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스터는 뉴욕3부작을 비롯하여, 스퀴즈플레이, 폐허의 도시, 우연의 음악, 공중곡예사, 환상의 밤, 브르클린 풍자극, 보이지 않는, 선셋 파크, 겨울일기 등.... 30년 넘게 소설을 쓰고 있는데, 이 책이 폴 오스터 필생의 역작이라니 기대된다. 이 책이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작품은 아니길 바라면서, 즐거운 독서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YES마니아 : 로얄 h****0 2023.11.23.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4 3 2 1(1) - 폴 오스터
"4 3 2 1(1) - 폴 오스터" 내용보기
퍼거슨이라는 인물의 역사를 말하는 소설로 1,2권 도합 1,600페이지 가까이 된다. 책을 구매할 때는 비장한 마음으로 금방 읽어내겠다고 했으나, 책장을 펴고 보니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퍼거슨을 이루는 가계의 역사처럼 시간이 흘러 고전적인 가족의 형태는 사라지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이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잉태된 퍼거슨 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다.
"4 3 2 1(1) - 폴 오스터" 내용보기
퍼거슨이라는 인물의 역사를 말하는 소설로 1,2권 도합 1,600페이지 가까이 된다. 책을 구매할 때는 비장한 마음으로 금방 읽어내겠다고 했으나, 책장을 펴고 보니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퍼거슨을 이루는 가계의 역사처럼 시간이 흘러 고전적인 가족의 형태는 사라지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이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잉태된 퍼거슨 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다. 태어나고 자라 사랑을 하고, 다음 대의 퍼거슨을 탄생시킨다. 어떤 퍼거슨이든 시대에 따라 남자의 역할,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을 하고 오늘을 살아간다.
 
어떤 삶을 살았든 하나의 역사가 된다. 자서전의 형태로 어떤 퍼거슨을 읽고 싶은지 묻는다. 내년이 가기 전에 전 권을 완독하는 게 목표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길.
 
 
(읽는 중)
 
#4321 #폴오스터 #열린책들 #책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영미문학 #영미소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24.12.28.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4 3 2 1 (1) - 폴 오스터
"4 3 2 1 (1) - 폴 오스터" 내용보기
2024.05월의 세 번째폴 오스터 " 4 3 2 1 . 1"☆☆☆☆소설을 읽으면서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해보게 된다. 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러 인물들이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을..그런데 이번 폴 오스터의 <4321>은 한 사람의 인생이다양하게, 마치 옴니버스로 4편의 소설이 묶여있는 형식이다. 다만 전개에 있어 한 사람씩 차근차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
"4 3 2 1 (1) - 폴 오스터" 내용보기
2024.05월의 세 번째
폴 오스터 " 4 3 2 1 . 1"
☆☆☆☆

소설을 읽으면서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해보게 된다. 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러 인물들이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을..
그런데 이번 폴 오스터의 <4321>은 한 사람의 인생이다양하게, 마치 옴니버스로 4편의 소설이 묶여있는 형식이다. 다만 전개에 있어 한 사람씩 차근차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기별로 마치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한 인물의 여러 삶의 모습을 순서대로 반복하며 보여준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데, 단락이 달라지면서 앞에서 전개되었던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해서 자꾸 앞을 확인하게 되었다. 앞으로 읽어야 할 분량은 많은데 (1권만 800쪽이 넘는다) 이렇게 하다가는 언제 다 읽을지 몰라서 책소개를 읽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아치 퍼거슨이라는 사람의 4가지 형태의 삶이었던 것이다. 주변의 인물들은 동일하게 등장하지만 인물들의 역할과, 인물들과의 관계가 4가지 방향으로 각각 다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1권은 아치의 조상(?)들이 미국에 정착하여 가족을 이루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각각의 아치 퍼거슨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청소년기를 거치는 아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형태,
거기에는 부모님의 성공과 더불어 윤택한 삶을 살아가기도, 화재 사고로 아버지를 잃기도, 사기로 집안이 망하기도, 캠프에 갔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는 여러 보습의 퍼거슨이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성장통, 그 당시 미국의 역사와 사회상이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기로에 서 있을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한다. 그것이 정말 최선이었을까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이기에 그것이 최선이었을까를 따라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2권에 등장할 청년기의 퍼거슨들을 만나봐야 알겠지만 아치 퍼거슨의 삶은 어떤 것이 최선이었을까. 아마 모두가 그 상항에서는 최선의 삶이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 보며 또 하나의 벽돌 (2권 800여쪽)을 들어 올릴 준비를 한다.

'퍼거슨은 아직 다섯 살도 안 된 나이였지만 이미 세상에는 두 개의 영역이 있음을, 눈에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고,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보다 훨씬 더 생생할 수 있음을 이해했다. ( p. 70)'
 
'맞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고, 일이 한 가지 방식으로 일어났다고 해서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게 다를 수 있었다. (p. 102)"
 
"애벌레에서 나비로의 변신 과정에서 혼란스 러웠던 부분은, 애벌레는 아마 자신이 애벌레라는 사실에 꽤 만족하고 있었을 거라는 점이었다. 흙 위를 기어다니는 애벌레는 단 한 번도 다른 무언가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고, 그런 그들에게 더 이상 애벌레로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나비로 새출발을 하는 건 분명 훨씬 낫고, 완전히 놀라운 일이었다. 나비로서의 삶이 더 위태롭고 가끔은 단 하루만 지속될 뿐이라고 해도 그랬다. (p. 714)'

'거의 모든 일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지만 항상은 아니야.  그러니까 항상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항상 최악을 예상하거든. 그리고 그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 면 내가 신이 나니까 낙관적인 것처럼 들리는 거야. 너를 잃을 수도 있었잖아, 아치, 그런데 잃지 않았어. 이제 그런 상황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잖아. 어떻게 행복 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p538)'


#폴오스터 #4321 #열린책들 #장편소설 #소설읽기 #북스타그램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24.05.3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구매
폴 오스터의 유언 <4321>
"폴 오스터의 유언 <4321>" 내용보기
[4321]을 읽고, 한동안 감동에 젖어 있었다. 눈물도 흘렸다. 그게 꼭 슬퍼서가 아니라, 인생의 총체적 아름다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성장기 소설 중 가장 선명하다. 어린 시절과 현재를 돌아보게 하고, 동시에 미래를 그리게 된다. 인생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한 것도 아닌데, 큰 통곡을 한 후의 시원함이 느껴진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다.
"폴 오스터의 유언 <4321>" 내용보기

[4321]을 읽고, 한동안 감동에 젖어 있었다. 눈물도 흘렸다. 그게 꼭 슬퍼서가 아니라, 인생의 총체적 아름다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성장기 소설 중 가장 선명하다. 어린 시절과 현재를 돌아보게 하고, 동시에 미래를 그리게 된다. 인생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한 것도 아닌데, 큰 통곡을 한 후의 시원함이 느껴진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예상은 했지만, [4321]은 결국 폴 오스터의 유작이 되었다. 지난 4월 30일 77세를 일기로 별세 했다. 그의 죽음은 슬프지만, 오스터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되어버린 [4321]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욕3부작]과 [달의 궁전]과 같은 오스터의 작품은 대부분 신비주의를 기반으로 인간, 특히 도시인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우연, 집착, 고독, 강박에 휩싸인 인간을 매우 깊은 곳까지 추적한다. [4321]은 기존의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신비주의보다는 사실적이다. 인간 내면을 다루지만 고독과 강박보다는 우리 주변에 존재할만한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다. 과장되지 않는 평범한 그의 문체 또한 편안하다. 그간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라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뿜어내는 매력은 여전히 놀랍고 재밌다.   [4321]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으면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다. 왜냐하면 한 인물의 4가지 삶을 병렬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중우주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택과 우연에 따른 4명의 퍼거슨을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다룬다. 퍼거슨1, 퍼거슨2, 퍼거슨3, 퍼거슨4로 정리하면서 읽어야 정리가 된다. 그러나 소설의 중반 이후를 읽다 보면 내용이 뒤섞여도 상관이 없어진다. 퍼거슨의 과거는 총체적으로 읽히고 현재는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지도를 그려나가는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뉴욕 3부작]에서 도시를 걸으며 매일 지도를 그리는 인물이 등장하듯이, 인간은 환상 속에서 매일 지도를 그려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퍼거슨 역시 그의 환경과 선택에 따라 삶의 지도가 달라진다. [4321]은 폴 오스터에게 최종적 작품이었지만, 독자는 퍼거슨과 함께 새롭게 시작해야할 인생이 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인간의 본질적 질문에 귀착하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과거는 총체적이고 현재는 현실 속 환상이며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의 환경과 자신의 선택에 따라 4명의 퍼거슨의 삶이 다르듯이, 그가 겪는 세계 또한 다르게 묘사된다. 같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동일한 시대를 다루지만, 각각의 퍼거슨이 인식하는 세계 또한 다르다. 어차피 세계는 개인의 표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오스터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구조로 소설을 썼을까?  

선택지가 둘밖에 없는 거야. 큰길과 뒷길, 그리고 각각의 도로는 장점과 단점이 있어. 큰길로 갔는데 3중 추돌 사고가 나서 한 시간 동안 차들이 꼼짝을 못 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차 안에 있는 동안 뒷길 생각밖에 안 나고, 왜 그 길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만 드는 거야. 잘못된 선택을 한 자신을 원망하겠지만, 그게 잘못된 선택이 될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그런데 뒷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커다란 삼나무가 쓰러져서 지나가던 차를 덮치는 바람에, 운전사가 사망하고 도로가 세 시간 반 동안 막혀 있었다는 소식을 누가 전해 준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만약 뒷길로 갔다면 네 차가 쓰러지는 나무에 맞았을 테고, 네가 죽었을 거라고 말한다면? 아니면, 아무 나무도 쓰러지지 않고, 큰길을 택했던 게 잘못된 선택으로 밝혀진다면? 아니면, 뒷길로 갔는데 나무가 쓰러지면서 네 차 바로 앞에 가던 운전자를 덮친 거야. 너는 차 안에 앉아서 큰길로 갈 걸 그랬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쪽에는 3중 추돌 사고가 나서 어차피 약속에는 늦었을 거라는 걸 모른 채 말이야. 아니면, 3중 추돌 사고가 안 일어나고, 뒷길로 간 게 잘못된 선택이었던 거라면?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우연을 마주하고,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어떤 선택이 다른 선택보다 더 낫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러려면 다중우주를 모두 들여다 보아야 한다. 퍼거슨3은 교통사고로 손가락 2개를 잃게 되지만, 베트남전 징집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오늘의 불행은 내일의 행운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행운은 내일의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인간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폴 오스터가 마지막 남긴 질문이다. 독자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책을 덮고 그의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 서게 되는 순간 인생의 총체적 감동이 몰려온다. 거대한 우주를 바라본 것과 같은 혜안을 얻게 된다. 

s*******1 2025.03.0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4 3 2 1 (1)
"4 3 2 1 (1)" 내용보기
현존하는 작가 중 단연코 최고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을 집대성해 놓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하게 자신의 이야기의 뿌리인 유대인, 책, 야구, 글짓기 등등을 기본 토대로 하고 있지만, 특이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1권만 800페이지 정도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늘 그렇듯 그의 필력, 이야기로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그의 어마어
"4 3 2 1 (1)" 내용보기

현존하는 작가 중 단연코 최고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을 집대성해 놓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하게 자신의 이야기의 뿌리인 유대인, 책, 야구, 글짓기 등등을 기본 토대로 하고 있지만, 특이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1권만 800페이지 정도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늘 그렇듯 그의 필력, 이야기로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그의 어마어마한 능력으로 순식간에 100페이지는 가뿐히 읽을 수 있게 잘 읽히는 책이다.

묘하게 그의 작품들은 그의 나이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도 편안하게 잘 되어 있다.  

 

y********f 2023.12.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4 3 2 1 (2) - 폴 오스터
"4 3 2 1 (2) - 폴 오스터" 내용보기
2024.08월의 두 번째폴 오스터 "4 3 2 1 (2)"☆☆☆☆드디어 다 읽었다.퍼거슨이라는 인물의 서로 다른 4가지의 인생에 대해서.그 중 어린 시절에 캠프에서 사망한 퍼거슨이 있었고, 책을 출간하러 간 영국에서 순간의 실수(?)로 교통하고로 사망하는 퍼거슨도 있다. 다른 생은 기자로 작가로 살면서 자신의 이야기와 시대를 대변하는 삶을 살아가는 퍼거슨이다.1권부터의 스토리를 내가
"4 3 2 1 (2) - 폴 오스터" 내용보기
2024.08월의 두 번째
폴 오스터 "4 3 2 1 (2)"
☆☆☆☆

드디어 다 읽었다.
퍼거슨이라는 인물의 서로 다른 4가지의 인생에 대해서.
그 중 어린 시절에 캠프에서 사망한 퍼거슨이 있었고, 책을 출간하러 간 영국에서 순간의 실수(?)로 교통하고로 사망하는 퍼거슨도 있다. 다른 생은 기자로 작가로 살면서 자신의 이야기와 시대를 대변하는 삶을 살아가는 퍼거슨이다.
1권부터의 스토리를 내가 다시 편집하여, 한 명씩 그 삶을 붙여가며 다시 보기를 해 보았다. (이 책의 구성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4명의 삶을 조금씩 조금씩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서로 다른 주말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으로 읽었기에)
그랬더니 각각의 삶에서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인물들이나 동시대의 상황에 퍼거슨 자신에게 미쳤던 영향들의 차이가 더 확연하게 느껴졌다. 우리와는 다른 상황과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물리적인 삶의 방향이나 가치관등은 다를 수 있지만 성장하면서 겪는 내면의 갈등이나 인간의 욕망등은 같은 맥락에서 느끼고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뒤로 갈수록 호기심이나 재미를 유발하는 소설적인 요소보다는 마치 작가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퍼거슨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해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인물이지만 서로 다른 사람의 삶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많은 공간과 (써머리 노트를 가득 메우며 읽었다) 시간을 할애하며 다양한(?)그와 함께 했던 긴 책읽기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폴 오스터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퍼거슨이라는 인물에 작가를 녹여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폴 오스터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와 단어들을 떠 올려보며 앞으로는 그런 그의 작품들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그의 유작들을 통해 기억될 수 있기에 영원한 이별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웬지 마지막 작품, 그것도 1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그의 죽음에 대한 나의 애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온통 통제만 하려고 하면 바람이 통하지 않는, 숨막히는 결과가 나온다. 온통 위험을 무릅쓰려고만 하면 혼돈과 난해함만 낳게 된다. 하지만 둘을 함께 놓으면, 그때는 뭔가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때는 머 릿속에서 노래하는 단어들이 종이 위에서도 노래하고, 폭탄이 터지고 건물이 무너지면서 세상이 다른 세상처럼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p. 14)'

'그 일을 잘하려면 퍼거슨은 그 모순의 양면을 모두 인정하고 이중성 안에서 사는 법을 익혀야 했다. 대상을 깊이 파고들면서도 여전히 중립적인 관찰자로 옆에 물러나 있는 일이었다. (p. 115)'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몰라. 길게 보면 우리 관계가 계속 유지될 건 아니었으니까. 짧게 보면, 우리 는 뭔가를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우리 둘에게가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밤 머저리 하나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협박한 거야. 우리는 우리가 하려는 말을 분명히 전했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일에 본인들의 삶을 바치는 사람들을 자신 역시 노려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세상에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삶이란 그 정도로 힘든 거고, 나는 지쳐 버렸어, 아치, 쥐고 있던 밧줄의 끝자락에 닿은것 같아. (p. 545)'



#폴오스터 #4321 #열린책들 #PaulAuster #소설책읽기 #북스타그램 #소설가 #삶의다양성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24.08.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4321세트
"4321세트" 내용보기
아직 읽어보기 전인데 기대가 됩니다. 책 두께가 맘에 들어요. 두둑한 책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일단 표지도 좋고 책 만듦새도 맘에 드네요. 폴 오스터 작가는 처음인데 다 읽고 다른 다른 책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책 내용은 다 읽어본 후 다시 리뷰하는걸로..
"4321세트" 내용보기
아직 읽어보기 전인데 기대가 됩니다. 책 두께가 맘에 들어요. 두둑한 책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일단 표지도 좋고 책 만듦새도 맘에 드네요. 폴 오스터 작가는 처음인데 다 읽고 다른 다른 책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책 내용은 다 읽어본 후 다시 리뷰하는걸로..
c****l 2025.09.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구매 리뷰입니다.
"구매 리뷰입니다." 내용보기
폴 오스터 작품 도장 깨기 중입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에 구매합니다. 사전에 유튜브를 통해 4321 읽는 요령(?)에 관한 조언을 얻고 읽으니 이해도나 몰입에 상당한 도움이 되네요. 읽는 중이라 완독까진 시일이 걸릴 듯하지만, 엄청나게 빠져드는 내용임엔 분명합니다!
"구매 리뷰입니다." 내용보기
폴 오스터 작품 도장 깨기 중입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에 구매합니다. 사전에 유튜브를 통해 4321 읽는 요령(?)에 관한 조언을 얻고 읽으니 이해도나 몰입에 상당한 도움이 되네요. 읽는 중이라 완독까진 시일이 걸릴 듯하지만, 엄청나게 빠져드는 내용임엔 분명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s******6 2025.06.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