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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우정치에 의해 포퓰리즘을 선동하는 안당들이 정궝을 잡을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유권자라고 같은 것이 아니므로 개인의 능력과 인성에 따라 투료권의 경중을 따져야흔다. 싱가폴과 같은 반독재국가가 훨씬 더 효율적인 정부가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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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제목 정말.. 왜 저자는 이런 제목을 썼을까. 제목에 대한 반감보다는 궁금했다. 우리가 지금 옳다고 믿는 절대적 기준 중의 하나가 정치의 "민주주의"다. 하지만 저자는 조목조목 민주주의의 문제 점이 무엇인지를 꼬집는다. 그리고 내세운 대안이 에피스노크라시. 지식에 의한 정치를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의문이 들었다. 정말 대중이 우매한 것인지에 대하여. 대중이 우매하다는 근거는 사실 잘못된 선동으로 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정치의 어두운 면면과 그 면면과 손잡은 언론이 있다. 그렇다면 지식인에 의한 정치는 정말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지울수가 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말하는 에피스노크라시의 기준이 궁금했지만, 책의 말미에까지 그 기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결국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를 대체하고자 하는 제도에 대한 정확한 답을 말하고자 하기 보다는, 망가져가는 민주주의 대한 비판을 통해 우리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 대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쟁적인 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적이라 믿고 있는 민주주의가 어떤 허점을 가지는지, 히틀러가 우리가 지금 채택한 민주주의적 절차에의해 뽑힌 사람임을 우리는 잊으면 안된다. 본 제도는 좋은 목적을 위해 우리가 채택한 수단일 뿐이다. 그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하는 책. 나의 주위를 환기시키기에 읽어볼만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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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하고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정치심리학에서 확실한 합의에 이른 내용은 시민 대부분이 냉정하고 이성적인 방식보다는 매우 편향적이며 당파적인 동시에 동기부여되는 방식으로 정치 지식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벌컨보다 훌리건에 가깝다. 강한 이념이 없는 호빗조차도 잠재적인 벌컨이라기보다는 잠재적인 훌리건이나 훌리건 후보에 가깝다. (그들은 의견을 형성할 만큼 정치에 신경 쓰지 않지만, 만약 정치에 관심을 두었다면 편향된 의견을 형성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