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이배라는 소년은 평안도 사람으로 나라에 등용되기 힘든 고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대 분위기가 그랬던 듯합니다. 오이배는 날고 기는 재주를 타고 났고, 천재였지만, 출신지 때문에 주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오이배는 인근 학교에서 명성을 날리는 교사가 되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학교는 폐쇄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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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命의 힘은 막을 수 없다. 韓國은 드디어 日本과 保護條約을 締結치 않을 수 없었다. 韓國의 外交權은 東京에 있는 日本 政府가 代行하며 韓國의 모든 機關에 日本人을 顧問으로 두어서 그 指導를 받는다는 條約이었다. 保護條約에 韓國의 上下가 욱적할 동안, 日本은 한 걸음 더 나가서 韓國을 倂合하여 버렸다. 日本은 外國에 宣傳하기를, 韓國 皇帝가 그 統治權을 日本 天皇에게 好意로 넘긴 것으로 無血倂合이라 한다. 하기는 그렇다. 미리 軍隊를 解散하고 武器를 걷어올려서 寸鐵을 못 가진 韓國人이 매 맞싸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各地에 義兵이 蹶起하였다. 近處의 熱血 愛國者를 受領으로 組織된 義兵은, 감추어 두었던 낡은 銃이며 砲手의 獵銃들을 武器로 하여, 이 倂合에 反對하는 意思를 나타내었다. 다만 끓는 피, 힘주어지는 주먹만을 武器로, 日本의 정예한 軍隊를 當할 수가 도저히 없었다. 義兵 自身들도 그것은 잘 안다. 알기는 아나 참을 수 없는 憤激心은, 이 當할 수 없는 싸움이나마 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民族의 意思였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
| 희원북스 출판사에서 나온 <김동인 - 반역자> 전자책 관련해서 간단히 리뷰를 남겨 봅니다. pc뷰어 양면보기 설정에서는 약 20페이지 분량이었고, 단면보기 설정에서는 약 14페이지 분량으로 꾸미고 있었습니다. 1946년 10월 백민에 발표되었던 작품으로, 단편으로 꾸며져 있어서 쉽게 완독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삽화없이 텍스트로만 편집구성되어 있었고, 비교적 무난하게 내용 꾸미고 있어서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