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마다 각자 다양한 형태로 기호를 선택한다. 누군가는 산책하거나, 혹은 친구와 어울리거나, 요가를 하는 등.. 요즘 시대에서는 사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그렇게 손쉽게 선택되는 기호품은 아니다. 유럽처럼 무료로 평안하게 쉴 수 있는 휴식처, 즉 공원이 많이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기에, 어느 건축가가 이야기하듯 자연스레 '초단기 공간 임대업'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나라. 그 초단기 임대업의 위치를 높게 점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 찻집이 아닌 카페들이다. 심지어 나 또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나는 매장에서 내리는 커피가 아닌, 보이차를 마시게 되었을까? 사실 초경쟁사회에 돌입한 한국에서는, 일말의 '쉼' 보다 더 주목받는 것은 분명 나의 지금 당장의 뜀박질에 도움이 되는 '촉매제' 다. 그 주목받는 촉매제는 분명 각성제가 과다 함유된 커피이리라. 카페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내 눈으로 바라보는 손님들은, 다시 달리기 위해 찰나의 휴식을 취하는 여리고 지친 소년소녀들로 보인다. 가끔씩은, 점심시간에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우리 카페에 오시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직장인들의 뒷모습을 보면, 어쩐지 아버지가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리다. 그렇다. 나는 쉬고싶었나보다. 그 뒷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렸던 건, 결국 내가 지금 힘들다는 뜻이었나보다. 그래서 매번 보이차를 마실 때, 진짜 '쉼' 을 찾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인연이 되어 첫 보이차를 마실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내 마음이 평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챗바퀴처럼 쫓다가 벗어나서 나를 바라보는 듯 하다. 보이차를 마실 때, 이것은 분명 커피를 마실때와는 다르다. '그래 평소에 열심히 사느라 힘들었지? 푹 쉬어라 내새끼~' 라는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무언가 방심하게 해버릴 정도의 이완감을 준다. '나.. 정말 쉬어도 돼?' 라는 걱정조차 무색해지는 정겨운 시골집의 향취. 옛 할아버지 집이 있는 충북 괴산을 진입 하면서부터 느껴지는 풀내음. 창문 너머에서 매미소리가 울리는 어느 여름날 아무 거실 바닥에서나 잠을 자던 푸근함. 어느 밤, 달 아래에서 다 같이 모여 마당에서 장작불을 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잔잔한 행복감.. 그런 생각들에 젖게 만드는 보이차 한 모금. 이런 평안함을 선사해 주는 보이차에 대해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정말 훌륭한 보이차 입문서이다. 북촌에서 다실을 운영하고 있는 팽주이자 작가인 주은재 대표의 친절한 안내가 담긴 "시간을 마시는 보이차". 이 책을 읽다 보면, 함께 천천히 그녀의 생애를 따라 걸으며 보이차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듯 하다. '이 보이차는 숙차에요. 저는 주로 요가를 할 때마다..' '차를 마실 땐 물도 중요해요.' '보이차를 내릴 땐 차호 중 특히 자사호가 으뜸인데..' 가끔 읽다 보면, 머릿속에서 설명해 주는 그녀가 한번씩 숨이 차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괜스레 웃음을 자아낸다. 그만큼 보이차를 애정하는 것 처럼 느껴져서. 그녀가 프롤로그에 쓴 것 처럼, 커피를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와 차를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는 분명 다른 이야기다. 이것은 카페 사장인 내가 보증한다. 삶에서 다음으로 달려가는 것도 물론 좋지만, 우리 시대에, 그리고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분명 이 다음을 위한 촉매제가 아닌, 지금을 차분히 바라보기 위한 평안이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린 '지금' 이라는 시간이 담긴 보이차 한 모금. 그런 보이차를 배워보고 싶다면 이 "시간을 마시는 보이차" 를 읽으며 주은재 대표와 함께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