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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리 맞은 채 울적하게 피었네 가을 들꽃 - p.20
하이쿠는 보시다시피 짧다. 그리고 원문은 딱 한 줄로 되어 있고, 번역본은 딱 3행이다. 원문에서 잘 살린 운율을 번역의 한계로 인해 그걸 보여줄 수 없음을 이를 번역한 류시화 시인은 아쉬워한다. 『바쇼 하이쿠 선집』은 바쇼가 지은 하이쿠를 소개하고 밑에 해설을 덧붙인 하이쿠 감상책이라 할 수 있겠다. 하이쿠만 쭈욱 읽을 수도 있고, 해설을 읽으면서 천천히 읽어나갈 수도 있다. 하이쿠는 일본의 굉장히 짧은 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일 테니 (모를 수도 있으니, 이런 식으로 설명을 덧붙이는 건 나의 철부지 없는 배려심이다. 으히히히!) 일단은 생략(?)을 하고. 뭐, 그러니까, 난 지금 하이쿠의 함축성에 대해서 얘기하려는 거다. 그러니까,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했다고 비난하지 마시길!
2. 씨앗이라고 얕보지 마시오 매운 고추
(밑에 일본어 원문이 나오는데, 그거 다 치려면 24시간은 걸릴 거 같으니, 일단은 생략하고...)
'조그마한 씨앗이라고 깔보지 마시오. 매우 작지만 밭에 뿌리면 가을에 빨간 열매를 맺어 사람의 혀를 얼얼하게 쏘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바로 고추의 씨앗이다. 바쇼 하이쿠의 강점은 소재의 다양성이다. 현실의 삶에서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사물들이 고르게 등장한다. 여행을 마친 후 고향 이가우에노에서 흏식을 취할 때의 작품이다. 고추는 가을 계어이지만 고추시는 봄의 계어이다. 바쇼 하이쿠 문학의 여섯 번째 시기는『오쿠노호소미치』여행을 마친 이듬해인 47세부터 에도로 돌아간 49세까지로, 하이쿠와 정신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 - p.208
많은 페이지를 소개하고 싶지만, 딱 한군데만 해설을 덧붙인 부분을 소개하는 걸로 정했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바쇼의 하이쿠는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점이다. 겨우 한 줄로 된 시를 이렇게 다양한 소재들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정말, 기본적으로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물론, 해설에서도 그는 하이쿠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재능도 자연과의 조화,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없다면 펼칠 수 없었을 것이다. 『바쇼 하이쿠 선집』은 산이나 강, 바다 같은 자연에서 읽는다면 그 의미가 더 선명하면서도 깊게 다가올 것이다. 가까운 곳에 이러한 자연이 없다면, 그런 곳으로 여행을 가면 좋을 것이다. 여행은 자주 하기엔 부담스럽지만, 가끔씩 해주면 삶의 활력소가 되는 아주 좋은 취미생활이 되는데....나는 여행할 시간과 비용이 되지 않으니...! 아쉬움만 삼키고 있을 뿐....ㅎㅎㅎ.... 가까운 곳에 나들이라도 가봐야겠다!
3.
색 묻어난다 두부 위에 떨어진 옅은 단풍잎 - p.36
야, 아무렇지도 않네 어제는 지나갔다 복어 국 - P.39
여름 장맛비 학의 다리가 짧아지네 - P.49
고추에 날개를 붙이면 고추잠자리 - P.277
하이쿠는 정해진 글자수가 있다. 그 정해진 글자수로 시를 쓴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가끔은 한 두글자가 규정에서 벗어나기도 하지만, 그 미묘한 차이조차도, 짧아진 학의 다리를 묘사히기 위해 다섯자로 줄이는 등, 상징성까지 뛰어나다.
4. 바쇼가 아직 붓초 선사 밑에서 참선을 배울 무렵, 어느 날 붓초가 바쇼를 찾아와 물었다. "오늘은 어떠한가?" 이 말은 요즘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이면서 선에서 대답을 재촉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선문답이다. 바쇼가 답했다. "비 지나가며 푸른 이끼를 씻었습니다." 비가 내려 이기의 색이 더 뚜렷해졌다는 답이다. 붓초가 다시 물었다. "푸른 이끼가 아직 생겨나기 전, 봄비가 아직 내리기 전의 진리는 무엇인가?" 이에 바쇼는 답했다.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문득 개구리가 오두막 근처 연못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선적 깨달음의 순간이다. 붓초는 바쇼의 대답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바쇼의 하이쿠에 선의 정신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를 말해 주는 일화이다. - p.368
류시화의 해설에 나오는 장면이다. 바쇼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자연이나 인생의 깊이에 접근하려는 시적태도를 통해 하이쿠를 완성시켰다. 바쇼의 하이쿠를 읽는 순간은 환희나 기쁨보다는 잠잠한 평안함이 슬며시 깃든다. 그 깃든 평화의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자연에 대한 마음이 새삼 새로운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바쇼 하이쿠 선집』은 그렇게 잠잠히 나의 마음으로, 나의 정신으로 들어온다.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나의 앞날을 편안하게 밝혀 주는 빛이 되어가는 바쇼의 하이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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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
자신의 길에서 죽는 것은 사는 것이고 타인의 길에서 사는 것은 죽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를 완성시킨 마쓰오 바쇼, 그는 속세를 초월해 은둔과 여행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그의 시는 미학적 추구도 도덕적 교훈도, 언어의 재치도 아니다. 인간 본래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며 인간이 근원적으로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가를 한 줄의 시에 담았다.
하이쿠는 5,7,5 의 음수율의 지닌, 17자로 된 일본의 짧은 정형시이다. 진정한 시 세계에 대한 갈구, 인간으로서의 고독과 우수, 여행과 방랑에의 그치지 않는 동경, 뛰어난 문학성 등이 한 인간의 생애와 문학을 구성하고 있다. 바쇼의 하이쿠는 시대와 장소의 산물이지만, 시공간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작가가 전하는 말 속에서>
이번 하이쿠는 일고십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한 인간의 생애와 문학'의 어우러짐, 자연을 마음에 품은 채 삶의 여정의 떠나는 그의 흔적을 통해 그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독과 방랑, 삶에 대한 허무함과 외로움은 그의 여행길 길목 길목에 서 있는 이정표 같았다. 그의 발자취는 고독을 찾아 헤매이는 듯 싶기도 했고, 허무한 외로움에 온전히 취해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밀려오는 고독감을 굳이 떨쳐내려 하기 보다는 자연과 함께 온몸으로 부딪히며,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그의 마음을 온전히 간직하고, 느끼고자 시작했던 것은 바로 ‘여행’이었다. 혹은 방랑이라 할 수 있는 그 길 위에 평생을 보냈다. 끊어질 듯, 방황하듯 떠있는 부표처럼 그는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지만, 그 어느 것에도 자신을 묶어 놓지는 않은 것 같다.
안락한 삶에 대한 갈망과 평범한 일상에 안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민낯을 마주보려 노력했다. 변하지 않는 듯 하지만, 계절 계절 마다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자연에 빗대어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려 했다.
그가 여행을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여행이라는 길을 떠나야만 했던 것일까. ‘여행’이 그의 삶에,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 것일까.
(Q.사람의 삶에서 여행은 꼭 필요한 것일까? 여행을 통해 어떤 점을 얻을 수 있을까?)
내게 있어 ‘여행’은 일상에 대한 일탈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균열, 새로운 곳을 향한 나의 갈망이자 도전이었다. 무언가를 얻고자 애썼던 것은 아니다. 그저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 짜릿한 기분을 만끽하는 즐거움에 대한 중독 혹은 갈증으로 ‘여행’이라는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애썼던 것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설렜던 마음과 그곳에서 느꼈던 한적한 여유로움이 자꾸만 기억이 나서 또다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일상의 팍팍함에 목이 멜 때, 그저 어딘가에 자유로이 마음을 풀어놓고 싶을 때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길에서 만난 작은 쉼이 다시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내게 있어 여행은 ‘삶의 쉼표’인 것 같다. 한 걸음 더 나아갈 힘을 주는 작은 위로가 필요할 때 여행을 떠난다. 그게 여행이 주는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Q.자연의 유무와 시의 깊이에 상관관계가 있을까?)
자연과 시의 상관관계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자연’이, ‘시’가 갖는 의미에 대해 되새겨 보려한다. ‘자연’하며 느껴지는 마음은 ‘편안함, 변함없는, 자연스러움’이 떠오른다. 봄이 되면 파릇파릇한 새싹이 떠오르고, 푸르른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 생각나고, 붉게 물든 가을과 새하얀 겨울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자연은 항상 그 자리 그대로 내가 찾아가면 있을 것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전해주는 것 같다.
봄의 움트는 새싹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마음을 다잡는 위로를 얻고, 푸름으로 물든 여름을 보며 뜨거운 열정을 생각한다. 가을의 청량한 하늘을 보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때론 떨어지는 낙엽에 쓸쓸한 마음을 담아내기도 한다.
시가 내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면, 자연은 그릇의 모습을 담아내는 한 폭의 풍경 같다. 그저 풍경의 한끝자락에 머물며 계절의 흐름에 제 몸을 맡기며,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의 있고 없고와 시의 얕고 깊음을 내 나름의 판단으로 규정할 순 없지만, 그저 내 마음을 알아주는, 혹은 대변해주는 그런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꾸밈없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빛나는 그 모습과 내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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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을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하이쿠를 여러 책에서 접하고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날 것 그대로의 하이쿠를 처음 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오래도록 마음에 와 닿았거나 기억에 남는 하이쿠가 거의 없었다. 그 후 나쓰메 소세키의<풀베개>를 비롯하여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하이쿠가 언급되어 있어서 어떻게 된 일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후자의 책에서는 작가가 바쇼의 기행문 『오쿠노호소미치奥の細道 깊은 곳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 제목을 차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제대로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읽게 되었다. 1,100편의 하이쿠 중 선별한 대표작 350편과 역자의 해설이 함께 들어있다. 한 페이지에 한 편의 하이쿠와 일본어 원문이 실려 있다. 처음 하이쿠를 접했을 때는 일본어 공부는 오랫동안 쉬고 있던 상황이어서 잘 와 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요즘 한창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어서인지 한 글자 한 글자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예전엔 は(하)를 わ(와)로 읽었고, ひ(히)를 い(이)로 읽었던 모양이다. 옛날에 쓰이던 글자와 오늘날의 언어변화를 짐작해 볼 수도 있었다. 우선 하이쿠 소재의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무엇이든 하이쿠의 재료가 된다. 자연은 물론 일상에서 얻은 소재를 다루어서 일본의 문화, 풍습 등 에도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역시 어떤 책이든 마음에 다가오는 때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이렇게 열일곱 글자에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함축된 단어 너머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역자의 해설이 있었기에 더욱 스며들었을 것이지만. 역자는 하이쿠를 감상하는 독자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배경설명과 정평 있는 평단의 해설을 요약해서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꽃은 싫어라 사람들의 입보다 바람의 입이 花(はな)にいやよ世間(せけん)口(くち)より風(かぜ)の口(くち)(P27) 꽃구경을 하는 축제인 하나미はなみ[花見]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벚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화사하다. 저마다 이 꽃 저 꽃이 예쁘다고 함박웃음을 웃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로 떠들썩한 분위기가 그려진다.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들의 입이 미울까. 저 화사한 꽃들을 다 떨어지게 하는 바람이 더 밉다는 것이다. 절대로 관찰하지 않고 지그시 바라보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하이쿠가 나오겠는가. 이것은 19세에서 29세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란다. 서리 밟으며 절룩거릴 때까지 배웅했어라 霜(しも)を踏(ふ)んでちんば引(ひ)くまで送(おく)りけり(P43) ‘아침 서리를 밟으며 그대를 배웅하러 나왔다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함께 간 것이 결국 다리를 절룩거릴 정도로 먼 곳까지 갔다.’ 하이쿠 앞에는 이 말이 적혀있는데 시인 시유(四友)와 작별할 때 쓴 작품으로 가마쿠라에 가는 시유를 배웅하러 나섰다가 결국 끝까지 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헤어지는 것이 그토록 아쉬웠을까. 끈끈한 인정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들판의 해골 되리라 마음먹으니 몸에 스미는 바람 野(の)ざらしを心(こころ)に風(かぜ)のしむ身(み)かな(P66) ‘野(の)ざらし(노자라시)’는 들판에 버려진 해골이라는 뜻으로 바쇼가 41세의 가을, 최초로 방랑을 떠나는 절실한 각오가 담겨있는 하이쿠라고 하겠다. 하이쿠 지도자로 명성과 지위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도 무소유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욕심을 버리고 실천적인 삶을 살았다. 백골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다짐했더니 뼛속에 바람이 스며든다. 하이쿠를 읽는 자체로도 오싹한 한기가 느껴진다. 이 시에서 제목을 딴 여행기『노자라시 기행 野ざらし紀行』의 서문에 실려 있다고 한다. 종소리 멎고 꽃향기는 울리네 저녁 무렵 鐘(かね)消(き)えて花(はな)の香(か)は撞(つ)く夕(ゆう)べ哉(かな)(P146) 이 하이쿠는 40대의 작품으로 자신의 시풍에서 벗어나 당시의 언어유희를 따른 느낌을 담고 있다 한다. 종소리(청각), 꽃향기(후각), 저녁(황혼 녁/시각)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 시작법을 엿볼 수 있다. 옛날 국어시간에 배우고 암기했던 공감각적 표현법을 떠올리게 한다. 바쇼의 작품 외에도 동양의 시문학에서 자주 시도되는 기법이라고 한다. ![]() 하이쿠를 음미해보고자 필사를 해 보았다. 오랜만에, 그것도 잘 써보려고 하니 잘 안 된다. 열 번은 썼나보다. 더 이상 손이 아파서 안 되겠다 그냥 올리자. 이 시는 46세의 봄, 바쇼는 간토, 오슈, 호쿠리쿠 등 일본 동북 지방을 지나 중서부 내륙까지 도는 도보 여행을 출발한다. 스미다가와 강의 다리까지 배웅 나온 문하생들에게 준 작별의 시로 『오쿠노호소미치』서문에 실려 있다. 자신은 하늘을 나는 새로 뒤에 남은 문하생들은 물고기에 비유했다. 떠나는 사람 남는 사람 모두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겠지 더구나 노쇠한 스승의 떠남이라니. 보리 이삭을 의지해 부여잡는 작별이어라 麦(むぎ)の穂(ほ)を力(ちから)につかむ別(わか)れかな(P311) 방랑의 삶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여행길에 수많은 문하생들을 찾아 하이쿠 모임도 하고 후원을 받은 거처에서 쉬기도 했지만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혹독한 더위와 추위를 견뎌내면서 객지에서 세월을 보내는데 몸이 성할 리 없다. 51세의 음력 5월 교토 지역으로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가 음력 5월 11일 다시 에도로 출발하면서 가와사키(도쿄 남쪽의 도시)까지 송별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남긴 작별의 하이쿠다. 체력은 이미 바닥나고 몸은 허약해져 있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보리 이삭을 부여잡는 작별이라니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절실함과 슬픔이 파고든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에 바쇼나 잇사의 하이쿠가 언급되어서 상당히 의아하고 신기했었다. 동양권도 아닌 영미소설에서 말이다. 『오쿠노호소미치 奥の細道 』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행문이며 외국에 가장 많이 소개된 일본 고전 작품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 2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하이쿠의 성인 바쇼는 세계에 일본을 알리는 지대한 역할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읽는 중에도 다 읽고 나서도 멈출 수 없었던 생각은, 우리도 우리 나름의 정서와 멋이 담긴 정형시 시조가 있으며 그 이전으로 들어가면 고려가요, 향가 등 우수한 작품이 많은데 이것이 세계에 얼마나 알려졌을까 궁금해졌다. 전통을 아끼고 계승하는 면에서는 어쩌면 한 수 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청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짧아서 ‘말하다 마는 듯한’ 열일곱자의 짧은 시구에서 한 편의 이야기를 상상할 여지를 준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우리 안의 시인을 깨우는 일’(P404)이라는 역자의 말에 매우 공감된다.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의 멋을 알게 될 것 같다.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하이쿠를 자주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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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일.고.십.에서 <글을 쓰고 싶다면>을 읽은 후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있었다. <서양철학사>에서도 어떤 사상이 공감을 불러 일으켰을 때는 바로 그 사상을 펼친 철학자의 삶이 그의 사상과 일치했을 때였다. <바쇼 하이쿠 선집>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마쓰오 바쇼 그의 삶 자체가 바로 하이쿠였기 때문이다.
1. 그가 지은 하이쿠 같은 삶을 산 마쓰오 바쇼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를 읽으면 간결하고 꾸밈이 없지만 글이 주는 여운이 마음에 잔잔히 남는 기분이 든다. 그의 삶 역시 짧고 간결하며 거추장스러움이 없었다. 딱, 그의 하이쿠 같은 삶을 살았다.
죽음 앞에서도 큰 소란을 떨지 않고 담담하고 초연하다. 마치 이 세상의 삶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었던 것처럼..
그의 삶에서 또 하나 마음에 남았던 것은 사람을 대하는 자세였다. 아래 하이쿠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인정 깊은 사람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화려하게 살 수 있는 재능을 가졌지만, 그 재능으로 물질을 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길을 걸어간 마쓰오 바쇼. 그럼에도 일본 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으며, 심지어 지금 다른 나라 사람이 그의 삶에 대해 글을 쓰고 있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오래 남았고 멀리 퍼졌다. 내게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눈 앞의 것에 아둥바둥하는 삶보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마쓰오 바쇼, 그리고 그의 시였다.
2. 시가 좋아지다(feat. 류시화)
일본문학이 전공인지라...... 하이쿠를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제대로 읽은 적은 없었다. 하이쿠의 유래, 형식, 대표 작가 등 암기로만 만나다 보니 기억에도 남지 않았고 감동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가뜩이나 시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외국 시라니.. 그것도 옛날옛날 시라니.. 그런데 하이쿠를 읽으면서 머리가 아니 마음에 시가 물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책읽는엄마곰님의 말씀처럼 류느님 류시화 시인의 힘이라 할 수 있다.
命二つのなかに生きたる桜哉
내가 직역했다면... 목숨 두개 속에 생겨난 벚꽃이려나 (감동 따윈...모름) 하지만 류시화 시인은 이 하이쿠를
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
이처럼 멋지게 풀어냈다.
대가와 대가의 만남이라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 시와 관련된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있어서 시의 이해를 돕는다.
류시화 시인의 시가 없었다면, 주석이 없었다면 하이쿠의 감동을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류시화 시인 덕에 외국 문학을 읽는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하이쿠를 즐길 수 있었다.
3. 지금의 나, 하이쿠
이 책을 받고 쑥 훑었을 때 바로 눈에 들어와 포스팅도 했던 하이쿠. 내 나이와 딱맞아 떨어지는데다가 마흔을 앞두고 심란한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시였다.
몸이 어떻든 간에, 맡은 일은 해야해야 하는 성격인 나.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는 중인데 이 시를 보니 내 처지 같았다.(전혀 야위지도 꽃망울을 피우지도 못했지만 뭔가 나처럼 짠했다)
하이쿠에는 계절과 관련된 단어들이 등장한다. 일.고.십. 덕에 읽게 된 하이쿠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스스로 이 책을 펼쳐서 그 계절과 어울리는 하이쿠를 읽고자 한다. 지금은 스쳐지나더라도 그 하이쿠에 맞는 계절이 오면 느껴지는 감동이 또 다를 것 같다. 새로운 계절을 맞는 즐거움을 하이쿠와 함께하고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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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페이지의 레이아웃이 깔끔하다. 5-7-5의 하이쿠를 그대로 해석하여 옮겨놓았다. 그리고 아래쪽에 안정감 있게 글 박스를 전체를 붙여두었다. 안정감 있는 틀이다. 하지만 운율을 살려서 읽어야 하는 하이쿠라 한국말로 쓰여져 있는 해석본은 맛을 살리지 못하다. 밑에 히라가나를 포함하여 하이쿠 원문을 배치해 두긴 했지만, 히라가나를 읽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서 독음까지 써주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물론 나의 경우 히라가나는 알고 있어서 읽어 보긴 했지만 운율을.. 느낄 수는…… 바쇼가 인정 받는 것 중 하나는 운율을 살리는 능력이라고 한다. 옮긴이도 그 운율에 감탄하는데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_- 어렵다.
- 홋쿠에서 지켜야 할 세가지 규칙 1. 5-7-5 음수율 2. 계절을 의미하는 단어인 계어(기고) 포함 3. 시의 운율을 위해 조사나 조동사에 해당하는 ‘끊는 말(기레지)’ 넣기 (p.344)
세 가지 다 설명이 없으면 제대로 알 수 없다. 심지어 3번은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전혀 알 수 없으니 하이쿠의 위대함을 깨닫기가 어려울 수 밖에. 전체적으로 마음에 쏙 드는, 아, 이런 맛이구나! 하는 하이쿠가 몇 편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작이라고 손꼽히는 것들 중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고, 대부분의 작품들도 어디서 감탄해야 할지 그 맥락을 파악하는데 실패했다. 아무래도 낯선 작품에 대한 무지와 일본 문화의 낯섦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바쇼라는 시인이 마음에 드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방랑시인 바쇼. 최고의 자리에 오른 뒤에 홀연히 모든 것을 버리고 파초암으로 들어간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간소한 짐만 가지고 여행을 수 차례 한다. 그 동안 선대 시인들이 다녔던 곳이나, 가사로 활용되는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자 이동하며 다닌다. 그 모습에서 정말 진정성이 드러나는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는 걸 누가 알지 못할까?
자신의 시 안에서 진정성, 깨달음 그리고 삶을 그대로 녹여내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시인이다. 시가 삶이 되고, 삶이 시가 되는 인생을 산다.
한편으로는 현대의 우리는 제대로 된 노래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린 시절만해도 자연을 노래하고, 삶을 노래하는 가수들이 많았다. 그 시절의 노래는 아직도 들으면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있는 듯 하다. 지금은 그저 사랑타령인 듯 하다. 혹은 개인과 관련된 글만 가득하다는 느낌도 든다. 이런 상황이 정말 괜찮을까? 우리가 자연을 잃어가고 있다는 건, 삶을 잃어 간다는 것과 동일해 보인다. 감상하고 감탄할 것들이 줄어들고 노래할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바쇼는 굳이 자신의 집을 떠나 떠돌고 떠돌면서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그 시절에는 그나마 움직이면 노래할 거리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그가 시로 보여주고자 하는 삶의 근접성이다.
- 가루미(‘가벼움’의 의미로,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시를 쓰는 것). 시의 소재와는 거리가 멀게 취급되던 일상의 것에서 시를 발견한 것이다. (p.209)
귀족과 부유층이 아니라 모르겠지만, 서정적이고 내 일상과 관련된 시가 더 좋다. 노래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기준에 왜 일상이 속할 수 없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쇼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만의 시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
- 전통시에서 대접받지 못하던 이런 일상의 사물들로 시를 쓰는 만년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문하생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이것을 ‘가벼운 시’라고 여겼다. (p.321)
물론 이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한낱 일상을 이야기 하는 단순한 글이라고 할지 몰라도, 결국 우리가 살아 있음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일상을 노래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 주변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내 주변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쇼의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 (크으~ 감탄 밖에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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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에 대해서는 그저 짧은 일본 고유의 시 형식 정도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아, 하이쿠는 이런것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이해를 얻지도 못했다. 다만, 바쇼의 작품들을 읽으며, 일상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내 주변의 자연을 새삼 둘러보게 되었다. 어쩌면 책의 첫 장에 적힌 아래의 글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바쇼의 사상이 아닐까 싶다. 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에게 배우라. 그대 자신이 미리 가지고 있던 주관적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대상에 강요하게 되고 배우지 않게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시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감추어져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멋진 단어들로 시를 꾸민다 해도 그대의 느낌이 자연스럽지 않고 대상과 그대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면, 그때 그대의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 마쓰오 바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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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는 상당히 응축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어려운 일본어 고어에, 절제된 언어라 번역자의 커다란 노력 없이는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읽기 어려운 영역이다. 불연듯 37살에 자연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고, 떠돌면서 적어낸 시집인만큼 모든 하이쿠에 자연이 서려있다. 자연은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을 구체화시키지 않을까? 새가 운다라는 표현을 쓸지 새가 지저귄다라는 표현을 쓸지는 화자가 새를 바라보는 심정이 서려있는 것 같다. 하이쿠가 5,7,5음절로 이루어졌다보니, 각 음절이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악기소리에 맞추어 부드럽게 이어지는 하이쿠를 상상하니, 자연을 바라보는 정자안에서 앉아있는 느낌이 든다. 외로운 생활이지만 자연이 있었기에, 그리고 여행이 있었기에 자신을 시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삭막한 도시생활에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은 사람의 심정을 정화시키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술을 마시면 더욱더 잠 못 드는 눈 내리는 밤 : 눈 내리는 밤에 어찌 쉽게 잠들 수 있을까? 게다가 술까지 마셨으니, 옛 추억이 소록소록 피어나고, 일정하지 않지만 여지없이 쌓이는 눈에, 내일의 여정을 걱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일 생각나게 하는 벚꽃이런가
: 대학교 중간고사때마다 교정내에 한창이었던 벚꽃, 시험준비에 즐기지 못하는 아련함이 항상 벚꽃에 서려있다. 지금도.. 작별의 시 적은 부채 찢어 나누는 이 아쉬움 : 헤어짐을 같은 추억으로 나누지 못하고 각자의 편향된 추억으로만 갖고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아쉬움. 어떤 헤어짐도 이와 같을 것이다. 진실은 없고 각자의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추억만 있을뿐.
이젠 없는데 있을 것만 같다 겨울의 꽃잎 : 이건 내가 적성한 시, 현실에는 없는데, 있을 것만 같다.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을 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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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처음들어봤다. 전에 청춘의 문장들에서 처음 접하게 된 하이쿠는 일본에서 우리나라 시조에 해당하는 문학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짧다. 하이쿠로 가장 이름을 알리고 명문을 남긴 사람이 일본의 바쇼라는 사람인데 내가 평소 즐겨 읽고 좋아하는 시인이자 번역가인 류시화가 번역을 맡았다. 그래서 더 바쇼 하이쿠의 깊고 알찬 문장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듯 했다. 읽기 편하려고 하이쿠를 읽어내려가다보면 점점 속도는 느려지고 사유의 영역은 넓어진다. 바로 그것이 하이쿠를 읽는 재미이며 적응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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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의 울림을 좀 더 느끼고 싶어서 골랐어요 일본어를 완전히 이해하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겠지만.. 류시화 시인께서 옮겨주셨다면 시인의 감성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맘도 컸습니다. 히로시게 후쿠사이 처럼 에도시대 화가의 판화를 좋아하는데 일본인들의 일상 풍속화등 수려한 자연 경관을 기록한 그들의 그림과 하이쿠의 어울림은 말을 안해도 다 아시겠죠? 일본어를 마스터하여 운율감과 그 속뜻까지 이해할 날을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집에있는 완전 일본어 버전 하이쿠 책이 있는데 못읽고 있거든요 먼저 바쇼 선집으로 시작해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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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하이쿠 선집 / 류시화 님의 책이라 구매하게 되었어요 하이쿠라.. 다른 일본 문화를 접할때 한두번 들어본 문학인데 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구매해본건 처음인것 같아요 정해진 글자수의 뜻과 해석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지만 그안에 내재하고 있는 뜻한바는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