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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우린 늘 던질 수 밖에 없다.
성도라는 신분을 입은 입장에서 세상을 살며 성도다움을 지키는 것, 성화되는 것 자체도 일단 고난 일수 밖에 없고, 고난을 겪은 입장에서 이상적인 말이나 감당하기 힘든 평생의 주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고난은 선교의 현장에서도 여전히 동일하다. 광의적 차원에서 선교말고, 통상적 의미에서 선교라는 것은 늘 고되고 아픈것을 전제로하니 말이다. 그러나 고난이라는 주제가 속되게 표현하여 존버하면 된다는 식의 막무가네 형태의 버팀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복을 받기 위한 참음이 아니라 복을 누리기에 참을 수 있게 된 영광을 바라야만, 참 고난을 통한 성화의 길, 사명의 길 성도다움을 지키는 것을 감당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무엇하나 쉬운 것은 없다. 세상을 살면서 세상과 달라야 하는 사명을 가진 이들이, 평온 가운데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을 사는이들을 고난의 길로 부르는 것이 선교니 말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이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살아 낼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책은 하고 있다. 어렵고 답답하고, 추상적인 말들이 다소 있겠지만, 그래도 위로가 된다. 고난을 피하거나 막연하게 즐기라거나, 이 땅에서 받을 더 큰 복을 위해 투자 혹은 버티라는 괴변을 늘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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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해이다. 고통스러운 바다 이다. 고난 속에 있는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인생을 강제 노역과 같다고 말하면서 욥기 6장 1절과 2절에 보면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라고 하면서 인간의 삶을 종과 품꾼의 날과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하나님은 창조의 주이시며 역사의 주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곳에 계시지 않고 인간의 고통을 안은 채 하나님께 솔직하고 진심으로 토로하며 울부짖는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는 시편 기자의 말처럼 하나님은 어둠이 가장 깊은 곳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