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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튀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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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에우튀프론>은 경건함의 정의를 둘러싼 문답을 통해 도덕의 근거를 묻는다. 신이 옳다고 해서 옳은가, 옳기 때문에 신이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은 윤리의 자율성과 권위의 관계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짧지만 철학적 긴장이 높은 대화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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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에우튀프론>은 경건함의 정의를 둘러싼 문답을 통해 도덕의 근거를 묻는다. 신이 옳다고 해서 옳은가, 옳기 때문에 신이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은 윤리의 자율성과 권위의 관계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짧지만 철학적 긴장이 높은 대화편이다.

YES마니아 : 골드 y*****n 2026.04.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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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튀프론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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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튀프론은 소크라테스 3부작의 이전 시간대라 에우튀프론을 읽고 소크라테스 3부작을 이어서 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책소개에 에우튀프론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끝나는 대표적인 대화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책에서 말하는 경건에 대한 문제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 시리즈 중 이 책을 처음으로 읽어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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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튀프론은 소크라테스 3부작의 이전 시간대라 에우튀프론을 읽고 소크라테스 3부작을 이어서 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책소개에 에우튀프론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끝나는 대표적인 대화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책에서 말하는 경건에 대한 문제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 시리즈 중 이 책을 처음으로 읽어보았는데 다른 책도 이어서 읽어보고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YES마니아 : 골드 b******2 2024.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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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정의를 묻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에우튀프론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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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고소를 당해 재판을 위해 예비 심리를 받으러 해당 관청에 찾아가다가 예언가인 에우뒤프론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경건의 정의를 묻는 소크라테스에게 에우튀프론은 세 번의 대답을 합니다. 그것으로도 경건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소크라테스와 함께 경건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지만 아포리아, 끝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끝나는 대화편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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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고소를 당해 재판을 위해 예비 심리를 받으러 해당 관청에 찾아가다가 예언가인 에우뒤프론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경건의 정의를 묻는 소크라테스에게 에우튀프론은 세 번의 대답을 합니다. 그것으로도 경건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소크라테스와 함께 경건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지만 아포리아, 끝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끝나는 대화편입니다.
a****3 2023.12.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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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정의를 내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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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히는 것은 '정의'를 한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한 소크라테스가 원하던 우시아이고, 정의인 것 같다. '정의'를 통해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고, 그러한 정의를 중심으로 그 어떤것과도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 어떠한 말로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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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히는 것은 '정의'를 한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한 소크라테스가 원하던 우시아이고, 정의인 것 같다. '정의'를 통해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고, 그러한 정의를 중심으로 그 어떤것과도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 어떠한 말로도 내가 플라톤의 이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증명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평상시에 그 누구보다도 항상 그 '정의'에 집착을 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좀 더 나의 방식대로 설명을 해 보자면, 그것은 '의미'인 것 같다. 나를 중심으로 내가 하는 모든 행위(즉, 파토스)를 설명해 낼 수 있는 그 하나의 핵심 정수를 추구한다.

반면에 다른이와 하나의 존재에 대해서 정의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까다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정의의 대상'에게 갖고 있는 파토스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선이 다른것은 각자가 가진 배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인 것이고, 정의를 통해서 얻을 목적이 다르기 때문일 듯.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는 '신에 대한 불경'으로 멜레토스에서 고소 당했기에 '경건함'의 정의를 알고 싶고, 에우튀프론은 신에 대한 경건함을 이유로 자신의 아버지를 고소했다. 즉 두 사람은 똑같이 '경건함'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나, 그 배경은 사뭇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는 꾸준히 에우튀프론에게 경고한다. 동사적 사태가 발생해야 비로소 그 사태를 행하거나 당한 대상을 그 행위와 관련한 분사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경건함이란 정의(Justice)의 일부분이라고.

이렇듯 사실은 에우튀프론 딜레마를 아포리아로 풀어 낸 플라톤은, 이미 우리에게 함께 합의점에 이끌어 가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대상은 무언가의 '정의'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것과 연결되는 핵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에우튀프론 딜레마는,

연애 상태이기 때문에 시간을 같이 보내고 대화하는 것인가? 연애 상태란 같이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기 때문인 것인가?

소크라테스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꼭 시간을 같이 보내고 대화하는 것만이 연애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s*******3 2023.11.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