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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에 칸트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있어 순수이성1.2를 구비하여 도전하게 되었다. 한국의 인문학적 토양이란 초중고시절 대학학을 겪어오면서 그 빈약함에 대해 익히 체험해 오던바이다.
그러나 칸트의 저서가 어렵다는 것은 앞면서도 그의 저서가 독해하기에 대단히 어렵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합리화시킬수는 없다.
한 철학자는 서양철학사를 통해 3사람을 꼽으라한다면 플라톤과 칸트는 꼭 들어간다고 했다. 사실 그러하다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으니 말이다.
그런 입지를 지니고 있는 칸트에 대해 많은 동영상과 순수이성비판의 해제와 유작의 해제를 여러번 들여다보고 유작을 탐독해보았다. 그 이유는 칸트의 저작 자체가 독해가 쉽지않기 때문이다.
칸트의 유작1.1은 조각글이며. 메모이며. 비방록이라 할 수 있다. 어떤 한 사람을 존경하고 깊은 학문적 탐구의 목표가 있다면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싶은 것은 당연하다. 칸트 유작은 바로 그러한 견지에서 나름의 존재근거가 존재하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노년의 생각과 발자취를 바라보며 공감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특히 그의 초월철학을 구성하는 신, 세계. 인간에 대해 계속적인 성찰 그리고 이에 대한 외연의 확대등은 많은 것을 생각게한다.
위대한 사상가의 마지막 원숙할때의 모습에 대해서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의 첫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겉표지1면에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마비상태 내 나이80 76세 그리고 77세 이후로는 마비상태. 지속적인 불면증“
육체의 한계에 다다를 때 겪는 육체의 고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의 묶음지에는 초월철학의 3개의 요소인 신,세계.인간에대한 계속적인 성찰을 이어가고 있다.
본인에게 가장 깊게 와닿은 것은 이 유작의 구성페이지마다 다른 언급보다도 그의 신에 관한 언급이 그저 그런 언급으로 보여지지않았다. 대철학자로서 이성의 한계를 인지한 자로서 이제는 죽음이라는 인식의 종말을 맞이할자로서 그의 태도에 관심이 가서이다.
책을 받은지 2주일을 씨름하며 이 유작을 읽은 경험은 잊혀지지않을 것이다.
철학전공자는 아니지만 지난 십년간 철학에 대해 입문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내린 결론은 “ 다시 칸트다 ” 칸트 철학의 위대함은 내 개인에게 인간이 스스로 의심하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였던 이성의 한계와 인간의 편견과 선입관이 얼마나 크고 페혜가 막심한지를 일깨워주웠고, 오늘 이시대가 물질문명은 번창하였으나 정신문명은 야만적인 것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실존적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다시금 필요한 것은 계몽이라 생각되었다. 그 계몽을 통해서 인간은 비로서 겸손해질수 있으며,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이 시대에 인간성의 회복과 공동체의 회복이 가능해지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칸트의 유작을 통해서 다시금 자신에게 말한다. 배부른 돼지가 되지말고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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