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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폭력, 제목과 책 소개를 보았을 때 우선 충격을 받았다. 지금껏 여러 번역 담론을 제법 읽어 왔다고 생각하는데, 번역과 폭력을 연결지어 이야기하는 책은 보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동안 번역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해 왔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애초에 서로 다른 두 언어는 완전히 등가되지 못하기에 필연적으로 도착어에 맞춰 출발어를 변형시키게 된다. 번역문을 보고 바로 원문이 떠오른다면 부족한 번역이며, 한국어 답지 못한 번역이라고 우리는 그동안 비판해왔다. 이 말은 즉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가는 자연스레 원문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이다. 자연히 폭력을 시행하면서도 우리는 왜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까. 번역이라는 일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실체는 오직 번역업에 종사하는 당사자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번역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번역과 폭력》에서 저자는 이러한 기존의 긍정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부정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번역을 바라보고 분석하였다. 이 책은 저자 외에도 다양한 이들의 견해를 인용하여 번역의 여러 특성을 하나씩 짚어 본 뒤, 번역이란 어떻게 행해져야 하며 번역가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찾아가도록 도움을 준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딥러닝?AI 번역에서 출발하여 어째서 번역이 논쟁이 되는지, 왜 번역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지를 짚어준다. 이후 역사 속에서 번역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살펴보고, 번역의 저항성/반목성/폭력성/정확성 등 다각도에서 번역을 낱낱이 분석한다. 번역은 필연적으로 폭력이 되므로 우리는 모든 걸 이해하거나 정확히 옮겨낼 수 없겠지만, 번역의 폭력성에 대한 이해 유무에 따라 번역가의 번역에는 큰 차이가 발생할 것임은 자명하다. 번역가에게 이러한 경종을 울려주며 이 책은 마무리된다. 기존에도 직역이란 불가하며 번역에는 번역가의 의도적인 개입이 필수다고 생각해 왔기에 이 책의 내용에 공감이 많이 갔던 것 같다. 읽으며 원문을 최대한 파괴하지 않고 전달하려고 노력한 번역가님의 배려가 느껴졌다. 처음 받아 대충 훑어보면서 수많은 각주에 깜짝 놀랐는데 읽다 보니 왜 이렇게 각주를 많이 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갔다. 항상 마감에 쫓기며 번역을 하다보니 깜빡 잊고 있었던 번역의 본질을 다시 살펴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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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폭력 티펜사모요지음 류재화옮김 번역은 어떻게 반역을 넘어 폭력이 되는가.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홀로, 자기 언어로 각자 여행하게 될 것이다. 2018년 10월, 800쪽이 넘는 과학책이 처음으로 딥엘프로그램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프랑스문학번역진흥협회인 아틀라스ATLAS는 최근10년에 걸쳐 구글 트랜슬레이트와 딥엘을 비교해보았고, 도스토옙스키에서 샐린저에 이르는 고전 문학 텍스트를 번역하면서 그 기술을 향상하려고 노력했다. 첫번째, 2016년까지 사용된 자동번역:구문 기반 기계 번역의 통계적방법. 두번째, 컴퓨터 내장 번역 도구들TAO이용, 알고리즘이 스스로 이용할 번역 규칙을 결정. 세계에서 번역해야 할 언어쌍이 6000개나 된다는 것. 더욱이 각자 이어폰 하나만 귀에 꽂으면 외국인에게 접근할 수 있다. 투명성은 폭력이다. 이제 번역은 모호하고 복잡한 것이며, 최선이자 최악이 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1장 번역과 민주적 합의 "할머니를 프랑스어로 뭐라 말하죠?" "프랑스어로?할머니" _외젠 이오네스코 이론적 담론이건 제도적 담론이건, 프랑스어로 쓰였건 영어로 쓰였건 혹은 다른 모든 언어로 쓰였건, 번역에 관한 현대의 모든 담론은 행동의 긍정성을 지지한다. 번역을 언어로 보는 개념은 움베르코 에코의 도식"유럽의 언어, 그것은 번역"을 그 선례로 삼고 있는데, 그런데 번역은 하나의 언어가 아니다. 여러 언어간의 '작용'이다. 4장 이중의 폭력성 번역본에 불성실한 원본이라면 누가 그 원본을 알아보겠는가? _프랑수아 보클뤼즈 p.95 번역 행위 자체에 내재한 폭력(번역할 텍스트, 번역자, 번역된 텍스트의 언어 등 여러 층위로)은 물론, 이미 일어났거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폭력 상황을 번역이 또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폭력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통역 실수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전쟁 자체가 잘못된 번역으로 발발하기도 한다! EMS 공문의 유명한 일화 중에는 한 외교적 사건이 "Adjutant" -독일어로는 참모본부장, 프랑스어로는 부사관-을 잘못 번역해 생긴 사건이다. 1945년7월 미국인들은 일본 총리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 총리는 "모쿠사츠"일본어로 이 표현은 "노 코멘트!"라는 뜻으로 양면적이고 다의적인 의미인데, 이 단어를 미국인 번역자가 "무시로써 대함"이라는 의미를 실어 최후의 거부 의사로 전달하였다. 《언어에 폭력성이 있는게 사실이지만, 언어는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우선 분리되어 있다. 의미의 복수성은 하나의 풍부한 자산이 되기 전의 갈등이라는 샘물이다. 번역은 죽은 자들을, 죽은 모든 것을 송환하기 위해 바로 이런 폭력과 함께하는 일이다. 모든 만남에 내재되어 있는 갈등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며, 번역은 이런 세계의 폭력성을, 그리고 공생하는 삶의 폭력성을 책임진다.》 번역이 폭력이 된다.라는 말의 의미는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단순히 떠오르는 의미는 오역인데, 전쟁시 통역은 전쟁과 평화 양극단의 선택을 좌지우지 하게 되는구나. AI 기술의 발달로 모든언어가 번역기를 통해 100프로 번역이 된다면, 참 편히라겠다라는 생각을 하지만...말의 뉘앙스나 자기만의 색깔의 언어는 못 보는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