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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표 소설가 오성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 부산 영도 출신인 나에게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늘 반갑다.
자연과 인간, 바다와 항구, 아버지와 아들, 자유와 굴레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이야기. 배우자를 잃고, 배를 잃고, 내 몸마저 잃어야 할 처지에 놓인 아버지가 어느 날 사라진다. 아들이었다가 어느덧 아빠가 되어버린 나로서, 작중 아들과 아빠에 수시로 감정을 투여하며 쉬지 않고 읽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의 아버지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 걸까.
"규보야. 목줄을 끊고 달아나야 대초원이 보이지. 묶여 있으면 가축이나 다를 바 없다." (28쪽)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고전이 있다. 『라스팔마스는 없다』는 21세기 한국판 『노인과 바다』라고 평하면 과장일까? 판단하기는 독자의 몫이다. 여하튼 제목에 들어간 고유명사 '라스팔마스'는 스페인의 항구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심선장 심만호의 아버지, 그러니까 규보의 할아버지가 갔던 항구. 할아버지를 이어 심만호도 배에 오른다. 외항선 선원이었던 그는, 배우자가 지병으로 세상을 뜨자 아들 규보를 돌보기 위해 귀국하여 내항선 선장이 된다. 무성호라는 유류선을 몰며 늙어간다. 규보도 한때 뱃일을 생각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편의점을 운영한다.
그러던 중, 심선장의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치매가 더 진행되기 전에 아버지를 배에서 내리게 해야 한다. 생각만 하던 찰나, 갑자기 심선장이 사라진다. 아버지를 찾아야 하는 규보. 실종된 아버지를 찾으려고 하니, 막상 아들은 아버지의 삶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과 직면한다.
아버지 행방을 좇다, 심선장이 문학 수업에 나갔고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다. 아버지가 쓴 소설도 입수하게 된다. 이렇듯 『라스팔마스는 없다』는 액자식 구조로 전개되는데, 규보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면 심선장이 쓴 소설은 다소 몽환적이다. 뱃일이, 바다가 자유라고 말했던 심선장이지만 그가 쓴 소설은 자유라기보다는 구속을 표현했다.
소설에서 묻고 있듯, 배에게 집은 항구일까, 바다일까? 인간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라는 문학의 고전적인 주제를 다루는 『라스팔마스는 없다』는 이 시대 대한민국에 드문 아버지에 관한, 바다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내포한 작품이다. 문학이란 자고로, 상투성과의 싸움이니까. 부산 대표 소설가 오성은의 첫 장편소설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덧. 영도 전차 종점과 영도 도서관에 관한 묘사가 인상 깊었다. 나도 태어나기는 그 근방 어디라고 들었거든. 규보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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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에는 심 선장과 규보가 환자와 보호자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자 문득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살면서 이보다 잘못된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것만 같았다. (12쪽)
생명의 빛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맹목적이었다. (22쪽)
"규보야. 저 배는 항구가 집일까, 바다가 제 집일까." "항구죠. 항구로 와서 기름도 채우고 해야 안 되겠습니까." 규보는 넉살 좋은 사람처럼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심 선장의 기분을 달래주고 싶었다. 무덤덤한 심 선장의 얼굴에서 규보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날 밤, 심 선장은 무성호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해무가 섬을 점령한 9월의 그믐이었다. (47쪽)
시대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도서관이 설립된 건 전차가 멈춘 지 30여 년이 더 지난 20세기 말이었다. 책은 시대를 시절로 바꾸는 가능성이라고, 섬에 사는 누군가가 말했다. 섬을 위한 최선의 일이라고도. (49쪽)
모르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심 선장에 대해 아는 게 대체 무엇인지를 물어본다면 규보는 아무런 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100쪽)
바다가 드넓고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발을 딛고 선 곳은 한정적이잖아요. 그 좁은 배에서 몇십 명의 선원들이 구역을 나눠 살고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을 감수하면서 힘겹게 적응해왔던 뱃일을 쉽게 그만둘 수 있을까요. 세상에 무른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방식은 애초부터 없는 겁니다. 공짜란 없습니다. 팔을 내어줬으니, 다리를 달라는 식입니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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