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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참신함이 눈길을 끈다. 가까운 지인들과 모여 최근 읽은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그럼 작가가 이긴거네'라는 말에 "원고"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원고지의 '원고'로 작가가 경험하는 글쓰기 고단함을 부연했고, 또 누군가는 작가의 이력을 들어 '피고 vs 원고'라는 법률 용어를 들어 설명했다. 이처럼 제목 하나에도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으니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각기 얼마나 다를까.
<참고로 제목의 '원고'는 2021년 한 판사가 작성한 판결문의 일부다. '쉬운 판결문'으로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것으로 기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를 원고가 이해하기 쉽게 바꾼 것이다.>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는 30년 경력의 변호사인 작가가 경험하고 바라본 세상에 대한 생각을 담담하면서도 강건하게 담아내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 좋은 삶에 대한 생각, 법과 정의에 대한 소회 등을 대화하듯 풀어냈다. 책을 읽는 동안 사회를 발칵 뒤집었지만 금새 잊혀진 사건을 다시 떠올려보기도 하고, 소리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는 생각에 잠시 빠져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담긴 내용으로 기억되고 간직되는 것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은 작가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다. 어쩜 지금까지 쌓아온 삶의 시간에 기대 좀더 편하고, 쉽게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텐데 여전히 그 시간의 무게를 존중하며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한 해의 시작과 끝에서 새롭게 주어지는 1년이라는 시간은 반갑고 설레이기도 하지만 흘러간 시간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시간의 한 시점에 머무리지 말고 더 넓게 삶을 조망하라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 거칠고 날 선 정의
현대 사회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 말이 "법대로 해!"이다. '법대로 해'라는 말에는 '공정하게 판단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에서 '공정성' 혹은 '정의'만이 올바른 답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기계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인간'을 꿈꾸면서 가장 자유롭고 주체적일 수 있는 순간 '법대로..'를 외치는 모순된 현 시대의 우리에게 적어도 한 번, 이런 것도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고 말하는 듯 하다. "법률은 사소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라고 했던 『라틴어 인생 문장(한동일 저)』에서 읽은 <로마법 법률 격언>과 같은 맥락이라 더욱 설득력 있다. 공정한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의 공정성 또한 법이 지켜야 할 덕목이 아닐까. 법률적 지식을 따지기 전에 법의 효용성을 먼저 생각한다면 한결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법조인이 판을 치는 작금의 시대에 법사회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법조인의 덕목을 제시한 것도 마음에 와닿는다.
그런 법조인이 많아지길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도 기대해 본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최소한의 적용으로 큰 다툼없이 유지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법의 역할일게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그리운 시대, 법문에 박혀 죽어있는 법이 아닌 사람을 공감하고 살리는 법이 필요한 시대에 조금은 따뜻한 법의 틈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