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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방황 속에서 내뱉어진 간절한 목소리들" 이승우의 <목소리들> 를 읽고
"집이, 없었다. 아니, 집은 있었다. 그러나 집이 있다고 할 수 없었다. "
-이승우 작가의 3년 만의 신작 소설집 출간- 말로 하지 않아도, 눈빛과 표정 그리고 행동으로도 전해지는 목소리가 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차마 말로 할 순 없어도 느껴지는 아픔이 있다. 우리는 그런 간절한 목소리들을 이승우 작가의 『목소리들』을 통해 듣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인 '목소리들'에서 알 수 있듯이 여덟 편의 이야기들 속에서 '목소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첫 번째 이야기인 <소화전의 벨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에서는 소화전의 물을 퍼다가 아스팔트 위에 쏟아부으며 반복적인 솔질을 하는 한 여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 저항하는 한 여인의 과감한 목소리를 그녀의 행동을 통해 듣는다. 하지만, 그 남자를 제외한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듣지 못하기에 그녀의 행동을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듣지 못하기에 그녀의 행동의 이유에 대해 무지하다."당신들은 저분이 무얼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거지요.그렇지만 무지가 당신들의 무례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신들이 모르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니까요. 무지가 당신들을 무례하게 행동하게 한 거라면 무지야말로 나쁘지요. 무례보다 나쁘지요." -p. 18 이어지는 작품인 <공가 空家>에서는 한 여성과 남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집이 있지만, 집을 빼앗긴 그래서 집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한 여자와 오랜 방황 끝에 돌아왔지만 집이 사라지고 '공가'가 된 집을 마주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집'이란 어떤 공간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자신의 집이지만, 시댁 식구들에 의해 집을 빼앗긴 여자와 새 아버지의 학대에 못 이겨 오랫동안 집을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지만, 이미 공가가 되어버린 집을 발견한 한 남자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을까. 그들이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한 내면의 절실함을 담은 '목소리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안식처인 집까지 빼앗긴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이 '공가' 였다는 것이, 그 곳에서나마 안식과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안타깝기도 하다. 집이, 없었다. 아니 집은 있었다. 그러나 집이 있다고 할 수 없었다. -p. 44 네, 사람이 사는 곳처럼 만들려고 했어요. 공가에 뭔가를 채우는 거요. 물건도 물건이지만, 사람이 살면 공가가 아니잖아요. 사람이 없으면 빈집이 되잖아요. 물건이 채워져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그게 빈집이지 뭐예요. 그녀에 의해서 공가가 채워진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던 게 맞아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녀가 집에 오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어요. ---p. 73, 「공가空家」중에서 2021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마음의 부력>에서는 형을 잃은 아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을 먼저 떠난 형과 남겨진 동생인 나, 그리고 먼저 떠난 아들을 잊지 못하고 통화할 때마다 아들의 목소리를 헷갈리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위기에 처한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죽기 전 동생에게 자꾸 보잘것없어 면목이 없다고 말하던 죄책감과 미안함에 힘들어하던 형과 돈을 빌려 달라던 아들에게 돈을 못 빌려줘서 아들이 죽어서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평생 한으로 남은 어머니를 보며 화자인 동생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회한과 죄책감에 가득한 행동을 보며 우리는 어머니의 들리진 않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간절하고 절절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상실감과 슬픔은 회한과 죄책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상실감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더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사랑의 대상인 야곱이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대해서는 제법 깊이 생각하면서도 그 사랑의 주체인 리브가가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p. 117 하지만, 사람이 말로만 말을 해? 말보다 더 크게 말하는 게 몸이잖아. 눈빛, 뒷모습, 옅게 내쉬는 한숨, 그런 거, 그런 게 다 말이잖아. -p. 188 이 책 『목소리들』 속에 수록된 여덟 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목소리, 전하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 전하고 싶었지만, 차마 전하지 못한 목소리들을 듣게 된다. 가족을 잃거나 가족 관계에 균열이 생겨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들려지지 않은 목소리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안식처를 잃고 떠도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간절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탄식 없이 슬퍼하고 변명 없이 애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이해받으려는 간절함'이 아니라 '간절함을 이해하는' 글의 저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 240, <작가의 말> 중에서 아울러 이 책 『목소리들』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성찰해 온 이승우 작가의 모습도 만나게 된다. 다양하지만 하나의 간절함을 담은 목소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허무, 방황을 보게 되며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게 된다. 기회가 된다면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
| 헤어나올 수 없다. 이번 책도 그가 완벽히 조립한 문장으로 가득 찼다. 여러 스타일의 소설가들 중에서 이승우라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진 소설가들은 드물다. 이승우는 현재 한국소설에서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성경이라는 텍스트에서 가져와 자기의 소설을 창조하는 것은 소설가의 창조세계일 것이다. 이승우의 소설이 매년 나온다면 애독자들에게 명절같은 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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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사이렌이 울릴 때' 이승우님 올해 마지막 신간은 2018년~2022년 사이 발표했던 단편들 모음집이다. 작고 가벼운 외형이 마음에 쏙 든다. 내용이야 말해 뭐해, 이승우인데. 단편들끼리 연작인 듯 읽히는 소설들이라 앞서 읽은 이야기 떠올리며 이렇게 저렇게 연결 지으며 읽는 맛이 좋았다.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진은영 시인의 '사실'의 시구를 인용했는데 첫번째 단편 '소화전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와 잘 어울린다. 노래가 여기저기 떠돌듯 너무도 많은 죽음이 억울하고 황망히 일어난다. 그 사람이 꼭 죽어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 꼭 그 사람이어야 했을까. 여자가 경찰의 저지에도 막무가내로 소화전 밸브를 열어 도로를 닦는 이유, 그 간절한 마음을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공가'와 '귀가'는 재개발 바람에 폐가가 된 옛집을 찾은 남자와 우연히 그집에 들어가 곤한 잠을 자는 여자의 이야기라 연작처럼 읽었다. 버려진 집과 골목을 깨끗이 청소하는 남자에게 집은 어머니이자 고향이자 살아갈 힘이 된다. 집을 나와 떠돌던 여자에게는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고. "애써도 안 되는 일이 있더라." 그 말을 언제 들었을까. 언젠가 들은 게 맞기는 한 걸까.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떠올랐을까. 서영수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물 위의 잠' '마음의 부력'과 '물 위의 잠'도 인물들이 겹쳐 연작인 듯 아닌 듯 읽었다. 나이 드는 건 안 무서우나 뇌졸중, 치매 등 뇌질환은 무섭다. 먼저 떠난 큰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가슴 아팠다. 과거로 돌아간 어머니의 뇌는 첫째에게 돈을 해줘야겠다며 둘째에게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한다. 빌려준 적이 없는 돈, 죽은 큰아들. . . 어머니의 시간은 어디를 헤매고 있는가. 양가 어머니 생각에 유난히 착잡했던 단편들이다. 잘 이겨내기에 끄떡없는 줄 알았다.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어머니의 화초들과 종교가 어머니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고,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이제 알겠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상실감과 슬픔만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화초와 종교가 상실감과 슬픔을 너끈히 이기게 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느껴온 것처럼 어머니가 수시로 느껴왔을,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느끼게 될 깊은 회한과 죄책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 했다. 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묽어지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과 함께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상실감과 슬픔은 특정 사건에 대한 자각적 반응이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무자각적 반응이어서 통제하기가 훨씬 까다롭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상실감과 슬픔은 회한과 죄책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상실감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더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음의 부력' 시간만 무심히 흐르는 게 아니다. 사람도 마음도 무심히 스쳐간다.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ㄴㅏ 자신에게도 무심해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내 마음의 부력은 어느 정도인지 들여다보지 않고 스치며 안다고 착각한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하고 달라지고 심지어 사라지는데 너무 많은 것들을 모호하게 내버려둔 채 지나친다. 착각과 오해만 쌓인다. 사실과 진실은 쉽게 은폐되고 왜곡된다. 그때의 준호가 꿈에 나와. 준호가 밤중에 캄캄한 길을 혼자 걸어가. 근데 그 뒤에, 아니, 윈가, 모르겠어. 암튼 준호를 지켜보는 눈이 있어. 그 눈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동요가 없는 고요한 눈빛이야.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섬뜩해. 무신경하고 무자비해. 차가워. 얼마나 차가운지 대기가 얼어버릴 것 같아. -'목소리들' 미안하다고 하면 될 것을, 그게 그렇게 어려워 마음에 돌덩이를 매달고들 산다. 미안하다는 말, 내가 무심했다는 말, 좀더 다정해지고 세심해지겠다는 다짐이 부자되겠다는, 운동하겠다는 다짐보다 많은 한해가 되길 바라본다. 유한한 삶을 밝히는 혜안이 생기길, 그리고 지금 여기의 내 삶에 바로 접목되길. 그러니까 아마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탄식 없이 슬퍼하 . 변명 없이 애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이해받으려 는 간절함'이 아니라 '간절함을 이해하는' 글의 저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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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님의 목소리들을 읽었습니다 이제는 이승우 작가님이라면 책 정보를 더 찾아보지도 않고 신간을 바로 구매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책도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후회'나 '죄책감' 같은 감정의 모음들이더라구요 이승우 작가님 특유의 문체로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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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귀결되는 단편모음집입니다. 짧은 호흡으로 마치는 소설들은 아쉽기도, 뒷이야기가 궁금하기도, 여운을 남겨주기도하는데요. 들었어야 했는 목소리 듣지말았어야 했는 목소리 혹은.. 냈었어야 했는 목소리들을 입니다. 목소리, 죄책감, 후회...에 대해 생각해보게됩니다. *그런데 유사한 두편은 의문이 좀 생깁니다.. |
![]() [목소리들] p.188 사람이 말로만 말을 해? 말보다 더 크게 말하는 게 몸이잖아. 눈빛, 뒷모습, 옅게 내쉬는 한숨. 그런 거. 그런 게 다 말이잖아. 너무나 많은 목소리들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너무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흘려보냄이 나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사랑의 목소리까지도.. [마음의 부력] p.105 한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다른 누군가가 사랑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사랑이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은 역설이다. 반복되는 목소리들 공가(空家)에 찾아 온 그 형은, 귀가의 그 아들일 것도 같고, 마음의 부력의 형 성준은 목소리들의 형일 것도 같다. 그럼, 마음의 부력의 엄마는 목소리들의 엄마일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이.. 상처가.. 그래서 나오는 목소리가 다 다르면서도... 같다..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과거에도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목소리를 들어야겠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것보다. 지금 그 목소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 p.20 이분이 누구인지 아는 것과 이분이 하는 일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상관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았어야 했다] p.138 과거는 구부러져서 현재에 도착한다. 구부러진 과거는 펴지지 않는다. 펴기 위한 수고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현재가 수행하는 작업이어서 과거 그대로 돌려지지 않는다. 모든 회상은 현재에 의해, 현재를 위해 펴진 것, 현재가 개입된 것이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어떤 동기로든 누군가에 대해 하는 말은 모두 중상이라고 어떤 랍비는 말했다. 선의든 악의든 어떤 동기로든 과거에 대해 하는 일은 모두 훼손이다. (...) 어떤 현재도 과거를 위하지 않는다. 이승우 작가님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분이다. 그 목소리에서 철학을, 종교를, 사랑을, 사람을 이야기 한다. 내면의 목소리는 주로 그렇다.. 몸통 밖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그 진동이 커서 옆 사람에게까지 그 진동이 느껴진다. 그 목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진동이 심장으로 곧바로 간다. 그래서 그의 글은 심장으로 읽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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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창세기의 ‘소돔의 멸망’을 모티브로 성서적 사실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 그 속에서 이 시대에 해석되는 의미 등을 던져줬던 「소돔의 하룻밤」을 통해 이승우 작가를 깊이 있게 접하기 시작했다. 신학을 전공했던 작가답게 성서적인 모티브를 많이 인용하며 작품들을 전개하지만, 비단 성서적인 고민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불안,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성찰 등에 관한 내용들을 다뤘던 점이 꽤나 인상 깊었었다. 환갑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그 에너지도 대단하지만, 현실과 괴리된 채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생각과 의식을 일방적으로 던져주지 않아 더 가슴에 깊이 남는 듯 하다. 특히 이승우 작가는 변화하는 세상과 호흡하며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의 목소리와 욕망 등을 주목하며, 다양한 인간 관계를(때로는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가족 간의 관계까지도) 철저하게 다시 되짚어 보며 진정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한다. “그러니까 아마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탄식 없이 슬퍼하고 변명 없이 애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이해받으려는 간절함’이 아니라 ‘간절함을 이해하는’ 글의 저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中> 작가의 작품 속에 때로는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들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의도적으로 숨긴 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에 기반하고 있어, ‘간절함’을 이해하며 더 나아가 그들의 간절함이 희망과 또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기를 바라는 따뜻함이 함께 느껴지는 듯 하다. 8편의 작품들이 서로서로 연결된 듯 느껴지는 이번 작품집 『목소리들』 또한 이승우 작가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그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그 사람의 내면의 ‘간절함’을 이해하고, 또한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하기를 진심으로 전해주고 있다. 차량들이 수없이 지나가는 대로에 갑자기 등장한 여인이 소화전의 물을 도로로 쏟아내며 청소는 하는 전개로, 어찌보면 기괴하기도 하고,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 반복되는 다소 이상한(솔직히 일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도저히 이해못할) 행위로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여인을 경찰들은 단순히 교통 방해 요소로만 치부하며 현장에서 ‘치우기’에 급급한다. 하지만, 여인을 대변하는 듯한 ‘목소리’ 만으로 경찰을 제압하는 남자의 등장으로 우리는 그 여인이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행위에 드디어 주목하게 된다. “어떤 반복은 기원이고 부름입니다. 지우는 것이 아니고 새기는 것입니다.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불러내는 것입니다. (…) 낯선 사람이 문득 어디서 왜 오는지, 왜 와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문득 되살아나 현재를 덮치는 과거에 아무 뜻도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럴 때 현재가 어쩌겠어요?” <작품 中> 우리가 우리의 기준으로 쉽사리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들이 그 안에 담겨진 중요한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특히 보여지는 것들로만 판단하는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우리의 기준(보편적인 기준이라고 할지라도)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인지,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따뜻한 보금자리이자, 최후의 보루로서 언제라도 따스함과 안락함을 전해줘야 할 것 같은 집이 그 기능을 잃어버리고 두려움과 무서움의 대상으로 변했을 때 어떻게 내면이 변해가는 지를 보여주는 「공가(空家」. 가정 안에서 절대적인 권력과 힘을 가진 새아버지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경험한 주인공. 그는 절대적인 권력에 반항하는(그래봐야 말을 잘 듣지 않는 정도) 조그마한 행위라도 행한 후에는 소위 ‘기도방’이라는 곳에 갇혀 학대를 당해야 했다. 먹을 수도 없이, 잠을 잘 수도 없이, 그저 ‘들려지는’ 소리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채 절대자가 해제해 주는 순간까지 견뎌야 했던 그 마음. 그 마음의 상처가 깊게 다가온다. “아직 마지막은 아니라고 (…) 아직은 견디고 버틸 수 있다고 (…) 끝에 이르기 전까지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어지는 것이 끝이다.” <작품 中> 하지만,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돌아갈 수밖에 없을 때까지 모든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다 고갈한 후에 다시 돌아가는 장면은 ‘집’이 가지는, ‘집’이 우리에게 주는 상징적인, 정서적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돌아보지 않는 것, 반성하지 않는 것 추측하지 않는 것, 그동안의 그녀와 다른 그녀가 되는 것, 익숙한 자기에서 멀어지는 것, 예컨대 그냥 걷는 것 (…) 무작정 앞만 보고 걷는 것 (…) 우리는 자기 연민의 투사를 연대라고 느끼는 게 아닐까” <작품 中> 다음이 없다는 것, 곧 끝에 다다랐다는 것을 애써 부정하며, 자기 자신을 세뇌하던 그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 찾아 온 집에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거창한 시작이 아닌, 그저 ‘집’이 ‘집 다워질 수’ 있도록 하는, 空家가 아닌 ‘家’로서의 집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하는 그 순간이 바로,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 희망이자 목표일 것이다. 늘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그러한 집을 만든다는 것, 누군가에게 그런 집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소돔의 하룻밤’이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의 멸망을 모티브로 했다면, 그 이후 아브라함과 이사악을 거쳐 그 이후 야곱과 에사우에 얽힌 ‘은총의 가로챔’을 소재로 삼은 「마음의 부력」. 다른 문학수상집에서 읽었을 때는 확실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다시 읽게 된 시점에서는 야곱과 에사우의 엇갈린 운명, 그것을 계획하고 실행했지만 그 이후 모든 나날을 후회와 그리움으로 가득찼던 그들의 어머니 ‘레베카’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음을 확실히 느껴졌다. 글의 전개가 가져다주는 숨막힘과 긴장감, 그리고 읽는 내내 느꼈던 가슴 한 켠의 묵직함까지, 이번 소설집의 가장 백미를 꼽자면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선택하고 싶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늘 야곱과 에사우를 생각하며, 야곱의 비겁함과 부정당함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에사우의 무능함과 바보스러움을 탓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야곱의 마음과 에사우의 진짜 속마음과 그 모든 과정을 설계하고, 실행하게 하고, 그 이후의 책임을 감당하는 어머니 ‘레베카’의 마음까지 들여다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편애의 대상이 된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을 사람들은 간과한다. (…) 치우친 사랑에서 제외된 자만이 아니라 그 사랑의 선택을 받은 자 역시 비자발적이다. {…} 한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다른 누군가가 사랑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사랑이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은 역설이다.” <작품 中> 작품 속 화자가 형의 정당한 몫을 가로채거나, 억지로 술수를 부려 빼앗은 것은 아니지만, 늘 잘난 동생으로서, 못난 형을 둔, 늘 양보하고 늘 베풀어야 하고 늘 먼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했던 그 마음이 크게 다가온다. 그저 ‘너는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너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으니’, ‘너는 결혼도 하고 와이프도 잘 얻었으니’ 등등의 갖가지 사회적 타당성을 부여하며, 양보와 배려를 강요하고 있는 실제 생활 속에서도 무수히 일어나는 상황들. 그 상황들이 갑갑하면서도 나 또한 그래 왔었음을, 또한 내 형들도, 내 아버지도 그래 왔었음을 되짚어 생각해 본다. 강요된 희생 그 한 켠에 누구도 살펴보려 하지 않은 희생하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도 너무도 크게 느껴진다. “상실감과 슬픔은 회한과 죄책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상실감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더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의 대상인 야곱이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제법 깊이 생각하면서 그 사랑의 주체인 리브가(레베카)가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 中> 어느 순간부터 나와 죽은 형을 착각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로 인해 자꾸 자신에게 면목없어 하던 형의 과거 모습을 소환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상처도 돌아보게 되고, 진실되지 못한 과거의 목소리로 인해 현재의 가족과 가정이 다시 해체될 위기에 놓인 화자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마치 형인 듯, 어머니가 그토록 원하는 마음의 소리에 응답하기로, 그러면서 어머니도 과거의 자신에게, 그리고 과거의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눈치보지 않고 하시게 하기로 결정하는 그 결론이 아름답다. 50章에 걸친 방대한 분량의 창세기가 얘기하는 하느님께 죄를 짓게 되면, 자신이 죄와 잘못을 먼저 깨닫고, 고해하고, 그 이후 보속의 과정을 거치며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아가는 그 과정을 이 작품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해 사뭇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직장에서 한때 형, 동생 사이처럼 허물없이 편안하게 지내던 직장 후배가 곤란한 일을 겪게 되는 상황에서 한순간 내민 손길(전화)을 외면하고 그 이후 내면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전화를 받(지 않)았어야 했다」. 삭막했던 직장에서 일과 후 하나의 안식처가 되었던 후배(형배)와의 저녁 시간. 탁구도 같이 즐기고, 술잔도 기울이며 서로의 마음을 의지하던 중, 형배가 곤란한 상황에 겪게 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에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지기 전 날 그 후배는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오지만, 자신까지 불미스러운 상황을 겪게 될까 두려워(사실 나를 포함해 누구라도 그랬을 것 같다) 외면해야 했던 그 순간. 이후 후배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며 그 순간이 주인공에게는 삶에 있어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나는 내가 원해서 그런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자신이 없었을 뿐이지 않은가. 원하기를 원하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능동은 실은 수동의 가면이 아닌가. (…) 칭찬이든 비난이든 어떤 동기로든 누군가에 대해 하는 말은 모두 중상이라고 어떤 랍비는 말했다. 선의든 악의든 어떤 동기로든 과거에 대해 하는 일은 모두 훼손이다.” <작품 中> “형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는 책 속의 대사처럼, 인생을 살아가며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가장 의지하는, 마음을 터놓는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가장 큰 상처도 받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상처의 가해자였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 나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 사람의 편이 되어 준다는 것, 그러한 것의 어려움이 날로 날로 더 어렵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점점 더 내 것, 내 가족, 내 울타리에 대해 집착하며, 어떠한 손해나 피해도 보지 않으며, 설령 다른 누군가가 선량한 피해를 본다 할지라도, 내가 직접적인 가해 당사자는 아니기에 그렇게 넘겼던 순간들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이제라도 누군가에게 진정한 편이 되어줄 수 있기를, 그러한 지혜와 용기를 지닐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연작인 듯 앞선 작품 ‘공가(空家)’에서 학대를 견디다 못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끝끝내 집을 나가야만 했던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온 듯, 그리고 집이 집이게끔 하는 뭔가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귀가」. 동네 전체가 재개발 지구로 지정돼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나 버리고, 폐허가 된 집들 속에서 어느 순간 한 집에서는 사람의 체취가 느껴진다. 집이 집이게끔 하는 것은 바로 화려한 외경도, 멋들어진 인테리어도, 눈에 띄는 구조 설계도, 잘 꾸며진 조경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사람의 온기 그 자체일 것이다. 집이 가져다 주는 아늑함, 포근함, 그리고 세상 절망 끝에서도 돌아갈 무언가 마지막 ‘보루’와 같은 느낌은 바로 그곳에 나를 반겨줄 누군가가 있고, 누군가와의 추억들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리라.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한 채 그는 4월이 되면 여기 골목 담벼락도 예전처럼 담쟁이넝쿨이 볼만할 거라고 말했다. 커피 향이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작품 중> 막내 아들의 죽음 이후 엄마와 ‘나’가 토해 내는 안타까움과 자책의 독백들(목소리들)을 통해 속마음과 자신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는 「목소리들」. 자책과 상황을 돌리고 싶은, 그리고 언제나 누구라도 그렇듯 누군가를 탓하게 되고,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막내가 죽지는 않았을텐데’로 귀결되는 독백의 목소리들. 엄마와 작품 속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잠을 자는 자체가 ‘두려운’ 상태에 이르게 되는 극심한 자책의 감정 속에 지낸다. 그리고 막내의 죽음의 원인을, 그 상황의 탓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남은 또 다른 자식에게 쏟아붓는 어머니의 심정이 과하다 싶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본인이 못 견딜만큼, 죽어 마땅할 만큼 무너져 내릴 것이기에,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크게 자책하고 있음을 알기에 어쩔 수 없는 심정이 이해되기도 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까지는 아니더라도, 막내 아들의 죽음이 결국은 나의 탓이고, 내가 나를 학대하고 다른 자식에게 모질게 하는 이 모든 순간이,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아들을 앞세운 어미의 심정과 종교적 보속이 아니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거짓 구원을 용납하고 싶지 않으니까. 필사적으로 자기를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잖아. 그러기 위해 탓할 무엇이나 누구를 계속 꾸준히 밖에서 찾고 있는 거잖아.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고, 찾아질 리 없고, (…) 계속 끊임없이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서는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하니까.” <작품 中> 죽은 형과 남아 있는 자신을 착각하는 어머니를 통해 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형의 죽음에 강한 자책의 목소리로 자신을 괴롭히는 「물 위의 잠」. 앞선 작품 ‘마음의 부력’의 연작 느낌을 가져다 준 이 작품 역시 소위 사회적 기준의 안정적인 직장이나 가정을 꾸리지 못한 채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자유롭게 살다 간 형에 대한 부채 의식을 그리고 있다. 잘해주지 못한 마음에, 안정적인 삶을 꾸리게 해주지 못한 마음에 더욱 자책하며, 그러한 마음이 응어리져 살아 남은 아들과 죽은 아들의 목소리를 혼동하며 마음의 자책을 키우는 어머니. 그리고 마지막 형의 부탁의 전화를 차마 들어주지 못해 끝끝내 마음의 부채를 한가득 안으며 어머니와 함께 고통과 자책의 마음을 강하게 키워 가는 동생. 그 모든 마음들이, 그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이 책이 여러 작품들을 통해 전달해 주고 싶은 마음인 듯 하다. “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 있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형은 이 육지 저 육지에 닿을 때마다 여러 날 잠을 자지만, 고향에 이르기 전에는 진정으로 잠들지 못하는 오디세우스의 그 병사들처럼 어디서도 한순간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작품 中> 이상의 ‘날개’ 이어쓰기에 수록된 작품인 만큼 ‘날개’의 상당 부분을 차용해 전개하고 있는(날개의 마지막 부분을 겹쳐서 전개하고 있는) 「사이렌이 울릴 때 ? 박제가 된 천재를 위하여」. 일제 시대 경성역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나’가 삶의 의지를 잃은 채 주위를 배회하다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 다다르게 된다. 거기서 남루하기 그지 없는, 행색도 초라하고, 지저분하고, 양복도 거의 헤진 소위 ‘노숙인’ 행색의 한 남자와 마주치게 된다. 그 남자는 난간에 올라가 비상하려고 하지만 사이렌이 멈추자 바닥에 그대로 쓰러지고 마는데, ‘나’는 그 남자에게서 뭔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그 남자가 했던 것처럼 난간에 올라 ‘비상’할 준비를 하게 된다. 뭔가 부조리극 같기도 하고, 배경 자체도 일제 시대라 선뜻 공감이 되지는 않았지만 (특히 이상의 ‘날개’를 전혀 읽어보지 못해 더더욱 배경 지식도 없는 상태라) 그럼에도 ‘나’가 헤어진 연인과 그리고 백화점 옥상에서 만난 그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감정의 변화들을 겪어 가는 지에 대해 주목해 보게 된다. 내가 ‘나임을’, 나를 ‘나 일 수 있게’ 하는 것들, 그것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녀는 내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녀는 확고했고 전혀 양보할 의향이 없었다. 나는 알 수 있는 것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작품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