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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해에 불어닥칠 포퓰리즘
"선거의 해에 불어닥칠 포퓰리즘" 내용보기
1. 2024년은 선거의 해다. 전세계 40국, 40%, 40억명이 일제히 투표소로 향할 예정이다. 1월에는 대만 총통 선거, 3월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선, 4월에는 한국과 인도 총선, 그리고 11월에는 미국 대선까지 치뤄진다. 경제는 언제나 선거에서 핵심 변수였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등한 인플레이션, 이로 인한 실질 소득 감소, 고용 불안정, 양극화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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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년은 선거의 해다. 전세계 40국, 40%, 40억명이 일제히 투표소로 향할 예정이다. 1월에는 대만 총통 선거, 3월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선, 4월에는 한국과 인도 총선, 그리고 11월에는 미국 대선까지 치뤄진다. 경제는 언제나 선거에서 핵심 변수였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등한 인플레이션, 이로 인한 실질 소득 감소, 고용 불안정, 양극화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유권자들은 결국 ’경제를 살리겠다‘라는 수사에 크게 반응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이런 정치인과 정당들이 아주 많았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을 시작으로 세계는 이른바 ’극우 포퓰리즘‘ 광풍에 휩쓸렸다.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에서 또다른 트럼프가 등장했다. 2023년 12월 10일 대통령으로 당선된 하비에르 밀레이다. 그는 경제학자이며, 정치 신인이다. 기성 정치인만 정치를 하라는 법은 없다. 직업 정치인이라고 해서 꼭 훌륭한 정치를 하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경제학자 출신임에도 대표 공약으로 ”중앙은행 폐쇄, 페소화 폐지 후 달러화 도입“을 밀어붙인 진정성과 저의가 퍽 의심스럽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천문학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은 독일처럼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말그대로 일촉즉발이다. 어지간한 방법으론 해결책이 되지 않을 상황이라 국민들은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지라도 부여잡은 게 아닐지 모르겠다.

2. 문명과 야만은 대비적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몹시 상대적이라 시대에 따라 다르게 변해왔다는 게 이번 호 커버스토리의 중심 내용이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살펴보자. 하마스의 기습적인 테러 공격이 지난 10월에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잔혹하게 보복을 이어나가 전쟁의 여파가 전세계에 미치고 있다. 테러리즘이든 선전포고 이후 펼쳐진 공식적인 군사 작전이든 간에 결과만 놓고 보자면 결국 둘 다 학살이다. 민간인을 학살하면 안 된다는 국제법 조약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버렸다.

오슬로 협정에서 내놓았던 두 국가 체제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반발하는 결과라고 해도 수백 만이나 되는 사람들의 안정과 목숨을 담보로 해도 될지 의문이다. 전쟁은 결국 해를 넘겨 새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음 호 커버스토리에서도 결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다루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
YES마니아 : 골드 t****3 2024.0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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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과 문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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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가운데 하마수의 행보를 두고 "문명과 야만" 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대두되고 있다. 무엇이 야만이고 무엇이 문명인가. 그 경계를 설정하는 이는 누구이며, 경계는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왔는가. 이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2월호에서는 문명과 야만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이며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지적하며, 세계 각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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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가운데 하마수의 행보를 두고 "문명과 야만" 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대두되고 있다. 무엇이 야만이고 무엇이 문명인가. 그 경계를 설정하는 이는 누구이며, 경계는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왔는가. 이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2월호에서는 문명과 야만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이며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지적하며, 세계 각국에서 발생 중인 정체성 투쟁으로 인한 극우화를 조명한다. 더불어 문명이 자행한 '문명화된' 학살 이면의 양면성과 잔혹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계속되는 와중에 각국의 부르주아들은 마치 동맹이라도 맺듯 비슷한 위치를 보인다는 점이다. 사회 내 지배자로서의 동일한 위치를 가지고, 선동적 미디어를 소유한 이들은 앞다투어 이스라엘을 옹호하며, 실제로 그 동맹의 정점에 이스라엘이 위치해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언급되는 여러 혼란 속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다룬 꼭지가 흥미로웠다. 나와 다른 이들을 야만으로 낙인찍고 그들을 짓밟고 학살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과연 사유하지 않는 이들이 가진 절대악의 단면인가? 해당 꼭지를 쓴 저자는 외면과 보상으로 말미암은 평범한 사람들의 '깊은 사유' 가 전체주의적 악행의 원동력이었음을 지적하며,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 개념에 대한 보충을 제안한다. 2차 대전 당시 학살 피해의 당사자들이었던 유대인들은 이제 아이히만의 위치에서 가자 폭격의 장면을 '극장' 처럼 전유한다. 마치 현실의 고통이 아닌 극장의 재현인양 감상하면서.

 

현시대 뜨거운 감자와 같은 이슈를 통해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 대한 허구를 논하는 글을 읽고 싶다면, 이번 호를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n*****n 2023.12.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