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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을 접하면서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생각들을 체계화하고 관습화시킨다. 어느 순간 들어온 지식과 정보들은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채 내면화되어 우리의 의식체계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켜켜이 쌓인 의식체계는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게도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편견을 만들기도 한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책들이 있다. 좋은 양서를 고르는 안목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안목을 기르는 일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생기는 경험적 결과이기에 그 과정 속에서 생기는 편견의 파편들은 마치 북극의 빙하처럼 거대하게 굳어버린 고정관념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래서 세월의 나이테가 많이 쌓일수록 딱딱하게 굳어버린 관념과 생각들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동양 고전이 어렵고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 또한 그동안의 경험들이 만들어낸 선험적 결과임에는 틀림이 없다. 현대인들의 사고방식과 동떨어진 사상과 이념들, 낡은 관념과 체면치레를 중시 여기는 유교 방식등을 강요하며, 한글 위주의 서술 체계가 아닌 한문 위주의 난해하고 다소 현학적인 문자 해석으로 진입장벽을 높였던 것도 사실 동양고전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될 것이다. 좋은 책은 좋은 사람이 만든다. 북극의 빙하처럼 꽁꽁 얼어붙은 관념과 인식체계를 허물어버릴 만큼 신선한 어법과 꾸밈없는 생각들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책,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속에 스며드는 책, 수많은 사상과 생각들을 아무런 편견 없이 만나볼 수 있도록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주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 아닐까란 나름의 견해들을 풀어 놓는다. 에세이만 읽어왔던 내가 어렵게만 느껴졌던 동양고전을 에세이처럼 힐링하면서 읽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내가 느꼈던 신선한 감동과 힐링을 함께 나누고픈 좋은 책이 있어 이 자리를 빌려 소개하려 한다.
『치유의 언어-상권:논어와 함께 노자, 열자, 장자 읽기』, 최기재/도서출판 인간사랑, 2023년 12월 20일 이 책 『치유의 언어-상권』의 저자 최기재 작가는 어문 교육학 박사로 5.18 최초 희생자인 이세종 열사와 함께 하숙하며 전라고에서 동문수학했다. 계간『미래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저서로 『여행 그림자의 노래』, 『일리아스의 거의 모든 것』, 『고교생들의 그리스인 조르바 읽기』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온전한 자유를 추구하는 진정한 인문학은 현대인들의 삶을 치유한다. 공자의 다그치는 삶의 방식에 노장의 언어는 숨통을 트이게 한다. 치유의 언어, 은유와 상징의 언어가 노자와 열자와 장자에서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쉰다." (머리말 中)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차 전 서문에는 머리말과 일러두기로 전체적인 책의 내용들을 아우르고 있으며, 저작자의 철학과 사상을 깊이있게 알 수 있도록 저작 의도를 밝히고 있다. "군더더기가 없어야 해석은 씹는 맛이 나고, 그 맛은 풍부하면서도 순수하다." (일러두기 中)라며 당시 언어의 풍미를 즐기며 해석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의역(번역자의 생각이 가미된?)이 아닌 순수한 직역으로 이 책을 번역했음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1장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혼란한 시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제자백가 중 노자와 장자 그리고 공자에 대해 사마천과 한비자의 작품들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고, 이들의 중심사상인 도가와 유가를 이루는 시대적 배경과 함께 후대에 끼친 영향을 비롯해서 각각 이들에게 내린 평가들을 통해 노자, 장자, 공자를 심도있게 기술하고 있다. 2장은 노자에 대한 설명과 함께 노자의 『도덕경』을 상,하편으로 나뉘어 총 81장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3장은 위작 논란이 있는 열자의 책 중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총 8편의 내용들을 수록하고 있는 『열자』 와 함께 열자(열어구)의 생애와 중심사상과 함께 위아설(爲我雪)을 제창한 양주의 사상까지 자세하게 담고 있다. 각 장별로 수록된 저자의 해석과 감상, 필사하기와 <논어>와 빗댄 『도덕경』과 『논어』로 우리 삶의 균형찾기"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준다.
위대한 사상은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처방이다. 춘추전국시대(BC 770~BC 221)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였으며, 잦은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에서 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했다. 특히 제자백가 중 인(仁)과 의(義)를 강조한 공자의 유가사상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한 노자, 열자, 장자의 노장사상 그리고 개인의 삶과 생명을 존중하는 묵적의 겸애설(兼愛說)과 양주의 위아설(爲我說)이 백성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노자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나라인 소국과민(小國寡民)『도덕경 제80장』은 적은 백성과 작은 나라로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이상적인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대국주의를 지향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행복이 사라진 시대에 대한 노자의 비판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도가사상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은 문명에 대한 거부로 읽힌다. 전쟁을 거부하고 명예를 멀리하여 불로장생의 신선을 꿈꾸는 노자 철학의 중요한 원칙은 무위(無爲)이다. 즉 무슨 일이든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순리와 이치를 중요시 여긴 노자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상은 대국(大國)을 꿈꾸며 무자비하게 약소국들을 침략하여 백성들의 삶을 짓밟고 살생을 밥먹듯 즐기는 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노자의 생명존중 사상은 수많은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삶에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노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사회를 경계하고, 공자는 그 속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다.
도가사상은 춘추전국시대의 어려운 상황에서 민중들의 생존방식을 비유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노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글로 표현하는 방식인 역설로 "도(道)"를 표현했으며, 열자와 장자는 역설과 우의적인 글들 덕분에 문학작품으로 향유되고, 문학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역설은 표면상 모순의 형식을 띠는 것으로 불교와 도교의 경전이나 그밖에 인류의 경구에도 사용된다. 도가사상은 자본주의에 찌든 현대인들의 피폐해진 인간 본성을 되찾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노자는 도덕을 수련하였고, 그의 학문은 스스로 은거하여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힘썼다. 수양의 핵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음비우기"이다. 노자는 비움의 철학으로 허정(虛靜)을 말하고 있다. 고요하고 비어있다는 뜻으로 아무런 사심과 욕심이 없는 상태를 허정(虛靜)이라고 한다. 모든 생명은 순환하며 반복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자고이래 불변의 원칙을 일깨워주는 노자의 무위자연의 철학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주나라에서 오래 살던 노자는 나라가 쇠퇴해지자 주나라를 떠나려고 할 때 관령 윤희가 책을 지어 달라고 부탁을 해서 만들어진 책이 바로 오천여 자로 이루어진 『도덕경』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 노자는 우주생성의 자연법칙을 "도(道)라 불렀으며, 이것이 도가사상의 기원이 된다. 노자가 말하는 "도(道)"는 성질이나 모양을 가지지 않으며,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고, 항상 어디에나 있다. 『도덕경』에 반영된 노자 사상의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며, 인위적인 법률과 관습 등에 얽매이지 않고, 지고지순한 양심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집착하지 않는 삶, 기교 없이 과시하지 않으며, 물처럼 유하게 순리대로 사는 삶, 말을 아끼며 욕심은 비우되 사랑으로 채우며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도덕경』은 당시의 문명이나 문화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인류 최초의 문명 비평서이자 철학서이다.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요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 도(道)를 도(道)라 할 수 있으면 영원한 도(道)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으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p,73) (도덕경 상편, 도경(道經), 제1장) 첫 두 문장은 『도덕경』에서 가장 유명하다. 이 표현은 표면상 모순이지만 그 속에 깊은 진리를 담고 있는 역설적 표현이다. 도(道)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도(道)를 깨친 사람은 말이 없다. 언어로는 도(道)의 실체나 본질을 표현 할 수 없다. 상(常)은 불변의 도(道)를 말하며, 불변의 도(道)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上德不德(상덕부덕)하니 思以有德(사이유덕)이요 (상덕은 덕이라 하지 않아 덕이 있고) (도덕경 하편, 덕경(德經), 제38장) 덕(德)은 득(得)이다. 덕이란 도를 획득하는 것, 체득한 도를 말한다. 노자의 도는 인간을 초월한 자연의 도를 뜻하며, 유교의 도는 군자의 도, 인륜의 도, 인간의 도를 말한다. 상편(上篇)의 첫 장인, 제1장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하편(下篇) 덕경(德經)의 첫 장인 제38장은 상덕부덕(上德不德)으로 시작한다. 이를 합하여 도덕경(道德經)이라 한다. (p.193) 『도덕경』은 주석과 번역이 가장 많은 책으로 『도덕경』을 가장 먼저 풀이한 사람은 한비자이다. 한비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던 순자의 제자이다. "군주가 신하들에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야 신하를 부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비자는 『도덕경』을 해석하고 이용한다. 도(道)는 우주의 근본 원리, 덕(德)은 삶 속의 작용, 경(經)은 경전을 뜻한다. 곧 우주의 원리와 삶에 대한 경전인 것이다. 『도덕경』은 지명이나 인명 대신 아(我) 또는 오(吾)로 "나"라는 1인칭 대명사로 표현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시공(時空)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 보편적인 진리를 드러내는 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의 고전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명한 책은 유가의 기본 경전을 총칭한 사서오경(四書五經) 중 하나인 『논어』 가 아닐까 싶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동방예의지국으로서 유교를 나라의 지배질서로 삼고, 백성들까지도 유교의 영향으로 효를 중시하고, 체면을 중시 여겨왔다. 어쩌면 오늘날까지도 공자의 유가사상은 우리에게 규범을 가르치고, 강조하며 숨통을 조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 한문 시간마다 숱하게 배워왔던 공자의 『논어』는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장녀로서의 효를 강요당하고 자라난 나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가까이 하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400여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하나 하는 부담감도 사실 없지 않아 있었지만, 괜한 기우(杞虞)였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하듯이 공자의 『논어』는 노자의 『도덕경』을 더욱 빛내주는 서브메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동안 유가의 사상적 문화에 길들여져왔던 시류에 빛을 보지 못했던, 그래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노장(노자, 장자, 열자)의 사상들이 이 책을 통해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고, 이 책을 읽은 나는 드디어 광명을 찾은 것처럼 『논어』에서의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공자는 평생 벼슬을 위한 학문을 익혔으며,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은 공자를 자신들의 위신을 지켜주는 위대한 성인으로 떠받들고 있으며, "충서(忠恕)"로 그들의 공산주의 체제를 더욱더 확고히 다지려고 한다. 많은 나라들이 공자의 유가사상을 이용해서 나라의 지배질서를 유지하려고 했음을 파악한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돌아가 문명을 거부한 채 자유로운 신선의 삶을 살아갔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에게 동양의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이 책의 작가가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이 되었다. 이 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겨있는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듯 힐링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작가는 어문학 박사로서 출중한 필력으로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논하면서 서양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가져와 이야기를 빗댈 만큼 스토리텔링에도 천부적인 기질을 갖추고 있어서 책의 가치를 더욱 높였던 것 같다. 동양의 철학과 서양의 철학과 문화를 조화롭게 콜라보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책을 읽는 즐거움까지 선사해주고 있어서, 노자의 도(道)처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읽다보니 완독을 두 번씩이나 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느꼈던 감동과 깨달음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음을 노자의 『도덕경』은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의 하편(下篇)인 <장자 편>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절대 자유의 유토피아를 구가하는 인문학으로서 도가사상은 인류를 치유하며 동서양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진정한 인문학은 현대인의 삶을 치유한다. 개인의 삶은 처한 상황에 따라 언제나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형국일 수 있다. 이 책은 그 상황에서 지혜의 불빛이 될 것이다." (머리말 中에서)
"이 책은 도서출판 인간사랑으로부터 지원받아 솔직하게 쓴 개인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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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언어]는
‘논어와 함께 노자, 열자, 장자 읽기’라는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도가(道家)의 고전인 <도덕경(道德經)>1), <열자(列子)>, <장자(莊子)>를 번역, 소개하면서 유가(儒家)의 경전인 <논어(論語)>의 구절들과 견주어 보는 글이다. 사실 서점에 가면, 동양고전연구회가 옮긴 <논어>(민음사, 2016), 김학주가 옮긴 <논어>(서울대, 2017), 이기동이 옮긴 <논어강설>(성균관대, 2011), 성백효가 옮긴 <최신판 논어집주>(한국인문고전연구소, 2017), 김용옥이 옮긴 <노자: 길과 얻음>(서울문화사, 1998), 최진석이 옮긴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소나무, 2001), 임채우가 옮긴, <장담의 열자주>(한길사, 2022), 안동림이 옮긴 <장자>(현암사, 2010), 오강남이 옮긴 <장자>(현암사, 1999), 김학주가 옮긴 <장자>(연암서가, 2010) 등 <논어(論語)>, <도덕경(道德經)>, <열자(列子)>, <장자(莊子)>에 대한 다양한 해설서들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노자>의 첫 구절을 예를 들면, 도올 김용옥은 <노자: 길과 얻음>에서
道可道, 非常道 (길을 길이라 말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다) 名可名, 非常名. (이름을 이름지우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無名, 天地之始 (이름이 없는 것을 하늘과 땅의 처음이라 하고) 有名, 萬物之母. (이름이 있는 것을 온갖 것의 어미라 한다.) 故常無欲以觀其妙, (그러므로 늘 바램이 없으면 그 묘함을 보고,) 常有欲以觀其? (늘 바램이 있으면 그 가생이를 본다.) 此兩者, 同出而異名,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앎으로 나와서 이름을 달리했을 뿐이다.) 同謂之玄, (그 같음을 가믈타고 한다.) 玄之又玄, (가믈고 또 가믈토다!) 衆妙之門 (뭇 묘함이 모두 그 문에서 나오는도다!)2)
라고 순한글로 설명했고, 최진석은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에서
道可道, 非常道 (도(道)가 말해질 수 있으면 진정한 도(道)가 아니고) 名可名, 非常名. (이름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無, 名天地之始 (무(無)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有, 名萬物之母. (유(有)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故常無, 欲以觀其妙, (언제나 무(無)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常有, 欲以觀其? (언제나 유(有)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此兩者, 同出而異名,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同謂之玄, (같이 있다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玄之又玄, (현묘하고도 현묘하구나.) 衆妙之門 (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로다.)3)
라고 해석한다. 이 책의 저자는
道可道非常道 (도(道)를 도(道)라 할 수 있으면 영원한 도(道)가 아니다) 名可名非常名.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으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無名天地之始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이름하며,) 有名萬物之母. (유는 만물의 어머니를 이른다) 故常無欲以觀其妙 (그러므로 언제나 무는 그 오묘함을 보려 하고) 常有欲以觀其?. (언제나 유는 그 변방을 보려 한다) 此兩者 (이 두 가지는) 同出而異名 (함께 나왔으나 이름을 달리하니) 同謂之玄. (함께 일컬어 현묘하다고 한다.) 玄之又玄 (현묘하고 또 현묘하니) 衆妙之門. (모든 현묘의 문이다) [pp. 73~74]
라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굳이 이런 고전 해설서가 또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출간된 것에는 이 책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 책, <치유의 언어> 상권을 펼쳐보면, ‘1장 노자와 장자 그리고 공자’에서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비롯한 각종 서적에 드러난 이들의 삶과 사상의 특징을 소개하고 있다. ‘2장 노자 <도덕경> 읽기’에서는 해당 구절을 요약적으로 정리한 저자의 시(詩),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으로 구성된 <도덕경>의 본문[‘원문’과 ‘번역’], 해석과 감상, <도덕경>과 <논어> 구절 필사하기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3장 <열자> 읽기’는 해당 구절을 요약적으로 정리한 저자의 시(詩), 2장과 달리 원문이 빠진 ‘본문[번역]’, 해석과 감상, <열자>와 <논어> 구절 필사하기 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왜 <열자>의 원문을 생략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왕이면 <열자>도 원문이 첨가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장(老莊) 사상은 치유의 언어인가?
흔히 우리는 노장사상이라고 해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엮어 ‘도가’로 본다. 하지만 노자와 장자는 지향점의 차이가 다소 존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노자가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 관심이 있어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사회를 지향했다면, 장자는 개인의 삶에 얽힌 근심과 고난으로부터 탈피하여 ‘진인(眞人)이 되는 길’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노장사상을 추구한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실제 역사에서, 오늘날로 치면 청담(淸談)을 내세운 ‘관종(관심종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알기에
<도덕경>, <열자>, <장자>는 머리맡에 두고 아무 곳을 펼쳐도 마음의 평화를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책 속의 언어는 살아온 날들에서 부족함을 먼저 떠올리는 나를 온전한 나로 돌아가게 하는 치유의 주삿바늘이다. 지금, 여기에서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우리 딸과 아들이 삶에 지쳐 있을 때를 위한 책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위로 받지 못할 때 등을 토닥여주는 따뜻한 손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간혹 한쪽 세상에 치우친 삶을 사는 친구들에게 권할 마음의 여유를 담은 찻잔이다, 도와 덕, 생명 존중과 양생, 평화 사상, 여성, 장애인, 처세, 정치에 이르기까지 조화와 균형의 빛이 되는 책이다. 부드러움과 강함을 갖춘 언어, 하지 않아도 함이 있는 치유의 책이다. [p. 7]
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고전을 필사하든 말든, 최소한 비유와 상징이 풍부한 옛 고전을 한 번 되새겨볼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권에서 소개될 우화(寓話) 가득한 <장자>는 그런 취지에 한층 더 어울릴 것이라 기대한다. 1) <도덕경(道德經)>이라는 명칭은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기의 왕필(王弼)이 저술한 <노자주(老子注)>에서 “道可道~”로 시작되는 ‘도경(道經)’과 “上德不德~”로 시작하는 ‘덕경(德經)’의 순서로 편집한 것에서 유래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전한(前漢) 성립 전후에 쓰인 것으로 판명된 백서본(帛書本)에서는 반대로 <덕편(德篇)>과 <도편(道編)>의 순서로 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덕경>이 적합한 명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노자(老子)>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2) 김용옥, <노자: 길과 얻음>, (통나무, 1990), p. 13 3)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소나무, 2001), 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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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함께 노자, 열자, 장자 읽기’라는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동양의 고전들을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유가의 경전인 <논어>의 구절들과 견주어 보는 내용이다. ‘오른손엔 논어, 왼손에는 노장으로 삶의 균형 찾기’라는 ‘머리말’의 제목을 통해서도, 저자의 관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본’의 위력이 막강하게 발휘되는 시대에, 저자는 동양의 고전들에서 찾은 구절들을 사회적 병리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저자는 이 책들을 ‘머리맡에 두고 아무 곳이나 펼쳐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리하여 ‘책 속의 언어는 살아온 날들에서 부족함을 먼저 떠올리는 나를 온전한 나로 돌아가게 하는 치유의 주삿바늘’로 규정하고 있다.
<도덕경>과 <열자>를 다룬 ‘상권’과 별도로, <장자>를 대상으로 한 ‘하권’을 구상하고 있으리라고 짐작된다. ‘온전한 자유를 추구하는 진정한 인문학은 현대인의 삶을 치유한다.’라고 전제하면서, 노장 계통의 문헌들에 나타나는 ‘은유와 상징의 언어’들이 그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돌아’오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전의 번역에 앞서 ‘노자와 장자 그리고 공자’라는 제목의 제1장을 통해서,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한 각종 서적에 형상화된 이들의 삶과 사상의 특징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동양의 대표적 인문학’으로서 도가(道家)와 유가(儒家)를 꼽고, 현재까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가 이념을 기준으로 도가로 평가되는 사상들을 비교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제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노자 <도덕경> 읽기’라는 제목으로, ‘도경(道經;상편)’과 ‘덕경(德經;하편)’으로 구성된 <도덕경>의 원문과 번역을 제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도덕경>을 번역문을 시작하기 전에, 앞부분에서 ‘신화와 역사 초기 인물들의 시대 위치’라는 제목으로 동양과 서양의 주요 인물들이 생존 혹은 탄생했던 시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자와 <도덕경>에 관한 개략적인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한 이후, 원문의 순서에 따라 원문과 번역문을 수록하였다. 특히 원문에 앞서 해당 구절을 요약적으로 정리하는 저자의 관점을 시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본문’ 과 ‘해석과 감상’ 그리고 ‘ 참고’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필사하기’라는 항목을 두어 <도덕경>의 구절 중 일부와 이와 관련된 <논어>의 원문과 해석을 제시하여, 독자들이 손으로 필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도덕경>과 <농어>로 우리 삶의 균형 찾기’라는 제목으로, 저자의 관점을 다시 한 번 밝히고 있다.
이처럼 <도덕경>의 번역이 제시된 이후, 제3장에서는 ‘<열자> 읽기’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8편이 전해지고 있는 <열자>는 여전히 ‘위작(僞作)’ 여부가 문제되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는 도가사상을 대표하는 문헌의 하나로 번역과 감상을 시도하고 있다. 역시 앞부분에는 ‘열자’라는 인물과 <열자>라는 문헌에 대해 개략적으로 정리하는 내용의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주요 본문 내용’이 저자의 관점을 요약한 시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원문이 빠진 ‘본문’의 해석에 이어 저자의 ‘해석과 감상’ 그리고 <열자> 혹은 <논어>의 구절이 포함된 ‘필사하기’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간혹 ‘<열자>와 <논어>로 우리 삶의 균형 찾기’라는 항목이 보이기는 하지만, <열자>에서는 번역문과 저자의 감상 내용이 위주로 제시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나로서는 <열자> 원문이 제시되지 않은 점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두 저서는 이미 독파한 적이 있었기에, 이 책을 통해 <도덕경>과 <열자>를 다시 읽을 수 있었다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차니)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바탕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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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언어-상권 논어와 함께 노자, 열자, 장자 읽기 최기재 인간사랑/2023.12.20. sanbaram
“공자는 성인을 지향한다. 공자의 언어는 우리에게 규범을 요구한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치유의 언어가 <도덕경>, <열자>, <장자>이다. <장자>속 ‘소요유’의 여유로움은 우리 삶에 휴식을 준다.(p.6)”고 <치유의 언어>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다. 또한 “공자의 언어는 바름을 숭상하고 노자, 열자, 장자의 언어는 자유를 구가한다. 공자의 충서(忠恕)와 노자의 무위(無爲)는 서로를 다듬는 숫돌이다. 공자는 나를 서게 하고 노자, 열자, 장자는 쉼 없이 달려온 나를 돌아보게 한다.(p.6)”고 도가와 유가를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치유의 언어-상권> 에서는 ‘제1장 노자와 장자 그리고 공자, 제2장 노자 <도덕경> 읽기, 제3장 <열자> 읽기’로 구성하여 우리에게 공자와 노자나 열자의 말을 비교하여 삶을 설명하고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읽을 적에는 원문과 더불어 그 해석을 읽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해석과 감상’을 위주로 읽으며, ‘도덕경>과 <논어>로 우리 삶의 균형 찾기’를 읽는다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된다. 저자 최기재는 어문 교육학 박사로 계간 <미래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저서로 <여행 그림자의 노래>, <일리아스의 거의 모든 것>, <고교생들의 그리스인 조르바 읽기>, <맛있게 읽는 독서 요리> 등이 있다.
“공자는 노자를 만나고 나서 용을 보았다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선비들은 공자를 받들어 벼슬을 하고, 벼슬 끈이 끊어지고 나서야 노자와 열자와 장자로 세속의 병을 치유하려 한다.(p.19)” 선비들은 고향에 돌아와 인위를 벗어 흰옷으로 갈아입고 신선이 되고자 노자를 우러르며 장자를 따른다. 양반들은 공자를 따르던 벼슬 시절을 되돌아보다 끝내 명산 심곡에서 양생법으로 신선이 되려는 것이 그들의 마음이었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자는 초나라 출신으로 주나라에서 도서관장을 지냈으며, 소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가서 종적이 묘연해졌다. 장자는 전국시대 송나라 사람으로 본명은 주(周)이다. 도교에서는 남화진인, 남화노선, 남화진경으로 부른다. 도가는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인간의 절대적인 자유를 옹호한다. 그러나 법가는 순자의 성악설을 바탕으로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다. 한비자가 유가와 묵가를 비판하며 실질을 주장하지만 도가의 무위를 통치의 사상으로 끌어들인 점은 이채롭다고 말한다.
“삶은 시대의 반영이니 사상을 보려면 배경으로 시간과 공간을 보아야 한다. 노자는 주나라가 멸망하니 떠나고, 열자는 구름을 타고 다니며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장자는 송나라가 혼란스러우니 관직이 무섭다.(p.53)” 제자백가이건 패자이건 각기 제 방식을 내세워 춘추시대, 전국시대의 혼란을 처방할 때, 노자와 열자와 장자는 억지가 없어야 생명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공자는 과거를 부여잡고 죽어가는 주왕실의 예법을 복원하려 장자에게 배우고 노자에게 묻는다. 그 물음으로 인간다운 세상을 꿈꾼다.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밝히려면 과거를 잘라내야 하는가, 과거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가! 이처럼 도가사상과 유가사상은 때론 다른 길을 걷지만 같은 몸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느 때는 노장이 어느 때는 공자가 삶의 중심을 이루지만, 그 중심에 사람이 있으니 공자는 인위로 노장은 무위의 방식으로 다만, 처방이 다를 뿐이라고 강조한다. <치유의 언어>에서는 <도덕경>의 원문과 그에 해당하는 <논어>의 원문을 제시하고, <열자>와 <논어>의 원문 해설과 그 문장의 뜻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시사하고 있는 점을 친절히 비교하여 소개한다. 우리는 같은 사안을 갖고 두 성인이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을 이해하면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여기 그 일부분을 소개한다.
<도경>과 <논어>의 견해 “노자는 우리가 아는 아름다움은 꾸밈이며 그 꾸밈은 추하다고 말한다. 공자는 바탕과 그 바탕을 꾸미는 무늬가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군자라고 말한다.(p.82)” 노자는 모든 꾸밈을 부정하는데 공자는 소인이 과실을 하면 그 과실을 덮기 위해 꾸민다며 그때의 꾸밈을 부정적으로 본다. 이처럼 노자와 공자는 견해가 다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가 같은 것들이다. *노자는 배를 채워주는 무위의 다스림을 말한다. 공자는 욕망하는 바를 얻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p.85) *노자는 비어 있음의 유용함을 말하고 공자는 비움을 거짓 채움으로 덮는 허세를 비판한다.(p.88) *노자와 공자 모두 말을 적게 하라, 신중히 하라고 말한다. 말을 적게 해야 중심을 지킬 수 있다. 이 중심은 군자의 중용과 맞닿아 있다.(p.91) *노자는 사사로움이 없어서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공자는 자신을 버려야 예로 돌아가고 어진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p.97) *노자는 물을 약하면서도 만물을 이롭게 하는 측면을 보고 있는데 반해 공자는 물이 주는 움직임을 보고 있다.(p.102) *노자는 공을 이루면 물러나라 말하고, 공자는 공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p.104) *노자는 없음, 텅 빔이 쓰임이라고 말하고, 공자는 있음의 쓰임을 말한다. 노자는 채워지지 않음을 말하고, 공자는 채워짐을 말한다.(p.110) *노자는 인의, 효도와 자애, 충신이 큰 도가 무너진 결과 등장했다고 말한다. 공자는 인을 강조하며 효제가 인의 근본이라 한다.(p.137) *노자는 배움이 근심을 부른다고 말하고, 공자는 배움이 기쁨을 준다고 말한다.(p.145)
<덕경>과 <논어>의 견해 “노자는 덕이 열매를 따른다고 하고, 공자는 덕이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노자는 덕이 도를 따른다고 말하고, 공자는 이웃이 덕과 함께한다고 한다.(p.195)” 노자는 꽃이 아니라 열매에 머문다고 말하고, 공자는 꽃이 피지 못할 수도 있고,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며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한다. 공자의 손자 자사가 쓴 <대학>은 덕이 근본이라 말한다. 이제 <덕경>과 <논어>의 새김이 어떻게 다른지 몇 개의 견해를 살펴본다. *노자는 강하고 굳센 사람은 제명에 죽지 못한다며 이를 가르침의 아버지로 삼는다고 말하고, 공자는 글과 행동과 충심과 믿음을 가르쳤다.(p.207) *노자는 학문을 하면 날로 더 보태려고 힘쓰고, 도를 닦으면 날로 더 덜어내려 힘쓴다고 말한다. 노자는 배워서 인위를 버리려하고, 공자는 배워서 인위로 이루려 한다.(p.224) *노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고 하며,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 말한다. *노자는 자애를 제일로 꼽고, 공자는 서(사랑)을 첫째로 꼽는다.(p.278) *노자는 하늘의 도는 성글지만 놓치지 않는다고 말하고,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말한다.(p.293)
<열자>와 <논어>의 견해 “<열자>는 현재 8편이 전해지고 있다. 제1편 천서, 제2편 황제, 제3편 주목왕, 제4편 중니, 제5편 탕문, 제6편 역명, 제7편 양주, 제8편 설부 등이다.(p.315)” <열자>의 지은이 성은 열(列), 이름은 어구(禦寇)라 한다. 열자는 열어구를 높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BC4세기 전국시대 정나라 사람으로 생몰 연대 등 자세한 기록이 없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열자는 비록 8편에 지나지 않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견해를 피력하고 있음을 남은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열자>에서는 공자를 <논어>속 공자보다 높이 평가한다. 이 글에서는 공자가 노장사상을 수용하여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서술함으로써 노장사상을 펼쳐 나간다.(p.350)”고 저자는 말한다. 그만큼 공자의 영향력이 컷거나 공자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를 통해 공자는 천하를 다스리고자 했다고 <논어>에 나오지만 시, 서, 예, 악이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열자>에서는 버릴 것도 없고 개혁할 것도 없다며 노자와 같은 경지에 다가감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몇 가지 고사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면 *열자에는 지음의 고사가 실려 있고, 논어에는 유익한 벗과 손해나는 벗을 이야기하고 있다.(p.370) *열자에서는 명궁이 되기까지를 언급하고, 공자는 활쏘기를 군자가 닦을 도라고 말한다.(p.373) *열자 에서는 관중과 포숙이 훌륭한 사귐 때문이 아니라 자기 능력에 합당하여 천거되었다고 말한다. <논어>에서는 관중의 어짐에 초점을 둔다.(p.383) *<열자>에서는 백이숙제에 대해 청렴과 정절이 착함을 그르쳤다고 말하고, <논어>에서는 백이숙제가 원한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말한다.(p.395) 이와 같이 열자와 공자의 견해가 다름을 저자는 두 문헌에 실려 있는 문장을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인간사랑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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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저머맺 목다본다 동양인문학의 모든 출발점, 노자, 열자와 논어로 삶의 균형 찾기 최기재 : 어문교육학박사. 518최초 희생자 이세종열서와 전라고에서 동문수학. 일리아스의 거의 모든 것/맛있게 읽는 독서 요리(공저) 등을 출간. 논어와 노장으로 삶의 균형 찾기 2023년10월1일 시립꽃심도서관에서 -독자는 직역으로 본문을 읽은후에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백지상태에서 글 자체에 정신을 모아야 한다 -도덕경은 왕필본. 열자는 장담의 열자주를 원본으로 삼았다. - 필사하기는 자신을 치유하는 시간이 될 것 “9쪽” 맺음말 없음 -차례- 노자와 장자 그리고 공자 노자 도덕경 읽기 열자 읽기 사마천이 존경한 상갓집 개. 사기세가 사기열전 속 공자 24쪽 동문에 어떤 사람이 서있는데 그 이마는 요임금과 같고 그 목은 고요와 같으며 그 어깨는 자산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허리아래는 우 임금보다 세 치가 모자라고 풀이 죽은 모습은 상갓집 개와 같았습니다. 31쪽 한비자 속의 노자 최상의 덕은 행함이 없고 행하지 않음이 없다 39쪽 생선을 구울 때 자주 뒤집지 말라 작은 질병에서 죽음이 온다 47쪽 논어의 시대적 배경 삶은 시대의 반영 53쪽 도가사상과 공자가 후대에 끼친 영향 싸우지 않고 공존하니 인문학이다 57쪽 노자의 도덕경은 철학서이며 문명비평서 공자는 백가쟁명의 중심인물. 도가 유가사상에 대한 주체적인 수용이 필요. 64쪽 노씨라서 노자인가 69쪽 제1장 영원한 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현묘한 경지 73쪽 데리다의 차연과 완결된 의미의 불가능성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논어 이인 자왈 조문도 석사가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노자와 공자 모두 도가 무엇인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공자처럼 열심히 노력하되 노자처럼 마음을 비우고 온전한 나로 살아야 할 것. 78쪽 통째로 필사하고 싶고 통째로 암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그 만큼의 시간이 내게 없는 고로 적당히 적당량을 리뷰에 적기로 타협합니다. 도덕경 속 말씀에 댓구가 되는 공자 말씀을 책을 따라 적어보는 멋진 시간을 2024년1월20일(토)에 갖고 있습니다. 이 아니 멋진가요. 위무위 즉무불치 무위로 하면 곧 다스릴 것이 없다 논어 요왈, 자왈, 군자 혜이불비 노이불원 욕이불탐 태이불교 위이불맹. 은혜를 베풀되 낭비하지 않고, 수고롭되 원망하지 않으며 욕망하되 탐스럽지 않고 넉넉하되 교만하지 않으며 위엄있되게 사납지 않다. 논어 선진, 자왈 과유불급 지나침은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 노자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고 하는 반면 공자는 욕심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는 정도이다. 공자는 열심히 노력하여 얻되 지나치지 말라고 한다. 85쪽 제8장 상선약수 물은 창조의 근원 생명의 근원 수선리먼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물은 만물을이롭게 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으며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논어 옹야, 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논어 자한, 자재천상왈 서자여사부 불사주야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다 노자 물을 약하면서도 만물을 이롭게 하는 측면. 물이 좋아하는 것. 공자 물이 주는 움직임. 물과 산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야기. 102쪽 제13장 내 몸을 사랑하라 그러면 천하를 맡길 만하다 잘 읽고 걸러야 하는 부분 * 자기 몸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총애받으면 치욕을 당할 수 있으니 이 둘은 같다. … 열자의 양주와 연관 있다 인도 바가바드기타 ‘오직 자아에서 기쁨을 얻고, 자아에 만족하며 오직 자아로 흡족한 사람은 해야 할 일이 없도다. 애위신위천하 약가탁천하 논어 위령공, 자왈 지사인인 무구생이해인 유살신이성인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 노자 생명사상 공자 충서사상 몸을 망치며 일하는 것은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119쪽 17장 훌륭한 지도자는 존재할 뿐 129쪽 20장 절학무우, 배움을 그만두면 근심이 없다 노자 학문 인위 학과 모의 대립상황 묘사. 이 글은 문학성이 뛰어난 글로 평가받는다 학이시습지 임즉효 취유도이정언 학이불사즉망 일지기소무 …많이 배웠다고 행복하지는 않음 146쪽 28장 상덕,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지 않는다 대제불할 168쪽 42장 도는 하나를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손지이익 손익지이손 노자 조화와 유약 공자 정성과 믿음을 내세운다 208쪽 52장 이목구비 칠규에 빠지지 않아야 몸에 재앙이 없다 견소왈명 수유왈강 불가소지이가대수야 소인불가대수이가소지야 인무원려 필유근우 난성대업 노자 감각의 문을 닫고 본질을 보라 공자 작은 것보다 큰 것을 보라 한다 235쪽 58장 나랏일이 지나치게 꼬꼼하면 숨 막힌다 60장 나라를 다스림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71장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첫째 81장 겨루지 않으며 주면 자기가 더 많아진다 신언불미 미언불신 기이여인 기유다 311쪽 열자 313쪽 화서지몽 황제가 나라를 다스린 방법 지극한 도는 사람의 뜻으로 구할 수 없다. 화서씨의 나라는 신들의 세계 부지럭생 부지오사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모른다 332쪽 열자의 수련 이롭다거나 해롭다는 마음을 없애고 자연스러운 단계를 지나 완전히 잊는 경지. 부지피지시비리해여 남의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334쪽 4편 중니, 공자 그 깨달음은 즐기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것이 진실로 즐기고 아는 것이다. 낙이불음 애이불상 관저지란 양양호영이재 무럭무지 시진락진지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버릴 것도 개혁할ㅊ것도 없다며 노자와 같은 경지에 다가감을 보여줌 351쪽 우공이산 내가 좋아하는 우화, 이야기~ 359쪽 6편 절대적인 운명 스스로 귀해지고 스스로 천해짐 376쪽 잘 사는 법 사지이이 물옹물알 막지도 말고 멈추게도 말라 401쪽 손일호리천하 불여야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 기소불욕 물시어인 망양다기 413쪽 방생 417쪽 도끼 잃은 자의 편견 금도둑 취금지시 불견인 도견금 금을 집을 때는 금만 보인다 419쪽 다음에 읽을 책 : 국화와 칼, 일리아스의 거의 모든 것 논어 노자 열자 모르던 것도 많고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구절과 말씀도 있었습니다. 이래서 매일 책을 가까이 하고 아는 척말고 제대로 읽어라. 매일 30분은 책을 읽으라고 했네요. 신선한 자극 받고 3권을 편안하면서도 의미 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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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흔히 말하는 동양사상에 준거한다. 동양사상에는 불가나 고대 중국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들이 혼재하고 있지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것은 유불선(儒佛仙)으로 불리는 사상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러한 사상 중 유가와 도가의 사상을 대표하는 공자의 [논어], 노자의 [도덕경], 열어구의 [열자], 장주의 [장자]를 읽고 있다. 그는 이를 두고 공자의 언어는 우리에게 규범을 요구하고 현재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우리의 삶을 구속하지만 현대인들은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며, 그 틀을 벗어나게 하는 해방의 언어, 그 구속에서 자유로워지는 치유의 언어가 바로 노자, 열자, 장자의 언어라고 말한다. 이러한 유가와 도가사상은 제자백가의 사상 중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으로 꼽힌다. 유가사상이 정치와 사회윤리의 바탕이라면 도가사상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든 일상이었다. 공자가 인위를 말했다면 노자나 장자는 무위자연을 말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벼슬에 나가면 유가를 따르고 산천을 벗삼으면 도가를 따른 것처럼 이 둘은 다른 듯 같았다. 그래서 저자는 [논어]와 [도덕경], [열자], [장자]를 함께 읽는다.
우리는 동양고전, 즉 제자백가의 저작들을 자주 접한다. 그 저작들을 읽으면서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고, 그래서 깨달은 게 있다면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나침반으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많은 사상서들을 읽으면서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각기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고 추구하는 지향점이 다르기에 서로 상반되는 모순에 빠진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사상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비교하며 자신의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을 취사선택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논어]를 읽을 때와 [도덕경] 혹은 [장자]를 읽을 때의 마음가짐이 다르고, 그 저작에서 얻으려고 하는 것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여러 저작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오롯이 읽는 독자의 몫이지만, 그것이 말처럼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우리에게 새로운 독법을 알려준다. 주석과 번역서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왜곡가능성도 많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해설서와 주석은 각기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언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조화와 균형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상권에서 [노자]와[열자]를 그리고 하권에서는[장자]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노자]와 [열자]를 다룬 상권이다. 저자는 먼저 [노자]나 [열자]의 전편을 각 편 혹은 각 장별로 원문과 직역을 실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서 해설한 해석과 감상에 이어 [논어]에 나오는 연관성 있는 내용을 실어 노자와 공자가 말하는 내용의 차이 혹은 유사성을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그 사상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자면 [도덕경]이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이라 하여 道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는 것에 비해 [논어]는 ‘子曰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라 하여 학습으로 시작하지만 <이인>편에서 ‘朝聞道(조문도) 夕死可矣(석사가의)’라 하여 道와 배움(學)을 중시하고 있다. 이처럼 노자가 말하는 道와 공자가 말하는 道의 차이와 유사성을 설명함으로써 우리가 [노자]와 [논어]를 각기 별개의 저작으로 읽고 깨우치는 기존의 고전읽기 방식에서 벗어나 함께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제자백가의 사상은 대부분 춘추시대 말기에서 전국시대 초기에 정립되면서 학파가 형성되었다. 제자백가는 자신들의 사상만이 혼란한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유세하였다. 혼란의 종식이라는 목표는 같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방식은 각기 달랐다. 진나라가 법가의 사상을 받아들여 분열을 끝냈지만 이후 사회를 움직인 사상은 유가와 도가였다. 그래서 저자는 도가사상의 대표적인 저술들을 공자의 [논어]와 함께 읽으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논어], [도덕경], [열자], [장자]와 같은 저작들을 수도없이 읽는다. 그렇게 읽으면서 각각의 고전에서 얻은 내용에 대한 이해 또한 제 각각이다. 이처럼 단편적이고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이해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조화와 균형을 찾게 해주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장자]와 [논어]를 다룬 하권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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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언어-상권 논어와 함께 노자, 열자, 장자 읽기 최기재 인간사랑/2023.12.20.
“공자는 성인을 지향한다. 공자의 언어는 우리에게 규범을 요구한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치유의 언어가 <도덕경>, <열자>, <장자>이다. <장자>속 ‘소요유’의 여유로움은 우리 삶에 휴식을 준다.(p.6)”고 <치유의 언어>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다. 또한 “공자의 언어는 바름을 숭상하고 노자, 열자, 장자의 언어는 자유를 구가한다. 공자의 충서(忠恕)와 노자의 무위(無爲)는 서로를 다듬는 숫돌이다. 공자는 나를 서게 하고 노자, 열자, 장자는 쉼 없이 달려온 나를 돌아보게 한다.(p.6)”고 도가와 유가를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치유의 언어-상권> 에서는 ‘제1장 노자와 장자 그리고 공자, 제2장 노자 <도덕경> 읽기, 제3장 <열자> 읽기’로 구성하여 우리에게 공자와 노자나 열자의 말을 비교하여 삶을 설명하고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읽을 적에는 원문과 더불어 그 해석을 읽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해석과 감상’을 위주로 읽으며, ‘도덕경>과 <논어>로 우리 삶의 균형 찾기’를 읽는다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된다. 저자 최기재는 어문 교육학 박사로 계간 <미래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저서로 <여행 그림자의 노래>, <일리아스의 거의 모든 것>, <고교생들의 그리스인 조르바 읽기>, <맛있게 읽는 독서 요리> 등이 있다.
“공자는 노자를 만나고 나서 용을 보았다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선비들은 공자를 받들어 벼슬을 하고, 벼슬 끈이 끊어지고 나서야 노자와 열자와 장자로 세속의 병을 치유하려 한다.(p.19)” 선비들은 고향에 돌아와 인위를 벗어 흰옷으로 갈아입고 신선이 되고자 노자를 우러르며 장자를 따른다. 양반들은 공자를 따르던 벼슬 시절을 되돌아보다 끝내 명산 심곡에서 양생법으로 신선이 되려는 것이 그들의 마음이었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자는 초나라 출신으로 주나라에서 도서관장을 지냈으며, 소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가서 종적이 묘연해졌다. 장자는 전국시대 송나라 사람으로 본명은 주(周)이다. 도교에서는 남화진인, 남화노선, 남화진경으로 부른다. 도가는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인간의 절대적인 자유를 옹호한다. 그러나 법가는 순자의 성악설을 바탕으로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다. 한비자가 유가와 묵가를 비판하며 실질을 주장하지만 도가의 무위를 통치의 사상으로 끌어들인 점은 이채롭다고 말한다.
“삶은 시대의 반영이니 사상을 보려면 배경으로 시간과 공간을 보아야 한다. 노자는 주나라가 멸망하니 떠나고, 열자는 구름을 타고 다니며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장자는 송나라가 혼란스러우니 관직이 무섭다.(p.53)” 제자백가이건 패자이건 각기 제 방식을 내세워 춘추시대, 전국시대의 혼란을 처방할 때, 노자와 열자와 장자는 억지가 없어야 생명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공자는 과거를 부여잡고 죽어가는 주왕실의 예법을 복원하려 장자에게 배우고 노자에게 묻는다. 그 물음으로 인간다운 세상을 꿈꾼다.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밝히려면 과거를 잘라내야 하는가, 과거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가! 이처럼 도가사상과 유가사상은 때론 다른 길을 걷지만 같은 몸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느 때는 노장이 어느 때는 공자가 삶의 중심을 이루지만, 그 중심에 사람이 있으니 공자는 인위로 노장은 무위의 방식으로 다만, 처방이 다를 뿐이라고 강조한다. <치유의 언어>에서는 <도덕경>의 원문과 그에 해당하는 <논어>의 원문을 제시하고, <열자>와 <논어>의 원문 해설과 그 문장의 뜻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시사하고 있는 점을 친절히 비교하여 소개한다. 우리는 같은 사안을 갖고 두 성인이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을 이해하면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여기 그 일부분을 소개한다.
<도경>과 <논어>의 견해 “노자는 우리가 아는 아름다움은 꾸밈이며 그 꾸밈은 추하다고 말한다. 공자는 바탕과 그 바탕을 꾸미는 무늬가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군자라고 말한다.(p.82)” 노자는 모든 꾸밈을 부정하는데 공자는 소인이 과실을 하면 그 과실을 덮기 위해 꾸민다며 그때의 꾸밈을 부정적으로 본다. 이처럼 노자와 공자는 견해가 다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가 같은 것들이다. *노자는 배를 채워주는 무위의 다스림을 말한다. 공자는 욕망하는 바를 얻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p.85) *노자는 비어 있음의 유용함을 말하고 공자는 비움을 거짓 채움으로 덮는 허세를 비판한다.(p.88) *노자와 공자 모두 말을 적게 하라, 신중히 하라고 말한다. 말을 적게 해야 중심을 지킬 수 있다. 이 중심은 군자의 중용과 맞닿아 있다.(p.91) *노자는 사사로움이 없어서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공자는 자신을 버려야 예로 돌아가고 어진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p.97) *노자는 물을 약하면서도 만물을 이롭게 하는 측면을 보고 있는데 반해 공자는 물이 주는 움직임을 보고 있다.(p.102) *노자는 공을 이루면 물러나라 말하고, 공자는 공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p.104) *노자는 없음, 텅 빔이 쓰임이라고 말하고, 공자는 있음의 쓰임을 말한다. 노자는 채워지지 않음을 말하고, 공자는 채워짐을 말한다.(p.110) *노자는 인의, 효도와 자애, 충신이 큰 도가 무너진 결과 등장했다고 말한다. 공자는 인을 강조하며 효제가 인의 근본이라 한다.(p.137) *노자는 배움이 근심을 부른다고 말하고, 공자는 배움이 기쁨을 준다고 말한다.(p.145)
<덕경>과 <논어>의 견해 “노자는 덕이 열매를 따른다고 하고, 공자는 덕이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노자는 덕이 도를 따른다고 말하고, 공자는 이웃이 덕과 함께한다고 한다.(p.195)” 노자는 꽃이 아니라 열매에 머문다고 말하고, 공자는 꽃이 피지 못할 수도 있고,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며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한다. 공자의 손자 자사가 쓴 <대학>은 덕이 근본이라 말한다. 이제 <덕경>과 <논어>의 새김이 어떻게 다른지 몇 개의 견해를 살펴본다. *노자는 강하고 굳센 사람은 제명에 죽지 못한다며 이를 가르침의 아버지로 삼는다고 말하고, 공자는 글과 행동과 충심과 믿음을 가르쳤다.(p.207) *노자는 학문을 하면 날로 더 보태려고 힘쓰고, 도를 닦으면 날로 더 덜어내려 힘쓴다고 말한다. 노자는 배워서 인위를 버리려하고, 공자는 배워서 인위로 이루려 한다.(p.224) *노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고 하며,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 말한다. *노자는 자애를 제일로 꼽고, 공자는 서(사랑)을 첫째로 꼽는다.(p.278) *노자는 하늘의 도는 성글지만 놓치지 않는다고 말하고,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말한다.(p.293)
<열자>와 <논어>의 견해 “<열자>는 현재 8편이 전해지고 있다. 제1편 천서, 제2편 황제, 제3편 주목왕, 제4편 중니, 제5편 탕문, 제6편 역명, 제7편 양주, 제8편 설부 등이다.(p.315)” <열자>의 지은이 성은 열(列), 이름은 어구(禦寇)라 한다. 열자는 열어구를 높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BC4세기 전국시대 정나라 사람으로 생몰 연대 등 자세한 기록이 없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열자는 비록 8편에 지나지 않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견해를 피력하고 있음을 남은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열자>에서는 공자를 <논어>속 공자보다 높이 평가한다. 이 글에서는 공자가 노장사상을 수용하여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서술함으로써 노장사상을 펼쳐 나간다.(p.350)”고 저자는 말한다. 그만큼 공자의 영향력이 컷거나 공자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를 통해 공자는 천하를 다스리고자 했다고 <논어>에 나오지만 시, 서, 예, 악이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열자>에서는 버릴 것도 없고 개혁할 것도 없다며 노자와 같은 경지에 다가감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몇 가지 고사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면 *열자에는 지음의 고사가 실려 있고, 논어에는 유익한 벗과 손해나는 벗을 이야기하고 있다.(p.370) *열자에서는 명궁이 되기까지를 언급하고, 공자는 활쏘기를 군자가 닦을 도라고 말한다.(p.373) *열자 에서는 관중과 포숙이 훌륭한 사귐 때문이 아니라 자기 능력에 합당하여 천거되었다고 말한다. <논어>에서는 관중의 어짐에 초점을 둔다.(p.383) *<열자>에서는 백이숙제에 대해 청렴과 정절이 착함을 그르쳤다고 말하고, <논어>에서는 백이숙제가 원한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말한다.(p.395) 이와 같이 열자와 공자의 견해가 다름을 저자는 두 문헌에 실려 있는 문장을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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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번역'이라는 일본식 한자표현이 아닌 '뒤침'이라는 우리식 표현이 옳다고 본다. 다른 나랏말로 쓰여진 것을 '옳게' 이해하려면 우리말로 '바르게' 뒤쳐야 온전히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나랏말에는 '있지'만 우리말에는 '없는' 표현도 수두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랏말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버스나 컴퓨터 같은 말을 굳이 우리말로 옮기려들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태우고 저절로 달리는 커다란 수레'라든지, '번갯불같이 빠르게 어려운 풀이를 척척 해내는 전에 없던 편리하고 유용한 전자장치' 따위로 어색하고 뜬금없이 말만 긴 표현만 즐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뒤침'은 적절한 '풀이(해석)'가 밑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외국의 고전이 '뒤침'의 첫 대상이 될 것이다. <고전>의 유용함은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니 건너띄면 좋을 것이고, 따져볼 일은 <고전>을 '어찌' 풀이할 것인지다. 서양의 고전은 '논리적인 풀이'를 좋아하니, 앞뒤 맥락을 따져보면서 풀어나가면 '뜻'이 크게 달라질 까닭은 없을 것이고, 각 나라의 '문화'적 특색을 고려하며 풀어나가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나, 동양의 고전은 좀 생각해볼 일이다. 왜냐면 '한자'로 쓰였기 때문이다. 크게 '한중일, 세 나라'가 [한자문화권]에 있었던 탓에 오래된 문헌은 거의 대부분 '한자'로 쓰였다. 허나 한자의 쓰임새와 뜻풀이는 서로 다르게 쓰는 경우가 많았기에, '같은 문구'라도 나라마다 뜻풀이가 달랐고. 시대에 따라 달랐고, 심지어 학자마다 서로 다르게 풀어낸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니 '동양의 고전'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풀이(해석)'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책 <치유의 언어 (상)>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저자가 '그런 고민'까지 미리 해준 덕분일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공자의 <논어>, 노자의 <도덕경>, 열자의 <열자>, 장자의 <장자>는 각 고전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일테지만, 이들을 한데 엮어서 우리에게 '고전의 매력'을 흠뻑 젖게 만들어주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참, 이 책을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한 손엔 유가사상을, 다른 한 손엔 노장사상을 들고서, 옛 사람들의 지혜를 곱씹으면 현대인들의 만성고민도 해결될 묘책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현대인들은 '부의 넉넉함'을 꿈꾸며 부단히 쫓아가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사실만 깨닫게 되는 절망만을 느낄 뿐이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시간을 쪼개며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공평과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현실에 분노할 뿐이다. 이런 현대인들이 <논어>만 읽었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과 의로 개인의 덕성과 인성을 닦고, 충과 효로 나라(사회)를 바로 잡으며, 평생을 갈고 닦은 지혜로 세상을 평안하게 만드는데 부단히 '자기 채찍질'만 가할 뿐일 것이다. 이러면 끝내 지쳐 쓰러지고 만다. 반면에 무위자연을 노래한 <노장사상>만 읽었을 땐 어떨까? 바쁜 일상에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여유를 선사하며 '안분지족'으로 저마다 스스로 만족한 삶을 영위하며 '안빈낙도'하는 신선의 삶을 살게 될까? 오히려 그런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모으려 안달복달할 것이며, 그도 안 되면 코인과 주식으로 평생 모은 돈을 탕진하거나, 로또라는 환상에 빠져 현실을 망각하는 '도피처'만 찾는 우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평생을 놀고 먹을 돈을 모은 현대인은 행복하게 살까? 현대인 가운데 젊은 나이에 평생 써도 남을 돈을 모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았을리 없으니 '비정상적인 삶'에 쉽게 유혹되어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마디로 돈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허튼 일에 돈을 쓰게 되고 탕진 이후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다시 돈을 모을 줄 모르니 나락에서 허우적거리기 십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옛 사람들은 어찌 살았을까? 그들도 근본적으로 현대인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실은 가혹했고 불공평과 불평등은 더욱 심했으며 세상은 짧은 환란과 긴 혼돈의 '악순환'이 계속 되풀이 될 뿐이었다. 그 지독한 괴로움 속에서 옛 사람들의 지혜는 돋보였다. '입신양명'을 꿈꾸는 <공맹사상>과 '무위자연'을 노래하는 <노장사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 책 <치유의 언어 (상)>이 말하는 핵심사항이다. 지나고 보니 나도 그랬다. 부지런히 달리다가 지치면 적당히 쉬었고, 쉼에 지쳐 몸이 달아올랐을 땐 미치도록 달리기를 반복한 삶을 살았다. 우리 선조들도 벼슬을 탐할 땐 공자의 <논어>를 파고 들었고, 벼슬을 내려놓을 땐 노자, 장자의 <도덕경>과 <장자>를 낙으로 삼았으니 말이다. 특히, 풍진 세상을 만났을 땐,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속세를 떠나 산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가진 것 하나 없음에도 근심걱정하지 않았으니, 그 균형점의 어느 곳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세상이 혼란스럽다해도 '마음'이 병들지 않을 수 있는 지혜를 찾은 셈이다.
물론, 이런 지혜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삶'에서나 이룰 수 있다. 혼란한 사회속에서 도탄에 빠진 사람들을 외면하고 저 혼자만의 낙원을 찾는다면 '현실도피'와 다를 바 없다. 더구나 현대인들에게 속세를 벗어난 무릉도원이 어디 있단 말인가. 수많은 개인이 아프면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다. 그럴 땐 '안빈낙도'에서 탈출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한마디로 난세를 평정해 천하를 태평하게 만들러 분연히 일어서야 한단 말이다. 그때 바로 공맹사상의 '인의예지'가 필요한 법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는 특효약은 <논어>, <맹자>에 있단 말이다. 이렇듯 공자와 노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속에 서로를 존경하며 탐하는 사이였단 말이다.
우리는 지금 '각자도생'을 외치고 있다. 우리 스스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병들었기에 그렇다. 옛 사람들의 지혜에서 해법을 찾자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책의 '해석'에 무리가 있다며 딴죽을 걸지도 모르겠다. <논어>를 그렇게 읽으면 안 되고, <도덕경>과 <장자>를 누가 그렇게 읽느냐면서 말이다. 또는 '걍 뒤침말투(직역투)'를 트집 잡으며 저자의 비전문성을 따져 물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만 번듯하면 '뜻'을 곡해할 까닭이 없다. 시의적절하게 옳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따위로 못생긴 주제에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한다"고 지적하면, '부적절'한 이가 누군지는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현재 우리는 '비정상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홀라당 '비정상'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게 된다. 비록 '각자도생'이라는 모진 상황일지라도 '제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사회로 치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개인이 아플 땐 '개인적 치유'에, 우리가 아플 땐 '국가적 치유'에, 모두가 아플 땐 '세계적 치유'에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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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시습지불역열호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노자 왈, 강하고 굳센 사람은 제명에 죽지 못하며 이를 가르침의 아버지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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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처럼 다가온 ‘치유’라는 글자가 시선을 붙잡았다. 만약 ‘고전’ ‘동양 인문학’이라는 글자가 책 앞표지에 있었다면? 글쎄, 어떤 사람은 선뜻 가까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흔히 ‘동양 사상’하면 어렵고 재미없고 진부하다는 생각부터 하기 마련이니까. 사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견디는 현대인들은 ‘치유, 위로, 소통, 일상의 공감’ 등과 관련된 문화, 경험, 굿즈 등을 더 필요로 한다. 일개의 독자로서 출판사가 ‘치유’라는 책명을 선택한 것은 케케묵은 고전에 대한 거리를 좁히고 독자의 마음을 확 끌어당기기엔 안성맞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치유가 될 수 있는 언어’를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찾아 또는 발견해서 책 한 권에 담아냈을까. 올 때는 갈 때를 모르고, 갈 때는 올 때를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