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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확실성의 신화가 붕괴된 세계
"이성의 확실성의 신화가 붕괴된 세계" 내용보기
[스포일러 경고: 스토리와 결말이 누설되어 있습니다.]       존 파울즈(John Fowls)의 <마구스(The Magus)>는 지적인 소설이다. 주인공이 빠져들게 되는 중층적 책략과 거미줄처럼 깔려진 복선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성, 의미 심장하고 모호하며 가끔씩은 페던틱한 대화와 독백,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상징성.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가 작품의 구석구석에 던져놓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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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경고: 스토리와 결말이 누설되어 있습니다.]

 

 

 

존 파울즈(John Fowls)의 <마구스(The Magus)>는 지적인 소설이다. 주인공이 빠져들게 되는 중층적 책략과 거미줄처럼 깔려진 복선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성, 의미 심장하고 모호하며 가끔씩은 페던틱한 대화와 독백,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상징성.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가 작품의 구석구석에 던져놓은 단서들을 찾아다니며 그것들을 통일된 맥락으로 연결함으로써, 그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를 밝혀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 또, 거대한 상징의 숲과도 같은 이 소설에서, 그 상징들에 대해 단 한가지 해석만이 존재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은 그 풍부한 상징성으로 인해 매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영국과 그리스로 나타나는 두 개의 대립된 공간과 그 안에서의 주인공 니콜라스 우르페의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였다.

이 소설 초반부에는 대립되는 두 개의 공간, 즉 주인공의 고향인 영국과 그가 기숙 학교의 영어 교사로 부임해 오게 된 그리스의 프락소스라는 외딴 섬이 설정되어 있다. 좀더 정확히 그 두 공간을 분리해 본다면, '영국'은 주인공이 근무하는 로드 바이런 학교까지도 포함하고, '프락소스 섬'은 콘치스와 '릴리 - 줄리'가 존재하는 부라니 곶에 한정되어 있다.

'영국'이란 곧 일상적 현실의 세계이다. 그곳은 평균적 지성과 상식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계이고, 지적인 자극이 존재하지 않는 권태의 세계이다. 막연한 동경을 품고 찾아간 그리스에서의 학교 근무도 영국과 다를 바 없는 권태의 연속이었다.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주인공은 이런 무미 건조한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탈출하기만을 염원한다.
반면에, '부라니 곶'은 신비와 환상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콘치스라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과의 대화는 시종 일관 지적인 활력이 넘친다. 현대 여성에게 식상한 주인공은 '릴리'라는 신비로운 여성에게 매혹된다. 즉 이곳은 근대 이전의 신화가 아직 살아 있는 세계인 것이다. 콘치스의 별장에서 첫 주말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오던 --- 신화의 세계에서 현실로 복귀하는 --- 주인공은, 테세우스나 오이디푸스와 같은 신화 속의 인물들과 일치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근대에 속한 주인공은 곧 스스로 신화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부라니 곶에서 그는 많은 초자연적인 사건을 겪게 되지만, 그 모두를 콘치스의 '가면극'의 무대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17세기의 사형수가 눈 앞에 나타나도 그는 그들을 잘 훈련된 배우라고 여기며, 한밤중에 1차 대전 때의 영국군 병사들의 행군가가 들려와도 그는 그것을 레코드와 스피커 장치로 조작한 장난으로 간주한다. 근대적 이성을 확신하는 주인공은 심령 현상과 같은 초자연적인 것,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콘치스가 벌이고 있는 가면극의 허구성을 폭로하여 그에게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릴리라는 신비로운 여성의 진짜 모습이 '줄리 홈즈'라는 전직 여교사라는 것도 알아내고, 그녀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의 반전은 그가 마침내 '줄리'를 소유하려는 순간 일어난다. 주인공은 이중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가 밝혀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믿은 줄리의 정체조차도 허구였던 것이다. 애초에 부라니 곶에는 신화나 신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존재했던 것은 거대한 중층의 책략뿐이었다. 작품 초반부에 영국과 대립되는 신화의 공간으로 제시된 부라니 곶 역시 현실의 세계였던 것이다. 콘치스와 릴리를 비롯한 가면극의 등장 인물들이 신과 악마와 괴물을 본뜬 가면을 쓰고 '재판'에 등장하였다가, 가면을 일제히 벗으며 냉정한 과학자·정신분석학자·심리학자로 변신하는 장면은, 신화가 존재한다는 환상이 완전히 깨어짐을 의미한다. 계속하여 진행되는 재판 과정에서 주인공이 받게 되는 인격적 모욕과 충격적인 포르노 필름 등은, '줄리'에 대해 주인공이 품었던 사랑의 감정을 무참히 우롱하고, 그녀에 대한 환상을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일련의 '해독 과정'을 거치고, 영국에 있을 때 사랑했던 여성 앨리슨의 자살조차도 가짜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주인공은 자신이 신뢰했던 이성의 확실성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릴리와 로즈의 은신처에 남겨져 있던 왕과 마법사에 관한 우화가 의미하는 것, "마법을 넘어선 진실이란 없다"는 것은, 세상에 유일한 진리가 존재한다는 진리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비록 주인공은 주체의 인식 능력의 확실성에 대한 신뢰를 빼앗겼지만, 그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아직 '엘레후세리아(자유)', 즉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남겨져 있는 것이다. 부라니 곶에서 주인공이 신뢰하던 이성의 힘은 보잘것없는 것으로 증명되었고, 주인공은 가장 철저한 방식으로 모욕당한다. 그럼에도 그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완전히 잃지 않은 것은,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선택할 자유를 가졌기 때문이다.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삶의 의미인 앨리슨을 되찾게 되는 것은, 그가 바로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이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비슷한 '우르페'인 것도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끊임없는 죽음의 위협과 사나운 케르베로스를 물리치고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는 오르페우스처럼, 우르페는 가장 철저한 방식으로 모욕당하지만 결국 그의 삶의 의미인 앨리슨을 회복하는 것이다.

s****a 2002.01.3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