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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 올라온 광고를 보고 읽고 싶어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자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정말 저자에게는 이게 다 인 존재, 사랑이라는 존재, 그 외적인 것들은 거추장 스러울 만큼 집중된 사랑. 사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랑에 대해서 편견을 많이 갖고 있었고,현재도 아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사랑이란 어떤 존건이 부합하고 사회적인 여론에 의해서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형태가 적절한것인가? 라고 생각하면서도 30살이 넘는 나이차를 극복한 그 둘의 사랑은 어느 조건도 앞에 두지 않고 오롯이 사랑만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것인가?하는 경외감이 들었다. 그리고 프랑스인인 저자가 연인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가 겪은 여러가지 상황으로 인한 것들이 작품의 배경이 되어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가 겪은 여러가지 사건으르 통해서 완성되어 가는것 같다.우리는 사랑은 나 스스로가 완벽에 가까운 인간이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가장 먼저 성공을 해야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대기업을 가고 어느정도의 연봉을 받아야만 사랑을하고 사람답게 살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는데, 저자와 연인의 사랑은 저자가 죽음을 앞둔 시점 까지도 진행형으로 치닿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기 전 까지도 사랑을 할수 있다는 것, 어떤 조건이나 상황으로 인해 사랑이 우선시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앞에서도 사랑은 여전히 사랑일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은 20대,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 돌아 보니 성공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에 아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안에서 분투한 시간이 가장 아름답고 성공한 시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Drop h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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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에세이 #이게다예요 #마르그리트뒤라스 #문학동네 작년에 신유진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뒤라스가 읽고 싶어졌다. 연인은 그리 읽고싶진 않았고 주변의 추천으로 이 책으로 고르게 되었다. 얇은 책인데다 페이지마다 간단한 문장들이라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였지만 해외문학보다는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내게는 취향의 작가는 아니었다. 뒤라스의 마지막 작품이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고 추천받아서 읽게 되었다. 작가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만큼 강렬한 사랑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자신의 마지막 책임을 알았을 정도로 작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작가라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증(무려 서른다섯살 연하 애인)과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으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가 죽음을 기다리는 체념상태까지, 숱한 감정의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이 부럽다. 무미건조하게 나이들지 않고 사랑을 품고서 죽을 때까지 쓰는 삶을 살았던 뒤라스. 그저 사랑하는 마음, 그게 전부라고 말하는 뒤라스의 마지막 작품이 감동적이다. #책속한줄 #하리그라피 #문장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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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기 전에 굉장히 저렴해서 놀랐는데, 배송 받고 나서 책 두께 얇음에 놀라고, 책 펴보고 나서 글 길이에 놀랐다. 하긴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쓴 책들을 보면 확실히 다 얇았었지. 그냥 이정도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서 놀랐다. 절망과 함께 글을 쓴다던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인간에게, 인간으로서 제한된 수명을 가진 작가에게, 죽음으로 더는 글을 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가까워졌을 때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하다. |
그렇다. 『이게 다예요』는 단순한 죽음의 서書가 아니라 사랑과 죽음의 서다. 또는 그저 사랑의 서다. 이 책을 고르게 된 계기는 표지에 보이는 불어 때문이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한참 프랑스어 공부에 재미가 붙은 상태였어서 반가운 마음에 책을 골랐다. 그러고 작가에 대해서 찾아보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사실 뭐든 잘 까먹는 편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키워드가 있다. 레지스탕스. 멋지다. C’est Tout That’s it 이게 다예요 일독에는 작가가 초연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 작가가 혼란해 보인다. 초연했던 건 나였을까? 혼란한 건 나일까? 난 네 변전變轉을 견딜 수 없어. 활자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봐 둬야 하지 않을까? 무엇에 몰두하게 될지, 문학을 어떻게 하는지. Y. A. 당신은 무엇에 몰두하죠? Y. A. 당신은 재능을 타고났나요? 침묵, 그러고 나서 소멸 죽음 이후에 대한 생각에 공감되고, 누가 당신을 기억할지 이미 알고 있던 게 대단하다. Y. A. 그럼 죽음 이후에 뭐가 남죠? 사람 모든 것에 초월할 시기에 들어섰다고 예상되는 순간에도 사람은 사람인 것 같다. 최근 읽은 오현 시인의 시집에서도 그것을 느꼈다. 스님도 사람이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었던 여자도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도 그렇다 인간은 언제든 욕망과 충동을 느낀다. 때때로 나를 유혹하는 갖가지 행위들, 예컨대 이 젊은 남자의 죽음. 나는 그의 이름이 뭔지,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이제는 모르겠다. 글자 그대로 그의 무의미는 크다. 마지막 연인 뒤라스는 누구에게 무엇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을까? 그 나이의 사랑? 그 나이 차이의 사랑? 다른 인종과의 사랑? 사랑 그 자체? 4월 9일 일요일, 성지주일 聖枝主日 난 하얀 목재 토막이죠. 뒤라스는 이 책을 펴낸 다음 해에 사망한다. 헛되고 헛되도다. 나는 숙명의 날짜에 바짝 다가서 있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의 서문이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크레마클럽에 책이 없어서 온라인 서점의 미리보기로 책의 서문을 보는데, 몇 개의 서문들이 미리보기의 끝이라는 점이 아주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서문을 처음 읽었을 때 이 긴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길고 많이 어렵겠지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써낸 글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그 시기가 다가오면 알게 될까? 나도 그때까지 의미를 찾지 못하겠지? 소멸의 시기는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삶의 의미는 멀고도 멀어 너무나 아득하다. 남의 사생활을 강박적으로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뒤라스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래서 처음엔 피하며 읽은 글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심경의 변화였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조금 덜 피하게 되었다. 내가 변하는구나. 뒤라스의 많은 작품들에 자전적 요소가 짙게 배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장르를 확정 짓기 곤란한 『이게 다예요』야말로 작가를 알몸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게 다예요』는 뒤라스의 문학적 유서다. 얀의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책은 뭐죠?라는 질문에 뒤라스는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 어린 시절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그것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생브누아 거리, 11월 27일 일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