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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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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의 문화와 제도에 대해 거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왜 부제가 창시자인지 이해할 듯하다. 3권까지 대충 읽었는데, 사실 누가 누굴 치고 누가 어떤 제도를 도입하고 하는 세세콜콜한 역사를 다루지 않기에 쉽게 읽히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다루지 않기에 중국 역사에 문외한인 경우 일일히 찾아보며 읽어야 해서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3권까지 읽으니 얇다는 것, 텍스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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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의 문화와 제도에 대해 거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왜 부제가 창시자인지 이해할 듯하다. 

3권까지 대충 읽었는데, 사실 누가 누굴 치고 누가 어떤 제도를 도입하고 하는 세세콜콜한 역사를 다루지 않기에 쉽게 읽히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다루지 않기에 중국 역사에 문외한인 경우 일일히 찾아보며 읽어야 해서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3권까지 읽으니 얇다는 것, 텍스트가 좀 적다는 게 살짝 불만스러워지긴 하는데, 그래도 이런 자유분방한 글이 세부사항을 잘 모르더라도 선사시대부터 이어져가는 전체 맥락 속에서, 그리고 세계사의 일부로서 당대를 파악하는데 일반 통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의 차별적 잇점을 제공한다. 내 경우 백그라운드로 김희영의 이야기 중국사를 같이 읽고 있다. 7편까지 샀는데 10편까지 나와있고, 궁팡 사라지기 전에 구입해야겠다.

<주나라 청동기 하존에 새겨진 글귀 탁본>


“요·순·우와 하·상·주의 분계선은 국가의 탄생이다. 요·순·우는 그전의 부락연맹을 대표하고 하·상·주는 그 후의 역사 단계를 대표한다. 그 단계에서 하夏는 시작, 상商은 탐색, 주周는 형성에 해당된다. 서주西周에 진입한 이후에 국가는 국가이지 더 이상 부락이 아니었다. 그러나 서주도 도시국가만 있고 영토국가는 없어서 “중앙집권, 천하통일”을 이야기하기란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하·상·주는 ‘조대朝代’, 즉 왕조 시대가 아니라 그냥 ‘시대’였다.”[1]


3권에서는 하상조 시대를 말한다. 3권을 읽을 때 전권을 다시 눈여겨 볼 대목은 바로 이 하∙상∙주가 세 개의 역사상의 시간상의 단계이자 동시에 3가지 문화와 문명의 병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이 세 개의 부족은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생겨났고, 사마천은 이들의 시조가 모두 요순 연맹의 내각 구성원이면서 병존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라 다음에 상나라 다음에 주나라 순으로 세 나라를 시대로 구분한다. 그 이유는 누가 중국을 대표하느냐다. 중국의 지리적 중심인 중원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중국 역사의 중심에 중국을 대표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원이라는 곳은 범위가 크기 때문에 국력이 큰 나라가 세우는 수도가 천하의 중심이 되었고 그곳이 역사상의 중국을 대표하게 된다.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그토록 큰 나라라고 하는 것의 실체는 그토록 큰 나라 전체를 단일 왕조가 통치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비약하자면 문화의 중심을 의미하는 거다. 문화는 언제나 권력을 가까이 하기 마련이므로, 권력이 가장 큰 집단 즉 그 많은 부족들 중에서 문화와 교역과 국력이 가장 큰 작은 세력집단을 의미하는 것에 후대에 중국의 역사라는 대표성을 부여한 것이다.


선양의 우순시대가 지나고 하왕조가 세습왕조로 자리잡는 배경은 이렇다. 하나라의 우임금은 처음에 신하 익에게 넘겨주었는데, 익은 3년상을 마친 후, 우의 아들 계에게 제위를 물려준 것이다. 계의 아들 태강 대에 와서 유궁국의 예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우여곡절 끝에 하나라의 옛신하들이 소강을 옹립하여 마지막 걸왕까지 4백여년간 중흥시킨 하나라는 유적이 미미해서 전설상의 나라로 보지만 이름이 무엇이건 간에 하왕조를 특징짓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본다.


폭군의 대명사가 된 하나라의 걸왕은 미녀 말희와의 방탕에 빠져 국력을 좀먹어 들어갔고, 차례 차례 여러 나라 제후들의 협력으로 확장중이던 탕이 마침내 걸왕을 무너뜨려 상나라(은)이 탄생한다. 상나라의 문화적 특징은 하나라에서 이어진 청동기 문화로 요약되는데, 하나라에 비해 월등한 제련 기술로, 용맹함과 부유함과 권위를 뽐내는 기술이었다. 무섭고 흉칙스러운 모습의 귀신과 괴물의 그림이 새겨진 청동제품은 흉악한 아름다움, 살기등등하고 익살맞고, 난폭하고 무식하며 촌스럽고 위엄있는[2] 미술이 상나라를 대표한다. 이때의 수공업과 상공업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발달했고 수준높아, 사당까지 장터로 변하고 대규모 상품이 대규모 상단에 의해 우마차와 코끼리에 실려 전국 방방곡곡으로 운반되었는데, 이러한 장관이 펼쳐진 곳은 상고시대 시절에는 상나라가 유일했다. 화려하고

상나라의 방탕한 문화를 몰아낸 것은 주나라다.


변방의 작은 씨족장이었던 문왕은 영토를 확장하고, 그의 둘째 아들 무왕대에 이르러 상나라를 정복한다. 이 때부터 중국의 중심은 상나라가 된다. 상나라는 마지막 도읍이 은허였기에 은나라로도 불리는데, 한 때 전설상의 국가로만 알려졌지만, 19세기 말 갑골문과 유적의 발견으로 실존했던 나라로 인정받는다.  상나라와 주나라의 문화적 이질감은 대단했다. 인신공양까지 허영된 야만적이고도 화려한 상나라와 주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가치체계에 있다. 주나라 이후 중국은 신을 믿지 않았다. 대신 하늘을 믿었다. 신은 보이지 않는 것, 재현되지 않는 것, 증명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늘은 하늘의 뜻, 인본주의라고 하는 철학적 가치 체계를 의미한다. 이제까지 세계사에 있어서 중국이라는 부분에 균형있는 시각을 유지하던 저자는 특히 주나라 부분에 국뽕에 심취한 듯 느껴지는데, 이 때 생성된 유교적 가치가 수천년간 아직까지도 중국에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인 듯도 하지만, 이 때의 600년(?)남짓이 가장 이상이 잘 실현되었던 시기로 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후 경직된 윤리 규범과는 달리 이 때에는 훨씬 자유로운 문화를 엿보게 하는 상사절을 소개한다. 봄이 한창인 3월 3일은 일종의 발렌타인데이로, 고대 로마의 사티로스 축제처럼, 상나라에서는 제비가 돌아올 때,  성년이 된 남녀는 교외에 나가 마음껏 섹스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상나라의 제사는 얼마나 웅장하고 호화로웠던가. 100마리가 넘는 소와 양에 헤아릴 수 없는 제기祭器와 반짝이는 보석 그리고 산 채로 바쳐질 인간제물까지 있었다. 작은 속국에 불과했던 주나라는 ..”



제비가 돌아올 때 그런 명절을 즐겼다. 주나라인은 서주부터 한·당까지는 종법과 예교 외에도 여전히 섹스의 자유가 있었다. 그래서 유가적 도를 옹호하던 이들은 ‘더럽고 부패한 한나라와 당나라’라고 욕을 하곤 했다. 무슨 “굶어 죽는 것은 작은 일이요, 예절을 잃는 것은 큰일이다”라는 것은 송나라 유학자들이 저지른 죄악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상나라의 호방함과 활기도, 주나라의 천진난만함도, 춘추시대의 고상함과 우아함도, 전국시대의 넘치는 혈기도, 한나라의 개척정신과 당나라의 개방성도 모두 사라졌다. 게다가 사인들은 문인으로 타락해 ‘집단적 발기부전증’에 빠짐으로써 황제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리다가 집에 가서는 아내를 때리는 짓만 반복하게 되었다.    실로 이보다 더한 죄악은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아직 주나라 시대다


건국과 후세까지도 유명한 주공은 건국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고, 조카의 보위를 보좌했는데, 주역을 썼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주나라의 문화와 제도를 창시한 중요한 인물이다. 청동기 시대의 이 나라는 실재가 의심본격적인 농업국가임 ‘주周’의 갑골문과 금문 형태가 밭 모양이기도 하다.



출처 이중톈 중국사 02 : 국가


[1] 이중톈 중국사 02 : 국가

[2] 같은 책



* 주나라 대해서 주로 서술되어 있는데, 리뷰는 용두사미로, 시작도 못하고 끝을 내는 느낌이네.


g******1 2018.05.16. 신고 공감 4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