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대학교 때 실연당하고 나서 눈에 띄어서 사서 읽게 된 순전히 우연에 의한 우연으로 접한 책이었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작 (훌륭한 상이나 수상작들은 재미는 떨어진다는 징크스가..)이라는 점이나 폴란드라는 옛 공산주의국가 출신이 시인이라는 점... 어딜 보나 그다지 시집의 내용은 남녀간의 사랑 타령은 있을법 하지도 않은데 실제로 사랑에 대한 시가 몇 편 들어 있지만 뜨거운 사랑에 대한 혹은 사랑의 기쁨에 대한 찬가 같은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 비판이 날카롭고 사상에 대한.. 것들이 실린 이 시집을 읽고 실연의 아픔을 맛보고 있던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왈칵 눈물을 쏟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종종 이 시집을 불현듯 다시 꺼내보곤 한다. 예전의 나는 왜 그토록 이 시집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가... 지금 읽어보면 그때 와닿고 맘에 들어했던 시는 감흥이 없고 반대로 그때 별 다른 감흠이 없었던 시는 새롭고 신선했다. 무엇보다 큰 차이점은 과거에는 술술 읽었던 이 시집이 이번에는 참으로 한편 한편 읽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참 감성이 살아있을땐 모든 시들이 어렵지 않게 읽혀지고 스스럼 없이 내게 받아들여졌었는데 이젠 나도 기성세대가 되어 가는건지 시 한편 읽는게 어려움이 되어 간다. 조금 씁쓸하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은 아무나 수상하는 것인가. 쉼보르스카 여사의 시는 내가 읽어본 시 중에서는 특별한 개성과 독특함이 있다. 그리고 그 특별한 개성이... 좋다. 또, 잊을뻔 했는데...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에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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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주문한건 아래 시 때문이었다. 어느누구도 원문을 그 느낌그대로 번역하기란 힘들 것이다. 하지만 책에 번역된 시의 느낌보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번역이 좀더 마음에 들어서 옮겨본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 운명적인 시를 직접 낭독하고 싶다.
그들은 둘 다 믿고 있다.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묶어 주었다고 그런 확신은 아름답다. 하지만 약간의 의심은 더 아름답다.
그들은 확신한다. 전에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기에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수만번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순간을 군중 속에서 "미안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던 소리를. 수화기 속에서 들리던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하고 무뚝뚝한 음성을, 나는 대답을 할고 있으니, 그들은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게 되리라. 우연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이나 그들을 데리고 장난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해 우연은 그들을 가까이 끌어당기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들의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웃음을 참으며 훨씬더 멀어지게도 만들었다.
비록 두사람이 읽지는 못했으나 수많은 암시와 신호가 있었다. 아마도 3년 전. 또는 바로 지난 화요일, 나뭇잎 하나 펄럭이며 한 사람의 어깨에서 또 한 사람의 어깨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한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다른 사람이 주웠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유년 시절의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공일지도
문 손잡이와 초인종 위 한 사람이 방금 스쳐간 자리를 다른 사람이 스쳐가기도 했다. 맡겨놓은 여행 가방이 나란히 서 있기도 했다. 어느 날 밤, 어쩌면, 같은 꿈을 꾸다가 망각 속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모든 시작은 결국에는 다만 계속일 뿐. 운명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부터 펼쳐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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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시는, 본래의 것보다 즐거움이 절반가량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번역시 임에도 불구하고 쉼보르스카는 나를 감동시킨다.
특별하지 않은 시다. 뭔가 어렵지만도 않다. 번역이기 때문은 아니다. 도서관에서 뽑아든 시집은, 시적인 언어라든지 뭔가 아름다우려고만 하는 그러한 언어를 쓰지 않았다. 일상적인 언어를 섬세하게 선택한 시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과 연결되고 있는 시들. 거창하게, 머릿속에서 떠도는 관념들, 시에서 흔히 나오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들, 그런 것들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 이 현실과 연결된다.
현실이 그대로 시가 된다.
애석한 것은, 쉼보르스카에 대한 자료가 너무 적다는 사실이다. 1996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시인, 여성, 1923년생. 그리고 이 시집에서 제공하고 있는 정보외에는 자료가 없다. 많이 안타깝다. [인상깊은구절] 십년마다 맞이하는 기념일이 아닌 나날을 기념일로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너무 쉽게 믿는 것보다 교활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간인들의 땅을 더 좋아한다. 약탈하는 나라보다 약탈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일면보다 그림(Grimm)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존재가 자기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그 가능성조차 고려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선택의 가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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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여류 시인이 쉼보르스카 1996년 노벨문학상의 뜻깊은 영광을 얻게되었다. 바로 그 시집이 '모래 알갱이가 있는 작은 풍경"이다. 얼마전 학교에서 심리학 강의를 듣는데 교수님께서 쉼보르스카의 시를 좋아하신다며 읽어 주셨다. 듣는 순간 무척 잘 포현된 시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가 있었다. 그가 선택한 시어가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적절하기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녀의 어디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시어가 숨겨진 것일까? 샘솟는 것일까?
누군가가 그랬던가? 우리는 꽃이 피면 꽃인가 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가 보다 하느 ㄴ것이 고작이지만 시인에게 작가에게는 그 미묘한 차이마저 시의 대상이 되고 구지 억지스레 찾아내려 하지 않아도 영혼의 영양분을 자아내지 않더라도 순수한 단어가 시어가 떠오른다고... 잘 쓰여진 시 하나가 우리들의 가슴에 희망을 불러 일으키고 그 희망은 감동이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볼 때 제대로된 글을 써낸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닌 듯 싶다.
시인 쉼보르스카는 1923년 생으로 여전히 폴란드에 살고 있으며 폴란드 브닌 태생으로 알고 있다. 수업 시간에 그녀에 대해 처음 들은 이후 나날이 그 시집을 읽고 싶어 서점에 가보고 싶었으나 학기초라는 핑계로 잠시 소홀하고 오늘에서야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시가 현실적인 감각을 담아내면서도 역시 시다움을 읽지 않고 운율적이고 회화적인 면도 놓치지 않았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이 실력이라면 한번쯤은 꼭 읽어보리라 하던 차에 오늘은 과제물도 뒤로 하고 선채로 한권을 다 읽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풍요로움이다. 요즘 좀처럼 내 마음을 감도시키는 글을 찾기가 쉽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너무 맘에 든다. 아지 이 시를 접해보지 못했다면 꼭 한번 만나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아는 바도 없고 언젠가 영황에서 폴란드가 배경이 된 영화를 본 적이 있고 가끔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풍경이나 시사적인 이야기에 폴란드가 나오는 것을 보는 것이 고작이던 내게 쉼보르스카느이 시는 감동으로 편안함으로 풍부함으로 나의 영혼에 샘물처럼 깨끗하고 고매함이 엿보이는 그 기상으로 다가온다. [인상깊은구절] 가장 이상한 세 낱말 내가 미래라고 발음할 때 이미 첫째 음절은 과거를 향해 떠난다. 내가 고요라는 낱말을 발음할 때 나는 그것을 깬다. 내가 아무것도라는 낱말을 발음할 때 무언가를 창조한다, 실재하지 않는 것에 들어갈 수 없는 무엇을 모래 알생이가 있는 풍경 우리는 그것을 모래 알갱이라 부르지만 그에게는 알갱이도 모래도 아니다. 그는 이름이 없어 만족스럽다. 보편적인, 특별한, 스쳐 지나가는, 오래 남는, 잘못된 것이든, 적당한 것이든 우리가 보건 손대건 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만져지든, 보여지든 느끼지 않는다. 창턱에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의 일일뿐 그의 고난은 아니다. 어디에 떨어지든 그에게는 똑같다. 벌써 떨어졌다는 거, 떨어지고 있는거 확신하지 못한 채. 그러나 그 풍경은 창으론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 그러나 그 풍경은 자기를 못본다. 색깔없이 형태없이 소리없이 향기없이 이 세상세서 그에게는 아픔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