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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 말씀을 벗하여 살아가는 삶
"[2024-081] 말씀을 벗하여 살아가는 삶" 내용보기
속도가 중시되는 사회입니다.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선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말합니다. 그리하여 과정은 무시됩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윤리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습니다. 오로지 경쟁 우위를 통해 승리를 쟁취하고자 합니다.이러한 사회는 인내가 없습니다. 성실함은 도외시됩니다. 일상은 무너집니다. 효율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
"[2024-081] 말씀을 벗하여 살아가는 삶" 내용보기


속도가 중시되는 사회입니다.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선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말합니다. 그리하여 과정은 무시됩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윤리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습니다. 오로지 경쟁 우위를 통해 승리를 쟁취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사회는 인내가 없습니다. 성실함은 도외시됩니다. 일상은 무너집니다. 효율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참된 교육과 배움의 공간이 줄어듭니다. 고민하고 질문하고 사유하기보다는 더 빨리 답을 찾는 방법을 배웁니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 순간적인 처세술만이 난무합니다.


신앙의 영역까지 이러한 현상이 보입니다. 진득하게 말씀 앞에 기다리기보다, 재빨리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을 찾습니다. 자신에게 더 유익하고 편한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잠잠하게 잠겨있으면서 그분을 누리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강렬하게 찾고 울부짖는 매달리는 기도를 선호하는 듯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침묵의 영성, 사막의 영성, 기다림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참 어른이 절실합니다. 그럴듯하고 번지르르한 말만 하고 뒤에서는 탐욕을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믿음의 선배 말입니다.


사막의 교부와 교모는 '압바'(abba)와 '암마'(amma)로 불립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뜻하는 단어인데, 묘하게 우리의 말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더 친밀하게 느껴집니다. 이 책을 엮은 이덕주 교수는 교부와 교모를 한 마디로 정의합니다. '말씀에서 말씀으로' 산 사람들이라고요.


이들의 중심은 간단합니다. 오로지 주님과 가까이하고 싶은 열망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입니다. 그러한 질문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에 순수하게 순종합니다. '떠나라'라는 말씀을 따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훈련받는 곳은 대부분 광야나 사막입니다. 모세와 엘리야, 다윗과 예수님까지도 말입니다. 바울 또한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간 은둔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장소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사막의 교부와 교모는 이러한 깨달음 가운데 그들 또한 하나님 한 분만 바라고 그곳으로 갑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들에게 무의미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한 분이면 족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의 상황에서 하나님과의 더욱 풍성한 교제를 갈구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이덕주 교수가 엮어내고 해설한 이 책 『깨달음은 더디온다』는 속도와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들에게 매우 소중한 가르침을 줍니다. 참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아냈던 혹은 끊임없이 말씀대로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사막의 교부와 교모를 만납니다.


이 책은 사막의 교부와 교모들의 가르침을 20가지의 주제로 엮었습니다. 포기와 영적 훈련, 의식주와 기도생활, 노동과 시련, 죄의식과 순종 등 이 모든 주제들은 우리 삶에서 핵심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려 밀어냈던 것이었지만 실제로 우리 삶을 좌우하는 것들입니다.


다시금 우리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 섭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무릎 꿇습니다. 번잡스러운 세상을 뒤로하고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그 가운데 작은 깨달음들은 우리를 크게 요동치게 합니다. 더디지만 천천히 말씀대로 살아보고자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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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m******1 2024.03.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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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더디 온다
"깨달음은 더디 온다" 내용보기
‘터벅터벅’ 일주일에 4~5번은 점심시간에 1시간 정도 걷는다. 빌딩과 자동차를 배경 삼고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똑같은 거리, 장소를 지나가지만, 전혀 지겹지 않다. 오히려 매일 새로운 곳을 지나듯 한다. 익숙한 장소이지만 그 시간은 매일 새롭기 때문이다. 도시는 나에게 광야나 사막과 같은 곳이다. 도시의 광야 또는 도시의 사막이라고 할까? 삶의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기 때
"깨달음은 더디 온다" 내용보기

터벅터벅일주일에 4~5번은 점심시간에 1시간 정도 걷는다. 빌딩과 자동차를 배경 삼고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똑같은 거리, 장소를 지나가지만, 전혀 지겹지 않다. 오히려 매일 새로운 곳을 지나듯 한다. 익숙한 장소이지만 그 시간은 매일 새롭기 때문이다. 도시는 나에게 광야나 사막과 같은 곳이다. 도시의 광야 또는 도시의 사막이라고 할까? 삶의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광야 혹은 사막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위험한 곳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경험하는 장소이다. 그래서일까? 교부와 교모들은 익숙함을 버려두고 낯섦의 세계로 들어갔는지도. 기독교가 공인 되고 박해 시대를 지난 후에 교회는 외적으로 평화를 찾은 듯 보였지만 내적 갈등으로 교회의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사막을 들어가는 이들이 생겨난다.

 

깨달음은 더디 온다는 교부와 교모들이 사막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삶의 진한 향기를 풍긴다. 마치 스무 개의 다채로운 향기가 날려오는 듯하다. 이 향기는 오늘날에도 진하게 전해진다. 도시 공간에 머물러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을 추동하는 자기개발서류의 책이 아니라 사막 교부와 교모가 추구했던 사막 영성이 아닐까 싶다. 사막으로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사막 교부와 교모의 가르침을 가까이 할 수 있다. 도시 한 가운데서 사막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시의 광야 혹은 사막이 필요한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일상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시의 사막은 하나님과 은밀히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 공간의 출입문이 이 책이 되어 줄 수 있겠다 싶다.

 

급변하는 도시에 매몰되어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더디 온다.”라는 메시지가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사실 믿음도 더디오는 것이 아닌가. 벤딩머신처럼 뚝딱하는 신앙 없고, 깨달음도 없다. 도시의 익숙함은 좀 내버려 두고, 이 책을 통해 사막의 낯섦 속으로 걸어가 보자. 영적 순례의 길은 더디 걸어도 된다.

 
b******6 2022.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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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진도는 더디지만, 더딘 만큼 가치 있는 글들
"읽는 진도는 더디지만, 더딘 만큼 가치 있는 글들" 내용보기
사막의 교부와 교모들의 금언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형편과 도무지 맞지 않는 이야기로 나열된 듯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곤욕이 컸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힘겹게 더디게 읽혔던 이유는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격렬하게 이 글들을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읽는 진도는 더디지만, 더딘 만큼 가치 있는 글들" 내용보기

사막의 교부와 교모들의 금언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형편과 도무지 맞지 않는 이야기로 나열된 듯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곤욕이 컸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힘겹게 더디게 읽혔던 이유는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격렬하게 이 글들을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이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고 있는 삶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가르침을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그 가르침을 숙성시킨 사막의 교부와 교모들의 말이 순순히 받아들여질 리 만무했겠지요.

 

수도자들 중에는 산에 있으면서도 도시에 있는 것처럼 사는 이들이 많은데 이는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반면에 군중 속에 살면서도 홀로 있는 것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군중 속에 있어도 홀로 사는 것처럼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p184)라고 말했던 교모 신클레티카의 말처럼 시대의 문제가 아니고, 장소의 문제도 아닌 결국 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머물러 있음의 영성, 오직 하나님께만 초점 맞추는 삶에 전부를 드렸던 사막의 교부들과 교모들의 가르침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보다 빠르게 정보에 접근하고, 먼 곳도 과거보다 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신속성의 시대에 더디지만 바른 지식을 얻는, 천천히 다가가지만 정확한 곳으로 가는 법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사막의 교부들과 교모들은 우리에게 바른 길을 제시합니다. 그 길이 비록 더딜지라도 말이지요.

 

교부 시소에스의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계신 곳을 찾지 말고.”(p294)라는 말씀을 패러디 해서 이 수많은 영적 거장들의 가르침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게 되겠지요.

 

평안하십시오. 평안이 있는 곳을 찾지 말고.

인내하십시오. 봐 줄만한 대상을 골라 인내하려 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사랑할만한 대상을 찾아 사랑하려 하지 말고.

 

급변하는 시대 가운데 표류하는 나의 영성에 키잡이가 되어 주는 책이었습니다. 과속하지 않고 찬찬히 지금까지의 신앙의 여정을 되돌아보게 하는 깨달음은 더디 온다이 책을 수 많은 신앙의 동지들에게 권합니다. 반드시 경험하실 겁니다. ‘읽는 진도는 더디지만, 더딘 만큼 가치 있는 글들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o****8 2022.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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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을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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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교부는 영혼의 샘물이다. 문명과 과학의 발달을 통해 유토피아를 형성하려던 인류의 계획은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 하지만 과학문명을 벗어나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특히 대한민국은 ‘빨리빨리’ 문화를 만들어 냈던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을 불가피하게 요구했다. 한때 피곤한 도심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사찰에 들어가 심신을 가꾸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내용보기

사막 교부는 영혼의 샘물이다. 문명과 과학의 발달을 통해 유토피아를 형성하려던 인류의 계획은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 하지만 과학문명을 벗어나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특히 대한민국은 빨리빨리문화를 만들어 냈던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을 불가피하게 요구했다. 한때 피곤한 도심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사찰에 들어가 심신을 가꾸는 템플스테이가 유행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적지 않은 이들이 참가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수년 전부터 특이한 한국만의 명상이 시작되었는데 멍 때리기라는 것이다.

 

불교의 명상과도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면도 적지 않다. 방법은 간단하다. 숲 속에 들어가 아무 생각 없이 몇 분에서 몇 시간을 있는 것이다. 바라보는 것과 장소에 따라서 불멍’ ‘숲멍’ ‘물멍으로 불려진다. 멍 때리기는 특정한 형식이나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잠시나마 덜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적자생존의 환경이 요구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생각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다. 일종의 도피 또는 회피 일 수 있지만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 하기에 회복을 위한 잠깐의 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교회사를 가르쳐왔던 이덕주 교수는 은퇴 후 칩거(蟄居)하면서 그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다. 초대교회 교부들에게 주목한다. 교부들은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도심에서 활동하면서 말씀을 강해하고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정통을 세워나가 일반 교부(Church Father)가 있고,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사막이나 광야로 들어가 홀로 살아가는 사막 교부(Desert Father)들이 있다. 터툴리아누스나 크리소스토무스,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도심의 교부들이다. 사막 교부들은 안토니우스와 압바스 아르세니우스, 압바스 포에멘, 압바스 마카리우스 등이 있다. 여기서 압바스는 아빠를 뜻하는 존칭어이다. 사막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이들은 영적인 아버지를 압바, 어머니를 암마로 불렀다. 남성을 교부로 부르며 여성을 교모로 부른다.

 

그런데 사막 교부들은 왜 생겨난 것일까? 3세기부터 5세기까지를 사막 교부들이 활동한 시기로 본다. 이 시기는 교회가 내외적으로 파란만장한 시기이다. 내부적으로 수많은 이단들이 들끓으면서 올바른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치열한 교리 전쟁이 일어났고, 외부적으론 로마의 핍박이 몰려 있는 시기다. 콘스탄티노스 1세기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다.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박해를 벗어나 주류 종교로 인정받는 과정이 이 시기이다.

 

하지만 사막 교부는 단순히 핍박을 위한 도피가 아니었다. 그들의 시기가 5세기까지 이어진 것을 볼 때 기독교가 로마의 중심에 자리하고 박해받는 자리에 있을 때도 사막 교부들은 사회로 돌아오지 않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막 교부들을 찾아갔다. 이러한 상황들은 사막교부들이 기존의 신앙 방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 때문임을 보여준다. 분주하고 어지러운 삶을 떠나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h****i 2022.02.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