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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이제야 읽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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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나는 그의 책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작년에는 도리스 레싱이었는데, 몇 권 읽지 못하고 멈추었다. 올해는 좀 다르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첫번째로 고른 책은 '황금 물고기'다. 대표작이라는 사실도 작용했지만, 그보다는 프랑스에서도 베스트셀러 1위라는 책 소개에 넘어갔다. 노벨문학상 받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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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나는 그의 책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작년에는 도리스 레싱이었는데, 몇 권 읽지 못하고 멈추었다. 올해는 좀 다르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첫번째로 고른 책은 '황금 물고기'다. 대표작이라는 사실도 작용했지만, 그보다는 프랑스에서도 베스트셀러 1위라는 책 소개에 넘어갔다. 노벨문학상 받은 작가의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대중적인 책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에, 나도 무리없이 읽겠지, 라는 생각에 골랐다.

 

 

책을 받은 순간, 조금씩, 조금씩, 멈추지 않고 읽다보니 어느덧 토요일 저녁시간이었다. 이상했다. 기분이 오묘했다. 마치 황홀한 가을 노을을 보고 난 것 같은 기분에 나는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뭔가 아름다운 선율을 들은 것 같고 투명한 장막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이상한 느낌, 여운, 그것에 나는 몸을 떨었다.

 

 

후. 이랬군. 이래서였군. 이래서 대단하다고 하는 거였군.

 

 

어릴 적에 인신매매되어 어딘가로 팔린 소녀, 그녀는 자신을 모른다.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채 누군가의 소유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자유를 갈망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갈구하는 그녀.

세상은 그녀를 구속하려 했고 그때마다 그녀는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녀의 삶은 그렇게 떠돌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럼에도 그녀는, 그 숱한 절망과 암울함 속에서도 고개를 숙이기는 커녕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하려 한다.

 

 

안되겠다. 글로 쓰려니 참 애매하다.

소설의 여운을, 특히 마지막에 내 온 몸을 떨게 만든 그 감동적인 어느 것을 내가 죽이는 것 같다. 그저 나는 감정에 충실하게 단순하게 할 말만 해야겠다.

 

 

올해 노벨문학상 덕분에 좋은 소설 읽었다,
'황금 물고기'는 과연 걸작이다,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이것만 쓰면 될 것 같다. 세줄이면 충분할 듯.

b****n 2008.10.11.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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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로의 회귀, 검은 마법에 매혹된다!
"순수로의 회귀, 검은 마법에 매혹된다!" 내용보기
문명의 야만성에 대한 고발이라고 하여야 할까? 순수함에로의 귀환이라고 하여야 할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세상의 추악함이 이 보다 절실하게 표현 될 수 있을까? 어린 소녀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무차별적 위협과 억압, 강제, 추행은 끊임없는 도피를 종용한다. 이러한 지속적이고 극한적 삶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내 존재를 계속 유지해 낼 수 있을까? 난, 검둥이 계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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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야만성에 대한 고발이라고 하여야 할까? 순수함에로의 귀환이라고 하여야 할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세상의 추악함이 이 보다 절실하게 표현 될 수 있을까?

어린 소녀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무차별적 위협과 억압, 강제, 추행은 끊임없는 도피를 종용한다. 이러한 지속적이고 극한적 삶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내 존재를 계속 유지해 낼 수 있을까?

난, 검둥이 계집애, 내 부모가 누군지,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 내가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단지, 다섯 살 인지 여섯 살 무렵의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자루에 갇혀 낯선 곳에 옮겨졌다는 어렴풋한 기억만 있을 뿐이다.

할머니보다는 마님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랄라 아스마’, 나의 주인인 노파는 나를 ‘라일라’로 부른다. 라일라는 몸종이자 벗이자 손녀처럼 키워진다. 그러나 라일라의 어린 몸을 탐하려는 노파의 아들과 폭력과 욕설의 겁박으로 위협하는 며느리가 있는 이 끔직한 세계는 노파의 죽음을 계기로 탈출로 이어지고, 작은 인연만이 존재하던 거리의 여자들, 공주님들이 사는 곳으로 도피한다. 그녀에게 열려 있는 세상이란 다시금 삶의 건강한 기회가 기다리는 땅과는 너무나 멀다.

노파의 며느리 ‘조라’의 추적으로 공주님들과의 그나마 자유로운 세계는 사라지고, 조라의 끔직한 폭압에 묻힌 구속의 노예로서 살아간다. 잠시의 자유의 기회처럼 보인 백인가정으로의 가정부로 대여되지만, 이곳에도 강자인 백인남자의 성적 탐욕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세상은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 벅찬 가혹한 환경일 뿐이다. 그녀의 생존적 도피는 의지가 아니라 그저 열려 있는 방향일 뿐, 선택이 랄 수 없다. 강자들의 문명 넘어 강을 건너면 소외된 사람들의 열악한 환경이 펼쳐진다. 문명의 야만적 질서가 뿔뿔이 내몬 거리의 공주, 그녀를 보살펴 주던 언니들의 만남으로 작은 위안이 된다. 그곳에는 삶이 없다. 질병과 가난과 죽음만이 도사리는 그 열악한 곳으로부터, 조라의 위협적 추적이 있는 곳을 떠나야한다. “호시탐탐 노리고 뒤쫓고 그물을 치는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라일라의 성장한 의식은 프랑스로의 밀입국을 결정하고, 바다를 건너, 에스파니아의 험한 산맥을 넘어, 꿈의 도시 파리로 들어가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이방인으로서의 지위는 또 다른 소외와 불안의 세상 이상이 아니다. 어느덧 성숙한 여성의 몸으로 거주증을 획득하기 위해 복싱에 몰두하는 연인에게 몸을 열지만, 그녀의 세계는 냉정한 현실사회의 이해와 아프리카 초원과 강을 내달리는 근원으로의 회기를 꿈꾼다. 거주증 없는 불완전한 지위의 여린 흑인 소녀에게 내민 손길은 여지없이 추악한 탐욕만을 드러내고,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을 전해주던, 그리고 세네갈의 강변 과 초원을 이야기하던 하킴의 할아버지 엘하즈는 그녀에게 죽은 손녀 마리마의 여권을 남긴다.

이 인간으로서 최초의 실존적 지위가 주어지는 행위는 자못 가슴을 에리듯 파고든다. 어디에도 그녀가 살아갈 바다가 없다. 라일라는 자신을 거친 물살에 이리저리 표류하는 한 마리의 가녀린 물고기라 생각한다. 그녀의 표류는 마리마란 실존의 존재가 되어 미국으로 표류한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그녀의 노래는 저 멀리 검은 자루에 실려 떠나기 전 “영겁의 시간 전에”,“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울음소리” 들리던 아득한 세계로 향한다.

“나는 당신에게 주문을 걸었네, 검은색은 내 진정한 연인의 머리카락 색이네.”

서구의 감추어진 사악한 탐욕과 위선, 문명이란 얼굴의 야만성, 세상의 이중적이고 기만적인 모습, 세계화에 감추어진 인종과 지역의 소외라는 얼굴이 아프리카의 당당한 정체성으로 환원되고, 그 아스라한 태고의 소리들이 있는 곳, 그녀가 떠내려 온 검은 대륙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황폐해진 소녀의 의식은 평온을 찾는다.

잔잔한 서정적 운율이 내내 감아 도는 듯 한 포근한 감성이 내내 맴도는 작품이다. 다분히 저항적이고, 문명의 어두운 왜곡을 질타하고 있지만, 순수함으로의 회귀로 안내되는 여정에서 풍요로운 아름다움, 라일라의 밤!, 그 검은 마법에 매혹된다. 탁월한 문학이다. 소설이 빚어낼 수 있는 선의 극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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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내용보기
이 책은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의 장편소설이다. 영국계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르 클레지오는 열렬한 여행가로도 잘 알려져 있어 세계 여러 나라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었다. 이러한 그의 삶은 이책에서 주인공 라일라를 통하여 잘 드러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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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의 장편소설이다.

영국계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르 클레지오는 열렬한 여행가로도 잘 알려져 있어 세계 여러 나라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었다.

이러한 그의 삶은 이책에서 주인공 라일라를 통하여 잘 드러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라일라는 예닐곱 살 무렵에 인신 매매범에게 유괴되어 아랍 지역의 독거 노인 랄라 아스마라는 여인에게 팔려간다.

자신의 진짜 이름과 자신을 낳아준 엄마 아빠의 이름, 태어난 장소조차 알지 못한 채 밤에 팔려왔다는 이유로 '밤'이라는 뜻의 라일라로 명명된 한 흑인 소녀의 이야기.

라일라는 랄라 아스마의 저택에서 온갖 집안 살림을 하며 늙은 주인을 돌본다.

랄라 아스마의 아들 아벨과 며느리 조라는 가끔씩 찾아와 집안의 동정을 살피곤 하였는데, 어느 날 조라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외출을 하였을 때 아벨은 라일라를 겁탈하려 한다.  랄라 아스마가 병으로 쓰러지자 외출을 극도로 꺼려하던 라일라는 의사를 찾으러 달려나가지만 의사는 찾지 못하고 낡은 여인숙에서 산파로 일하는 자밀라를 만난다.  결국 랄라 아스마가 죽자 그녀를 돌보지 못했다는 불안감에 도망친다.

라일라는 자밀라가 묵고있던 여인숙에서 몸을 파는 여인들과 자밀라의 잔심부름을 하며 세상을 배운다.  랄라 아스마의 집에서 프랑스어와 에스파니아어로 읽고 쓰는 법, 암산과 수학, 종교를 배우며 오직 집 안에서 절제된 삶을 살았던 라일라는 그와는 너무나 다른 낡은 여인숙에서 매춘부들과 어울려 도둑질을 일삼으며 세상의 규율과 절제로부터 멀어진다.  라일라는 결국 조라가 보낸 경찰에 의해 그녀의 집으로 끌려가게 되고 조라의 가혹한 학대 속에서 집안일을 하게 된다.  조라의 집을 드나들던 들라예 부부의 요청으로 그들 부부의 집안일까지 하게 된 라일라는 사진사였던 들라예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그후 조라가 라일라를 결혼시키려 하자 라일라는 그녀의 집을 빠져나와 여인숙을 찾지만 여인숙은 이미 폐쇄되고 그곳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라일라는 여인숙에서 천막촌으로 이사한 타가디르와 후리야를 어렵게 찾아간다.  당뇨병으로 다리가 썩어가는 타가디르와 세탁소에서 다림질과 바느질로 생활하는 후리야.  라일라는 도서관에서 공부도 하는 한편 근근히 돈을 모아 후리야와 함께 병든 타가디르를 뒤로 하고 프랑스 파리로 밀입국 한다.

불법 밀입국자의 신분으로 만삭의 후리야를 돌보는 라일라는 지하철 역에서 노래하는 집시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같은 신분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셋방에서의 작은 파티에 위안을 얻는다.  그곳에서 만난 권투선수 노노에게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낀 라일라는 지하 셋방에서 동거하며 잠시의 평화를 얻지만 그것도 잠시, 한 여의사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중 성폭행을 당하고, 다시 거리로 나선 라일라는 거리의 가수 시몬느로부터 노래와 피아노를 배운다.  노노의 친구 하킴으로부터 자유 응시생 자격으로 대학 입학 시험을 권유받은 라일라는 그의 할아버지 엘 하즈를 만나 그로부터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낀다.  그러나 엘 하즈가 죽고 그에게서 죽은 손녀의 여권과 신분을 유산으로 받게된다.  믿었던 엘 하즈를 잃은 라일라는 집시들과 어울리던 주아이코와 함께 파리를 떠나 니스로 간다.  니스의 한 구제소에서 생활하며 쓰레기더미 속에서 그곳의 아이들과 버려진 옷과 책을 주으며 지내던 라일라는 호텔에서 재즈 가수로 일하던 새라에게서 시몬느를 떠올린다.

라일라는 프랑스를 떠나 새라가 사는 보스턴으로 향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새라로부터 독립한 라일라는 우연한 기회에 피아노 연주자로 일하다가 음반 제작업자 르로이씨와 계약하고 음반 취입을 한다.

그 무렵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장 빌랑을 만났지만 그는 이미 애인이 있었고, 그의 애인과 공유해야만 하는 장 빌랑에게 염증을 느낀 라일라는 가수가 꿈인 마약 밀매업자 벨라를 만난다.  장 빌랑의 아이를 임신한 라일라는 벨라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가던 중 유산을 하고 병원에 입원한다.  벨라는 그녀를 두고 떠나고 라일라는 유산과 함께 남아있던 한쪽 귀의 청력마저 상실한다.

그녀의 보호자를 찾던 병원에서 음반업자 르로이씨에게 연락이 닿았고, 르로이씨는 라일라에게 <니스 재즈 페스티벌> 초청장을 건넨다.

다시 돌아온 니스에서 지난 추억을 떠올리던 라일라는 주최측에게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녀가 태어난 아프리카로 향한다.

라일라는 그곳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

빌랄 족의 여인으로 태어난 부족의 시대에서 길고 험난했던 세파를 넘고 넘은 황금 물고기는 원점에서 장 빌랑을 기다리는 사랑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햇빛이 내리 쬐는 백인의 사회에서 까만 피부의 라일라는 혼탁한 강물을 힘겹게 헤엄치는 여린 물고기, 황금빛 비늘로 어부의 눈길을 사로잡는 외로운 황금 물고기였다.  곳곳에서 조여드는 그물과 날카로운 작살을 온몸으로 피하며 찢기고 피흘리는 기나 긴 여정, 작가는 청력을 모두 잃은 그녀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방향을 잃어버릴 듯하면 음들이 저절로 내게서, 내 입술과 손과 아랫배에서 솟아나왔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피아노 안에 들어 있었다.  입술은 벌어졌고, 배와 목과 다리에서 울림이 느껴졌으며, 마치 바깥에서 햇빛을 받으며 걷고 있는 것 같은, 달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나는 음악을 귀가 아니라 내 온몸으로 듣고 있었으며, 전율이 나를 감싸고, 살갗을 자극하고, 신경과 뼈까지 아프도록 파고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들을 수 없는 음들이 내 손가락 속으로 거슬러올라가, 나의 피와 나의 숨결, 그리고 얼굴과 등에서 흘러내리는 땀과 한데 섞였다.(P.281)"

 

작가는 주인공의 처절한 삶을 잔인하리만치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어떠한 연민이나 희망, 잠시의 행복도 허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 독자들이 분노와 함께 견디도록 요구한다.  고난과 역경의 긴 터널을 독자들 스스로 걸어가도록 작가는 방관자로서 숨어버린다.

라일라가 그녀가 태어난 원점으로 회귀하였을 때 독자들은 비로소 안도하고,손가락마저 까딱할 수 없는 평화를 맛보게 된다.

 

 

s*****l 2010.02.02. 신고 공감 2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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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으로 아름다운 한 소녀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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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소설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라는 르 클레지오는 그 명성이 전혀 아깝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말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그는 최고의 소설가다. 미세하고 유려한 그의 문장은 한 줄 한 줄이 감탄으로 치장하기에 적절하다. <황금물고기>는 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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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소설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라는 르 클레지오는 그 명성이 전혀 아깝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말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그는 최고의 소설가다. 미세하고 유려한 그의 문장은 한 줄 한 줄이 감탄으로 치장하기에 적절하다. <황금물고기>는 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근원에 대해 탐색하고 있는 소설이다. '우리는 실상 모두 예술가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대답과 함께 내어놓고 있는 것이다. 삶의 진실을 찾는 일이 예술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모두 예술가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고, 그 근원을 찾으려고 한다. 소설가인 최수철은 이를 ‘표류, 혹은 근원에로의 항해’라고 표현했다. 라일라의 항해가 먿는 장면은 이러하다.

저 멀리, 길이 끝나는 곳, 마지막 오두막집 앞에, 사막이 시작되는 그곳에 검은 옷을 입은 한 노파가 텅 빈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등지고 등받이 없는 걸상에 앉아 있다. 천으로 가리지 않은 그녀의 얼굴은 불에 탄 가죽처럼 까맣고 주름살 투성이이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지 않고 자기 쪽으로 다가가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녀의 눈빛은 돌처럼 냉혹하다. 그녀는 장에게 줄 암몬조개 화석만큼이나 오래되고 단단해 보인다. 그녀는 진정한 힐랄 족, 초승달 부족의 여인이다.

(중략)

더 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울음소리. 십오 년 전에, 영겁의 시간 전에, 물 때문에 생긴 분쟁, 우물을 놓고 벌인 싸움, 복수를 위하여 힐랄 부족의 적인 크라우이가 부족의 누군가가 나를 유괴해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中> 

  문명과 자연의 사이에서 생명력이 강하고 원시적인 생동감을 간직한 주인공 라일라가 결국 고향에 닿는 장면이다. 이곳은 물리적 고향인 동시에 근원적 고향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는 자유로우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근원을 찾은 사람은 그 뿌리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자유’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갈망하는 것이 ‘자유’아니던가. 어쩌면 그동안 우리들은 근원에서 도피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가. 이러한 화해의 손길은 르 클레지오의 여러 문장 속에 스며들어 있다. 유태인과 아랍-아프리카계의 화해, 문명과 자연의 화해, 근원과 자유의 화해. 이 따듯한 손길이 자연으로의 회귀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황금물고기’는 그래서 물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역학 제 2법칙은 닫힌계에서 총 엔트로피(무질서도)의 변화는 항상 증가하거나 일정하며 절대로 감소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에너지 전달에는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들은 가역과정이 아니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있지만, 생명은 항상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살아왔다. 그것은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문명은 자연에 거슬러 조직적으로 발전하고 연어는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른다. 이것이 생명의 위대성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항상 좋은 쪽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문명을 만들면서 자연을 무수히 파괴해 왔으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원시적인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르 클레지오는 이것을 경계하는 동시에, 그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근원에로의 회귀를 도모하고 있다. 이것은 이 소설이 그저 문명과 자연의 대립이라는 일차적 화두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히려 그는 더욱 커다란 자연의 포용성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 주인공인 라일라는 그래서 에코페미니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가 늘상 생각해왔던 자연의 여성적인 이미지, 여신-가이아(Gaia)-의 이미지가 투영된 것이다. '라일라'라는 거대한 생태계가 문명의 탄압을 받아 시련을 겪게 되지만, 결국 그 둘은 땔 수없는 관계이며 이들의 어울림과 균형을 통해 근원으로부터 통합된다.

  르 클레지오는 이러한 거대한 주제를 한 소녀의 성장기를 통해 아름답게 완성해냈다. 이 소설엔 프랑스의 역사가 들어있고, 또한 무수한 이민자들의 아픔과 현실이 또한 들어가 있다. 라일라가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 랄라 아스마와 조라, 타가디르, 후리야, 노노, 하킴, 엘하즈, 주아니코, 시몬느 등의 삶은 매우 현실적이다. 우리가 이 소설 속의 이야기를 실제로 받아들인다 해도 무방할 만큼, 묘사는 치밀하고 캐릭터는 강렬하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사건은 물론 그들이 처한 상황들도 우리로 하여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소설은 이 불가해한 삶이 아름답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그가 써낸 눈부신 문장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이토록 아름다운 소설은 흔치 않을 것이다.

 

 

s********d 2008.10.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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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물 속에서 찾아나가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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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어릴때 납치되어 자기의 정체성을 모르는채 성장해 가는 한 소녀-여성의 이야기. 예상할 수 있듯이 당연히 고생스러운 삶을 살고, 게다가 아프리카인이라는 현대의 인종적인 약점까지 있었으니... 주인공 라일라는 그럼에도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정체하지 않고 계속 이동을 한다. 유목?   작품의 끄트머리쯤에서, 이 소설이 '산조'와 구조가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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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어릴때 납치되어 자기의 정체성을 모르는채 성장해 가는 한 소녀-여성의 이야기. 예상할 수 있듯이 당연히 고생스러운 삶을 살고, 게다가 아프리카인이라는 현대의 인종적인 약점까지 있었으니... 주인공 라일라는 그럼에도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정체하지 않고 계속 이동을 한다. 유목?

 

작품의 끄트머리쯤에서, 이 소설이 '산조'와 구조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진양에서 시작해서 자진모리-휘모리로 끝나는. 뭐, 숨가쁠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아-아동때의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상처받고 견뎌나가는 호흡에 비해, 사람과 사회에 더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 스스로를 추스려나가, 결국 막연한 정착지를 찾게되는 후반으로 갈수록 잰발걸음이 재촉된다.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겠고, 현대인의 보편적 운명일 수도 있겠다.

 

다시 유목... 물길을 따르는 유목. 읽는 이의 마음을 마지막에 쓰다듬어 주는 마지막 말 "잊지 않기 위하여"... 그가 겪었던 그리 길지도 그렇다고 짧다고도 할 수 없는 인생, 그것을 잊지 않으려 할 것이고, 과정에 지켜왔던 자기 자신 그리고 멈추지 않고 쫓아야 하는 기원(그것은 결국 미래인 것), 바로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잠시의 안식과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는 말로 들렸다. 과거도 어둡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e****s 2007.10.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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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순수했던 영혼, 라일라
"완벽하게 순수했던 영혼, 라일라" 내용보기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그때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너무 어렸던데다가 그 후에 살아온 모든 나날이 그 기억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7p)"   거대한 서사, <황금 물고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라일라'라는 한 흑인여성의 가혹했던, 어쩌면 생의 끝자락에 올 축복이었을 그 일생의 시작은 이 작은 고백에서부터다.   유괴당해 한 부잣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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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그때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너무 어렸던데다가 그 후에 살아온 모든 나날이 그 기억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7p)"

 

거대한 서사, <황금 물고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라일라'라는 한 흑인여성의 가혹했던, 어쩌면 생의 끝자락에 올 축복이었을 그 일생의 시작은 이 작은 고백에서부터다.

 

유괴당해 한 부잣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라일라, 열 살 남짓한 그녀가 가진 것은 완벽한 순수함(무지)와 세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다. 비록 주종관계였지만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던 할머니 '랄라 아스마'가 죽자, 라일라는 자신을 음해하려는 그의 며느리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결국 탈출에 성공한다. 그로부터 열 여덟 차례에 걸친, 평생의 방황과 시련이 계속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처음 라일라의 세상은 거짓말과 도둑질로 시작되었다. 그 다음은 지식과 교육, 그 다음은 춤과 노래와 성으로 이루어진 쾌락.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그렇게 문명과 인간을 구성하는 여러 특징을 알아가며 라일라는 느낀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한 건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그것을 사람들은 '자유'라고 부른다는 것을.

 

라일라의 자유에 대한 상징은 대부분 여성성으로 드러나는데, 라일라가 느끼는 모성애와 출산의 성스러움이 여성성의 긍정적인 발현이라면, 라일라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수없는 남성들의 성적 학대는 상대적인 위협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런 의미는 독자 각자의 몫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느꼈지만, 내가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다른 의미들을 각각의 독자들이 읽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이 신화적인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마지막을 읽으면서 나 역시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인상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떠나기 전에 나는 바닷속의 돌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노파의 손을 만졌다. 단 한 번만, 살짝, 잊지 않기 위하여. (295p)"

 

라일라라는 황금 물고기는 어쩌면 그 자신은 그냥 대단찮은 물고기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을 겪으면서 그녀가 느꼈던 세상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바다가 아니었을까.

 

절망적으로 아름다웠던 그녀의 비늘에 나의 숨결도 섞여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때로는 거짓말과 위선일지라도, 그녀는 울고 소리지르고 껴안으며 언젠가, 어느 날에 나를 스쳐갈 것이다. 한 마리의 황금 물고기처럼.

b*********o 2008.10.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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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바다를 헤엄치는...황금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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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를 읽었다. 읽으면서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백인 작가가 쓴 흑인을 주인공으로한 책을 처음으로 읽어봤기 때문이다. 흑인 주인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도망나와 프랑스로 갔고 그곳에서 정착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야기 자체는 아름다운, 그러나 불운했던 어린시절을 거친 라일라의 인생 역정 극복기의 형식으로 펼쳐진다. 그 어려운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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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를 읽었다.

읽으면서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백인 작가가 쓴 흑인을 주인공으로한 책을 처음으로 읽어봤기 때문이다.

흑인 주인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도망나와 프랑스로 갔고 그곳에서 정착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야기 자체는 아름다운, 그러나 불운했던 어린시절을 거친 라일라의 인생 역정 극복기의 형식으로 펼쳐진다. 그 어려운 시간을 거치고 그녀가 결국 인생과 마음의 안정을 찾는 순간은 그녀의 뿌리인 그곳에 도착했을 때.

 

어찌보면 너무나 뻔한 회귀본능 혹은 뿌리찾기 이야기 같은데,

사실 결국은 그런 보편적인 코드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작가가 풀어내는 배경이 다른 문화들의 융합이었다. 아프리카의 아랍 문화가 묘사되고 오히려 프랑스에서 아프리카적 문화가 보이게 된다. 주인공은 자주 빈민촌에 살지만 중산층과의 교류가 있으며 언어에 능하고 음악적 재능도 있다. 그러니까 매우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라일라는 자신의 심장이 시키는대로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넓은 세계 곳곳을 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책 속의 라일라는 자주 자신의 인생이 남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왔다고 했다.

남들은 자주 자신을 잡을 그물을 치고 그녀는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같다고.

그래서 황금물고기였겠지. 라일라는 그렇게 빛나고 아름다운 존재였으니까.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런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광활한 바다를 헤엄쳐다니는 물고기 같은 존재들이다.

누군가 쳐놓은 그물에 걸릴 수도 있고,

일생을 자유롭게 바다를 유영하며 지낼 수도 있고,

상어 같은 물고기에 잡아먹힐 수도 있고....

등등.

 

흐흐. 나도 라일라처럼, 넓은 세계를 다양하게 부대끼며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고 싶다. 그게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가 아닐까.

s******y 2008.11.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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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찾아가는 머나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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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는 이유는 앞으로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출발음일까 아니면 이 험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일까. 그도 아니면 주위 사람들의 환호에 대한 최소한의 표현일까. 내가 겪은 일임에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궁금해진다. 라일라 역시 인지하지 못한 채 (혹은 너무 놀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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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는 이유는 앞으로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출발음일까 아니면 이 험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일까. 그도 아니면 주위 사람들의 환호에 대한 최소한의 표현일까. 내가 겪은 일임에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궁금해진다. 라일라 역시 인지하지 못한 채 (혹은 너무 놀라 그 순간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스마 할머니 집으로 팔려온다. 그녀의 인생 출발점은 바로 거기부터 시작 된 것이다.

 

인생이란 때론 자신의 선택과 무관한 길로 가버릴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반대편 차선의 음주운전자가 내 차를 들이받는 순간처럼 순식간에 너무나 불현듯 인생을 뒤바꿔 버리는 일들. 하지만 그 후의 선택은 그 자신의 일이다. 그렇기에 삶은 정답도 오답도 없다고 하는 것이겠지..

 

한 곳에 뿌리박지 못하는 고단함. 왜 하필 그녀(들)일까? 그것이 너무 뻔한 피부색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가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났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캄보디아 어린 소녀들은 가난에 못 이겨 몇 푼의 돈에 팔려가고, 인도의 많은 여성들은 결혼지참금 때문에 모진 시집살이와 학대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가 사회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명성을 떨쳐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당선됐더라도 그녀들의 삶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변화가 생긴다면 기쁜 일이겠지만..)

 

자연스레 내 삶을 생각해보게 된다. 비교우위에 있어 행복함을 느끼는 일 따위 정말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선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이 고마웠다. 다만 황금 물고기로 변신할 수 있느냐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로 살아갈 것이냐 역시 내 선택에 달렸다는 부담감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넓게 생각해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의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래본다. 세상의 반인 여성들이 조금 더 행복하다면 결국 세상이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라서 부담스럽게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부분 공감(혹은 분노하며)하며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남성임에도 여성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역시 대가는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일까? 그의 다른 작품도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

d*******7 2008.11.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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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을 향한 표류... 우리 모두 황금 물고기가 될 수 있기를
"근원을 향한 표류... 우리 모두 황금 물고기가 될 수 있기를" 내용보기
" 나는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처럼,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사물들 사이를 누바며 살아가고 싶었다. " p117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의 대표작 "황금 물고기"를 집어 들었다. 예상보다 얇고 가벼웠으며 손 안에 두툼하니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읽기 전부터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단권으로, 이정도로 얇은 책은 도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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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처럼,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사물들 사이를 누바며 살아가고 싶었다. " p117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의 대표작 "황금 물고기"를 집어 들었다. 예상보다 얇고 가벼웠으며 손 안에 두툼하니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읽기 전부터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단권으로, 이정도로 얇은 책은 도무지 구미가 당기지 않기 때문이었으나, 재작년 이맘 때 읽었던  주제 사라미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떠올리며 어느 정도의 감동을 보증받은 셈 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였다.

 언어 과외 선생님 처럼 말하자면 이야기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인 한 흑인 소녀의 아주 어린 시절에서부터 그녀의 눈가에 주름이 내려 앉기 시작할 즈음 까지 끊이지 않는 그녀의 '누빔'을 적어내려 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장의 마지막을 덮은 후 나는 소설이 얇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두꺼웠더라면,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많이 담아 냈더라면 특유의 담담함은 간 곳 없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분량을 '예술적'으로 맞추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300페이지 남짓의 짧은 장편소설이지만,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여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인 라일라 뿐이다. 이유는? '그들이 그녀를 떠나 갔거나 혹은 그녀가 그들에게서 도망쳐왔거나...' 라일라는 끝없이 도망친다. 처음에는 조라와 같은 여자에게 자신의 일생을 내어 맡기고 싶지 않아서, 혹은 나쁜 할망구의 노리개가 되고 싶지 않아서라는 단순한 이유라고 생각 하였으나 그녀는 그녀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던 노노에게서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이유로 어느날엔가 인사도 없이 떠나 버리는 것을 보며 우리는 그녀의 방황에도 궁극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의 대부분은 그녀가 머무르고 또 떠나가는 장소들과 인물들로 채워진다. 짧은 소설이지만 중반 그 이후부터는 너무 많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머릿 속이 혼란 스러워 진다. 나 뿐만이 아니라 그녀도 그러 하였을 것이다.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을 기억해내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그들은 서로 달랐지만 결코 하나 같았다. 그녀를 곁에 두려 하였던 것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추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분에 옮겨 심어 그녀의 뿌리과 줄기 그리고 잎사귀를 마르게 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 소설의 치명적 맹점이라면, 그리고 동시에 가장 큰 장점 이라면 완벽히 주인공의 관점에서 서술되었고 그리고 그녀의 관점이라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독특한 사고방식에 기인하고 있으며, 그녀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그녀의 관점에서 재해석 된 상태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소설은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그 후로 몇년이 지나왔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호의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주로 책을 읽으면 서술자의 관점을 체득하여 이야기를 따라 흘러가게 된다. 이를 위해 작가들은 은연중에 - 혹은 드러내놓고 - 관점을 설명하거나 혹은 대화 중에 그것을 밝혀둔다. 이 것이 작가와 독자 간의 암묵적 '끈'인 것이다. 나는 이것이 쉬운 글로 쓰여진 이 이야기를 어렵게 느껴지게 만드는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쏜살 같이 흘러간 그녀의 표류기는 오른 손에 몇 장의 책장이 남겨지지 않았을 때 쯔음 마무리 된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녀에게 완벽히 체화될 수 없어서 괴로웠던 나는 지하철 2호선 안에서 마지막 석 장을 넘겨내며 온몸이 전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르 클레지오는 이런 훌륭한 결말을 위해 많은 이야기를 펼쳐 내었던 것이다. 그 수 많은 이야기를...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본 소설들의 결말 중 가장 완벽했다.

 

 이 곳이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 하늘의 정점에서 쏟아져내리는 햇살에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이고, 거리는 텅 비어 있다. 햇살에 눈이 부셔 눈물이 고인다. 뜨거운 바람이 벽을 타고 먼지를 날린다. 바람과 햇살을 견뎌내기 위해 나는 네모난 커다란 천을 사서 이곳 여인들처럼 온몸을 감싸고 틈을 만들어 눈만 내놓았다.─ 떠나기 전에 나는 바닷 속의 돌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노파의 손을 만졌다. 단 한번만, 살짝, 잊지 않기 위하여

 

백인남성인 작가가 흑인 소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하였다는 것은 굉장히 놀랄만한 일이다. 또한 현실의 세계와 의식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소설로 재구성 해 나가는 짜임새 또한 눈여겨 볼만 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소설을 읽는 내내 라일라는 방향을 두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는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녀의 의식적인 표류는 자신의 근원에 도달하기 위한 항해였음을 깨닫게 된다.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 진정한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근원적 상태에의 도달을 위한 표류...

 나는 우리의 인생이 매순간 새로워져서 꿈꾸는 황금 물고기와 같은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h*****0 2008.12.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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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poisson 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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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은 누구에게 왜 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황금구슬'과 닮아 있고, 와리스 디리의 '사막의 꽃'이라는 에세이와도 닮아 있지만, 기본적 골격은  시드니 셀던의 작품들과 비슷하다.     기구한 운명을 갖고 태어나서 찍싸게 고생하다가, 얼굴이 예뻐서..이래저래 굶어죽지 않고 살아간다. 어찌나 잘났는지, 문학도 잘 하고..한 번 배운 피아노도 열라 잘 치고..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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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 문학상은 누구에게 왜 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황금구슬'과 닮아 있고, 와리스 디리의 '사막의 꽃'이라는 에세이와도 닮아 있지만,

기본적 골격은  시드니 셀던의 작품들과 비슷하다.

  

 기구한 운명을 갖고 태어나서 찍싸게 고생하다가, 얼굴이 예뻐서..이래저래 굶어죽지 않고 살아간다. 어찌나 잘났는지, 문학도 잘 하고..한 번 배운 피아노도 열라 잘 치고..노래를 불렀다하면 영혼의 노래란다.

 

 빠리의 시내에 돌아다니는, 각종 외국 이방인에 대한 시선이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바뀔까.과연?

 똘로랑스 어쩌구 하면서도, 은근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는 바로 프랑스이다.

 얘네는 아프리카를 어떤 신비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나보다.  맹목적인 일본 사랑(?)처럼 말이다.

 

 어디서 본 듯한 스토리가..끝날때까지 거슬렸기 때문에, 책을 덮고 나서 후련했다.

책 내용은 그저 그런데, 그 와중에 뭔가 뽑아낸듯한 옮긴이의 말이 놀랍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는데, 상을 받건 말건 나한테 르 끌레지오는 아웃이다. 영.원.히. 쳇!

YES마니아 : 로얄 c******m 2009.10.26. 신고 공감 1 댓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