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91%
  • 리뷰 총점8 9%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10.0
  • 30대 10.0
  • 40대 1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제3의 신
"제3의 신" 내용보기
제3의 신   이 책의 서두, 도발적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부모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로 <서문>을 마무리한다.   신은 우리 집에 없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처럼 언제나 우리의 주위를 맴도는 위험이기는 했다. 부모님은 그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노력은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했다. (16쪽)   그러니 신을 집에
"제3의 신" 내용보기

3의 신

 

이 책의 서두, 도발적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부모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로 서문을 마무리한다.

 

신은 우리 집에 없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처럼 언제나 우리의 주위를 맴도는 위험이기는 했다. 부모님은 그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노력은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했다. (16)

 

그러니 신을 집에 들이지 않으려는 부모의 노력과 신의 위험성으로부터 저자를 지키려는 부모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고, 이 책은 그러한 부모의 신관에서 벗어난 저자의 사상 투쟁기이다.

 

제목이 말하는 바, 3의 신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에 앞서 201610다시 태어난 이교도의 고백(Confessions of a Born-Again Pagan)이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비록 아브라함의 종교가 가리키는 창조주 유일신은 아니지만 영원불멸의 존재인 세계 그 자체를 하나의 신으로 받아들이게 된 자신만의 신학을 기술한 내용이었다. (인터넷 책 소개에서)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교가 가르키는 창조주가 첫 번째 신이라면 그가 생각하는 신은 창조주 신이 아닌 영원불멸의 존재인 세계 그 자체가 신이며, 그게 제 3의 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신에 대한 자세는 이것이다.

 

믿지는 않는다 해도 신은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려면 신의 올바른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는 오직 이성으로만 그 올바른 개념으로 가는 길을 찾아낼 수 있다. (34)

 

우리가 우리로 존재하는 일이 가능해지려면 세상이 반드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알고 싶어한다. (156)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그 하나

 

저자의 글은 어렵다. 결코 쉽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긴 하다. 보이지 않는 신을 논증해야 하는 까닭이 첫째고, 신이 아니더라도 시간과 영원이라는 주제가 들어있기에 그 논의는 불가피하게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하여 이런 요소도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 여겨진다.

 

글 속에 보이는 수많은 전제가정을 포함한 논리가 글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글이다.

 

더 실험하고 조사할수록 세상이 계속해서 더 이해 가능해져 간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면 우리가 세상에 관해 이해하지 못할 건 아무 것도 없다고 가정해야 한다. (161)

 

세상의 경험을 설명하려면 우리는 저 두 개의 가정이 모두 필요하다. 곧 이 세상의 질서는 우리의 지식을 일정한 한계 안에 두도록 명하는 신의 작정으로 제한되지 않지만, 우리와 같이 유한한 존재가 완전히 알기도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이 경험의 가능성을 설명하려면 한 가지 가정이 더 필요하다. 다른 두 가정에 따라 오는 내용이다. (......) 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 중에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세상 전체와 그 안의 전부는 영원하고 신성하다는 가정이다. (172- 173)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년간의 연구 끝에 마침내 이 세상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걸 알게 되는 인간의 경험을 신의 경험에 비유한다. 지식은 인간을 신성하게 만든다. 사고의 대상에 관해 생각하는 한 인간은 그 대상처럼 영원해진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히 사고하지 못한다. 우선 그는 필멸의 존재다. (..........) (145)

 

세상은 덮여 있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활짝 펼쳐져 있는 책도 아니다. 압력을 가해야 조금씩 파편적으로 그 비밀을 드러낸다. (160)

 

종교는 신이 그 핵심이다. 적어도 서양에서는 그것이 종교를 정의하는 방법이다. (186)

 

이런 논의 해볼만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은 필수적이다.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 필연성을 이 책에서 찾았다.

 

우리가 삶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전부가 영원과 연결되어 있었으면 하는 우리의 소망이 달성되는 순간 그 가치를 잃게 된다.

그 무엇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가 형성하는 덧없는 애착들에 의미와 통절함을 준다. 그것들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의미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26)

 

곧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원을 살 수 있다면 그 논의는 다른 차원의 것이 되겠지만 언젠가는 죽을 운명을 지닌 존재이기에 그 유한한 삶속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에서 어떤 결론을 따라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런 각도로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저자가 신이란 개념을 찾아내기 위해 나선 철학적 여정이라고 말이다.

저자는 어머니에 관한 추억으로부터 화두를 꺼내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 여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도 저자를 교사 삼고 거울 삼아서 신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s***h 2024.02.25.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제 3의 신
"제 3의 신" 내용보기
부모님은 신이라면 경기를 일으켰다. 신은 잘 속는 바보들이나 좋아할 만한 동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종교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가조이 주고 받는 대화의 주제에서 신을 빼버렸다. 그들은 신을 벽장 속에 처박았다. 신의 그 해로운 권능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그곳에 안전하게 가두어 두었다. (-7-)그는 나를 밀치면서 유대인 놈(a kike)이라고 불렀다.그런 단어를 전에 들
"제 3의 신" 내용보기

 










부모님은 신이라면 경기를 일으켰다. 신은 잘 속는 바보들이나 좋아할 만한 동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종교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가조이 주고 받는 대화의 주제에서 신을 빼버렸다. 그들은 신을 벽장 속에 처박았다. 신의 그 해로운 권능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그곳에 안전하게 가두어 두었다. (-7-)



그는 나를 밀치면서 유대인 놈(a kike)이라고 불렀다.그런 단어를 전에 들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그게 좋지 않은 단어 임은 금세 알았다. (-9-)



데이비드 흄은 인간은 원인을 말해주는 진정한 지식을 보유하지 못한다고 논했다. 우리가 아는 전부는 감각 경험이라는, 늘 변화하는 세계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관찰 가능한 대상들의 상관관계일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러한 관계들이 필연적일 이유는 전혀 없다 (-60-)



우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에 속하지 않은 이교도의 합리주의라는 전통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성경의 창조론(creationism)이라는 전통이다. 이 전통들은 서로 매우 다르지만 동시에 영원을 향한 우리의 갈망이 진실로 충족된다는 희망적인 가르침을 공유한다. (-103-)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자의 시각을 지녔고 뉴턴의 시각은 후자다. 뉴턴은 물리학이란 현대과학에 그 첫번째 권위 있는 공식을 제공했다. 그는 운동과 관성을 설명하면서 엄격하게 수학적 용어로 자연의 새로운 이해를 표명했다. 그의 시각은 거의 2000년 동안 서구 과학을 지배해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대체했다. 그러나 물리학의 법칙들은 신의 선물이며,그 신의 자유는 완벽하게 불가사의하다고 뉴턴은 말했다. (-167-)



제임스와 프루스트를 하나로 묶어 고찰함으로써 나는 소설의 형태와 목적을 보는 하나의 견해에 도달했다. 그 견해는 인생을 보는 나의 발전해가는 관점(vision)에 부합했다.아니 오히려 그 관점을 강화했다고 말하고 싶다. (-199-)



앤서니 T. 크론먼 의 『교육의 종말 교육의 종말』은 2009년에 쓰여졌다. 그는 에일대학 법대 학장을 지냈고, 계약법과 파산법, 법학이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특이하게도 앤서니 T. 크론먼 은 펄학박사학위와 법대를 졸업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책 『제 3의 신』을 읽으면서 『호모데우스』 가 생각났다. 그 책은 유발하라리가 쓴 책이며,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을 단언하고 있었다. 유대인 아버지와 기독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앤서니 T. 크론먼 은 종교를 경멸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유대인을 경멸하는 단어들을 듣고 성장했다.미국 사회에서인종 차별이 흑인 뿐만 아니라,우대인에게도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종교가 우리 사회에 가지는 의미를 한 권의 책에서 정리하고 있었다.지금에야 정치, 경제,문화, 역사, 철학, 과학, 등등으로 학문이 세세하게 분류되었지만, 중세 유럽사회에는 종교가 최우선이었다. 종교가 법이자 규칙인 세상에서,과학이 품고 있는 진리는 무시당하기 쉬웠으며,종교가 요구하는 창조론이 그 당시의 주류 세계관이다. 하지만,과학은 여전히 세상의 진리를 알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뉴턴의 세계관이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이런 변화는 가벼이 볼 수 없으며, 우리가 왜 종교에 대해 경시하고, 과학의 진리를 탐구하며,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의 한계를 극복할려고 애를 쓰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사유하고, 인문학적 산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

k*******2 2024.06.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제3의 신
"제3의 신" 내용보기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이 끊임없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분쟁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내전 등 전쟁이 현재진행중이다. 전쟁의 이유를 살펴보면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마 종교일 것이다. 그만큼 신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제3의 신>은 신이 우리 인간의 삶에
"제3의 신" 내용보기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이 끊임없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분쟁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내전 등 전쟁이 현재진행중이다. 전쟁의 이유를 살펴보면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마 종교일 것이다. 그만큼 신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제3의 신>은 신이 우리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려주고 있다.

 종교는 우리 인간에게 언제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종교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탈종교화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종교가 반드시 옳다는 것이 아니라 종교 속에서 피어나는 공동체주의와 사랑, 정의 등이 사라지고 있어 생기는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종교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책의 목차에서 알 수 있다시피 책의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다양한 철학자가 등장하고, 종교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다루고 있다. 책은 특정 종교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종교가 여태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담당해왔던 역할을 설명해주고, 그 종교가 현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반드시 종교적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고 현재 사회에서 종교적 가치의 중요성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제3의신 #앤서디크론먼 #돌밭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x********6 2024.06.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제3의 신] 탈종교와 몰가치의 시대 극복을 위한 인문학적 사유
"[제3의 신] 탈종교와 몰가치의 시대 극복을 위한 인문학적 사유" 내용보기
이 책 『제3의 신』의 〈서문〉의 제목은 「벽장 속에 숨겨진 신」이다. 쉽지 않은 내용을 다룬 책이라는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벽장 속에 숨겼다(숨겨졌다)는 말은 애매모호하다. 아마 독자가 비종교인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다. '신(神)'에 대한 개념은 종교적 범주에서 출발했기에 존재 유무를 독자가 추정한다면 논쟁만 낳을 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신(神, God)이란 무엇인가
"[제3의 신] 탈종교와 몰가치의 시대 극복을 위한 인문학적 사유" 내용보기


이 책 『제3의 신』의 〈서문〉의 제목은 「벽장 속에 숨겨진 신」이다. 쉽지 않은 내용을 다룬 책이라는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벽장 속에 숨겼다(숨겨졌다)는 말은 애매모호하다. 아마 독자가 비종교인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다. '신(神)'에 대한 개념은 종교적 범주에서 출발했기에 존재 유무를 독자가 추정한다면 논쟁만 낳을 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신(神, God)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백과사전을 찾았다. 인터넷을 통해서다. 존재 유무가 불확실한 신의 의미에 대해 백과사전은 어떻게 풀이할까? 백과사전이 신에 대한 궁금증을 완전히 풀어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아무도 본 적도 없고, 따라서 형태가 묘사된 적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 추상적 개념으로 막연히 붙여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독자는 지울 수 없다. 사전적 풀이로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자연계를 지배하며, 인류에게 화복을 내린다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초월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시대와 분야에 따라 그 개념과 성격이 다양하게 정의되었다고 한다. 신의 개념을 문자로 정의한 것은 불과 수천 년의 역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유사 이전에도 인간은 신을 믿었다고 배운 적이 있다. 그 신은 지역마다 다르고, 존재의 형식도 다르게 표현된다고 교과서에 씌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류는 문자가 없던 유사 이전에는 신에 대해 어떻게 표현했을까? 독자의 짧은 지식으로 판단하자면 아마 하늘을 가리키는 정도의 몸짓이나 손짓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논쟁이 있어 왔다. 이를 긍정하는 측의 대표적인 것에는 다음의 세 증명을 든다. ① 신은 완전한 것인데, 만약 ‘존재’라고 하는 요소가 빠지면 신은 불완전하게 되므로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본체론적 증명. ② 자연계에 있는 것은 모두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므로 인과관계를 더듬어서 점차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후에는 제1원인으로서의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우주론적 증명. ③ 천체가 질서정연하게 운행하고 있는 것은 목적이나 의장을 창출한 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목적론적 증명 등이다. 또한 이들을 비판한 역사적 증명, 도덕적 증명, 체험적 증명 등도 있다고 두산백과사전에는 기술되어 있다. 비종교인인 독자로서는 충분하진 않지만 어떤 의미로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실마리를 잡은 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의 저자 앤서니 T. 크론먼(Anthony T. Kronman)은 윌리엄스 대학을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예일 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예일 대학교 법과대학 석좌교수로 계약, 파산, 법률학, 사회이론과 ‘지도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에 기여하고 있다. 예일 대학교 이전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저서로 『막스 베버의 법률사회학』(공저), 『길잃은 변호사』, 『예일 법과대학사』, 『계약법의 경제학』(공저) 등이 있다. 대학과 저서를 보니 법학자이고 법학 교수 등을 지낸, 종교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분인 것 같다. 저자는 왜 종교와 신에 대한 관심을 갖고 책을 썼을까? 

이유가 책의 〈서문〉에 적혀 있다. 저자는 신앙심이 깊은 종교인이나 종교에 무관심한 사람이나 모두 어딘가 너무 넘치거나 조금 부족하다 싶다고 느낀 때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한편으론 광신자라 외면하고 다른 한편으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사는 일에 치여 그런 문제를 곰곰이 따져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을 버텨내는 일이 더 버겁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열두세 살 무렵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따르면 자신이 가진 우주의 처음은 있는가? 아니면 언제나 계속 존재해왔는가? 우주는 소멸되는가? 인간은 광대한 사물의 질서 속에 어디쯤 서 있는가?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에 비추어 인간의 삶에 어떤 지속적인 의미가 있기는 한가?라는 질문들을 그때부터 끊임없이 해왔다. 

당시 어머니와의 대화 상황을 서술한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난 다음 마티니 한잔을 손에 들고 어머니는 집 현관의 계단에 서서 한 말을 전한다. "우리는 오직 잠시 살아갈 뿐이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유일한 성취는 이 생애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신의 도움 없이, 그리고 목적이나 계획이 없는 세상의 어떤 지지도 받지 못한 채"라는 내용이다. 그때 저자의 어머니는 실존철학을 신봉한다고 선언했다고도 한다.



이후 저자의 어머니는는 96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그 철학을 꿋꿋하게 지켜나갔다. 저자는 어머니와 나누었던 그런 대화에 넋을 잃을 정도로 집중했다. 치자나무 꽃이 만개했던 그날 밤도 저자는 결코 잊지 않았다. 아마 그런 기억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그렇게 수십 년 간 지속해온 독서와 사색의 결과물로 자신만의 독특한 종교관과 인생관을 정리해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는 이 책에 앞서 2016년 10월 『다시 태어난 이교도의 고백』이란 책을 출간했다. 비록 아브라함의 종교가 가리키는 창조주 유일신은 아니지만 영원불멸의 존재인 세계 그 자체를 하나의 신으로 받아들이게 된 자신만의 신학을 기술한 내용이었다고 밝힌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아들로 거듭난다는 의미의 다시 태어난(Born-Agai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인 책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책 『제3의 신』은 그 후속편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작은 오늘 날 우리의 사고를 형성해온 고대의 위대한 철학 체계들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자신이 현재의 세계관을 갖게 됐는지 하향식으로 설명한다. 철학적 배경 지식이 없으면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반면 이 책 『제3의 신』은 인간의 경험, 저자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어떻게 자신의 인생관과 종교관까지 나아갔는지 차근차근 비교적 쉽게 설명해 간다. 전작의 해설서 또는 입문서와 같은 책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무한한 시공간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라는 출발점에서 『제3의 신』을 시작한다. 인간은 그런 점에서 여느 동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무한한 시간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지점에서 동물과 달라진다. 그런 절대 불변의 영원성을 인지한다는 생각이 곧 신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인간은 순간을 사는 동물이면서도 영원성을 관장하는 신의 세계에도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존재라고 한다. 따라서 이 어정쩡함을 인간의 존재 구속적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두 세계의 간극에서 깊은 절망과 삶의 환희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주장이다.



저자의 관점에 따른다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인간이 이성을 발휘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만 하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주장은 오류다. 그렇다고 지상에서의 삶은 아무 의미 없지만 하느님을 받아들이면 천국에서 누구나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는 아브라함의 종교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한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 인간은 그 어느 쪽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않은 경계인의 삶을 살아간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의 질서, 사회적 이상향, 심지어 완벽한 사랑을 찾아가는 단계를 살아갈 뿐, 그 최종적인 단계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상과 천상의 도시 양쪽 모두에 속하는 이중적 시민권을 가진 인간의 삶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른바 '제3의 신'의 개념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저자가 사춘기 시절의 자의식을 폄하하고, 설익은 자신만의 철학을 끝까지 천착한 노학자가 이끌어낸 사색의 결과물이라는 종교인들의 반대와 저항에 부닥칠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성을 대단히 중시하지만 만능으로 여기지 않고, 영원성과 영성적인 태도를 중시하지만 인간됨의 포기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원하는 소중한 목표에 끝내 도달하지는 못한다는 좌절에 시달려도 신을 향해 뚜벅 뚜벅 걸어 나가는 길에 삶의 환희가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비종교인인 독자가 읽기에는 수용하고 이해하는 일이 가능하지만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이나 무슬림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일 것 같다. 

나는, 이 공동체와 나라는, 아니 세계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가? 무엇이 진정한 사랑이고 그런 사랑과 현대 과학의 학문적 노력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알고 싶은가? 우리는 어떤 종교를 가져야 할지 망설이며, 사회 정의의 구현에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한가? 나는 무엇을 하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한가? 저자의 이 같은 질문은 이 책의 주제와 연결된다. 저자의 논리에 따른 신은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신도 아니고, 무신론자의 믿음처럼 '신은 없다'도 아니다. 그 경계에 선 저자의 신은 이렇게 '벽장 속에 숨겨져 있는, 제3의 신'이 성립을 가져온다. '저자만의 신'이라고 바꿔 말해도 이상할 게 없다. 대학 공부를 앞두고 있거나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유할 만한 소중한 책이다. 저자나 출판사 측은 적어도 세 번은 읽어보길 권한다. 본문과 저자 주를 읽을 때마다 무언가 조금씩 더 깨닫고 공감하게 된다는 사실은 먼저 읽은 독자도 느낀다. 사실 어렵다. 그러나 가치 있는 책이다. 어쩌면 인생관이나 세계관, 가치관 등 세상을 살아갈 사람이 가정 먼저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인본주의자에게 찾아온 신」, 2장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 3장 「아테네와 예루살렘의 미몽」, 4장 「삶의 환희」등이다. 제목으로만 깊이 생각하고, 유추하면 이 책의 절반쯤 읽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독자는 판단한다. 1장에서는 제목처럼 저자 자신은 부모로부터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교 등 종교는 결코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배웠다고 말한다. 성공을 무조건 떠받드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저자의 어머니는 이성을 기초로 해 수립된 견해들만이 숙고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저자가 믿기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숙고하기보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범죄를 저지른다고 말할 정도였다. 또 신앙을 근거로 했다든가, 혹은 남들이 그렇게 말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어떤 말도 인정하지 말라고 어린 저자에게 주지시켰다 밝힌다. 어머니는 합리주의자였고, 또한 철학자였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의 종교관은 어렸을(12~13세) 때 부모, 특히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철학자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라는 입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과도 화합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린 저자에게 "오직 잠시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을 잠시 인용해본다. "우리는 죽는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유일한 성취는 이 생애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도움 없이, 그리고 목적이나 계획 없는 세상의 어떤 지지도 받지 못한 채 말이다." 삶의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며, 그마저 덧없다고 저자의 어머니는 말했다. 그런 어머니는 독립적인 정신의 소유자였고, 합리주의자, 실존주의자였다는 것. 저자는 이를 물려받아 대답을 스스로 찾아가려는 노력 덕분에 카뮈와 사르트르에 이르렀다. 어려운 책을 읽어가면서 실존주의에 심취하기는커녕 서서히 실존주의는 무너져갔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종교인과 무신론자의 경계에서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신론이 번성하는 최근의 환경에서 무신론자는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가 진실로 영원한 무엇과 우리를 이어주는 그 연결고리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엔 그 같은 연결성이 강조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착각이었다. 역사적으로 오랜 투쟁 끝에 우리는 이제 이를 더 분명하게 본다.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무엇이 우리 자신들의 삶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저자는 무신론자를 비난하지 않는다. 무신론자가 조롱하는 영원에의 갈망이 우리 인간성에 가해지는 피치 못할 위협이 아니라 그 구성 요소의 하나임을, 오류가 아니라 그 특징의 하나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받은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더할 나위 없이 표현한 내용이 무신론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들의 이런 반종교적 독단의 가장 정교한 주장을 물리치려면 무신론자의 손아귀에서 인본주의를 구해내야 한다. 신을 부끄럼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유물로 인본주의를 되돌려주어야만 한다. 영원성에의 갈망을 인간 조건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다. 그 갈망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곳에 속한다.

2장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은 '영원성'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과학의 특징은 우리가 시간을 두고 더 가까이 다가가긴 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시간을 다 쓰고도 결코 도달하지 못할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모든 추구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영원성이라는 단어에 있는, '초시간성'과 '무한한 시간'이라는 두 가지 의미와 개념이 모두 필요하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깊은 좌절이라는 인간 특유의 경험과 그럼에도 조금씩 발전하면서 점점 더 커져가는 능력이 주는 환희를 설명하려면 우리에게는 그런 개념이 필요하다. 좌절이 수반되는 그런 환희는 더 많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망만큼이나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서 얻는 유일한 보상이라고 시간을 풀어헤친다. 현대과학은 인간 조건의 한계와 전망을 무엇보다 더 잘 나타내는 일반적 현상의 특별하고 명쾌한 사례일 뿐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3장 「아테네와 예루살렘의 미몽」은 고대 그리스와 예루살렘에서의 학문과 종교가 가진 헛점을 짚어낸다. 인간만이 우리의 삶에 끝이 있음을 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또한 끝없는 시간의 존재를 안다. 무한한 시간이라는 개념은 어떤 제한된 시간 안에 달성되지 않는 목표를 상상하게 해준다. 우리가 창조주에 비해 얼마나 결함이 많은 존재인지 알게 되면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누리는 상태 이상의 더 나은 무언가를 갈망하게 된다. 우리는 더 신과 같아지기를, 부패와 죽음을 넘어, 우리의 모든 고통의 근원이 되는 시간 그 자체를 초월해 신의 왕국에서 신과 함께 하길 갈망한다. 저자의 논리에 경의를 표할 만큼 이 저서는 독자들의 경이와 경탄을 불러낸다. 이 책의 가치가 영원성 위에 놓일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c*****0 2024.06.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무한한 세상 속에 유한한 인간
"무한한 세상 속에 유한한 인간" 내용보기
검색앱 나는 무신론자로서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등의 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 왔다.이 책 [제3의 신]을 쓴 앤서니 크론먼은 가정 환경이 독특하다. 어머니는 맹신하는 기독교인 집안 출신이고 아버지는 유대인 출산으로 부모의 뜻에 따라 유대교 신학 대학을 나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원래부터 반항적인 기질이 있었고 대학 입학 당시
"무한한 세상 속에 유한한 인간" 내용보기

나는 무신론자로서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등의 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 왔다.

이 책 [제3의 신]을 쓴 앤서니 크론먼은 가정 환경이 독특하다. 어머니는 맹신하는 기독교인 집안 출신이고 아버지는 유대인 출산으로 부모의 뜻에 따라 유대교 신학 대학을 나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원래부터 반항적인 기질이 있었고 대학 입학 당시 마침 그 대학이 진보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신의 존재 여부나 종교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부정할 수 있었다. 그는 졸업 후 종교인(랍비)로서 활동하다가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면서 종교에는 무관심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가 교회를 바꿔가면서 종교에 미쳐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종교를 혐오했다. 

이런 환경이었지만 어머니는 어린 크론먼에게 자신의 종교를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주었다.  작가도 예일대 법대 학장을 지낼 정도면 대단한데 그의 부모 둘다가 지식인이라고 한다. 

종교인 집안 출신들인데 무신론자인 부모의 이력이 흥미를 자극했고, 그럼에도 자녀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종교관을 설립하도록 허락했다는 것에 어린 자녀도 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개체임을 인정한, 훌륭한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론먼은 12살 때, 우주는 언제 시작되었나? 인간은 왜 태어나고 죽는가? 등등 철학적인 질문을 어머니와 심도있게 토론하면서부터 평생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지녀왔다.
신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야하고 죽으면 끝일 뿐이라면서 실존철학을 신봉하는 어머니처럼, 크론먼도 과학과 이성의 옳은 면들을 높게 평가하지만 한편 그 둘이 전부는 아니며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한한 시공간 속에서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 시공간의 무한함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앙심이 깊은 종교인도 무신론자도 때때로 자신의 종교관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상과 신, 그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무신론자로서 수십년간의 독서와 사색을 통하여 특별한 종교관을 내놓았다. 


그는 무한하고 영원 불멸하는 존재인 세상을 하나의 신, 즉 제3의 신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은 순간을 사는 동물이지만 유일하게 무한한 세상과 유한한 자신의 삶을 인식하기 때문에, 영원함을 다루는 신의 세계에도 걸쳐 있으며 그 두 세계의 간극에서 때때로 느끼는, 삶의 절망과 환희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무신론자이지만 가끔 세상이 두렵기도 하고 해답을 얻지 못하는 세상과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들을 가져 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뇌 중 하나일 것이다. 

크론먼의 주장은 공감이 많이 갔고 솔직히 나름 해답을 찾은 것 같다. 

무한한 세상 속에서 
작고 유한한 인간이라는 내 존재가 오늘따라 더 작아 보이고 두려울 때, 크론먼이 주는 메시지가 현재의 상태를 받아들이게 만들고 또 수용과 이해에서 평정심과 편안한 마음을 얻고 내일 하루를 묵묵히 살아 갈 수 있으리라.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오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 이 글은 초대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YES마니아 : 골드 m*******o 2024.06.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제3의 신
"제3의 신 " 내용보기
종교를 바라보는 다양한 기준과 반응, 평가들이 공존하는 현실일 것이다. 이에 책에서도 종교에 대해 어떤 형태로 마주하며 이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닌 이를 이해하며 공감해 나가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지를 전하고 있고 특정 종교를 믿는 분들이라면 더 쉽게 공감할 것이며, 상대적으로 무교론자의 입장에서도 종교 철학의 본질과 가치, 그리고 신에 대해서도 함께 접하며 판단
"제3의 신 " 내용보기









종교를 바라보는 다양한 기준과 반응, 평가들이 공존하는 현실일 것이다. 이에 책에서도 종교에 대해 어떤 형태로 마주하며 이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닌 이를 이해하며 공감해 나가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지를 전하고 있고 특정 종교를 믿는 분들이라면 더 쉽게 공감할 것이며, 상대적으로 무교론자의 입장에서도 종교 철학의 본질과 가치, 그리고 신에 대해서도 함께 접하며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신이라는 의미가 갖는 상징성이나 무게감은 절대적일 것이다.


지금도 세계는 다양한 종교의 존재로 인해 갈등하거나 심지어 분쟁과 전쟁을 일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 인간이 갖는 한계성과 종교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교리 등으로 인해 겪는 소모적, 낭비적인 모습이 많다는 점을 알 것이다. 이 책도 이런 가치를 승화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형태에 대해 조언하는 책으로 사실 현실에서는 인정하기 어렵고 보여지지 않는 영역에 대한 책이라서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참고했으면 한다. <제3의 신> 또한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종교의 가치가 퇴색된 느낌도 지울 수 없고 갈수록 종교보다는 개인의 존재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 크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참고할 만한 의미가 조언 등이 많은 책일 것이다. 











물론 종교가 정치와 결탁할 경우에는 또 다른 권력이 탄생하기 마련이며 항상 역사적 과정에서도 신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론이나 시선 또한 공존하고 있다는 점도 알 것이다. <제3의 신> 하지만 새로운 관점이나 역발상의 개념으로 이 책은 종교 철학에 대해 정의하고 있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체감하는 영역이나 실존주의적 의미나 정의, 가치와 사랑 등이 무엇인지도 함께 표현하고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이해가 가능한 종교 관련 인문학 도서일 것이다.


<제3의 신> 종교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닌 신앙심이 무엇이며 종교가 갖는 절대적 가치와 본질적인 영역에 대해 함께 접하며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런 과정에서 얻게 되는 배움의 의미나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가치 판단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개인 단위에서의 접근과 이해의 과정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가 마주한 현실 영역와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있다면 함께 접하며 판단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새로운 관점론과 해석이 돋보이는 종교 철학 관련 조언서, 괜찮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m**********m 2024.06.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제3의 신 : lalilu
"제3의 신 : lalilu" 내용보기
제3의 신 : lalilu종교는 과연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가. 이 책은 신의 존재와 신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가르쳐준다. 저자의 아버지는 유대인이었고 어머니는 기독교인이었지만 그 둘은 조직을 갖춘 종교에 대한 경멸하는 태도를 공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신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게 되었고 신에 대한 호기심이 있
"제3의 신 : lalilu" 내용보기
제3의 신 : lalilu

종교는 과연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가. 이 책은 신의 존재와 신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가르쳐준다. 저자의 아버지는 유대인이었고 어머니는 기독교인이었지만 그 둘은 조직을 갖춘 종교에 대한 경멸하는 태도를 공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신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게 되었고 신에 대한 호기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벽장 속에 신을 숨겼다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개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종교와 신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기원’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기원, 이 세상의 기원, 우주의 기원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 및 궁금증이 결국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기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때문이다. 시작을 이해해야 끝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고(창조) 인간을 만들었으며 (창조) 만든 것에 목적이 있다면 인간은 결국 죽어서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신이 만든 영원한 세계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보며 한 과학자가 정의한 내용이 기억이 났다. 물리학자로 기억하는데 그 분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신이라는 존재를 제거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돼지를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에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윤리와 도덕이라는 내용을 설명할 때 신의 존재가 제거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며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는 것인지 이 책은 신에 대한 존재를 증명하지는 않지만 신이 없다면 정말 우리는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경우들을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신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l****u 2024.02.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본주의와 양립가능한 제3의 신
"인본주의와 양립가능한 제3의 신" 내용보기
책 제목에 그냥 끌리고 말았다. '제3의 신'이란 제목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두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존 힉과 스피노자. 존 힉은 종교 다원주의의 대부격인 종교 철학자이자 신학자다. 내가 '신정론' 화두에 빠져들게 되면서 매우 좋아하게 된 '월클' 사상가다. 이단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기성 종교의 신관과는 다른 차원의 영성의 확장을 보여주었는데, '제3의 신'이란
"인본주의와 양립가능한 제3의 신" 내용보기

책 제목에 그냥 끌리고 말았다. '제3의 신'이란 제목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두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존 힉과 스피노자. 존 힉은 종교 다원주의의 대부격인 종교 철학자이자 신학자다. 내가 '신정론' 화두에 빠져들게 되면서 매우 좋아하게 된 '월클' 사상가다. 이단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기성 종교의 신관과는 다른 차원의 영성의 확장을 보여주었는데, '제3의 신'이란 문구를 만약 철학도가 썼다면 십중팔구 '스피노자의 신'을 의미했을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철학자 앤서니 T. 크론먼의 '제3의 신'도 기본적으로 '스피노자의 신'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잘 알다시피, 서구 문화의 양대 기둥은 의문에 기반한 헬레니즘과 믿음에 기반한 헤브라이즘이다. 헬레니즘의 성소가 아테네라면, 헤브라이즘의 성소는 예루살렘이다. 아테네가 의문과 지성의 도시라면, 예루살렘은 믿음과 영성의 도시다. 유대교, 천주교, 기독교 같은 아브라함의 종교들이 태동한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나는 어릴 적에 천주교 신자였던 터라 예루살렘을 포함한 성지순례가 커다란 인생숙제처럼 남아 있다. 내가 오랫동안 '냉담자' 신세로 살게 된 여러 이유 가운데 니체, 카뮈,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의 영향력도 상당했다. 


그렇다, 나도 한때 저자의 어머니처럼 카뮈와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을 신봉했다. 저자 어머니가 96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그 무신론적 인본주의 노선을 꿋꿋하게 지켜나갔던 것에 반해(이것 역시 대단한 믿음의 경지 아닐까 싶다), 반백의 문턱을 넘은 나는 한번 더 전향했다. 무신론이 아닌 유신론 노선으로 말이다. 다만 내가 믿는 신은 아브라함 종교의 신이 아니라 '제3의 신', '스피노자의 신'이다. 나는 여전히 기성 종교에 대한 반감이 크다. 예루살렘의 신들과 광신도들은 너무나 반인본주의적이다.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 전쟁을 보라.


인본주의는 크게 철학적 인본주의와 종교적 인본주의로 나뉜다. 철학적 인본주의자는 기본적으로 무신론자다. 한편, 종교적 인본주의자는 기본적으로 유신론자다. 저자의 어머니가 애독한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 역자의 말을 빌면, 내가 젊은 시절 신봉한 카뮈의 인생관은 다음과 같다.


"비록 의미와 목적이 없다 해도 인생은 인간의 손에 쥐어진 전부이고, 그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실제다. 인간이 이를 인지하고 환상을 떨쳐버린다면 그는 인생에 즐기고 기뻐할 대목이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카뮈는 삶과 죽음의 온전하고 끔찍한 짐을 모두 인간에게 지웠다. 그는 신의 도움과 영생이라는 희망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카뮈는 인간 각자의 삶과 행위가 자기 자신과 동료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라고 했다. 암울하고 거의 압도적으로 무거운 짐이지만 인간은 그것을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카뮈는 말했다."(153쪽)


무신론자와 실존주의자는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논하지, 탄생 이전이나 죽음 이후를 논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시하고, 일련의 자유로운 선택이 만든 삶의 의미와 결을 중시한다. 하지만 일부 과학으로 무장한 호전적인 무신론자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 영원성의 화두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따끔한 지적대로, 영원성의 양대 요소가 초시간성과 무한성인데, 무신론자는 그저 영원성을 천국, 종교, 신과만 연계시킨다. 영원성에의 갈망을 인간 조건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 인본주의와 양립가능한 신이 있을 수 있다. 그게 바로 '제3의 신'이다.

z***a 2024.02.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제 3의신
"제 3의신" 내용보기
굉장한 책이다. 솔직히 까뮈의 실존주의 철학을 내 삶의 이정표로 삼았던 사람으로서 ‘제 3의 신’은 내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현대 사회에서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본다.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명언을 남겼다고 알려졌다. 물론 이 이야기는 스피노
"제 3의신" 내용보기

굉장한 책이다. 솔직히 까뮈의 실존주의 철학을 내 삶의 이정표로 삼았던 사람으로서 ‘제 3의 신’은 내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현대 사회에서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본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명언을 남겼다고 알려졌다. 물론 이 이야기는 스피노자가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의 사상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해 주는 말이라고 본다. 이는 삶의 태도에 대한 문제이다. 현대에 들어서자 신에 대한 공격은 상당해졌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할 정도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거세졌다. 기존 세상의 종교는 우리가 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사는 것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신이 죽은 사회, 무신론자들이 많아진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실존주의 철학이 기존의 종교를 대신한 것이다. 우리는 그냥 던져진 존재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러한 삶에 의미를 주고 의미를 만드는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것이 실존주의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철학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의미를 추구하는 것에서 너무나 무거운 의미가 아닐까 한다. 그렇게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며 삶을 개척하는 사람은 소수이지 않을까 한다.

실존주의 철학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삶에 대한 방향성과 올바른 삶을 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에 빠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 모르겠다. 영원한 진리는 없다고 말하는 철학에서 회의주의가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혹은 기회주의적으로 이 삶에서 타인에게 불행을 주고 사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고... 우리가 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제 3의 신’을 읽는다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제 3의 신’이 완벽한 책은 아니지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의 단서를 주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본다.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m*******c 2024.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제3의 신
"제3의 신" 내용보기
이제 인간이 창조주 신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세월의 진화의 결과물로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신을 믿는 사람도 많고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의 형태이지만 각기 다른 신을 믿고 있지만 결국 종교를 떠나 신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범접할수 없는 초월의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과거 종교는 세속권력보다
"제3의 신" 내용보기

이제 인간이 창조주 신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세월의 진화의 결과물로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신을 믿는 사람도 많고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의 형태이지만 각기 다른 신을 믿고 있지만 결국 종교를 떠나 신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범접할수 없는 초월의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과거 종교는 세속권력보다 높은 곳에 있으면서 부패하였고 그런 부패는 여전히 현실에서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은 종교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지금의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 역시 어찌보면 종교전쟁이라고 할수 있을만큼 종교는 선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악마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의 저자는 유대인 아버지와 기독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릴적 가정의 분위기는 무신론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더군요. 특히 어머니의 경우 샤르트르로 대표되는 실존주의 철학의 신봉자였기에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더욱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저자 역시 그의 부모 영향아래에서 신을 당연히 생각하지않고 성장했다고 할수 있죠.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늘 죽음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우리가 죽는다고 해서 인류의 삶이 곧 끝난다고는 생각하지않습니다. 그런 출발점에서 저자 역시 절대 불변의 영원성을 생각해야 하는 유한한 삶의 인간의 존재에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도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인 종교에 대한 믿음이 인간을 구원한다고도 할 수 없겠죠.

 

저자가 지적하였듯이 인간만이 이 지구에서 죽음이 자신에게 언젠가는 다가올 것을 알고 있기에 영원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자신이 비록 이 세상을 떠난다할지라도 시간은 계속해서 존재하고 그 시간의 무한함을 생각할 때 우리가 공동체의 가치나 보편적인 사랑의 실천에 더 주목해야함을 이 책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한다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p********1 2024.02.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