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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 중 한 사람인 순자는 성악설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동양의 사상가들에 대해 배웠지만 순자에 관해서 아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순자는 맹자와 같이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유가의 일원이지만,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한데 반해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는 흔히 유가하면 ‘공맹의 도’를 떠올리듯, 후대의 사람들이 맹자를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적자로 추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순자가 그런 맹자를 비판했으니 유가의 주류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를 이단시했고, 우리 역시 그렇게 배우지 않았나 싶다.
순자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독창적인 철학적 관점을 제시한 철학자이다. 전국시대 말기 조나라에서 태어난 순자는 50세 이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50세에 제나라에 유학하여 직하학궁에 머무르면서 좨주를 세 차례나 역임할 정도로 뛰어났으며, 이후 모함을 받아 초나라로 가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이 책은 그런 순자의 사상을 요약한 것이다. 저자는 [순자] 원문을 읽고 해석하기 보다는 전편에 나오는 순자의 대표적인 사상을 요약하여 들려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서의 [순자]는 총 20권 32편으로 편제되어 있다. 한나라시대 전해진 [순자]는 순자 자신이 기록한 것과 그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 뒤섞여 322편이 넘었다고 한다. 전한 말 활동한 유향은 이들 322편을 중복된 것을 정리하여 32편으로 편성하고 [손경신서]라 이름 붙였다. 이후 당나라 양경이 새롭게 교정하고 주석을 달아 20권 32편으로 정리한 [순자주]를 편찬하였다. 이것이 현재 전해지는 [순자]라고 한다. [순자]에는 각 편마다 별도의 편명이 있다. [논어]나 [맹자]등의 편명이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편집상 편의를 위해 각 편의 처음 나오는 단어를 편명으로 정했다면, [순자]는 [한비자]와 마찬가지로 저술자가 각 편의 내용에 알맞은 제목을 붙였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확고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순자사상의 핵심내용으로 세 가지로 꼽는다. ‘① 사람의 직분과 하늘의 직분은 어떤 관계도 없다. ② 사람의 뛰어난 점은 분별력이 있고 의리가 있으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③ 사람의 본성은 악하므로 인위적인 배움과 노력으로 선한 쪽으로 이끌어야 한다.’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핵심사상을 몇 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순자]를 읽으면서 순자의 사상을 흔히 천인지분(天人之分)과 성위지분(性僞之分)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저자는 그것을 상호공존을 전제하는 ‘직분’이라 말한다. 공자와 맹자가 하늘을 도덕적 근거로 삼고, 도가(道家)가 하늘을 안명(安命, 하늘의 명에 따라 분수에 맞게 사는 삶)과 수구(守舊, 과거로의 회귀)의 개념으로 보았다면, 순자는 사람과 독립해서 운행되는 자연적인 객체로 본 것이다. 따라서 순자에게 있어 사람의 길흉화복은 그 사람의 후천적 노력여부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자연의 변화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자연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진행되므로 자연을 개조하는 능력, 즉 하늘을 제어하고 이용하는 능력을 길러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한편으로 순자가 유가 내부에 있던 운명론이나 미신을 정리하고자 하늘과 인간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이기도 하다. 또한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있는 것으로 그 안에 어떤 도덕적 의의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욕망은 감정의 지향인 동시에 본성의 내용이자 그것의 구체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외부로의 확장을 꾀하는 본성에 이끌려 가면 악해지고, 선해지려면 반드시 인위(人僞)라는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유가에서 성인은 배우지 않고도 알지만 일반인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순자는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후천적 학습과 노력으로 갖춰진 인위가 성인과 일반사람들을 가른다고 보고 화성기위(化性起僞, 사람의 본성을 타고난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반드시 변화시켜 인위를 쌓아야 함)를 주장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순자는 예(禮)를 사람의 선험적 의식의 소산이 아니라 경험의식, 즉 사람의 끊임없는 학습과 노력의 소산으로 보았다. 본성이 아니라 인위에서 생겨난다고 본 것이다. 유가는 예를 선왕(先王, 聖人)이 사람의 본성인 욕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정하였다고 보았지만, 순자에게 있어 욕망은 더 많이 채우려하고 부족하면 밖으로 나가서까지 구하려 하는 것으로 성악설의 핵심근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순자는 욕망을 모두 없애기보다는 어느 정도까지 길러주어야 한다고 했고, 인위의 소산인 예로써 욕망을 조절하여 사람의 도덕적 선함을 발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 밖에도 순자의 경제론과 천하통일의 원칙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순자가 말한 부국(富國)이란 왕이 아닌 백성의 창고에 재물을 가득 쌓아 두고서 그들의 삶을 안락하게 하는데 집중되어야 함을 뜻했다. 부국의 실현은 백성의 관점에서 왕에 대한 백성의 입지를 강력하게 부각시켜 백성의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도모해 나갈 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또한 순자는 절용(節用)을 강조했는데 묵자의 경우처럼 절약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 증대를 위한 투자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방법으로 불필요한 경비의 절감과 과도한 세금의 경감을 들었다. 이는 공자가 말한 민본의 관점을 계승하고 확충한 것으로, 맹자가 차별과 특권을 옹호하면서 공자의 사상을 기득권층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순자가 살았던 시기는 전국시대 말기이다. 극심한 혼란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루빨리 정치적인 안정을 실현하는 것이다. 순자는 천하통일을 사람이 본성적으로 함께 바라는 것인 동시에 역사발전의 필연적 추세로 인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백성이 도구내지 수단으로 전락하는 불합리하고 모순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이 분산된 현실상황을 강력한 중심력으로 통일시켜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는 왕의 조건으로는 ‘지극히 강함’, ‘지극한 분별력’, ‘지극히 명철함’이라는 세 가지 지극한 것을 갖춘 사람을 꼽았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천하를 힘이나 부가 아닌 덕으로 겸병하고, 겸병한 국가를 예의의 사회적 확립과 정치의 투명성으로 견고하게 안정시키고, 용병은 민심의 통일에 있음을 요구했다. 순자가 내세운 천하통일은 백성에 대한 왕의 도덕적 실천의지를 실현하는 것이었고, 천하통일의 근본은 백성의 정치적·경제적 안정이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순자는 대형(大形)의 세계를 이룩하고자 했다. 여기서 대형세계란 각 직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직분을 탐하지 않는 속에서 전체의 조화를 지향하는 사회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흔히 유학하면 우리는 군자를 떠올린다. 유학에서 말하는 결론은 착하게 살자, 도덕적 인간이 되자는 것이고 군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유학은 군자가 되기 위한 이론·사상·배움의 묶음과 체계인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유가들이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순자는 밖을 지향했다. 바로 직분과 인위를 통한 양욕(養慾, 욕망을 적당히 충족해주고 길들이는 것)이 그것이다. 맹자나 그 밖의 유가들과 비교해볼 때 다른 듯 같으면서도 같은 듯 다른 순자의 사상은 공자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순자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비록 [순자] 원문의 번역이나 해설에 지면을 할애하지 않지만, 순자사상의 독창성과 실용성을 요약하여 알려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순자]의 또 다른 독법을 알게 된 것 같고, 순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깊게 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