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해보면 옛 것들이 좋은게 많은데..... 시간이 빨리 흐르고 유행도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빨리 변하다보니 새 것에 더 열광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전히 향수를 자극하고 영향력이 있는 것은 문학이나 미술, 음악, 건축...... 예술을 총망라하지않나 싶다. 목마름이다. 아무리 좋고 새것으로 바뀌어나온다 해도 우리 속에 DNA처럼 각인된 그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詩가 그렇다. 자꾸만 좋아질려고 한다. 읽을수록 빠져든다. 함축적이라 의미를 알기에도 모호한 詩들은 여전히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이 되지는 못하지만, 평범한 우리네 삶을 잘 녹아낸 詩들은 스폰지처럼 잘 빨아들였다. 안도현의 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 그랬다. 보니깐 내가 갓 20살이 되었을 때 나온 시집이다. 지금은 절판 상태라 더 의미있는 시집이 아닐까싶다.
어제이 이어 오늘도 겨울비가 내린다. 어둑컴컴한 공기지만 안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차다. 첫 詩를 넘겨 읽었다. 그런데 첫 詩부터 헉, 기가 막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러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처음으로 대면하는 사람에게 흡사 시비 거는 것처럼......... 첫 詩부터 참 고민하게 만든다. 검었던 자신의 모든것을 빨갛게 태워서 누렇게 사그라질때까지 춥고 가난하고 낮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준 연탄이기에....... 그럼에도 첫 詩부터 이렇게 세게 나가는것은 옳지 않아~~~ 그러나, 그 다음 詩 <연탄 한 장>을 읽어 보니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고 부끄러웠다.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중략)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한 겨울 눈 쌓인 길모퉁이에 자기 생을 다 마친 연탄재, 무심코 발로 함부러 찰 게 아니었다. 그 연탄재는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길이 되니깐.....
이런식이다. 소시민의 삶에 깊게 녹아 든 詩라서 더욱 마음이 아렸고 먹먹했다. 춥고 배고프고 한 푼이 귀한 시대, 공권력과 정도가 아닌 것에 절대 굽신거리지 않았던 시대. 하지만 비굴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있었고, 그 비굴함에 함께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지. 그 시대에 궤를 함께 한 사람들은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삶의 나락으로 깊게 빠져들어갔다. 이런 삶의 힘겨움들이 詩 곳곳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결단과 희망의 끈을 놓치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호흡이 긴 산문같은 詩들이 많았다. 밥벌이의 어려움과 그 시대의 녹록치 않은 삶들을 녹아내기에 뭉클함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견뎌냈을까? 시인은 중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참교육을 할려고 교원노동자가 되었다. 결과는 학교를 떠나야했다. 밥 벌이를 못하는 가장. 그리고 그런 가장을 애닳게 바라보며 속상해하는 아내. <아내의 꿈>이란 詩는 어쩌면 지금 우리네 삶와 사회속에서 여전히 곪아 진행되고 있는 도려내야 될 가슴 아픈 폐부가 아닐까?
시인 안도현이 꿈 꾸고, 살기 원하는 세상과 시대는 비단 그만의 꿈이 아닐것이다. 그리고 그 쏟아내는 질문들에 대답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있을것이다. 매일 매일 삶에 고민했던 흔적들이 그의 詩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 녹아있어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도움이 될 것 같다. 절판되었지만 참 소중한 시집이다. 여러번 읽을수록 더 가슴 깊이 오롯이 남을 것 같다.
▶아내의 꿈 끝가지 탈퇴각서를 쓰지 않는다면 법대로 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교장의 협박 전화를 받고는 아내는 토끼 새끼처럼 오돌오돌 떨었습니다 지아비가 밥줄 끊어지는 것을 남의 일처럼 보고만 있느냐고 사내 마음은 여자가 어찌 하느냐에 달렸다고 시어머니의 뜨거운 질책에 아내는 소나기로 펑펑 울었습니다 학교 떠나 어디 가서 참교육 하느냐고 더 큰 전진을 위해 일보후퇴하고 다시 앞날을 기약해 보아야 한다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 안타까운 설득에 아내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해고된 뒤에는 남들 보기도 부끄럽다며 바깥 나들이 횟수가 줄고 툭하면 침울해지던 아내였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반찬거리가 떨어지면 짜증 먼저 부리던 아내였습니다 그 아내가 변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한 장 한 장 유인물들을 돌리고 가슴에 참교육 배지를 달고 다니고 길거리에서 지지 서명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집회에 참석하여 노래를 배워 부르고 그 가는 손목으로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약하기만 하던 한 여성이 그 아내가 무척 변했습니다 전보다 학교 환경이 부쩍 나아지고 평교사의 봉급이 대폭 오른다고 해도 가르치고 싶은 것을 뜻대로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라면 그런 학교로는 안 돌아가도 좋다고 피땀 흘려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닌 그저 주는 떡이라면 안 먹어도 괜찮다고 지금 비록 궁핍하지만 아내는 무척 넉넉해졌습니다 당신이 부여 안고 있는 깃발이 하늘보다 더 푸르고 싱싱하게 휘날릴 그 날이 오면 당신을 쫒아낸 사람들의 허물도 그 깃발로 감싸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느새 아내는 나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다시 분필을 드는 그 날이 오면 죽어도 교단에서 내려오지 말고 언제까지나 사모님 소리 좀 듣게 해 달라고 아내는 상추같이 웃으며 아침 상을 차립니다
|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시집은 짧고 굵은 울림을 주는 시, <너에게 묻는다="">로 시작한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여기서 이미지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다 태워서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그런 이미지입니다. 연탄이란 존재는 자기 몸에 불을 붙여서 방구들도 데워주고, 라면도 끓여주고, 재가 되어서는 미끄러운 골목길에 으깨져서 길을 미끄럽지 않게 해주는 존재입니다."(「헛것을 돌아볼 줄 아는 시」, 『나의 문학 이야기』, 299쪽)라고 한다. 첫 번째 시에 연이어 나오는 시 <연탄 한="" 장="">, <반쯤 깨진="" 연탄="">을 읽고 나서면 이 시집에서 드러나는 정서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단 삼행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시가 두 시들보다도 훨씬 효과적으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가 지닌 함축성의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이 시집에는 "연탄"과 함께 "증기기관차"라는 시어도 자주 등장한다. 자기를 희생해서 남과 세상에 뜨거움을 주고 끝끝내 부서져 버리는 열정의 삶, 그것이 바로 연탄과 증기기관차의 이미지이다. 많은 시들이 안도현의 해직교사 시절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의 가난한 생활의 설움과 자조, 그리고 의지까지 삶의 꽉 찬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신경림이 안도현이 시를 너무 모범적으로만 쓴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밋밋하고 싱거운 듯한 느낌이다. 강렬한 긴장이나 전율을 느끼게 하는 시를 기대하기란 힘들었다. 실제로 안도현은 자신이 학생시절에는 영악하게 손끝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 후로 대학 입학 이후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가슴으로 쓰여지는 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은 변증법적으로 그 둘을 종합하기에 이르렀다고 고백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안도현의 시에는 추운 겨울날의 뜨끈한 밥과 국물로 다가온다. 그의 시에는 따뜻한 숭늉이나 우유를 홀짝홀짝 마시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반쯤>연탄>너에게>너에게> |
|
1년쯤 전.. TV에서 즐겨보던 SBS 드라마 KAIST에서.. 김정현이.. 항상 냉정한 표정으로 학업에만 몰두하는 이은주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면서 인용했던 시가 실려있는 시집입니다. 그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중략 ...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
... 중략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이 전하는 가슴 가득 밀려오는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면.. 누구라도 살며시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즐거운 시 감상이 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
몇 년 전 TV드라마에 [연탄 한 장]이 주인공에 의해서 멋들어지게 읊어지는 것을 보면서 저 시를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후에, <짜장면>이라는 산문집을 소개하는 신문을 통해서 그 시가 안도현이라는 시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시집들을 찾아 읽고 나서야 난 안도현 시인과 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그의 인생 이력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겨울 엽서="">
쫓겨난 교문 밖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습니다.
...........
<스티커를 붙이며="">
교통순경이라도 보면 어쩌나
시청 담당 공무원에게 들키면 어쩌나
말쑥하게 차린 저 사람
혹시나 기관원이 아닐까
................
그래서 [너에게 묻는다], [연탄 한장]이 단순히 사랑고백에만 쓰일 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는 시 구절이 가슴 한 켠에서 메아리처럼 반복해서 들리게 되었다. 안도현 시인의 시에 내가 이렇게 공감을 느끼는 것에는 또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배경이 나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우리동네 오리온 공장],[그리운 이리 중학교],[그 밥집]의 '중앙시장'은 나에게 역시 시인만큼이나 가보고 싶을 정도로 그리운 곳이다. 덕분에 시에 감정이입이 더욱 잘되었다. 시인의 이력을 보고 나니 그의 시에 더욱 정감이 갔다. 다음 번에 그가 나에게 물었을 때 '난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다'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아내의 꿈=""> 당신이 부여 안고 있는 깃발이 하늘보다 더 푸르고 싱싱하게 휘날릴 그날이 오면 당신을 쫓아낸 사람들의 허물도 그 깃발로 감싸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느새 아내는 나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다시 분필을 드는 그날이 오면 죽어도 교단에서 내려오지 말고 언제까지나 사모님 소리 좀 듣게 해 달라고 아내는 상추같이 웃으며 아침 상을 차립니다.아내의>스티커를>겨울>짜장면> |
| 안도현님은 예리하면서도 포근하게 이 세상, 또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중학교때 국어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신 몇몇 시집들 중에 안도현님의 글은 유독 제 마음을 끌었던거 같아요. 백일장에 나가면 안도현님이 시에 대해 강의하고, 질의 응답 시간도 있고 그러는 시간이 몇번 있었거든요? 안도현님 강의를 듣기 위해 젤 앞자리 찾아가서 앉구 그랬답니다. 어쨌든 어딜가나 품절된 상태인 이 시집은 나온진 좀 됐구요.정말 세상 살이에 신물이 나고 부조리한 사회를 보면서 마음을 위로 받고 싶을땐 가만히 펼쳐보세요.읽어 나가다가 어쩔땐 가슴을 뭔가 둔탁한 물체로 한대 턱 얻어 맞은 것 처럼 앗! 하는 글들도 있구요. 특히 너에게묻는다라는 시가 그렇더군요. 단 세줄로 독자를 압도하는 안도현님의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또, 제 가치관에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제 삶의 기준에 동요를 주는... 그런 글귀들이 많았습니다. 읽는 관점이나 사고방식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겠지만요. 꼭 한권씩 곁에 두시고 언제든 펼쳐보세요. |
| 안도현... 시를 읽고 쓰는 사람 중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특히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는 암송되는 시로, 정현종의 <섬>과 대표적인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처럼 외우기를 잘 못하는 사람도 그 두 편의 시는 외울 정도다. 시란 짧으면서도(압축, 함축) 뭔가 확실한 주제를 전달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직접적이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부끄러움으로 피어나는 꽃들'이랄 수 있다. 그의 자서에서 밝혔듯, 그는 스스로 변해야 하리라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은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시에다 삶을 밀착시키고 삶에다 시를 밀착시키는 일"이란다. 바로 이러한 모토로 만들어진 시집이, 시가 여기에 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연탄 한="" 장="">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중략...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반쯤 깨진="" 연탄=""> 안도현은 연탄 시인이기도 하다. 지금 아이들은 보기조차 어려운 연탄이라는 소재는 삶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제재로 이용되었다. 특히 그의 <너에게 묻는다="">는 세 줄로 된 시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시 전문). 그의 <연애>라는 시도 참 좋다. 부끄러움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바로 그의 시이다.연애>너에게>반쯤>연탄>섬>너에게> |
|
삶이 날 속이는 걸까, 하루종일 알싸한 볕 한 번 머물지 않는 방 안, 종일토록 울기는 커녕 신음소리 한 번 내지르지 않는 전화기. 퀭한 눈으로, 이제는 힘에 겨워 이 작은 몸하나 데워주지 못하는 나의 피 샘을 대신하여 연탄 노릇하겠다는 한약 봉지 빈 껍데기로 하루를 셈하고, 비껴가는 세월을 느낀다. 분명 저 밖에는 삶을 치열하게 부둥켜 안고 사는 이들이 있을 것인데...
그런데, 이 시집에는 지난한 삶의 파편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할 망정 차마 떨쳐내지 못하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삶의 편린들이 녹아있다. 그리고 그 삶의 조각들은 치열하다. 무언가 싸울 대상이 있을 때 삶은 활기차게 된다. 이 시집에는 싸움이 있다. 분노도 있고, 결코 절망하여 나자빠질 수 없는 애착이 있고, 투지와 끈기가 있다. 다 타들어갈 망정 삶의 터널을 돌파하려는 굳센 의지가 있다. 때로는 수필인가 싶게 자잘한 일상도 담겨있고, 간간이 수줍음도 숨어 있다.
삶에 지쳐, 가까운 이에게조차 웃어줄 수 없는 사람은 이 시집을 한 번 만나보라고 하고 싶다. 분명 가슴 뭉클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비가 뚝 그치자 마늘밭에 햇볕이 내려옵니다 마늘순이 한 뼘씩 쑥쑥 자랍니다 나는 밭 가에 쪼그리고 앉아 땅 속 깊은 곳에서 마늘이 얼마나 통통하게 여물었는지 생각합니다 때가 오면 혀 끝을 알알하게 쏘고 말 삼겹살에도 쌈싸서 먹고 장아찌도 될 마늘들이 세상을 꽉 껴안고 굵어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마늘밭 가에서="">전문마늘밭> |
|
나는 연탄을 좋아한다. 이 시집의 서두에 실린 시는 말한다. 연탄 함부로 차지 말라고 너는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반문한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이 오래고 오랜 연료인 연탄, 시집은 우리의 추억 속에 있던 사라졌가고 있는 것들을 소환하여 되새긴다. 국방색 바지, 연애시절, 학창시절 멀어져가는 추억들을 애써 기억해내어 따스한 추억으로 만들어낸다. 시인이 해직교사로 쫓겨난 학교를 그리는 순간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그를 반기고 밤에 시쓰기를 하면 불구멍을 조절하고 있을 젊은이를 생각하며 엮어내는 따뜻한 시. 이 시집의 곳곳에는 이 추억의 잔치가 펼쳐져 있다. 시집의 제목인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은 백석의 시에 있는 구절이다. 가난하고 외로운 상황에서 문득 떠오르는 사랑이 그 시에 있었다. 아마 안도현 시인이 제목으로 정한 이유도 자신의 시가 힘겨운 세상의 모든 괴로움에서 사랑을 발견하길 원하는 소망 때문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사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
|
사랑... 인간이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의 지배 사상이 곧 사랑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인 시에서 노래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 대부분이다. 남녀간의 사랑의 줄다리기, 정열적인 사랑으로 충만한 심정, 이별로 인한 고통...
좋은 소리도 한 두번이고 좋은 음식도 한 두끼지...
매번 읽는 시들이 거기서 거기라면 시집이란 읽을 만 한 것이 못된다고 탄식하며 등을 돌릴 지도 모른다.
오랜된 고전 대부분이 남녀간의 사랑이라 할 지라도 단순히 사랑이야기만 적힌 것도 아니거니와 인간사 전부를 남녀간의 사랑만으로 나타낼 수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안도현 님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제목부터 사고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그리움에 관한 시일까, 고독에 관한 시일까, 상실에 관한 시일까....
뻔한 스토리가 아닐 것이라는 설레임은 시집을 덮는 그 순간까지 계속 된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도 고독을 느낄 때,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도 그리움을 느낄 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잡아주고 토닥여 줄 수 있는 그런 시귀들로 가득한 시집이라 느껴진다. [인상깊은구절] - '나에게 보내는 노래' 중에서 너를 위해 내가 불러줄 노래가 있으니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많아서 철길은 꿈쩍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철도노동자는 푸른 제복을 벗지 않고 있다 기다리는 기차는 오지 않았지만 대합실을 이대로 비워 둘 수는 없다 죽어도 누울 곳이 없는 껌팔이 소년과 귀싸대기 빨간 능금들을 좌판대 위에 두고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 집이란, 돌아가 편히 쉬는 곳이 아니라 국물을 끓여먹고 등짝을 데우는 곳이 아니라 단지 떠나야 할 때 구두끈을 조여매는 곳 ....(생략) |
|
이제 종영한 '아줌마'에서, 웃긴 장면은 수없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압권이랄만한 장면으로, 장진구와 한지원이 언약식을 하던 장면, 두 사람이 황지우의 시를 낭송하던 장면이 있었다. '우리 마음 속의 별자리가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낙타야, 어쩌구 저쩌구' 하던 시, 아마도 '나는 너다'에 실려있던 시던가..
영화 <편지>에 등장했던 황동규의 시구절이 황동규의 시집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는데, 이 시집에도 그와 비슷한 행운이 있지 않았을까. 카이스트에서 이 시집의 시가 인용되었다면, 베스트셀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판매부수가 높아졌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실제로 그 시는, 카이스트를 보지 않은 나에게도 어디선가 본 것 같고 어디선가 들은 것같은 시였다. 인용하자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시집을 대학 후배에게서 선물로 받았었다. '누나는 이런 시 별로 안 좋아할 것같지만, 저는 굉장히 좋아했던 시집이거든요.'라고 후배는 말했었다. 글쎄,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연탄' 시들은 웬지 찡하게 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다른 시들은, 딱히 맛없다고 뱉아버릴 정도는 아니지만 맛이 없는 편이긴 한, 그러나 좀 많이는 먹게 되는, 그런 오래 묵은 튀밥같은 시들이다. [인상깊은구절]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 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