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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기다렸다가 만났던 경험이 있는가? 만남을 간절히 고대하며 그리움으로 애가 탔던 시간. 그런 기다림은 지난하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만남의 감격을 배가 시키고 만남의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한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성도의 기다림도 이와 같지 않을까.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로 죽었던 인간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 고립되고 단절된 인간의 현실 속에 오셔서 친히 관계를 맺어주셨다. 그리고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하늘로 가셨다. 성도는, 다시 오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에 근거해 예수님을 기다린다. ’과거‘에 만났고 ’미래‘에 다시 만날 것을 ’현재‘의 시간 속에서 고대한다. 성도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예수님과의 ‘이별’이 ’대망’이 되는 역설을 경험할 수 있는 건, 예수님의 ’약속‘ 때문이다. 약속은 성도의 기다림을 권태와 무의미가 아닌 능동과 기쁨으로 바꾸어 준다.
정진호 작가의 ≪기다림과 만남≫은 ‘기다림’과 ‘만남’이라는 두 주제를 깊이있게 사유하게 하는 책이다. 고대 철학부터 현대 문학까지 인문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묵상하게 한다. 인문학과 신학을 버무려내는 저자의 실력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나는 이 책을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읽고 또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를 아껴 읽고 싶어 낭독도 했다. 읽을 수록 느낀 건, 이 책은 잘 우려낸 사골곰탕 같다는 것이다. 자극적이지 않아 처음엔 싱거운 것 같아도 먹다보면 어느새 뼛속 깊이 진한 영양을 채워주는 사골곰탕. 이 책도 글 한 편을 뭉근히 읽어내야만 그 의미를 선명히 볼 수 있는, 깨달음과 감동을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기독교 저자 중에 이 정도 내공의 소유자가 몇이나 될까. 저자가 유명해지지 않은 게 의아하면서도 또 이런 저자는 나만 알고 싶은 욕심에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싶기도 하다.
듣기론 이 책이 독자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볍게 소비하는 책, 힐링을 주는 책, 공감과 위로를 주는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테니까. 그런 이유라면 이 책이 외면받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다. 그러나 이 책도 (다른 면에서) 가볍고 치유가 있으며 공감을 선사하고 있다. 자칫 어려울 법한 내용을 쉽게 잘 풀어냈다는 점에서 가볍고, 독자로 하여금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치유가 있으며, 기다림의 과정에 있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면의 한계상 구체적인 감상을 더 남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내가 몇번 더 반복해서 읽었던 글이 있었는데, 하나는 ’영원‘을 창시하신 예수님이 인간의 유한한 시간 속에 들어오셨고, 인간은 예수님의 약속을 ’상기‘하는 것을 통해 예수님의 ’영원‘을 누릴 수 있다는 글이었고 (43), 또 하나는 꽉 막힌 원 안에서 원 안의 한 점과 원 밖의 한 점을 선으로 그은 것처럼 예수님이 이 지구 안으로 뚫고 들어와 시공간을 초월해 만나주신다는 내용의 글이었다.(267) 나는 이 두 글이, 기다림의 ‘시간’적인 면과 만남의 ‘공간’적인 면을 잘 표현해 주었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사유도 좀 신선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공간 속에서 예수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글이어서 더 오래 눈길이 머물렀던 것 같다.
정진호 작가의 이 사골곰탕 같은 책을, 기독교인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저자의 다른 책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같이 읽어보시면 좋겠다. 나도 내돈내산 했다. 정진호 작가의 책은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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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기쁨 그리스도인은 때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을 고대한다. 그날은 언제인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다시 오시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기다림은 미래의 현재를 생각하는 일이다. 이러한 상기는 장래를 잡아당겨 현재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예수님께 향유를 아낌없이 부은 여인도, 그리스도인을 향한 모진 핍박 속에서 오히려 신앙이 더욱 굳건하였던 초대 교회 성도들도 기다림 속에 있는 상기, 그 소망의 능력을 알았던 자들이다. 오늘만 사는 오늘이 아니라 미래의 그날을 미리 사는 성도들의 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그 하루하루는 녹록지 않다. 자본주의라는 거부할 수 없는 시스템 안에 살면서, 우리의 궁극적인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다림과 열망은 쉬이 식는다. 영적 갈망은 하향 평준화되고 말았다. 잠시 나 자신과 거리를 두어 “사랑하라, 그러나 네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조심하라.”(p.65)라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또,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와 언젠가는 영원히 함께 할 그 대상을 알아가는 여정이다. 안셀무스는 평생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하였다. “주님, 저는 당신의 숭고함에 침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것에 제 지성을 비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마음이 믿고 사랑하는 당신의 진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믿기 위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만일 내가 믿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 믿기 때문입니다.”(p.69) 그의 고백은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이 기다림은 때로 만남의 요원함으로, 또는 기다림을 위한 기다림으로 소화되기도 한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들 사이에서, 기득권과 이권을 차지하고자 기다림을 항상 유보적인 것으로(p.75) 가면 씌우는 이들에게 기다림이란 그저 장사 수단일 뿐이다. 기다림이 길면 길수록 더 이득인 종교 장사일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기다림은 속물적이거나 헛되지 않다. 또한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지루한 시간을 버티는 권태로움도 아니다. 권태로움은 아무런 존재 의미도 목적도 없이 자신이 내던져진 존재라고 믿는 자들에게 허락될 뿐, 살아야 할 이유와 터전과 사명을 주시며 언제나 환대하시는(p.98) 하나님을 아는 자들에게 권태로움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내던져진 존재가 힘겹게 쌓아 올리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내게 부여된 존재 의미 즉 실존에 관해 믿고 확신하는 이는 기다림의 긴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잃지도 자기 세계를 빼앗기지도 않는다. 하나님 안에 뿌리내리는 것이다.(p.104)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이 존재에의 용기(p.104)가 머릿속을 떠도는 사유가 아닌 행위라고 말한다.(p.107) 영원한 본향을 기다리며 다른 곳에 곁눈질하지 않는 액션이다. 기다림의 허무를 물리치는 유일한 수단,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상이다. 또한, 하나님이 찾으시는 또 다른 이들을 보듬고 사랑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말 사랑할 줄 아는 오래고 깊은 마음, 하나님의 한가로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p.128) 그 한가로움에 참여할 때 우리는 상상 속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기다림은 사랑에 마침표를 찍는다. 사랑이신 예수님은 용기 내어 아름다운 기다림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보혜사를 보내 주셨다. 정말 위로가 되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그 자체로서 진실로 갈망하는 것이며, 확실한 대상과 연결되며, 사랑은 일종의 운동이며, 모든 운동은 무언가를 향해 움직인다.”(p.163)는 사실이다. 기다리는 자와 기다려지는 자는 서로를 기다린다는 이해는 기다림을 기뻐하게 한다. 내일은 내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충분히 가까이 오셨으며(p.165) 우리는 그 사실을 기쁨으로 누리면 된다.
만남의 기쁨 살아가며 진리의 빛, 미혹하는 빛을 저울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명의 빛을 제쳐두고 돈의 발광, 한낱 이데올로기의 발광, 죽음의 발광(發光)을 향해 돌진하려 발광(發狂) 하지는 않았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하게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이때 사람은 완전한 생각도 없고 설령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그대로 이룰 능력도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p.197) 사람이 감히 할 수 없는 것을 능히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꿈, 그 꿈을 함께 꾸는 삶을 그린다. 이는 선을 소유하여 이웃들과 더욱 널리 소유함으로 드러날 수 있다(p.222),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태함과 무책임함에서 벗어나 예수의 생명을 잇는 생명력 있는 삶의 모습이다. 생명력이 살아나면 내 안에 꿈틀대는 타자화의 옷을 벗을 수 있다. 모래보다 더 많은 모래와 모래 사이,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될 수 있다.(p.232)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신 삶의 모습이다. 이때 우리는 복음의 탁월성과 즉각성에 무릎을 탁 치며 기뻐하고 웃을 수 있다. 이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큰일에 대한 신뢰, 이 세상의 바뀔 것 같지 않고 이 끝 모를 반복적 억압과 굴레와 운명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p.240) 세상의 거센 물결을 거스르는 믿음은, 마치 직선이 원에 균열을 내 빛을 비추듯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의 온기를 불어 넣음으로 시작된다. 내 안에 거하기로 작정하신 예수님의 도우심, 그 은혜가 기다림을 고통스럽게 하고 지루하게 만드는 갖은 방해물을 넉넉히 이기게 하는 것이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 불변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이 온몸의 찢김과 온몸의 부활과 온몸으로 다시 오심으로 내게 성큼 걸어온다. 문 밖에 서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 비로소 나도 문을 열고 온몸으로 그분을 만나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무한하고 영원하신 존재에 내 시선을 고정하면, 유한하고 일시적인 내 모습에도 낙심하지 않게 된다. 이는 물리적 시간 크로노스에서 의미적 시간 카이로스를 길어 올리는 순간이다.(p.281) 예수님은 '존재했던', 또는 '다시 오실' 분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오늘, 여기, 지금 만나주신다. 그분은 항상 먼저 찾아오셔서 동시대인으로서 곁에 함께 있어주시고, 자기 사랑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사랑하신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것처럼 "죽은 자를 기억하는 사랑의 행위"(p.294)와 같은 경지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 역시 누군가의 동시대인이다. 충실한 이웃으로 살아감으로써 예수님의 동시성을 현현하는 자가 된다. 예수의 동시성, 영원이 인간이 계수 할 수 있는 시간관념으로 날아든 그 지점을 "때가 찼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온몸으로 내게 사랑을 확증해 주시며 이미 때의 충만을 계시하신 주님, 그분은 오늘 내게 영원한 충만을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겠느냐 물으신다. 만남과 기다림은 만물이 소생할 봄과 그 봄을 기다리는 겨울과 같다. "언제부터 봄이에요? 언제까지 겨울이에요?"라는 아이의 물음에 쉬이 대답할 수 없는 것처럼, 만남과 기다림은 서로를 품고 있다. 겨울은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겨울은 반드시 봄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겨울은 몸을 한껏 웅크리고서 봄을 한가득 품는다. 관념이 실재가 되고, 사유가 실천이 되기를 바라며 책을 덮는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영원한 신랑 되신 존재를 온몸으로 자주 기다릴 것이고 온 맘으로 자주 만날 것이다. 시대의 칼바람에 맞서기가 두려워 바람을 피하고, 두 볼을 까칠하게 할퀸 칼바람의 흔적이 미워 바람을 등지려 할 때, 쏜 화살같이 나를 만나러 달려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를 향해 나도 기뻐 뛰어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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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잘 차려진 밥상이 눈앞에 있다. 요리 하나하나를 '음~~ 맛있네, 이건 어떻게 만들었을까? 처음 보는 음식이다'하며 맛본다. 배는 든든해지고, 몸에도 영양이 가득 채워진 기분이다. <기다림과 만남>을 읽고 난 느낌이다. 목사에게 의존하기보다 성도 스스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목회를 추구하는 저자는 인천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주님의교회'를 섬기고 있다. '브솔 영성 아카데미' 사무총장으로 섬기며, 저서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세움북스)가 있다. 다양한 책을 읽고 통합하고 질서정연하게 연결하여 주제에 맞게 글을 풀어내었다. 툭툭 튀어나오는 인용구들이 흐름을 깨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는 인용구가 많은 논문 같은 글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 책은 너무 많은 인용구가 있음에도 저자가 잘 소화하고 적재적소에 가져다 놓아서 불편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1부에서는 기다림의 기쁨에 대해서, 2부에서는 만남의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는 신랑이 도착해야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를 온전하고 충분한 존재가 되게 합니다. (312쪽)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지금 여기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마음과 태도가 필요하고, 어떤 목적과 의미로 삶을 채워가면 좋을까 하는 질문을 가져다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김수영, 노천명, 로버트 프로스트, 백석, 이상의 시집을 읽고 싶다. 존 웨슬리, 레프 톨스토이, 알랭 바디우, 앙리 베르그송, 에리히 프롬, 움베르토 에코, 장 보드리야르, 카를로 로벨리, 도스토예프스키, 특별히 키르케고르 작품을 읽고 싶다. <어린왕자>, <어거스틴의 고백록>, <팡세>, <그리스도를 본받아>, <5가지 사랑의 언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말랑말랑한 힘>, <라틴어 수업>, <아직도 가야할 길> 등 읽었던 책이 언급된 부분을 읽을 때는 확실히 집중도 잘되고 조금 더 쉽게 이해되었다. 올해 이 책에서 언급한 책 몇 권을 읽어볼 생각이다. 이미 책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책도 있다. 나는 왜 그렇게 책이 읽고 싶고, 읽고 있는가? 이 책의 제목 <기다림과 만남>처럼 예수님을 기다리며 지내는 현실의 삶을 그분의 뜻에 조금은 더 적합하게 살고 싶어서이고, 그분을 더 사랑하고 싶어서이다. 내가 흘려보내는 시간이 주님과 함께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채워지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미 나를 찾아와 주시고 만나주신 예수님이 내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삶에서 행동으로 나타내기 위함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과연 하루하루 예수님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가? 과연 매일 예수님을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나? 세상의 속삭임에 빠져서 말씀을 들을 마음의 자리가 없는 건 아닐까? 이데올로기와 현대 사상에 의해 나도 모르게 잘못 생각하는 부분은 뭐가 있을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성경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이 생겼다.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또 책을 읽고,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변화하고 행동하게 될 것이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은 기대와 기쁨, 한가로움과 웃음, 초월과 소망으로 채워질 것이다. 인문학적인 사유와 신학적인 기본을 한 권에서 채우고 싶은 분에게 좋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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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과만남 #정진호지음 #세움북스 #인문학과신학으로헤아려본시간그리움그리고사랑 그리스도인에게 기다림은 무엇이고, 시간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시간이라 하겠다. 나에게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쁨과 설레임보다는 지루함과 피곤함이었다. 그러나 기다림과 시간은 연속으로 역행하는 것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기다림을 한정적으로 단정지었던 나에게 기다림의 의미가 무엇인지 상기시켜주기도 하여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것. 그 연속은 영원을 가르킨다는 것.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며 무한한 영원의 세계가 존재하게됐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지 모른다. 한없이 기약없이 기다림을 어떻게 보내느냐를 알게되었다. "지금" 이시간 현재를 살아가지만 과거는 현재가 만들어 낸 관념일 뿐이다. 이렇게 연속된 시간속에 엃매여사는 인간의 하나일 뿐이며 인간은 시간의 영원함을 사모하기도 한다. 인간의 존재가치나 인간이 영원을 염원하지만 인간의 존재이유는 하나님이 창조해내심을 잊지말아야 한다. 기다림을 어떻게 채우고, 어떤 만남을 갖느냐가 나에게도 화두가 된 지금. 확실히 어릴적의 신앙과 현재의 신앙 그리고 시간도 허투루 쓸 수 없는 지금 이시간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간절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순간의 각기 다른 시간이 만나 나를 채워간다. 작가의 다양한 혜안을 통해 기다림과 만남을 들여다보았다. 작가의 방대한 지식으로 첨철되어 만남의 길을 안내했다. 그 길을 따라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져갔다. 깊이있는 독서로 또다른 사고의 방향으로의 여행이었다. 끝없이 한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만났고, 마음을 만져주고 보듬어주는 성령님을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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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과 만남 인문학과 신학으로 헤아려 본 시간, 그리움 그리고 사랑 지금 딱 성탄절 때 읽기 좋은 책, 예수님을 기쁘게 기다리는 시간에 알맞은 책을 읽어보았다. 시 같기도 하고 묵상 같기도 해서 읽는 재미가 있고 주님과의 만남을 기다림을 더 풍성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교양 과목으로 들었던 철학자들과 공연예술에 대한 내용도 있어서 반갑기도 했고, 지극히 이과적인 나의 일상과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신앙에 대한 인문학적 시각도 느낄 수 있어서 새로운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제1부 기다림의 기쁨, 제2부 만남의 기쁨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의 무게는 자기 자리에 있어야만 안정감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본래의 자리를 떠나면 불안정해지고, 제자리로 돌아가면 안정감을 찾게 된다고. 이 말에 깊은 공감이 되었다. 상황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는 불안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평안하다. 우리가 살아가며 해야할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일이다. 영원한 언약, 확실한 은혜를 기억하기! 불안과 허무와 권태를 극복하고 돌파할 수 있는 한가지가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귐이라는 것이 지금 나의 삶에 큰 위로가 되었다. [시편 31:24]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바울 사도는 세월을 아끼라는 말을 하는데, 이 뜻은 그 시간에 의미있는 무엇을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내어 쫒은 자리에사람은 자기애를 채우고 우리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으로 가득한 삶은 부족함 없고, 영원한 안식이 있다.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너의 영혼의 갈급함을 채우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은 내안에 있단다 하시는 성경말씀이 은혜가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것으로 기브앤테이크가 아니라 오늘 또 부어주시는 은혜다. 돈이든 권력이든 세상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고 계속 갈증을 느끼게 한다. 내가 아무리 넘어지고 힘들어도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 하시고 은혜를 또 부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실때 하나님은 지금 기뻐하라 하신다. 기쁨을 숨기지 않으시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신다. 복음은 미뤄두는 것이 아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기뻐하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확! 들어왔다. 내가 이직 후가 기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초1 때가 기쁜 것이 아니라 지금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셨고 예수님 생일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이 기쁨이라는 말씀이 신선한 충격이었고, 즉각적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이 감사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다. 끝까지 사랑함은 예수님의 사랑의 특징이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유한하나 예수님의 사랑은 끝이 없고 한계가 없고 한결같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이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고 믿음을 내 마음에 주신 것에 감사하다.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으신 분입니다. [로마서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람들은 방법을 원한다. 신앙 좋아지는 방법, 주목받고 관심받는 방법, 사랑하는 방법 등. 하지만 방법보다 먼저인 것이 사랑 안에 거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어떤 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라는 말과 연결된다. 포도나무에 가지로 붙어있는 것. 예수님이 있는 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 그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날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진짜 행복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의미있었고 지금 여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행복이고 네 마음이 하나님 나라라는 말씀이 이번 2023년의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기쁘게 추천한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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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다림과 만남으로 풀어본 인문학이 있는 신학책'이라 할 수 있다. 기다림, 시간, 사랑, 설렘 딱히 정의하기 어려운 것들을 옛 고전, 시, 영화 등 인문학과 신학으로 풀어낸 게 특징이다.
범위가 넓다. 그리스, 로마 철학, 조선, 일제강점기에 때론 시조까지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어디까지인지 감잡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요약을 하기도 쉽지 않다.
몇 가지 자주 인용하는 책이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과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하나님의 방식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이야기로 신학과 고전을 이용한 저자의 깊은 사색을 함께 느끼기에 좋았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내용 중 생애 지루함을 처벌하는 방식에 관해서다.
"한가로움은 신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마치고 안식하십니다. 그 안식하는 날을 복 주십니다. 하나님은 에덴정원을 거니십니다. 이게 바로 한가로움입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우리는 지루함과 권태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한가로움을 주신 복을 걷어차고 우리는 기다림을 참기 어려워졌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세상과 달랐다. 저자는 마르크스를 비판하며 세상을 바꾸는 방식에 대하여 언급한다.
"하나님의 방식은 칼과 혁명의 방식, 더군다나 폭력은 아닙니다. (중략) 예수님은 도리어 "회개하라"선포하십니다. 세상의 구조를 바꾸는 정도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 판'을 바꾸는 것 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한다. 세상의 방식과 다른 하나님의 도성의 사람으로.
물리적인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시간의 파괴를 경험한다. 영원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신앙은 내일의 천국을 위해서 오늘은 희생하는 게 다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지급 새롭게 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삶의 실존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여정 속에 주님이 현현하실 때 바로 잃어버린 삶의 의미와 진실이 살아가는 순간이 된다고 한다.
동시대인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와 동시성을 누리는 것이라 한다. 기다림 후 언제가 만남이 있다는 그 진리만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기다림은 그리움을 동반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를 온전하고 충분한 존재가 되게 합니다"
인문학과 신학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책이었다. 저자의 언급한 책들을 순서대로 읽어가는 것도 좋은 독서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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