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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산문집/ 푸른 사상(펴냄)
문장도 좋지만, 책 사이 페이지를 연결하는 챕터 제목에서 그려진 삽화가 다정하다. 작은 꽃, 나무 등이....
수선화가 두어 송이 벌졌다고 전화를 하신 어머니, 저자는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울린 전화벨 소리에 놀란 목소리로 묻는다. 아마 보통의 자식들이 그럴 것이다. 어머니에겐 꽃 한 송이 피고 지는 일이 매우 큰 사건이다.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이 된다. 어른들은 식물과 잘 소통한다. 우리 엄마만 해도 그렇다. 키우는 꽃과 나무에 물을 주면서 그냥 주지 않는다. 꼭 인사를 한다. 잘 자라라고... 식물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펼친 책이다.
한 편의 소설 같고 동화 같았다. 저자의 어린 시절 솜씨 좋은 어머니의 바느질 덕분에 꼬마 신랑이라는 별명부터, 누나와 매부의 딸 결혼에 반대했다가 어머니 마음 상하게 한 일, 감나무에 감꽃이 피는 집, 할아버지께 회초리를 맞던 일, 봉숭아 꽃물을 들이던 다섯 살 많은 누나, 엎드린 채로 백범 일지를 읽어주시던 아버지, 한없이 사랑을 주시기만 하던 할머니, 그리고 고향 집에 책을 몇 박스나 실어 보내야 했던 일, 책꽂이를 주문하시는 어머니,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고 신춘문예 평론 부분에 당선된 일. 마친 신춘 발표 시기라 이 문장을 보니 더 설렌다....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빈 둥지 증후군, 어머니의 아픈 가슴을 헤아리지 못한 저자의 마음. 아들들은 그렇다. 아들을 박사님이라 부르는 어머니. 어머니도 여자라는 생각....
" 이렇게 큰 집의 모든 방이 패하니 비어 있어서 까닭 없이 적적했는데 책방이 생기니 좋아. 빈집 같지가 않아."
참 많은 사랑을 받으신 분 같다. 어머니 임종 장면은 정말 슬펐다. 한 편의 에세이가 이렇게 흥미롭다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책이다. 읽는 내내 웃음이 머물고 또 그리움에 가슴이 아린다. 내 어머니, 내 할머니를 보는 것 같아서..... 아마 우리 모두의 어머니, 할머니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부모님과 조부모 가족에 대한 사랑, 문학에 대한 열정, 문단과 문학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삼 년 후 고향 집은 철거되었다고 한다. 읽는 독자로 그리움, 마음이 아리다...... 마치 우리 모두의 고향이 사라진듯한...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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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봤을때는 나도 제법 나이가 되었기에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과 겹칠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읽다보니 오히려 부모님의 젊은 시절에 가까운 내용들이 많았다.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은 것 같다. 그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겪어냈는지가 나오고 또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과 애틋함이 느껴지기에 책을 읽는 동안 이름모를 추억과 그리움에 젖어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난간 구석에 밀쳐둔 채 쓰레기장으로 내놓지 못한 키 작은 책꽂이 두 개를 가리키셨다. 나는 그제사 어머니의 심사를 헤아릴 수 있었다. 때마침 아파트 유리창으로 황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옛날 언덕받이 목공소에 송판을 사다 주고 책꽂이를 맞췄던 날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걱정마세요, 어머니, 저 책꽂이는 학교 연구실로 옮길 거예요. 어머니가 제게 처음 맞춰주신 귀한 것인데 오래오래 두고 써야지요."......" 46~47쪽, 키 작은 책꽂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내용이었다. 이런 추억이 누구에게나 한번 쯤 있지 않을까?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공부를 좋아하고 잘 했던 내게 부모님은 동생들과 방을 쓰면서 공부에 혹 지장이라도 있을까봐 그 작은 방을 칸막이로 나누셨고 이불 홑청을 뜯어 커튼을 만들어주셨다. 정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인데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떠올랐다. 같이 좋아해주던 동생들의 활기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칸막이와 커튼으로 막힌 윗목에서 작은 앉은뱅이 책상을 놓고 손을 호호불며 수학 문제를 풀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엄마와 통화하면서 한번 이야기를 꺼내봐야겠다.
또한 중학시절의 은사님을 만나 뵌 에피소드를 읽다 보니 나 또한 그러한 선생님이 계셨다는 게 생각이 났다. 대학교를 다니던 중 고등학교 은사님을 뵙게 된 적이 있었다. 그 은사님을 통해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직접 고등학교로 전화를 해서 나를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하셨었다는 걸 수년이 지난 후에 듣고 얼마나 감사하고 송구스러웠는지...만약 다시 뵐 수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작가의 글들은 이처럼 곳곳에서 수년 간 잊고 지내던 친구들, 선생님, 부모님과의 따스한 추억들 등등을 소환하고 있다. 늘 사건 사고로 시끄러워 조용할 날이 없는 요즘, 마음이 따스해지는 수필 한 편을 읽어보면서 그 동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건 어떨까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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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생각이 나면 이 방에 들어와서 책 들을 펼쳐 보지.그리고 자기 의자에 앉아 차도 마시고." 어머니는 고향 집에 내려온 나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어떻게 책장 열개가 필요한 것을 단박에 알았느냐고 하신다. (-33-) 나의 서당 글공부는 초등학교 (당시는 국민학교라고 함) 입학한 뒤 두 어달 지나서야 끝났다. 천자문을 끝낸 뒤에 한문 공부는 「동몽선습」 까지 이어졌는데 ,그것은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동몽선습』의 첫 구절인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하니 수귀호인자는 이기유륜야니라)'를 수없이 읽었지만 '천지 간에 있는 만물의 무리 중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니,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오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곁에 앉아 『논어』 를 큰소리로 읽어가는 총각들에게 장난을 걸고 새 새끼를 또 잡아다 달라고 조르는 것에 더 열중이었다. (-82-) 나의 책 읽기를 가장 아름답게 여긴 사람은 누님이었다. 누님은 국민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계집아이는 소학교 나온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할아버지의 고집을 아무도 꺾지 못했다. 누님은 초등하교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앞에 나가 답사를 읽었다.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그 졸업식을 구경했다. (-133-) 나는 미국에서 부친 소포가 아무 문제가 없이 한국 설악산 계곡의 백답사까지 전달된 것이 기뻤다. 더구나 무산 스님이 오현 스님께서 포도주를 잘 받았다는 답장까지 미국으로 보내주신 것이 반가웠다.나는 곧바로 다시 무산 스님께 편지를 써보냈다. (-185-) 1986년 봄학기 강의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큰 충격과 절망에 빠져 들었다. 개강하는 날 한 명의 학생도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학과에서는 몇 명의 학생이 수강 신청을 했는지 알 수 없다면서 두 주일 정도 지켜보자고 했는데, 그 뒤 학생 한 명만이 정식 수강 신청을 하고 강의실에 나왔다. 하버드의 교무 규정에는 최소 세 명 이사의 학생이 수강 신청을 할 경우에만 그 강의를 정식 강좌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강의는 결국'실험 강의' 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수 밖에 없었고, 학생을 위해 강의를 지속하고자 한다면 성적은 정식 학점으로 인정한다고 통보해 왔다. (-210-)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권영민 교수는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국어국문학과 입학 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 초빙교수, 일본 도쿄대학교 외국인 객원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한국 현대문학사 』,『한국계급문학운동 연구 』, 『소설과 운명의 언어』 등의 저서가 있었다.권영민 교수는 1948년 생으로서 나의 큰아버지와 나이가 같았다. 봄이 되면 배가 고파서 산과 들로 다녀야 했다.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면, 공부하기 힘든 사회적 현실이 존재하고 있었다.광복후 먹고 사는 것이 급급하였고, 그는 국민학교 입학 전 처음 서당 교육으로 천자문, 동몽선습으로 시작한다. 변변한 교통 편이 없었던 그 시작, 주경야독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건,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누나의 물심양면에 있었다. 특히 이 책에서 눈여겨 볼 것은 저자의 나 잇대에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정서였다. 우리가 살아온 삶과 다른 저자의 삶 곳곳에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가까운 생이 존재한다. 자연과 벗하며 살아왔으며, 스무 살이 되던 해 , 원하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어머니와 할머니가 제일 기뻐했던 기억, 고향 집 사랑방을 사용하였던 것, 하버드 대학교에서 있었던 저자의 흑역사까지 걸어온 마음 따스한 정서가 존재한다. 특히 대학 4학년 때,중앙일보에서 시행하였던 신춘문예 평론 부무에 당선되었던 일화가 있었으며, 사백 매가 넘는 자신이 쓴 논문을 정리하여 단독 평문으로 고치는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그 결과를 전보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자신의 삶 속에 잊혀지지 않은 일화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지금처럼 편리한 삶을 살아온 MZ세대가 이해하기 힘든 그 당시의 삶, 그 안에서 저자가 걸어온 인생, 이십 대의 불안하였고, 병역 징집, 취업 문제, 눈앞에 놓여진 떨리는 행운까지, 통금이 존재하였던 1960~1970년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까지 볼 수 있다.우리의 아버지는 이렇게 살았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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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0년 전이지만 국문학을 전공해 전공 과목 수업 특히 현대소설 관련 수업을 들을 때 과제를 준비하며 권영민 교수님의 평론을 많이 참고했었습니다. 그때 느낀 점은 글은 무척 딱딱했지만 예리한 분석으로 작품을 평하여, ‘문학 작품을 저렇게 분석해야 하는구나’라는 경외감 마저 들었습니다. 권영민 교수의 산문집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는 그저 문학평론가로만 알았던 그가 원래 소설가를 꿈꾸었으며, 우연한 기회에 신춘문예에 평론으로 입상하여 문학평론가가 되었음이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헐어진 목조 건물의 서까래 끝에 매달린 풍경(風磬) 소리가 솔바람에 고즈넉하게 절간 뜰 안에 가득하다. 산길 오르는 사람의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돌계단을 오르는 내 숨소리에 기척을 느낀다. 계단에 오르다가 돌아서 보면, 멀리 서해바다의 포구가 방조제로 막혀 바닷길을 잃었지만, 널다랗게 펼쳐진 호수는 싱싱한 물고기의 푸른 등처럼 햇빛에 반짝인다.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댓돌을 지나 감나무 위로 기어오른다. 한적한 절간을 한 바퀴 돌아보노라면 뒤꼍으로 둘러쳐 숲을 이룬 산죽(山竹)에 솔바람이 소란하다.”
선림사라는 고향인 충남 보령에 있는 조그마한 절에 어머니와 함께 오르며 본 풍경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학창시절 평론을 읽으며 그저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그의 문체가 사실 글의 성격에 따라 그에 적합한 문체였었고, 실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총 4부로 구성된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는 1부에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2부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 3부는 학창시절 이야기, 4부는 교수 겸 문학평론가가 된 비교적 최근 이야기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1부였습니다. 권 교수의 어머니는 평생을 일만하다 돌아가신 농촌 아낙이지만 감수성이 무척 풍부한 분이셨나 봅니다. 자식에게 안부전화를 하시면 항상 첫마디가 꽃소식이었으니까 말입니다. 하얀 목련이 꽃대궐을 이루었다는 이야기와 할미꽃 이야기, 모란꽃, 능소화 이야기 등등. 이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권 교수는 문학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학원은커녕 중학교도 이십 리나 떨어졌고,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역까지 두 시간을 걷고 또 기차로 한 시간을 가야만 했던 궁벽한 시골마을 출신이 대학을 가고,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서울대학교를 가고 박사 학위까지 따서 모교의 교수로 재직한다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평생의 자랑이었을 것입니다. “서울로 시험 보러 떠나고 난 뒤에 내가 꿈을 꾸었지. 동산에서 둥근달이 환하게 떠오른 꿈. 너무 달빛이 곱고 환해서 숨죽이고 달을 바라보다가 깨어보니 꿈이잖어. 아하, 이건 길몽이구나 하구 아무에게도 말을 못 했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우리 박사님’이라 칭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고향집에 찾아오면 소주와 주전부리를 잔뜩 사가지고 노인정에 아들을 앞세우고 가서 노인들이 ‘박사 아드님’ 치하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즐기십니다. 권 교수는 어머니와의 추억으로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어머니가 곱게 지어 입혀주신 한복 바리저고리와 남색 조끼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꼬마 신랑’이라 불린 이야기, 그리고 작가들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 너무 많아 연구실에 둘 수가 없어 고향집으로 보냈더니 어머니가 그간 모으신 용돈으로 책장 열 개를 사서 아랫방에 작은 서재를 만들어 아들 생각도 하고 가끔 집에 놀러오는 초등학교 선생들에게 책도 빌려주는 것을 낙으로 여기시는 이야기, 대학 4학년 때 자취방에 수북히 쌓인 책들을 꼽아두기 위해 어머니가 직접 목공소에서 맞춰주신 네 칸짜리 책꽂이 두 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십 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여든아홉에 돌아가시는 장면을 담담히 묘사한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제일 어른으로 동네의 ‘호랭이 어르신’으로 불리며 조선시대 양반 노인의 위엄을 지키신 할아버지. 하지만 손자를 위해 고염나무에 감나무 접을 붙여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리면 실컷 따먹으라고 하시고, 언니(형)를 따라 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손자를 서당에 보내주신 할아버지. 하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따끔하게 회초리를 때리셨지만, 손자가 초등학교에 진학하기도 전에 천자문을 떼자 마을을 업고 다니며 기뻐하신 할아버지. 이런 할아버지 덕에 권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한자 능력을 갖춰 어휘력을 키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환갑잔치 장면과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 장면은 흡사 백석의 시 <여우난곬족>이 연상됩니다. 아직 전통이 남아 있었던 충청도 지방의 풍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이 수필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손주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할머니. 초등학교 4학년 때 <백범일지>를 사다주셔서 글읽기의 재미를 가르쳐주신 아버지. 어린 시절 다섯 살 어린 동생을 위해 봉숭아꽃 물을 들여주고 할아버지의 고집으로 중학교 진학을 못 했지만 동생이 빌려온 책을 읽으며 함께 책벌레가 되었고, 권 교수가 중학생 때 한내 한산 이씨 댁으로 시집간 마을에서 가장 이쁜 누님. 중학교 졸업할 무렵, 풍비박산난 집안 형편 때문에 고교 진학을 거의 포기한 권 교수를 설득해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하시고, 삼십 년이 지난 후 서울대학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 고마운 과학 선생님. 권 교수와 깊은 교분을 나눈 김윤식 교수와 그의 마음 속에 깊은 산으로 남은 백담사의 무산 스님 등 권영민 교수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들과의 인연과 이에 얽힌 이야기를 읽다보니 권 교수는 인덕이 참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만에 깊은 울림을 주는 서정적인 수필을 읽게 되었습니다.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를 다 읽고 나니 비록 바깥은 매서운 북극 한파로 무척이나 춥지만 마음은 훈훈해 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정말 지인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산문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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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시골집에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다는 소식과 함께 안부전화가 걸려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자식된 도리로써 당연히 우리가 먼저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자주 들여야하는 것이 맞긴하지만요.
반가운 권영민 교수님의 산문집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네요. 현대문학평론가로 잘 알려진 교수님이 그리움과 사라졌지만 잊혀지지않는 것들에 대한 글들로 가득한 산문집 덕분에 저 역시 시골집의 감나무와 채송화 그리고 어릴적 눈싸움을 하면서 보냈던 시절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어릴적 엄하셨던 할아버지. 이에 반해 손주를 아끼셨던 할머니와 어린 시절의 추억들 그리고 어쩔수없이 사라져버린 시골집. 그시절 우리는 가난했지만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동네에 티브이 한대가 있었고 전보를 통해 소식을 들어야만 했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수 없지만 그시절 나누었던 정과 따스함을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늘 그리워하고 잊지 못하겠죠. 자목련이 예뻐서 누이를 위해 가져왔던 소년은 이제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되었고 이제 고향에 돌아가 어릴적 거닐었던 고향길을 거닐어도 그를 알아볼 사람이 거의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늘 고향은 따스한 어머님의 품과 같을겁니다. 연한 보랏빛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게는 또 어떤 색깔로 고향이 머리에 그려질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잊고 지냈던 것들 소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가득해서 마치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겨울 동태김치찌게의 맛을 느껴주게 해주는 책이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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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사는 선녀 혹은 신선을 의미하는 수선화는 자기애, 고결, 자존심, 신비, 외로움이 꽃말이다.
이 책 "수선화 꽃망울이 벌어졌네" 는 저자의 지금까지의 삶 속에 드러나는 많은 이야기들 속에 인생의 달고 쓴 맛을 여미고 있으며 그 가운데 오롯이 독보적으로 보이는 저자의 어머님의 지극한 정성에 대한 따스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가 하면 여전히 나이를 먹으나 않 먹으나 어머니 앞에서는 노년을 맞은 저자 역시 아이와 같은 모습이 된다는 사실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아들을 박사님이라 지칭하는 어머님의 마음,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럽기에 그럴까 하는 생각이면에 사회적으로 활동을 많이 하는 자식의 안위를 앞서 걱정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칭할 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해 보게 된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