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벨리의 아름다운 문장을 가독성 있게 잘 번역해서 많이 배울 수 있어서, 번역자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라는 제목이 아무래도 걸려서 평을 씁니다. 원제가 Helgoland이기에 좋은 한국어판 제목이 필요한데, 그렇게 번역하는 것은 로벨리의 양자론에 관한 관계론 해석을 오해하게 만드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란 제목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은 뜻으로 오해할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로벨리의 핵심 주장은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이 세계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고, 개체란 상호작용의 촘촘한 그물망 속의 매듭이란 거지요. ‘나’라는 것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결국 용수 보살이 말하는 공성(空性)인데, 그 ‘나’를 세상을 있게 한 주체로 이해하게 만드는 제목입니다. 로벨리의 다른 번역판 책 제목도 그런 오역이 있습니다. 번역이 반역이 되어 옥에 티가 되지 않도록 그에 대한 지적도 실례를 무릅쓰고 할 테니, 양해 바랍니다. |
![]()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통해 처음 접한 그의 생각과 이론은 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그가 구사하는 문장은 정말 단순 명료하면서도 핵심만을 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소설의 대가가 구사하는 그런 편안하면서도 생각을 자극하고 일깨워주는 가르침이 있는 글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그가 쓴 책들을 모두 읽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그에게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가 쓴 책은 굉장히 난해한 내용들입니다. 책 몇권을 읽었다고 해서 이해를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부가적인 공부를 해도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상대성 이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양자역학을 이해하려니 더욱 그랬습니다. 물론 이 두 이론은 인과관계로 이어진 이론도 아니기에 하나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다른 이론이 필수인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두 물리 이론은 서로 맞닿아 있는 측면이 있고 상호 보완적인 요소와 비교적인 요소가 있어서 하나를 알고 있다면 그 다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기에 저는 두려움과 부족함으로 항상 그의 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번 책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과학서이면서 철학서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앞서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은 독자분들은 아마 저와 비슷한 느낌을 느끼셨을 겁니다. 근데, 이번 책은 조금 더 철학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좀 더 천착하자면 불교철학과 가깝다고나 할까요. 책의 앞부분에는 양자역학이 누군가에 의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얼마전 영화로 개봉했던 오펜하이머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분자의 이동에 관한 설명들은 단순명료해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불규칙적인 분자의 이동 자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단초로서 받아들이고 넘어갔습니다. 솔직히 그 자체를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양자역학에 대해 설명하던 책은 서서히 그 설명을 철학으로 확장합니다. 비유를 철학적인 설명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 자체가 기존의 과학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고 소위 말하는 분자의 '점프'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설명과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다른 인물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기존의 과학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현상을 계속해서 기존의 이론으로 증명하려는 것보다는 그 자체로 인정하고 그것을 새로운 이론의 기초로 삼는 것이 바로 과학적 발전이고 진보라고 말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다른 현상들을 좀 더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과학적이론이 부족한 제가 감히(?) 카를로 로밸리의 책을 계속해서 읽었고 이 책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읽은 이유는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 사고가 나의 존재를 어떻게 재정립하는지 또 내 생각을 어떻게 확립해나갈 수 있는지 알면 나의 미래가 좀 더 좋은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그런 마인드로 읽으면서 주목하게 된 게 바로 '관계' 입니다. 양자역학은 원자와 분자가 그 대상이 되는 원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를 먼저 관찰합니다. 그런데 이게 묘하게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내가 어떤 성향을 가졌고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만나면 이렇게 행동하고 또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저렇게 행동하고 말입니다. 나 자신은 특정화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정화된 건 아니잖아요. 내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나는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 걸 확인하잖아요. 이처럼 양자역학도 각각의 원소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원소와 만나느냐에 따라 그 반응이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반응들이 나타났고 그걸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이론 즉 관점이라는 겁니다. 앞서 이 책이 과학서이면서 철학서같다고 말했는데요. 프톨레마오스, 갈릴레오, 뉴턴, 슈뢰딩거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과학(역)사를 설명해 줍니다. 그들이 제시했던 공통된 이론과 차별화된 생각을 기준으로 해서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인간이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과 과거의 이론이라고 해서 반드시 낡은 이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양자역학과 더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는 점도 말해줍니다. 물론 해석의 차이이겠습니다만, 참 신기합니다. 어쩌면 우리 세상은 양자이론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졌고 우리 인간도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는데 그걸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인식해서 살아왔고 결국 다시 양자역학으로 회귀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게 말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먼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또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고 또 하나의 착오(각)일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존재하고 그 과정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가장 진보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우리와 세상을 이해하려 애씁니다. 그 기반이 바로 양자역학이라는 말입니다. 현재로서는. 이 책에 나오는 글로 어설픈 저의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제가 좀 더 갈무리해서 적어보면, 이 이론에서 나온 세계관에는 당황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아주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던 것을 버려야 합니다. 세계가 사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낡은 편견임을, 더 이상 우리에겍 도움이 되지 않는 낡은 수레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어떠세요? 저는 이 말이 이 책을 읽을 이유와 읽고 나서 생각을 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 더 들어보면 책의 첫머리와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프로스페로의 말입니다. "주춧돌도 없이 지어진 환영처럼 구름 걸린 탑도, 화려한 궁전도 장엄한 사원도 거대한 지구 그 자체도 그래, 그 안의 모든 것도 녹아내려 이 실체 없는 광경이 사라지듯, 구름 한 조각 남지 않을 거야." 봄이 오는 소리가 곳곳에서 희미하게 들립니다. 또 보입니다.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전 봄이 오히려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 아닌가 합니다. 아니, 사계절이 모두 책읽기에 좋은 계절 같습니다. 전 이 책을 덮고 또 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펼쳐 읽으려 합니다. 처음 읽은 것처럼, 여러번 되풀이해서 읽는 것처럼. 그렇게 양자역학의 관점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해 보려 합니다. |
역시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 답다. 이 세상이 움직이고 존재히는 방법에 대한 물리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가 아름답다. 항상 정신이나 의식이 실재하는지, 또 실재한다면 어디에 존재하는지, 또 그것의 작동하는 방식은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는지가 늘 궁금했다. 이제 이것 역시 카를로 로벨리의 상호간의 작용과 상관관계를 바탕으로한 '관계의 네트워크'란 설명을 읽고 눈앞이 확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
저자는 관찰이 없으면 관계가 발생할 수 없고 모든 것은 관계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결국 이 모든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나로 인해 이 세상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양자역학의 역사를 통해 양자역학의 개념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해주고 자연은 양자역학적으로 형성되어 있고 이 양자역학의 핵심은 결국 '관계'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
해당작가님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을 선택하게 돈 계기는 예스24의 베스트셀러에 있어서인데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느순간 책을 구매하는 것이 아깝지 않게됐어요 좋은책을 읽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이 책도 역시나 훌륭했으니 많은 분들이 읽길 바랍니다 해당작가님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을 선택하게 돈 계기는 예스24의 베스트셀러에 있어서인데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느순간 책을 구매하는 것이 아깝지 않게됐어요 좋은책을 읽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이 책도 역시나 훌륭했으니 많은 분들이 읽길 바랍니다 |
모든 순간의 물리학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 이번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또한 기대를 가지고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 또한 카를로 로벨리에게 푹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200만부 이상 팔린 책이라고 하니 한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
철학의 눈으로 바라본 양자역학 혹은 양자역학을 철학의 관점으로 본 책이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철학으로 풀어낸 책이다. 양자역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봤는데 철학으로 풀어내니 더 좋은 느낌...양자역학과 철학은 늘 관심의 대상이여서 그런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글과 생각을 하는게 좋은 느낌이 든다. 책내용은 세계는 고정된 속성을 지닌 자립적인 실체, 즉 물질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상호 간의 작용과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한 관계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 책에서는 양자 이론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이라 한다. |
여기서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이야기한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내 마음이 없으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로 일체유심조이다. 어렸을때는 일체유심조가 내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라는 이야기로 알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생각이 추가되었다. 내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라보는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의미 부여할 수 있는 내 마음이 없다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다. 세상을 판단하는 두가지 학문인 도학과 과학이 하나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과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 사이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습니다. 상호의존성과 관계성1. 로벨리의 관계론적 해석로벨리는 양자 이론의 '관계론적' 해석을 통해 세계를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의미를 갖습니다[1][5]. 어떤 물리적 대상도 다른 대상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자신의 특성을 드러냅니다.2. 불교의 연기설반야심경을 비롯한 불교 경전에서도 유사한 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불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연기설은 모든 현상이 상호 의존적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7].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구절은 형태와 공(空)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실체의 부재1. 로벨리의 사건 중심 세계관로벨리는 세계가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10]. 그에 따르면 아무것도 영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2. 불교의 무아설불교에서도 유사하게 고정된 실체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반야심경은 "오온개공(五蘊皆空)"을 통해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제로는 공(空)하다고 설명합니다[7]. 이는 고정된 자아나 실체가 없음을 의미합니다.관찰자의 역할1. 로벨리의 관찰 중심 이론로벨리는 관찰이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봅니다. 그는 인간의 관찰뿐만 아니라 물질 간의 상호작용도 일종의 '관찰'로 간주합니다.2. 불교의 마음 중심 세계관불교에서도 마음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개념은 모든 현상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관찰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로벨리의 견해와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두 사상 모두 세계를 고정된 실체들의 집합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와 사건들의 네트워크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입니다. 또한 관찰자나 마음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며, 모든 것이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관점을 공유합니다. |
이 책을 몇 번 쯤 더 읽어야 저자가 이야기 하려는 양자역학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오늘도 이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느낀다. 손에 착 감기는 적당한 사이즈에 놓기 싫을 정도로 부드러운 하드커버의 책표지가 마음에 든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매우 흥미로운 책. |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며, 그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끼는, 빛으로 가득한 이 마법의 만화경.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연약한 베일은 바로 이 무한한 신비를 탐색하기 위한 서투른 도구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손에 든 지도를 믿고 의심 없이 세계를 건널 수 있습니다. 그렇게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고요. 세계의 빛과 무한한 아름다움에 그저 압도된 채로 말없이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참을성 있게 책상 앞에 앉아 촟불을 켜고 노트북을 열고, 실험실에 가서 친구나 논적과 논쟁을 벌이고, 성스러운 섬에 틀어박혀 계산을 하고, 새벽녘에 바위산을 기어오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차를 마시고 벽난로 불을 지피고 다시 자판을 두드리면서 몇 가지를 조금 더 이해하고, 기존의 해도를 집어 들어 그 한 부분이라고 더 낫게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자연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