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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이유" 내용보기
독특한 필명 때문이었는지 처음 접한 순간부터 김멜라 작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대학시절 소아마비로 장애를 앓고 있던 후배 희연이를 떠오르게 했던 「나뭇잎이 마르고」를 통해 이 작가의 깊이와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고,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와 심각해질 수 있는 사안과 현실들을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희화화하며 ‘그게 바로 살아내지는 삶’이라고 말하는
"우리가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이유" 내용보기
 독특한 필명 때문이었는지 처음 접한 순간부터 김멜라 작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대학시절 소아마비로 장애를 앓고 있던 후배 희연이를 떠오르게 했던 「나뭇잎이 마르고」를 통해 이 작가의 깊이와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고,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와 심각해질 수 있는 사안과 현실들을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희화화하며 ‘그게 바로 살아내지는 삶’이라고 말하는 「저녁놀」을 통해 작가의 여유에 깊게 공감하게 됐다.

 그 뒤로도 나에게 「제 꿈 꾸세요」, 「이응이응」 등에서도 작가 특유의 접근으로 무거워질 법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우리가 끝끝내 사랑하고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들을 보여주고 있어 괜시리 더욱 찾아보게 됐다. 이제 ‘김멜라’라는 이름은 그저 하나의 작가가 아닌, 믿고 보증되는 읽어야만 하는 작품의 다른 이름이며, 작가의 앞으로의 생각과 행보가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이름이다.

 소설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쾌활하고 유쾌한 문체와 심각한 상황도 쿨하게 넘겨버리는 여유 등이 작가가 자기 자신의 생활과 삶에 대해 쓰는 에세이에서는 어떻게 드러날지 내심 큰 기대를 안고 「멜라지는 마음」의 책장을 순서대로 넘겨본다.

 “내가 말없이 애꿎은 잔만 내려다본다 해도, 그렇게 말 없는 시간조차 나에게는 당신과 나누는 대화의 바탕이다. 그 말 없음의 시간이 쌓여 우리가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대화가 이어지리라 믿는다. 서툴게나마 사랑을 말하는 나의 이야기가 또 다른 사랑의 말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시작하는 말 中)

 책을 시작하는 말에서 드러난 김멜라 작가의 삶을 대하는 방식에 공감해 본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고, 또한 누군가와 함께 시간과 상황을 공유ㆍ공감하며 보내게 된다. 그러한 삶 속에서 나와 누군가를 계속 이어주고, 또한 내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도 나를 이해하는 그러한 바탕은 바로 상대와 상황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될 것이다. 그것이 좀 더 커지면 여러가지 의미의 사랑으로 커져 나가리라 믿어본다.

 내 유년을 숫자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1’이 아닐까. 가장 원하는 유일한 하나에 모든 힘을 쏟는 사람. 유일한 하나는 엄마였다가 친구였다가 지금은 연인이 되었다. (…) 나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순위를 매겨 ‘1’을 찾았다.

 나 또한 그렇고,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만의 ‘1’을 찾으려 하는 것이 바로 삶 자체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릴 때는 소위 레벨 있는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사회에 진출할 때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곳으로 나가는 것이, 어느 순간에는 재산으로, 어떤 환경에서는 승진과 명예로, 계속 모양만 달리한채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만의 ‘1’을 찾는 항해를 계속 하는 것은 아닐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나에게는 이것이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나는 그 자유를 확인받기 위해 책을 읽고, 나처럼 책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

 왜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 그 이유를 자세히 밝히면 좋아하는 마음의 환상이나 신비감이 사라진다고도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좋은 이유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마음을 되새기는 게 좋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나에게 ‘마땅히 좋아할 만하다’라고 말하며 그 마음을 지지해 주고 싶다.

 그 좋아하는 마음에 내가 합당한 사람인가 돌이켜보게 되어 그렇다. (…) 내가 이걸 받을 만한 사람인가. 정말 그런가. 나에게 오는 이 말들에 내가 알맞은 사람인가.

 정말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저 사람의 마음의 소중한 부분을 내가 차지해도 되는 것인가. 내가 과연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요즘 들어 계속 짊어지고 있는 나의 화두인데, 누군가의 응원을 받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그 받은 마음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나도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하고 있는지 찬찬히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점이다.
 나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나의 평온함은 내 속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찼을 때 그러하리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러한 평생토록 평온함만을 드러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책 속의 말을 나는 이제야 알기 시작했다.

 지금은 노년에 접어들었을 그 시절의 아이들이 쓴 시를 읽으며, 나는 내가 들어야 할 소리를 깨닫고, 안부를 물어야 할 존재가 누구인지 배운다. 자세히 보고, 꾸임없이 듣는 태도를 연습하면서 낯선 형식의 기교를 익힌다.

 진짜를 모사해 만든 정성스러운 가짜. 그 가짜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진짜를 느끼게 해주는 일. 그러면서 진짜라고 불리는 색과 모양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되묻는 일. 겨울 들판의 새를 보며 “어예 사노?”라고 묻는 일. 소설가로 살아가는 지금도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나라는 개성이 없어도, 아니, 오히려 그 초조함의 색안경을 벗고 보니 더 충만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전체로 녹아드는 하나하나의 얼굴들이 나라는 틀에서 자유롭게 나를 풀어주는 듯했다.

 나의 소리를 내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어야 함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인해 중요한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함을 새삼 깨달아 간다. 내 눈에 쓰인 색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기를, 나의 올바름을 강요하기 보다 나의 태도와 행동에서 자연스레 드러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생생한 표정과 귀에 익은 목소리, 나에게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죽었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어딘가에서 여전히 존재하며 변함없이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연기일 뿐이라 해도. 하지만 우리의 삶도 어차피 하나의 연기일 뿐이라면.

 우리는 떠나온 그곳에서 많이 다투었고, 그보다 더 자주 다정했으며, (…) 결국 그 모든 시간의 우리의 삶이자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

 소중한 것일수록 입 밖에 내지 않고, 아끼는 존재일수록 더 삼가는 것처럼. 드러나면 때가 탈까, 내보이면 모퉁이가 헐어버릴까 고이고이 안으로 담아 간직하는 것도 나쁜 길로 빠지기 쉬운 우리의 욕망과 비교 심리를 잘 어르고 달래며 사는 법이 아닐까.

 잘 살아본다는 것, 잘 살아간다는 것. 하루하루의 충실함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으리라.
 그저 잘 살아가기를, 어느 순간에서도 지레 겁먹고 도망가기 보다는 그저 담대하고 묵묵하게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그 힘의 소중함을 믿고 오늘도 뚜벅뚜벅 나아가 본다.

 원하던 바를 이룬 사람들은 그것을 이뤄낸 기쁨만큼이나 뭉텅이로 빠져나간 듯한 영혼의 헛헛함에 허우적거려야 했다. 환희가 찾아오면 그것을 뒤덮을 만한 불운의 실오라기도 연달아 풀려나왔으니, 나는 극도의 즐거움과 깍지 끼고 오는 절망의 극단적 사례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내 한계선을 가늠했다. 나는 얼마큼의 기쁨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나는 저 찬란한 빛이 만드는 그늘의 깊이를 얼마나 감내할 수 있나.

 나의 삶이 그저 기쁨과 행복으로만 채워지지는 않으리라. 순간 순간 겪는 모든 고통과 시련, 아픔들 또한 나를 구성하는 일부이고 또 나라는 그 자체이다.
 둘째랑 본 인사이드 아웃과 인사이드 아웃2를 떠올려 본다. 우리의 삶의 내면이 그저 기쁨만으로 채워질 수 없으며, 그 모든 감정들이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삶을 살아가며 겪는 모든 순간의 경험들이 또한 내 삶이리라.

 ‘하느님의 은총은 고통이라는 보자기에 싸여 온다.’는 말이 있듯, 일시적으로 겪는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그 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로 또 나는 이전의 나보다는 한단계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 있으리라 믿어 본다.

 김멜라 작가의 작품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또 그 안에서 나 또한 충실하게 살아내 가기를 희망해 본다.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건 글쓰기에 관한 내 겉치레와 허상을 깨는 일이었다.

 “자유롭게 흔들리며 나아가는 게 내가 가진 좁은 의지보다 말과 글을 더 나은 흐름으로 이끌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 어떤 방향과 속도로 떨어진다 해도 그 불규칙한 추락들도 결국 우리에게 돌아와 하나의 이야기가 될 테니까.” (다시 시작하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