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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공포] 유동하는 근대,「욥기」만 남은 성경 같은
"[유동하는 공포] 유동하는 근대,「욥기」만 남은 성경 같은" 내용보기
<타이타닉>은 우리다. 거들먹대는, 제 잘난 듯한, 눈뜬 장님인, 위선에 가득 찬 우리 사회다. 불쌍한 구성원들에게 냉혹한 사회, 모든 것이 예측되지만, 예측의 수단만큼은 예측되지 않는 사회다. ……우리는 모두 우리 앞에 빙산이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미래가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와 충돌하고, 우리를 장엄한 음악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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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은 우리다. 거들먹대는, 제 잘난 듯한, 눈뜬 장님인, 위선에 가득 찬 우리 사회다. 불쌍한 구성원들에게 냉혹한 사회, 모든 것이 예측되지만, 예측의 수단만큼은 예측되지 않는 사회다. ……우리는 모두 우리 앞에 빙산이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미래가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와 충돌하고, 우리를 장엄한 음악 소리와 함께 물밑으로 가라앉힐 것이다.

자크 아탈리

 

조직화된, 문명화된 삶의 기본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보라. 먹을거리, 쉴 곳, 마실 물, 개인의 최소한의 안전보장……. 그러면 우리는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홉스적인 자연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전쟁을 벌일 것이다.”

티머시 애시

 


 

이 책은 루시앵 페브르의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시작한다.

 

 우리의 시대 역시 공포가 가득한 시대다.” (p.13)

 

16세기를 산다는 것이 언제나, 어디에나 있는 공포를 경험하는 것이었다면, 다섯 세기가 지난 지금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발전소가 폭발하고, 석유 매장량이 동이 나며, 주식시장이 붕괴하고, 든든해 보이던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져버리고, 제트여객기끼리 충돌해 수백 명의 승객들이 죽고, 시장 가격이 미쳐버려 소중한 자산들이 물거품이 된다.

이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직면하는 공포의 정체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는 유동적이고, 유동적 근대(liquid modern age)의 특징으로 발생하는 불확실성이 우리에게 공포를 야기하며, 그 위협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무력과 무기력감이 공포가 주는 가장 두려운 영향력이라고 설명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았듯이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보장을 더 이상 확언하지 못한다. 국가는 지속가능성, 안정성, 생존, 지위나 정체성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하며, 그 때문에 국민의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보장이 불가능하고 보장을 확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는 공포와의 싸움을 개개인의 생활 정치차원으로 격하시켜(p.15)버렸다. 이제 국가는 더 이상 그 영토를 지배하는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급속한 세계화와 갈수록 강해지는 해외 시장의 영향력 앞에서, 닐 로슨의 평가대로 정부는 “글로벌 경제의 하녀로 전락했다”(p.220).

 

오늘날까지, 우리의 세계화는 부정적인 세계화였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공포는 부정적 세계화의 부작용이다. 교역과 자본, 탐사와 정보, 억압과 무력, 범죄와 테러 등등이 고도로 불평등하게 세계화된다. 따라서 요컨대 한쪽에는 더 많은 부가 쌓이는 동안 다른 한쪽에는 더 많은 가난과 억압이 쌓인다. 이러한 불평등에는 대가가 따른다. 소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추구하는 편향적 발전그 과정에서 각종 위험한 부산물들, 즉 민족주의, 종교적 광신, 파시즘, 테러리즘 등등”(p.162)을 양산하는 것이다.

 

유동적 근대 세계에서는 위험과 공포조차 유동적이다. 냉정하게 말해 부정적인 세계화아래서 달아날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우리 모두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세 가지뿐이다.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부수적 피해자’(p.163).

 

이 책은 유동적 근대의 여러 공포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 공통의 근원을 찾고, 그 발견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밝히며, 이를 무력화하거나 무해하게 만들 방법을 모색한다. 달리 말하면, 이 책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하는 책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책의 목적이 이번 세기에 들어와 대부분 부딪칠 것이 확실시되는 과제의 무시무시함을 경고하려는 것, 그리하여 인류가 이 세기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시작 당시보다 안전과 만족을 누릴 수 있게 하려는 것”(p.42)이라고 말한다.

 

자연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이룩한 근대의 문명은 결과적으로 공포에 맞닥뜨렸다. 그리고 인간은 유동하는 공포의 공포를 느낀다. 근대 문명의 이면엔 불확정성과 통제 불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근대는 도구적 합리성에 치중했기 때문에 유동적이 되었고, 우리가 소위 근대의 발전이라고 믿었던 것은 우회(detour)일 따름이다. ‘세계화역시 수익성을 높이고 리스크를 줄이려던 우회의 방편이었다.세계화는 의도하지 않았던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세계화는 거대한 불평등과 불균형을 초래하였고, 인류는 이로 인한 공포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포에 맞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책의 잠정적 결론으로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시하는 것은 지식인의 역할이다. 

다가오는 공포, 우리의 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공포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 그 시작은 그것을 바로 보는 것(p.286)이다.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는 것이다.

다가오는 세기는 궁극적인 재앙의 시대가 되거나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 새로운 협약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 두 개의 미래에 대해, 아직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14.05.30.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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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한 공포에 대한 경계긋기
"예측 불가능한 공포에 대한 경계긋기" 내용보기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있다. 호화여객선 타이타닉 호에서 펼쳐지는 불멸의 사랑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빙산과 충돌하면서 타이타닉 호는 이제까지 안전했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부서지고 만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랑만큼 훌륭한 것이 없다는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남자 주인공의 잭의 가치 있는 죽음 때문에 이들의 사랑이 더욱 돋보인다.한편으로는 우리가 이
"예측 불가능한 공포에 대한 경계긋기" 내용보기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있다. 호화여객선 타이타닉 호에서 펼쳐지는 불멸의 사랑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빙산과 충돌하면서 타이타닉 호는 이제까지 안전했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부서지고 만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랑만큼 훌륭한 것이 없다는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남자 주인공의 잭의 가치 있는 죽음 때문에 이들의 사랑이 더욱 돋보인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타이타닉>은 빙산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빙산 때문에 타이타닉 호는 침몰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침몰하지 않았다. 만약 빙산이 아니더라도 이것과 파괴력이 다를 바 없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을 빙산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것은 폴란드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의『유동하는 공포』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와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빙산을 공포라고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빙산은 그 자체의 물리적인 힘은 고정적(solid)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빙산이 불러일으키는 정신적인 불안감은 유동적(liquid)이라는 사실을 파헤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주장하는 타이타닉 콤플렉스, 즉 유동적 공포다.

바우만은 공포를 세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1차적 공포(바우만의 2차적 공포에 비유)와 2차적 공포 그리고 유동적 공포다. 1차적 공포는 우리의 신체와 재산을 위협하는 공포다. 여기에는 사회질서의 지속성과 가능성을 위협하거나 사회적 지위 및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2차적 공포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순환하며 파생되는 공포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경험에서 나오는 침전물이며 이에 반응을 보이게 되는 자가 발전하는 공포다. 끝으로 유동적 공포는 언제 어디에나 있는 공포며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공포다.

이 책은 유동적 공포의 여러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죽음의 공포에 있어 한 번 걸러낸 죽음이 아니라 두 번 걸러낸 죽음이다. 자크 데리다의 표현대로 죽음은 한 세계의 종말이며 회복 불가능성이다. 이때 전자는 나와 너의 세계의 종말이며 후자는 사람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종말이다. 또한 전자가 질병이나 노쇠에 따른 자연적인 죽음이라면 후자는 살인, 범죄라는 인위적인 죽음이다.

그리고 악과 공포는 말 그대로 불가분의 관계다. 한나 아렌트는『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파헤치고 있다. 우리는 아이히만 같은 사람들과 이웃으로 지내고 있는 탓에 그들을 식별한다는 것은 어렵다. 아니 무감각하다고 해야 옳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들은 악한 사람들이 되었을까?

바우만은 적당한 조건이라는 것을 비판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적당한 조건은 칸트가 말한 인간의 이성에 따른 보편적인 입법이 아니었다. 칸트는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을 하지 마라.” 고 했다. 그러나 아이히만에게 살인은 자기 자신에 맞는 이중 잣대였다. 규칙에 복종한 아이히만은 근대적 관료의 완성품이자 희생자였다.

이밖에도 통제 불가능한 것과 공포에서는 이해 불능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공포에서는 부정적 세계화를 경고하고 있다. 특히 통제 불가능한 것과의 공포에 있어 그는 태풍이나 테러 같은 천재든 인재든 피할 수 있는 재난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도덕적인 문제 즉 도덕 지체에 따라 무방비 상태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유동적 공포가 노골적으로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예리하면서도 낯선 유동적 공포에 전율하게 된다. 한마디로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유동적 근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유동적 근대는 저자 말대로 끊임없는 의심과 휴식이 없는 경계의 삶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가 빠르게 분열했다가 이루어진다. 더 이상 이성이 공포의 탈출로가 아니라 단지 우회로(detour)에 불과했다.

이러한 바우만의 따끔한 충고와 달리 공포에 맞서는 유일한 치료법은 단순하다. 공포의 실체를 바로 보는 것이다. 앞서 말한 <타이타닉>에 나오는 잭의 죽음은 분명 효과가 있다. 개인적 불멸성은 삶을 치열하게 살 것을 주문한다. 따라서 공포가 출렁거리는 시대에서 그람시가 말했던 ‘역사적 행위자’로써 문명화의 부작용으로 심각한 위기에 놓인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도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p******0 2009.06.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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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포를 느끼는 자신만이 존재할 뿐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포를 느끼는 자신만이 존재할 뿐" 내용보기
지은이 : 지그문트 바우만 옮긴이 : 함규진 출판사 : 산책자 311쪽 / 2009.1.30 / ISBN 978-89-01-09212-6 03100   서론 공포는 어디에서 와 어떻게 움직이는가 1 죽음의 공포 2 악과 공포 3 통제 불가능한 것과 공포 4 글로벌 공포 5 유동적 공포 잠정적 결론      모든 교훈담은 공포의 증폭을 통해 효과를 낸다. 하지만 고전 교훈담이 구원을 포함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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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지그문트 바우만

옮긴이 : 함규진

출판사 : 산책자

311쪽 / 2009.1.30 / ISBN 978-89-01-09212-6 03100

 

서론 공포는 어디에서 와 어떻게 움직이는가

1 죽음의 공포

2 악과 공포

3 통제 불가능한 것과 공포

4 글로벌 공포

5 유동적 공포

잠정적 결론

  

 

모든 교훈담은 공포의 증폭을 통해 효과를 낸다. 하지만 고전 교훈담이 구원을 포함했다면, 우리 시대의 '교훈담'은 잔인무도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구원의 약속도 찾아볼 수 없으니까. 그런 교훈담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는 예측 불가능하며, 해소 불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여기에 도사리고 있다. 지연될 수도 망각될 수도 잇지만, 소멸시킬 수는 없다. 그런 공포에는 현재 해법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공포는 삶의 곳곳에 파고들고, 일생 동안 떠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약한 부분을 사정없이 공략하고, 인생을 끊임없고 하염없는 '숨바꼭질'게임으로 만들어버린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당하고마는 무시무시한 게임으로.   -죽음의 공포」중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는 몇달전 부터 읽고 싶어했던 책이었다. 수많은 책들중에 베스트셀러도 아닌 이 책에 흥미를 느낀 이유는 두가지 것에 기인한다. 첫째는 '유동하는', '공포'라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 때문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빨간색과 청보라색이 묘하게 조화된 책의 표지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갈망하여 읽기를 시작한 책이건만, 기다림과 이해도와는 무관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난 왜 몰랐을까.

 

 

 

공포에 관한 이야기

 

아무튼 거두절미하고 이 책은 근대사회에 내재한 공포에 관한 이야기이다.

흔히 우리는 심리학이라고 하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알아채는, 그런 부류의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 심리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학술적(재미없는)이 듯이....

이 책에서 말하는 공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정의내릴 수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유동하는 공포」에서 말하는 공포란 '근대'사회에 내재된 공포이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란 modernity를 의미하는 것으로 옮긴이도 밝힌 것처럼 근대와 현대의 의미를 모두 가지는 어휘이다. 물론 우리말에 있어서는 근대와 현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지만 영어라는 어휘가 가진 표현의 한정성 때문에 modernity라고 표현되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근대'를 우리 식으로 곧이 곧대로 18~19세기쯤의 시대라고만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근대란 무엇인가. 그것인 인간이 신과 자연과의 유대관계를 끊어버리고, 인간 스스로 인간의 삶을 통제하기로 한 시대, 세상이다. 통제의 무기는 인간의 영성이나 감성이 아니라 이성이었다. 이성은 세상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자로 잰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숫자를 토대로 방정식을 세운다. 그리고 휴대폰에서 우주왕복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공의 도구들로 자연을 정복하고, 세계를 통제한다. 모든 것은 오직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좋은 것을 극대화하고 싫은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러한 근대를 '유동적'이라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유동적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옮긴이 함규진도 많은 고민을 한 듯 싶다. 단지 '유동적'이라는 표현은 '약속시간이 유동적이다.'라는 표현 등에서 보듯이 '가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바우만이 말하는 '유동적'의 의미는 보다 정교한 의미를 지닌다. Liquid라는 단어가 가지는 뉘앙스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액체, 물을 의미한다. 

즉, 카트리나와 같은 엄청난 힘의 (우리의 일상을 순식간에 바꿔놓을만한 충분한 힘을 지닌) 대홍수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며, 도시의 한켠, 반지하 단칸방에 몸을 누인 사람들에게 끈질기게 스며드는 습기의 흐물흐물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깨끗하고 반듯한 환경에 있더라도 습기가 차고, 눈에 보이지 않는 틈으로 물이 새어드는 것처럼 자본이나 기술, 폭력이나 마약등이 우리가 세운 경계를 자꾸만 넘나들고, 우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하던 곳들을 생경한 곳으로 바꿔버리는 것이 유동적 근대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죽음의 공포 

죽음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어떤 다른 성질과도 비교가 안 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성질을 침묵하게 하는 성질. 우리가 겪어서 아는, 또는 들어서 아는 모든 사건은 과거가 있듯 미채도 있다. 죽음만이 예외다. 모든 사건은 하나의 약속을 포함한다. 너무 작아서 알아볼 수 없는 글씨일망정, 잘 찾아보면 어딘가 반드시 '다음에 계속'이라는 약속이 적혀 있다. 죽음만이 예외다. 죽음에는 단지 하나의 문장만 따라붙는다. "모든 희망을 버려라" 죽음의 유일한 의미는 그 이후에 아무것도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아무 일도 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우만은 모든 동물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이야말로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음에도 살아가야 하기에 인간의 삶에는 내재된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근원적이며 원초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포를 물리치거나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들이 고안되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죽음의 최종성을 부인하는 전략(죽음은 세상의 끝이 아니며 단지 다른 세상으로 가는 과정이다.)"을 들었다. 죽음을 종말(termination)이 아닌 종료(expiration)으로 봄으로써 죽음의 의미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버렸다. 즉 죽음이 종말로 이해되었더라면 무의미했을 삶의 목적ㆍ의미ㆍ가치등이, 죽음의 최종성이 부인되고 죽음이후의 또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됨으로써 죽음이라는 야생마에게 재갈을 물려 삶의 마차를 끄는 말로 만들었다. 

 

 

또 다른 전략으로는 죽음을 바라보는 고민ㆍ주의를 보편적이고 불가피한 사건인 죽음 자체에서 돌리는 대신에 죽음의 구체적인 원인들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러한 죽음 자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면 죽음의 불가피성이 온몸으로 다가오며 허무함을 지워버릴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 구체적인 원인들(질병, 사고, 노환 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죽음에 대해 저항가능하리라는 착각과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 원인을 질병때문에, 사고때문에,,로 회피해버림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회피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전략으로는 일상적인 '은유적 예행연습'을 통하여 죽음의 종말성, 그 소름끼치는 진실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내가 얼굴도 모르는, 이름도 모르는 3인칭의 소멸은 나에게 죽음으로 다가오지 않고 그저 인구학적/통계적 개념으로만 다가올 뿐이다. 그 소멸의 숫자가 아무리 크게 나타나더라도 그렇다. (이라크에 수백 명의 시민이 폭탄 테러로 희생되었다는 뉴스에도 둔감한 이유이다.) 이러한 생각속에는 아무리 많은 숫자가 소멸하더라도 그것이 회복 불가능한 상실은 아니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깃들어 있다. 하지만 내게 가깝고 내가 아끼는 사람의 상실, 나의 삶과 한데 얽혀있는 사람의 영원한 부재는 나에게 죽음의 종말성ㆍ회복 불가능성을 일깨우고 그러한 간접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죽음은 익숙한 것이 되고 '평범화'된다는 것이 바우만이 말하는 세번째 전략의 핵심이다.

 

 

 

 

악과 공포

가장 파급력이 있으며 어쩌면 가장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결과는 현대의 '신뢰성 위기'다. 악이 도처에 숨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악인은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뚜렷이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두드러진 특징도 없고, 별도의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지금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사실은 악의 군단의 예비군으로서 언제든 그 군대에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물론 그런 시각은 대체로 과장이라 하겠다. 분명 모든 사람이 악의 종자로서 일할 수 있지는 않고, 일하려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누가 그런 사람인지, 또 누가 그렇지 않은 사람, 즉 악의 계략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가려낼 방법이 없다는게 요점이다. 

 

[악과 공포]의 장에서는 어느 누구나 극악한 괴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악을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다만 이름을 고치고 숨어 있는 악'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근대적 악의 평범성'을 논하고 있다. 이러한 악과 관련한 논의를 위하여 나치 독일 당시 친위대 중령으로서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이히만의 예를 들고 있다.

 

아우슈비츠나 굴락, 히로시마의 도덕적 교훈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우리가 철조망 안에 갇히거나 가스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조건이라면' 우리가 가스실의 경비를 서고, 그 굴뚝에 독극물을 넣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적당한 조건이라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머리 위에 그것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결코 특별한 사람이 아니였으며, 우리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만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수백, 수천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선택을 내린다. 마치 최근에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에서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얼굴의 우리 이웃이었음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바우만은 이렇듯 악은 누구나 '특별한 조건'만 만족시키면 가능하다라고 보았기에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악에 저항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바꾸어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악에 굴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아는 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악에 물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안전을 위한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은 어김없이 대부분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어 오늘날의 인간관계가 상대가 혹 배신할까봐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런 이유로 우리가 더 넓은 친구와 동지관계의 네트워크 형성에 급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 휴대폰 새 모델이 나올때마다 전보다 커진 주소록을 제공하고 있으며 우리는 저마다 배신에 대비해 '양다리를 걸치는' 수법으로 리스크를 줄이려고 하지만 그것이 결국 리스크를 더욱 키우며 배신을 평범화하는 결과로 잇는다고 부언한다.

 

누가 친구인지, 누가 악인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 상황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파트너십 보다는 네트워크에 초점을 맞추고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꿰뚫어볼 수 없고, 불투명하고, 탐색해볼 수 없는 이 안개야말로, 악이 몸을 숨기기에 가장 좋은 곳일 거라는 바우만의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통제불가능한 것과 공포

카트리나는 차별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다 같이 치고, 부자도 빈자도 구별하지 않고 휩쓸었다. 그러나 자연재해는 모든 희생자들에게 똑같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허리케인 자체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었지만, 허리케인의 결과는 분명 사람의 작품이었다. 

 

[통제불가능한 것과 공포]에서는 근대적 발전의 낭비지향적, 자기파괴적 경향의 이유를 근본적으로 '우회전략'에서 찾고 있다. 자동차 운전자가 실제 이동하는 거리를 운전하는 시간, 자동차 정비하는 시간,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을 노동시간으로 환산한 시간의 합으로 나눠보면, 인간의 공간 이동 속도를 시속 4마일이라는 경이적인 속도로 증가시키도록 만들어진 내연기관은 겨우 보통사람의 걷는 속도 수준이라는 것이다.

 

근대 의학에서도 이러한 '우회전략'이 존재하는데,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희생해서 계속적인 의료 서비스와 약품 복용으로 유지되는 삶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등록금 대출이자를 갚기위해 어쩔 수 없이 묻지마식 취업을 선택하여야 하고, 그렇게 적성ㆍ소질없이 들어간 직장에서 십 수년간 열심히 일하여 대출이자를 갚고, 어느 정도의 돈을 모을 시기가 되면 그동안 경쟁때문에 무리하였던 몸에 이상이 와서 벌어놓았던 돈을 모두 병원에 가져다바치는.......... 오늘날의 그러한 무시무시한 사이클이 고착화 되어가는 듯한 것도 우회전략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은 듯 하다.

 

 

 

유동하는 공포

 

표지에는 "시시각각 현대인의 일상을 위협하는 불확실한 공포의 실체와 맞서다"라는 표현이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저 문구만 보고 이 책이 '현대인이 느끼는 다양한 공포'를 다루는 그런 사회심리학적 부류의 책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왕성했던 나의 지적호기심을 단박에 잠재울만큼 어려웠다. 마치 책을 읽고 서평을 적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올 정도로...

이 책이 쉽게 다가오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책의 주제 때문일테다. "현대인이 느끼는" 실재적인 공포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기대는 산산히 부서졌을뿐이다. 이 책은 근대사회(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여기서의 근대란 현대를 포함한다)로 진입하면서 그러한 사회적 시스템이 인간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중에서 공포라는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한 책이다. 그렇기에 결코 쉽게 읽힐수가 없는 책이기도 하다.

 

다른 이유로는 아마도 저자의 표현자체가 난해하였을 듯 싶다. 드문드문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부분도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의 대부분은 어렵다. 물론 내용상으로 어려운 부분도 존재하거니와 문장을 곰곰이 곱씹어보면 명쾌하게 표현된 문장이 아닌, 끊어읽기에 따라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음직한 문장들도 몇몇 보인다.

 

하지만 이는 옮긴이 함규진의 잘못은 아닌듯 싶다. 그러한 느낌을 받은 이유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 [옮긴이의 말]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 함규진은 이 책의 핵심을 꿰뚫는 내용들을 차분하고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이 읽는 이에게 사실상 큰 도움이 되고 있는 듯하다. 옮긴이 함규진은 '이 책을 읽으며 왠지 매끄럽지 못하고 중언부언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면, 그것은 바우만의 잘못이 아니라 옮긴이의 잘못임을 알아주시기를.'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지나친 겸손의 말인듯 싶다.

 

 

「유동하는 공포」는 쉬이 읽어내려 버릴만큼 쉽게 다가오는 책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다 읽지도 못하고 포기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한 (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흐릿한 무엇인가가 나에게 다가오는 듯한 막연한 그 느낌) 오늘날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 주위를 맴도는 공포들이 어디에서 기인된 것인지를 한번쯤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둘만한 가치가 있다.

 

 

 

 

 

 

 

 

 

 

 Book Review

이 책을 읽는 내내 공포가 엄습했다. '다 읽을수는 있을까?', '다 읽고나면 이해가 될까?', '다 읽고나면 서평을 쓸 수 있을까?' 모든 공포가 그러하듯 나에게 엄습했던 그러한 공포들도 막상 부딪히면 그것이 내가 생각하였던 이상으로 허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아....그렇다고 하여 책이 쉬웠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올바르게 이해하였는지는 나에게 또 다른 공포이다.

k*****9 2009.09.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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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공포와 전지구적 위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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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모더니즘 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 있어서 친포스트모더니즘 진영의 학자로 분류된다. 데니스 스미스(Dennis Smith)는 바우만을 가리켜 ‘탈근대성의 예언자’로 부르기도 했다.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바우만의 전기시대라면, 2000년 이후의 작품은 바우만 후기에 속한다. 60년대, 바우만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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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모더니즘 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 있어서 친포스트모더니즘 진영의 학자로 분류된다. 데니스 스미스(Dennis Smith)는 바우만을 가리켜 ‘탈근대성의 예언자’로 부르기도 했다.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바우만의 전기시대라면, 2000년 이후의 작품은 바우만 후기에 속한다. 60년대, 바우만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 문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비판이론과 후기구조주의가 범람하던 80년대를 넘어, 90년대에 이르자, 바우만은 ‘탈근대성’으로 향하는 순례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학술적으로 아도르노, 하버마스, 푸코, 리오타르 등의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불만'이 그의 문제의식이 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바우만은 ‘액체’ 라는 명사 또는 ‘유동하는’이라는 형용사를 핵심어로 하는 일련의 포스트모던적 기획들을 전개해 나간다. 가령 《액체근대》(Liquid Modernity,2000),《리퀴드 러브》(Liquid Love,2003), 《유동하는 삶》(Liquid Life,2005), 《유동하는 공포》(Liquid Fear,2006), 《모두스 비벤디》(Liquid Times: Living in an Age of Uncertainty,2006) 등이 그러하다. 이 모두 유동하는 근대성이란 ‘코끼리’를 보다 밀도있게 심도있게 그리려는 바우만 스타일의 탈근대적 성찰의 결실들이다. 
 

이 책 《유동하는 공포》(산책자, 2009)는 엄정한 이론적 틀에 따른 서술과 해설이 아닌 에세이 풍의 산문체가 특징이다. 핵심명제는 간단하다. 우리의 시대는 공포가 가득한 시대이고, 그 공포는 원시적 공포와 파생적 공포를 넘어선 유동하는 공포다. 이 책은 유동적 공포의 여러 국면을 보여 준다. 유동적 근대 세계에서는 공포와의 싸움이란 평생 끝나지 않는 과업이다. 그래서 인생은 끝없는 수색정찰의 과정, 임박한 위험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피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과 대책을 시도하는 과정이다. 바우만이 제시한 액체 근대성 혹은 유동적 근대사회 자체가 공포를 다스리기 위해 고안된 사회적 구성물이다.

 

"다른 모든 인간 공생共生의 형태가 그렇듯, 우리의 유동적 근대사회 역시 삶을 공포와 더불어 살 만하게 만들기 위한 고안물이다. 달리 말해,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무장해제하고 항복시킬 수 있는 듯한 고안물이자, 그런 공포를 낳는 위험이란 효과적으로 예방되기만 한다면 사회질서를 뒤흔들 수 없다며, 아니면 뒤흔들 수 없어야 한다며 공포에 침묵을 명령하는 고안물이다."(17-8쪽)

 

오늘날 유동하는 공포는 ‘타이타닉 신드롬’을 재생산한다. 타이타닉 신드롬은 문명화된 삶의 기본요소들이 여지없이 제거된 무의 한복판으로 추락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말한다. 그러나 공황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 확실성, 안전성, 보안성이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지만 공포가 도처에 은닉하고 있다 해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온갖 공포가 우리 삶에 스며들 때 그 치유법과 함께 스며들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것에 공포를 느끼기도 전에 그것이 치유된다는 약속을 미리 보장받기 때문이다. 그런 약속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다. 카르페 디엠, 지금 즐겨라, 대가는 나중에라는 격언이 오늘날 공포에 대한 한 가지 해독제가 되고 있다.

 

 

z***a 2010.12.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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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라는 이름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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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어 온 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이다. 이성의 능력을 신뢰하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는 짧은 제 생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들을 달성해 왔다. 한 사람의 숨이 다 하더라도 그의 뒤를 잇는 누군가에 의해 행해진 진보적 물결은 핑크빛 미래를 꿈꾸게 만들어주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진보로 인해 모든 이들이 행복을 누리게 될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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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어 온 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이다. 이성의 능력을 신뢰하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는 짧은 제 생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들을 달성해 왔다. 한 사람의 숨이 다 하더라도 그의 뒤를 잇는 누군가에 의해 행해진 진보적 물결은 핑크빛 미래를 꿈꾸게 만들어주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진보로 인해 모든 이들이 행복을 누리게 될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의 사정은 그리 좋지가 못하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알지 못하는데 경제는 휘청인다. 여느 때보다도 거센 테러리즘에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과연 이 세상이 어딜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마치 방향을 잃은 배를 타고 표류하는 양 우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현재 전세계엔 공포의 물결이 넘쳐 흐르고 있다. 심지어 이상 기후로 인해 날씨마저도 인간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알고 보면 이는 인간이 만든 것이어서 더욱 비참하다.

 

공포가 무엇일까. 너무 추상적인 질문이어서 이에 대한 답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애당초 이 책으로부터 명확한 답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공포의 새로운 속성을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추상적이기 때문에 공포가 두려운 것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공포는 이것이다라고 그 형체를 세상에 보일 수 있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꺼리고 무서워하는 것에는 우리가 그것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저자가 공포의 일환으로 살펴본 죽음에도 이는 해당된다. 누구나 죽는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은 모두 아직 죽음을 경험치 않았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죽음이라는 게 어떻다는 식의 명백한 답을 얻을 수 없기에, 그래서 죽음은 무서운 것이 된다.

어느 부분보다도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정치에 의해 창조된 공포와 관련된 것이었다. 남과 북으로 갈린 이 땅에서 포성은 멎은 지가 오래다. 그러나 휴전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전쟁은 언제라도 재기될 수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의 정치인들은 수시로 전쟁의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입한다.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데 모일 수 있는 기제가 그렇게 해서 마련된다. 테러가 아무리 만연해 있다고 하여도 테러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는 인구는 한정적이다. 하지만 각국의 정상들은 테러가 지금 당장 자신에게 일어날 수도 있음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물론 테러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려워해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발생치도 않은 테러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까닭은 테러를 이미 경험해보았기 때문이 아닌, 언제라도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정치인들의 말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테러 자체보다도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더욱 공포 속에서 떨게 되었노라고. 언제 어디서 테러가 일어난다는 명백한 사실이 존재할 수 없기에,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게 테러라는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들은 테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공포, 우리의 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공포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 그 시작은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이다.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 잘라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p286

 

각종 매스미디어에 의해, 역동적인 인터넷 사용을 통해 우리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접한다. 하지만 대개의 정보는 누군가에 의해 생산된 것이고, 우린 객체로서 그 정보를 끌어안는다. 게중에는 특정 의도에 의해 부풀려지거나 축소된 것도 꽤 많다. 사실이라고 회자되는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한 번 즈음 우리는 의심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회의론적(!)인 시각으로부터 공포에의 탈출은 시작할 수 있다. 뿌리를, 즉 실체를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는 용기. 알고 보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무언가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공포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빚어낸 마음 속의 허상일지도 모른다.

이달의 사락 q*****2 2009.06.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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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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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스며드는 공포. 저자는 5가지 대표적인 공포에 대해 다루면서 현대의 공포가 액체처럼 스며들며 우리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공포는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불확실하다는 것. 알 수 없는 것에서 부터 예측할 수 없는 것까지 우리가 대처하고,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곳에 공포가 존재한다. 그래서 공포는 어디에나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도 있고, 침실에도 있고, 일터에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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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스며드는 공포. 저자는 5가지 대표적인 공포에 대해 다루면서 현대의 공포가 액체처럼 스며들며 우리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공포는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불확실하다는 것. 알 수 없는 것에서 부터 예측할 수 없는 것까지 우리가 대처하고,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곳에 공포가 존재한다. 그래서 공포는 어디에나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도 있고, 침실에도 있고, 일터에도 있고, 지하철에도 공포가 존재한다. 기업은 공포로 소비를 조장한다. 사용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처럼 광고하고, 손해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소비경제의 성패는 소비자 창출에 달려 있고, 공포를 없애줄 상품에 갈급한, 공포에 빠진 소비자 창출에 달려 있다.

 

1. 죽음의 공포

죽음은 모든 걸 끝낸다. 인간만이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다. 존재하는 이상 죽음에 대한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화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음에도 계속 살아가도록 해준다고 한다. 죽음이란 존재하는 유일한 세계에서 퇴출되는 것. 그리하여 소멸되고 무에 속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세계로 옮겨가서 계속해서 존재하게 된다. 육체적 존재는 사라질 수 있으며, 낡고 헐어빠진 육신은 해체될지 모른다고 한다.

 

2. 악과의 공포

악은 굉장히 평범하다고 한다. 신뢰성의 위기인 현대에 악인은 누구나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악의 군단의 예비군으로 언제든 그 군대에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누가 악의 계략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가려낼 수 없다는 게 요점이다.

 

3. 통제불가능 한 것과 공포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 미지의 것이다. 그리고 미지의 것은 두렵다. 공포는 우리가 무방비 상태임을 의미한다. 저자는 허리캐인 커트리나를 예로 든다. 그러면서 피해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한 흑인들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도시들은 재정혜택을 적게 받아 재해에 취약했던 것이다.

 

4. 글로벌 공포

세계 어느 곳에서 테러가 발생하면 곧바로 전세계에 소식이 전해진다. 아무리 보잘것 없고, 하찮은 테러 행위라도 공포를 유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테러리즘의 최고 무기는 공포를 심는 것이었다. 상호의존성의 촘촘한 네트워크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불행에 객관적으로 책임이 있게끔 한다. 공포를 낳고 기르는 것은 현대의 불안과 불확실성이다. 불안과 불확실성은 또한 무력감의 소산이다.

 

5. 유동적 공포

공포에 대처하는 보호범위는 불명확하다. 개인주의화 되고 연대가 약화되는 현대 사회는 불평등과 불균형적이고, 약자에대한 착취를 동반한다. 빈곤에 대한 공포, 실업과 해고에 대한 공포 같은 문제들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 20세기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국민의 공포야 말로 국가 지배력의 기본, 아니 심지어 총체이며, 그것은 국가의 폭력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심지어 끊임없이 위협되는 것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d******m 2014.08.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