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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시인하면 농민시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직접 전남 담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작품을 썼고 그 작품 속에는 바로 농민들의 삶, 기쁨과 슬픔의 정서등이 등어있다.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나랜 사랑'등이 바로 고재종 시인의 시집인데 이 시집들은 바로 고재종 시인의 이런 모습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에서는 그의 시가 한층더 성숙해지고 농촌이라는 상황을 뛰어 넘어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 생명사랑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농촌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이 세상의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이 넘쳐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에까지는 농촌이라는 작은 공간만을 보았다면 이번 시집부터는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만을 바라보는 즉 나무만을 바라보던 시야가 더 넓은 숲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자꾸만 잃어가는 우리의 생명경외사상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수선화, 그 환한 자리 거기 뜨락 전체가 문득 네 서늘한 긴장 위에 놓인다 아직 맵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 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올리다니! 거기 문득 네가 오롯함으로 세상 하나가 엄정해지는 시간 네 서늘한 기운을 느낀 죄로 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 |
| 고재종의 『앞강도...』은 그의 전작 시집인 『날랜 사랑』의 연장선에 서 있다. 그의 시세계의 일관됨을 이루고 있는 부분 중의 하나는 황폐화된 농촌을 떠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농촌시인인가.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농촌의 풍경은 어떤 것인가. 고재종은 「綿綿함에 대하여」,「별빛 진 자리 별빛 돋아」등의 시편에서 이농현상으로 황폐화된 농촌의 현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농촌의 현실을 얘기하는 그의 시에는 황폐함이 없다. 이 역설은 어디에서 빚어지는 것일까. 그 해답은 그의 自序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詩人의 임무를 "생명의 우주율 속에 내 한 숨결 불어넣는 일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폐화된 농촌의 현실, 하나 둘 도시로 떠난간 자리에 "빠진 앞니처럼 / 휑한 그 자리"(「별빛 진 자리 별빛 돋아」중에서)가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농촌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그의 의도는 농촌이 본원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삶의 생동감이나 충일함을 되살리고자 하는 소명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수선화,그 환한 자리」,「綿綿함에 대하여」,「저물녘의 우주율」,「以心傳心의 눈」,「여름 다 저녁 때의 초록 호수」, 「천지간의 네 속삭임」, 「맹꽁이 소리에 接神한 저녁」등등의 시편은 그의 소명의식을 잘 드러내준다. 그가 이들 시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루나무'(「以心傳心의 눈」)나 '동구밖 느티나무'(「綿綿함에 대하여」)의 오롯함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무수한 나무 이미지는 모자람이 없는 온전함, 오롯함을 지향한다. 그는 "생명의 우주율 속에 한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을 통하여 물아일체의 감흥 속에서 融融함, 화평한 기운과 조우한다. 그의 시에 나타난 생명사상은 「들길에서 마을로」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에로티시즘의 서정과 만나기도 한다. 「그 희고 둥근 세계」,「봄밤, 그 야생의 꿈」등의 시편에서 그런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서정주의 시가 초기의 에로티시즘에서 생명사상으로 나아갔던 것을 생각해볼 때 생명의 경이는 에로티시즘과 긴말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삶의 오롯함이나 융융함을 감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는 행복한 詩人이다. 그러나 자연과의 교감이 상투적으로 흐를 때나 감격의 벅참이 과다노출되어 말이 많아질 때 그의 시는 어떤 한계를 드러낸다. 「초록 바람의 선언」,「오월의 숲속에선 저절로 일렁이네」등의 시편에서 그런 한계가 노촐된다. 이러한 한계점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그의 시에 나타난 의성어나 의태어의 과다한 사용과 동어반복을 고려해보게 한다. 시에서 물아일체의 자연과의 교감이나 생명사상을 다루어온 것은 하나의 전통이자 앞으로의 시인들도 계속 견지해야할 하나의 양분일 것이다. 고재종의 『앞강도...』은 그런 점에서 溫故知新의 시작 태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이끌어내고 있다. |
| 이 세상에서 인간만큼 약하고 약한 존재가 또 있을까. 조금의 아픔이나 조금의 상처에도 악악 소리를 질러대고, 조금의 걱정에도 모든 시름을 짊어진 듯 힘들어한다. 그렇기 때문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하고 시끄럽다. 혼란의 연속이며 삭막함의 근원이다. 그래서 언제나 '높은'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들은 자연을 동경하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지와 물과 식물들은 인간의 모든 걱정과 웅성됨을 희석 시켜버릴 수 있는 "힘"을 지녔기에.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시들로 구성되어있는 고재종의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이라는 시집은 더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 시집을 읽고 있으면 좀더 차분해지는 나를 느낄 수 있다. 여러 가지 가치가 혼재 되어 있는 세계에서 서성거리다가 비로소 나만의 중심을 찾은 듯한 편안함이 스며든다. 그것은 아마도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 올리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강인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시인 특유의 "눈"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자연에 대해 결코 호들갑스러운 경이로움을 표현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처럼, 그 또한 묵묵하고 담담하게 그러나 강하게 자신의 깨달음을 얘기한다. 그리고 시인의 이런 태도는 자연의 꿋꿋함을 본받은 것이기에 더 신뢰가 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인 고재종은 단지 자연의 굳건함만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의 모습들, 이제는 볼 수 없는 생명의 둥지에 대한 아련함을 쓸쓸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그 쓸쓸함의 잔상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과 같은 시에서처럼 그 풍요로운 생명의 물결이 굽이쳤던 "그때"를 말이다. 그러나 시인은 생명의 주머니가 충만했던 때를 추억하는 것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는 이 세계를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자연의 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인다. '우주의 자궁 속에서 애액 터지는 소리'인 맹꽁이 울음소리를 유심히 듣는가 하면 '동구밖 느티나무의 푸르른 울음소리'나 '나뭇잎이 서걱거리는 소리','앞들의 수숫대가 일렁이는 소리'에 청각을 쫑긋 세운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우주의 소리에 누구보다 기뻐하며 모든 이들이 그러하기를 염원하는 것 같다. 시인 본인이 추구하는 생명에의 귀의에 동참하길 바라며. 어느 순간이던가. 사람들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자연'이라는 보호막이 점차 사라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각종 대중매체나 영화와 같은 예술분야를 이용하여 그 문제를 부각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뿐.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자연'에 대해 '생명'에 대해 호들갑만을 떨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그런 호들갑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깊이 있이 바라보는 눈과 인식과 묵묵히 실천할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에 들어있는 하나 하나의 시들이 더욱더 소중한 것이다. 바로 우리에게 '자연과 생명과 사랑'에 대해 추억할 수 있는, 그리고 바라 볼 수 있는, 그래서 그것에 대해 깊이 있게 얘기 할 수 있는 힘을 주기에, 이 작품들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
| 학창 시절 짝사랑의 열병을 앓던 친구 하나, 수업 중 낮술에 취해 강의실에 들어와 유리창 한 장 부수고 말없이 사라졌다. 그 무렵 그 친구의 시엔 도저히 이겨내지 못한 사랑과 닿을 수 없는 거리의 그리움이 담겨 있어 읽는 이마져 고통의 긴 터널을 걷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결국 그 사랑도 이루고, 몇 년이 지나 등단도 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시엔 그리움이 여전했다. '그리움'은 어떤 이의 핏줄, 손톱, 발톱, 살갗, 머리카락 한 개에도 담긴 유전인자인가 보다. 고재종 시집을 읽으며 정돈된, 깊이 침전(沈澱)된 그리움의 흔적 몇을 발견한다. 그리고 문득 문득 그 친구를 생각했다. 앞강도 야위는 그리움처럼 이제는 투명해져 다만 읽는 이도 함께 접어둘 줄 아는, 참아 낼 줄 아는 야윈 그리움의 강변을 거닐게 한다. 다만 나는 아직도 그리움을 삭일 줄 모른다. 그 그리움의 싹이 마구 자라 황폐한 쑥대밭이 되고 만 것 같다...... 강물에 씻기는 돌은 날도 닳아서 조약돌인데 세월에 씻기는 나는 날로 거칠어서 쑥대밭이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中 오늘은 우체부조차 오지 않는 이 쓸슬한 자리보전, ...... 은사시, 자작나무는 차르르 차르르 개느삼, 수수꽃다리는 흐느적흐느적 왕머루, 청미래덩굴은 치렁치렁 이렁이는 것이 당연할 뿐 , 여기서 제 모자란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랑이여, 나 절로 일렁이네 ...... <오월의 숲속에선 저절로 일렁이네>中 ...... 무언가 다 놓쳐 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 오늘도 강변에 고추 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리 때 그나마 실낱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