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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보는데 내 마음이 자꾸 들여다 보였다. 타인의 삶이고 상처였는데 그러면서 어쩌면 그동안 제대로 봤다고 여긴 것들이, 눈 뜨고도 보지 못한 청맹과니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의 함축적인 의미를 알고 가슴에 스며들게 하려면,스마트폰이나 자극적인 디지털 영상으로 붕 떠 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을 때 효율적인데 도리어 이 시는 그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몰입하게 만든다.아마도 치유를 위한 시들과 시의 불모지에서도 살아남을 흡인력 강한 시인의 열정 때문이라 여겨진다.
내시경처럼 선명한 이미지로 투시한 극적인 삶의 편린들과 시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 상처를 향한 따뜻한 시선, 시는 언어로 표현한 꽃이라는 말처럼 색채감 넘치는 문장들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때론 식후의 디저트처럼 맛깔난 위트 넘치는 문장이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이미 죽어 미라가 된 관계나 감정을 붙들고 줔을 듯 고통받는 마음들에게 건네는 시 (장미와 미라) 에 한참을 붙들려 있었다. "살면서 제대로 한 번 휘갈리지도 못한 묵음의 문장들"로부터 홀가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듣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말"(시 견고한 마디)의 경지는 어떤 것일까 끝없이 빠져들게 하는 시적 사유에 열린 마음으로 시를 제대로 읽다보면 내면이 성숙해질 것 같다.
감동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크게 느끼어 마음을 움직임'이라면 분명 이 시는 감동적이다.
'시는 스로로 설명하고 그 자체가 해설이다'는 말도 있듯 이쯤해서 나의 독자리뷰를 마치고 삶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갖게 해 준 시를 소개한다.
착시
유지인
사물의 외부와 내부가 충돌한다
말의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처럼
초원을 달리던 얼룩말의 줄무늬가
바람에 씻기어 순간 사라졌던가?
그때 본 것은 바람의 내부였던가?
얼룩말이 지닌 무늬의 혼란스러움이
감춰진 내부의 진의를 볼 수 없게 한다는 것
그래서 시간의 절반은 밤으로 이루어졌다
추측이라든가
의혹이라든가
그런 추상적인 감정의 꺼풀을 벗어난
얼룩말의 진짜 무늬는 무엇이었을까
꺼진 촛불의 그을린 심지를 보고
한때 맹렬했던 불을 가늠하는 때
사라진 얼룩말은 좀처럼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직접 보길 두려워하는
마음이 먼저 아니겠냐고
남겨진 얼룩말의 말이 초원에
돌부리처럼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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