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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의 낯선 작가를 위한 진혼곡. 안토니오 타부키 [레퀴엠]
"낯선 작가의 낯선 작가를 위한 진혼곡. 안토니오 타부키 [레퀴엠]" 내용보기
최근에 배수아의 소설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 그녀의 글과 페북까지 한동안 들락거리며 푹 빠져 읽었다. 지금껏 내가 알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해주는 소설에 점점 빠져들었다고 할까.독신으로 사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지적인 흥분을 누리는 작가의 모습이 전혀 허영심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가 얇고 내뱉은 말은 밥먹듯이 뒤집으며 신념 따위 다 잊고 산지 오래된 중
"낯선 작가의 낯선 작가를 위한 진혼곡. 안토니오 타부키 [레퀴엠]" 내용보기

최근에 배수아의 소설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 그녀의 글과 페북까지 한동안 들락거리며 푹 빠져 읽었다. 지금껏 내가 알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해주는 소설에 점점 빠져들었다고 할까.
독신으로 사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지적인 흥분을 누리는 작가의 모습이 전혀 허영심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가 얇고 내뱉은 말은 밥먹듯이 뒤집으며 신념 따위 다 잊고 산지 오래된 중년의 아줌마다 보니 젊은 시절의 마음을 간직한 채 변함없이, 그것도 아름답게 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감탄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 사람이 읽는 책과 작가라면 나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덕에 읽게된 안토니오 타부키의 <레퀴엠>.
전혀 생소한 이 이탈리아인 작가는 더욱더 생소한 페르난두 페소아를 소환해 그의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애도하는 글을 썼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장례 풍습 중 망자의 옷가지를 태우며 저승에서 잘 입고 살라고 하는 의식처럼 하룻동안 그와 관련된 혹은 작가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을 불러내 만나고 다니는 것이다.

 

- 그가 절룩거리며 내쪽으로 왔다.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을 아는데,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잠깐만요,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다리를 저는 로토 가게 주인 아니신가요?, 어디 다른 데서 만났죠. 어디서 말이오?, 그가 힘든 듯 숨을 내쉬면서 내가 앉은 벤치에 앉으며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당장 떠오르지 않네요,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당신을 어떤 책에서 만났다는 생각이 드네요,(중략)
 아, 이제 기억나네요. [불안의 책]이었어요, 당신은 공연히 베르나르두 수아레스(페르난두 페소아의 여러 이명 중 하나, 역자 주석)를 괴롭히고 있던 로토 가게 절름발이죠, 바로 거기서 당신을 만났어요,
p.18~19

- 이보게, 타데우스, 내가 말했다, 왜 이사벨이 자살했어?, 그걸 좀 알고 싶어. (중략)
하지만 자네였지?, 내가 버텼다 이사벨더러 임신중절수술을 하라고 설득한 게 바로 자네 맞지?p.47

처음 얼마간 읽을 때는 순수하게 페소아를 위한 레퀴엠인 줄 알았다. 그의 이름을 인용하고 그의 책속에 등장하던 인물들을 불러내고 페소아가 묘사한 글과 비슷한 상황을 쓰면서 페소아를 오마주, 하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그가 만나는 유령들이 실제로 유령인지, 사람인지 경계가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도 만나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자세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할 때는 단지 페소아만이 아니라 그가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리워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를 위한 오마주, 말이다.
 
 물론 중간중간 불법주차 단속을 두려워하는 택시기사, 포르투갈인들은 진짜 칵테일 맛을 모른다며 투덜대는 바텐더, 친구 타데우스가 소개한 요리사 부부와 모텔의 여주인이 등장하지만 그들과의 만남에는 망자들이 연결되어 있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졌다.

그가 기다리는 건 밤 9시에 만나기로 한 손님이었고 짐작대로 페소아의 유령이었을 것이다. 중간중간 만나는 사람들과 망자들과 그가 거주했으나 이제는 지붕도 날아가버린 등대 옆의 큰 집도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곱씹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페소아를 만나기 전 그는 사랑했던 이사벨을 다시 만나고 싶어했다. 그녀와 약속한 장소까지 갔고 그녀에게 안내되기는 했으나 작가는 결국 이사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건 마치 마음의 짐이었던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를 위해 그만한 동공을 남겨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시골집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시원한 미품이 일어나 오디나무 잎을 어루만졌다. 잘 자요, 내가 말했다, 또는 잘 가요. 나는 누구 혹은 무엇에게 잘 가라고 하고 있었을까? 정말로 모르겠다. 그러나 큰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당신 모두들 잘 가요, 잘 자요, 나는 다시 반복해 말했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달을 바라보았다. p.123

 종국에는 작가를 만났고 그와 대화를 나누었고 평온하게 작별을 나눈 것, 타부키는 그렇게 페소아를 향한 미련과 지난 아픔을 보내주는 작별의식을 했다. 단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을 뿐, 거창한 의식은 없었다. 아마도 작가들의 레퀴엠은 이런 방식이 아닐까?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그를 다시 불러내 하고 싶었던 건 단지, 대화를 나누는 것 말이다. 글로 형상화하고 읽는 이들이 그렇다고 인정해 주는 순간 타부키는 페소아와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드디어 이룬 걸지도 모른다.

 

j*******s 2018.01.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