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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일상이라고 하면 독서생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하루의 시작과 끝이 독서라는 얘기다. 어디 그뿐인가? 독서는 나의 현재인 동시에 미래를 비추는 얼굴이다. 미래가 불투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없지 않는 게 문제의 실마리다. 현재를 조금이라도 낭비해서는 안 되며 무기력해서도 안 된다는 다짐.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빛은 독서의 작은 불꽃에서 시작된다. 만약에 가슴 속에 작은 불꽃이 없었다면 일상은 얼마나 허무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싶다.
잠시, 독서에 대한 단상을 하게 된 까닭은 시인 안희연의 산문집『단어의 집』때문이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다. 당연히 시생활자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럼에도 시인은 ‘단어 생활자’라는 말을 꾹꾹 눌러 쓴다. 돌이켜보니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단어는 목숨을 요구할 만큼 치명적이다. 단어는 영혼이다. 단어에는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니 단어를 찾는 일은 운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상에 마주치는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비문학적이다. 단어의 정체성을 따져보면 비문학적인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단어는 정확해야 하니까. 일찍이 마크 트웨인은 “정확한 단어와 거의 정확한 단어의 차이는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다.”라고 말했다. 번갯불에는 번갯불이라는 관념에 딱 맞는 정확한 표현이다. 번갯불을 나두고 굳이 반딧불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하게 틀린 단어다.
단어의 집』에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산다.
어떤 단어는 시간의 역할 대신했고 어떤 단어는 공간의 역할을 대신했어요. 어떤 단어는 기울기가 상당해 미끄러지기 좋았고 어떤 단어는 시소와 같이 혼자서는 탈 수가 없었죠, 어떤 단어는 저를 소옹돌이처럼 휘감았고 어떤 단어는 정수리에 번개처럼 내리꽂혔고요.
시를 쓰는 시인에게 단어는 성냥갑 속의 성냥 같다. 피와 살이 되는 감정의 불꽃이 타오르며 어두운 세상을 좀 더 밝고 따뜻하게 헤아린다. 단어의 모양은 성냥처럼 단순하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생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감수성은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럴 때 단어의 낡은 단순한 관념은 사라지고 삶의 온도를 느끼게 된다.
삶의 온도는 적산온도와 같다. 해마다 봄이 되면 꽃이 저절로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때가 되면 꽃이 피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한 ‘때’는 꽃의 입장에서 보면 ‘적산온도’이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은 꽃이 몸에 온도를 저금했기 때문이며 그렇게 저금한 온도가 가득차면 꽃망울이 터져 비로소 꽃이 피는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가? 살아가면서 얼마큼 시간을 저금했을까? 그렇게 해서 언제쯤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을까?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쉽지 않다. 더구나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그럼에도 몸 안에 온도를 묵묵히 저금하는 사람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들 또한 실패와 좌절을 겪었을 텐데 어려운 과정을 참아낸 것을 보면 그들에게는 분명 삶의 지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의 몸 안에 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꽃은 우리가 피어야 할 최선의 꽃이다. 삶의 온도는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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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시인의산문집 가장 문학적인 순간을 길어 올리는 ‘단어 생활자’ 안희연의 따뜻한 허밍 #단어의집 _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한겨레출판 시쓰는 안희연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작년 내가 가장 사랑했던 시집은 당근밭 걷기 였다. 당근밭에 홀로 서서 나는 가끔 울었고 자주 애틋했으며 매번 그렇게도 좋았다. 이제는 「단어 생활자 안희연」 역시 사랑하게 되었다. “저에게 세상은 양초로 쓰인 글자 같습니다. 이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촛불을 들고 단어의 집으로 들어서면 감춰져 있던 장면이 서서히 나타나기도 해요. 그곳엔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무언가가 있어요. 파닥임과 반짝임이 있어요. 그 마주침의 순간이 좋아서 저는 계속 글을 씁니다.”#프롤로그 작년 쓰기친구들과 100일동안 매일글쓰기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를 하기 전 북토크에서 만난 김현 시인의 아이디어인 단어채집을 바탕으로 매일 하나의 단어를 채집해서 짧은 에세이를 썼다. 단어의 집이 그 원조였구나. 안희연 시인이 만든 단어의 집에서 안온하고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삶이 지칠 때면 언제나 이 책을 떠올리게 되겠지. 언제나 그렇듯 시인은 기어이 나를 울리지만 그리하여 나를 다정하게 다독이므로. P. 32 그런 의미에서 시는 내가 아는 가장 간결한 형태의 다반이다. 말과 침묵이 비등한 무게를 지닐 때가 많고 때로는 침묵이 말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질 때도 있다. 글을 퇴고할 때도 무언가를 자꾸 덧붙이려는 나를 가장 경계하곤 한다. 그건 불안이니까. 사족이니까. P. 147 그래서 꽃이 왔을 것이다. 꽃은 말이 아닌 것으로 출몰하는 존재다. 너는 나의 아름다움을 목격한 적이 있어. 그리고 그것을 버렸지. 그것도 쓰레기봉투에. 별 뜻 없이.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것이 꽃이기만 할까. 중요한 건 버림의 촉감을 네 손이 기억한다는 사실이야. 세상의 비극은 너무 멀리에 있어서 대신 꽃을 보냈단다. P. 177~178 어디서 그런 용기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선생님, 전 왜 이렇게 무거운 걸까요. 저도 밝고 명랑하고 귀여운 거 하고 싶어요. 어리광을 빙자해 다른 목소리에 대한 갈망을 불쑥 내비친 것이다. 그땐 정말이지 시가 너무 아프고 무거웠다. (…) K 선생님은 단호하셨다. 그건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겠지요. 하던 걸 하세요. P. 196 오늘의 나는 오늘 쓸 수 있는 문장을 쓰면서 이곳의 나를 찾아올 밀코메다의 시간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다. 와야 할 시간은 기필코 오게 되어 있다. 그럴 때 나의 인사는 “왜 왔어?”가 아니라 “왜 이제야 왔어”이기를 바라며. P. 228 매일매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세상에 들볶이는 기분과 찻잎의 덖음 사이엔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 어쩌면 세상도 우리를 들들 볶는, 아니 덖는 과정을 통해 우리를 보다 향기롭고 귀한 찻잎으로 만들려는 것은 아닐까. 물의 세계에 기필코 담겨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물에게서 공포만 볼 것이 아니라 물이 가진 다정함, 안락함, 온화함, 고요함도 한번 믿어보는 것은 어떨까. P. 249~250 “넌 문학해서 손해 본 점이 뭔 것 같아?” 하루는 시인 친구와 밥을 먹다 대뜸 물었다. 친구는 어디 밥상머리에서 일 얘기냐며 핀잔을 놓았지만 이내 수저를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가 말하는 손해의 의미가 정확히 뭐야. 귀찮음이야 싫음이야 난처함이야. 문학하는 사람은 역시 이래서 안 되나 보다. 단어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매 순간이 허들이다. P. 260 끝을 갈망하는 이에게 끗이라는 단어를 안겨주는 건 외발자전거를 탄 곡예사에게 저글링을 시키고 불붙은 훌라후프를 통과해보라는 명령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두려울 것이다. 고독하고 힘겨울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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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게 잘 보았습니다. 단어라는 것이 이렇게 풍부하게 할 말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지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답니다... 작가님이 시인이라 그런지 남들은 똑같이 쓰다가 지나치고 큰 의미도 없는 단어인데, 이렇게 다양하고 맛깔나게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많은 함의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재미지게 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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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 선택된 단어가 집을 이루는 책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나요? 작가라는 사람들을 동경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시인들은 정말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진 것 같아요. 같은 단어를, 사물들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표현하고 다르게 노래 부르는 사람들. 시인이 어떤 단어를 골랐고, 어떻게 이야기로 집을 지어갈지 기대가 큽니다.
2012년 창비신인 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입니다.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과 산문집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당신은 나를 열어 바닥까지 휘젓고>가 있어요. 세계의 비밀을 예민하게 목격하는 자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촛불을 들고 단어의 집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는 성냥갑에 딱 하나 남은 성냥 같은 말이라는 주제로 길항부터 블라이 기센까지 실려 있어요. 2부는 홀로 짓는 표정 같은 말이라는 주제로 모루와 유루를 시작으로 꼭두까지 실려 있죠. 3부는 나의 작은 말들의 놀이터라는 제목으로 안료를 시작으로 책의 마지막 단어 끗까지 실려 있습니다. 45개 단어 중 확실하게 아는 단어는 한두 개 정도입니다. 영어 단어는 그렇게 외우게 하면서 우리말 단어는 무심한 우리나라 공교육을 탓해보는 마음 잠깐, 그렇게 쉽게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한 반성을 오래 하면서 책을 펼칩니다.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열량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서 생육 일수의 일평균기온을 적산한 것’ -적산 온도 (p27) 적산 온도에 대한 사전적 의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tv에서 본 내용을 들어 쉽게 설명해요. 식물마다 꽃이 피기까지 필요한 온도가 있는데 식물들이 몸 안에 온도를 ‘저금’하하는 것이 적산 온도라고 합니다. 식물들이 꽃을 피우기 위해 온도를 저금한다니. 그래서 벚꽃이 일정한 시기에 피기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들쭉날쭉 피었던 거예요. 빨리 더워진 해에는 전년보다 빨리, 조금 추웠던 해에는 전년보다 늦게 피었던 겁니다. 식물들이 온도를 저금하듯이 나는 무엇을 저금하고 있는지 살펴보게 했어요. 못난 마음들, 상처 난 마음들, 구겨진 자존심들을 차곡차곡 저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살펴봅니다. 가시 돋친 말에 찔려서 벌어진 상처에 자꾸만 소금을 치는 일처럼 어리석고 못난 일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제는 온도를 저금해서 꽃을 피우는 식물들처럼 아름답고 예쁜 마음과 말들을 저금해서 꽃피워 봐야겠어요. 작지만 소중한 마음과 단어들을 하나씩 저금하면서요. 가령 엄마가 멋져요 같은 말들을.
검술에 숙달되지 않은 기사들이 연습 중에 날카로운 칼 때문에 귀가 잘리고 실명을 하는 경우가 많아(으악!) 고안된 검. 날 끝이 둥글고 칼날을 없앤 검, 플뢰레.(p152) 시인이 설명하는 플뢰레의 매력에 나도 풍덩 빠집니다. <날카롭되, 폭력에 가담하지 않는. 이왕이면 가장 깊고 캄캄한 고독을 찌를 수 있는.>이라고 설명해요. 공격하는 검이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칼이라니. 날카롭지만 폭력에 가담하지 않는 칼이라니 얼마나 멋진가요? 제가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 펜싱 경기를 긴장하면서 봤던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신사적이고, 상처를 남기지 않고 정확하게 공격포인트를 찔러야만 점수가 올라가는 경기 방식을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꼭 끝나고 나서는 상대와 심판에게 칼을 들어 인사를 하죠. 마치 중세 시대의 결투가 끝난 후처럼요. 상대를 찌르고 이기기 위해 얼마나 날카로운 칼들을 품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최대한 깊이, 강하게 한 방을 날려 상대를 일어서지 못할 만큼 꺾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이 결혼 생활에서 점점 더 커진다면 결혼은 지옥입니다. 타인이 지옥이듯이 결혼이 지옥이 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옥에서 쓰는 무기를 플뢰레로 바꿔볼 생각입니다. 당신과 대결을 하되 상처 주거나 폭력에 가담하는 무기를 쓰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이죠. 혼자만의 다짐이니 보호장비는 철저히 챙길 겁니다. 상대는 아직도 날카로운 검을 쓸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넘치는 병. 유루증이 있다고 합니다. 코로 흘러야 할 눈물이 막혀서 눈으로 계속 흘러내려 눈 주위를 적갈색으로 만든다고 해요. 자신이 원하지 않지만 자신의 눈물 흔적을 계속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어떨까요? 그 사람은 어쩌면 시인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눈물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살아있고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안료와 탁성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과 생각의 중요성을 배우고, 맨 처음인 꼭두를 통해 내 안의 욕망을 만납니다. 무엇이든지 맨 처음이 되고 싶다는. 밀코메타를 통해 새로움을 배우고(정말 처음 들어본 말입니다.) 시인의 단어 수집장을 몰래 엿본 것 같은 설렘과 재미도 느꼈어요. 어떤 단어를 알사탕처럼 오물거리며 다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단어를 만나면 무슨 뜻인지를 검색하기도 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시인의 글이 시처럼 아름답기를 바랐지만, 간결하고 담백합니다. 하긴 산문이 모두 시처럼 아름답다면 너무 화려해서 매력이 없을 것도 같아요. 담백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사람 냄새나는 글이죠. 어떤 단어를 만나든지 자신만의 시선으로 생각으로 풀어내는 연습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니 시인으로 살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어떤 단어를 알사탕처럼 오물거리며 다니시나요? 알사탕이 아니라 쓴 커피를 머금고 다니는 것 같은 단어를 만났나요? 오래 물고 있으면 다른 맛이 느껴질지도 몰라요. 사탕도 달기만 한 것이 아니고 커피도 쓰기만 한 것은 아닐 테니까요. 오늘의 하루에서 무엇을 저금하고 무엇에 녹는 사람인가요? 단어와 함께 당신 만의 하루를 짓는 멋진 사람이 되시길. 온도가 저금되면 꽃이 피는 것처럼 당신의 하루하루가 저금되면 꽃이 필 거예요. 그 꽃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오늘의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요. 그래서 저는 이 문장을 선택한 하루를 살아 보려 합니다. “헛되고 헛되다는 말을 반찬 삼아 갓 지은 밥 앞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는 이야기. 고고학자나 철학자의 사유보다는 허무맹랑하겠지만 그래도 이따금 정해진 선로를 이탈해 우주 바깥으로 상상적 여행을 떠나게 하는 시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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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 날, 날마다 생일이라는 마음으로. / p. 131
가끔 단어를 몇 번 반복하면서 중얼거리다 보면 갑자기 그 단어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될까. 그냥 단어만 말할 뿐인데, 묘하게 그런 느낌을 받는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단어가 나와 손절을 치는 기분. 그럴 때마다 내가 뭔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안희연 시인님의 산문집이다. 요즈음 독서를 하면서 모르는 단어들을 검색할 기회가 많아졌다. 단어의 뜻을 검색해 머리에 채우는 나름의 쾌감도 있는데, 제목에서부터 큰 관심이 생겼다. 저자가 시인이기 때문에 소설에서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단어의 세계로 나를 이끌 것 같았다. 마치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는 느낌. 목차를 보니 아는 단어들도 있지만, 모르는 단어들도 많아서 냉큼 구매를 했으나,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저자는 스스로를 시인이 아닌 '단어생활자'라고 소개한다. 그 이유는 책의 주인이 말의 최소 단위인 단어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단어가 저자를 이루는 피와 살처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읽다 보니 맞는 말이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생활속에서 나오는 단어를 생산적으로 소비하는 사람. 시인, 소설가 등 보편적으로 일컫는 직업과 다른 의미로 느껴졌다. 그런 의미로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저자의 일 년간의 기록. 일상생활을 하는 중간에 툭 튀어나오는 단어로 추억에 빠지거나 상상력을 펼치거나, 또는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모르는 단어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단어의 이미지 자체가 없기 때문에 별 생각이 안 들었으나,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은 문학과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다. 플레뢰와 비저비터는 체육에, 네온과 규모는 과학에 가까운 단어일 텐데 이러한 단어들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재탄생이 될까.
개인적으로 유루, 탕종, 덖음이라는 세 개의 단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루는 눈물을 흘린다는 뜻인데, 책에서는 강아지의 유루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여기에서 유루증이 강아지의 눈물 자국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눈물은 공기와 결합하면 갈색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말티즈 견종에서 자주 발생하는 눈 아래 갈색 줄이 유루증으로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는 것도 좋았지만, 사과의 갈변은 사과가 운 흔적일까? 라는 저자의 표현이 이 단어를 문학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머리에 각인이 되는 말이었다.
탕종이라는 단어는 효모의 힘을 빌리지 않고 반죽 단계에서 따뜻한 물을 넣어 빵을 만드는 방법이다. 책에서는 단호박크림치즈 탕종식빵을 구입하는데, 여기에서 탕종은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저자는 단어를 잘못 말하거나 적을 때에 아멘처럼 탕종이라고 외쳤다. 두렵거나 슬픈 일이 생길 때마다 탕종, 탕종,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고 하는데, 나는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탕종, 탕종,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안전한 막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덖음이라는 단어는 찻잎의 공정 중 하나로 불에 볶는 과정을 말한다. 덖음과 유념이 사람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매일 들볶이는 과정을 덖음에, 매일 여기저기 치이는 과정을 유념에 비유해 이러한 과정이 향기롭고 귀한 찻잎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찻잎이 사람이고, 물이 세상이라면 그리고 어차피 담겨야 하는 과정이라면 그것을 믿고 안겨보자는 것. 이는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나에게 뜻하는 바가 큰 메시지였다.
읽으면서 많은 단어들과 저자의 다정한 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처음에는 저자의 이야기에 울컥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대부분 많이 웃었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가위손의 에드워드를 보면서 공감하거나, 예의를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 베지밀 이야기를 꺼내는 과거를 반성하는 등 흔히 시인이라고 생각했을 때의 이미지와 다른 소탈한 모습에 웃게 되었다. 시인이라는 모습 자체가 내가 가진 또 하나의 편견이겠지만 말이다.
문학적인 표현과 삶의 의미로 재탄생된 단어의 변신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역시도 단어생활자 선생님의 능력이지 않을까. 일상이나 생각들을 독자들에게 아낌없이 전달해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독서하면서 단어들을 정리해 그 중 하나를 골라 한 문장 짓기 라는 작은 퀘스트를 떠올렸다. 이렇게 하나씩 하다보면 나도 저자처럼 단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단어생활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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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감이 너무 좋다. 과하지 않은 판형은 데리고 다니기도 편하고, 따뜻한 느낌의 표지가 겨울에 딱인 느낌이다. 굳이 별칭을 붙이자면 ‘마음의 핫팩’으로 하고 싶을 정도, 나는 시인이 쓴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김민정 시인의 산문집 ‘각설하고’가 그랬고 이번에 만나게 된 ‘단어의 집’도 그랬다.
다정한 말투, 일상을 따뜻하게 보여주는 작가의 창은, 아껴두었던 티백 차처럼,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시간, 볕이 잘 들어오는 시간 식탁에 앉아 음미하면서 엿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아껴서, 가능하다면 한 꼭지 한 꼭지 천천히, 그렇다고 시집처럼 문장이 다소곳한 것도 아니지만, 뭐랄까, 내가 세상을 보는 속도를 늦추는 느낌이랄까.
꼭지 하나하나가 선물 받은 송이송이 꽃들처럼, 한꺼번에 모아보기보다는 하루에 한송이씩 보듬어 살펴 보고 싶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각 꼭지는 (챕터나 목차보다 꼭지라는 말이 어울리는 산문이다) 하나의 우리말을 표제어로 그것과 관련된 하루의 일과나 작가의 시선을 보여주는 평범한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탕종’이라는 단어를 따라 유명 베이커리의 식빵을 어렵게 구매한 이야기부터, ‘가시손’이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여러 물건들을 파손했던 작가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기도 하다.
물론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사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를 천천히 읽게 만드는 힘은 작가의 시선에 있다. 나쁜 것도 조금 틀어서 볼 수 있는 시선, 아쉬운 것도 만족하게 만드는 시선, 때때로 어떤 하루는 기분이 좋지 않아도 그래도 그게 보통의 삶이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시선 말이다.
서평을 쓰는 지금도 몇 개의 꼭지들은 남겨놓았다. 내일은 금요일이고, 그 다음날은 또 주말이 있어, 그날 그날의 쉼표처럼 단어의 집에 놀러가 쉬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은 마음이다. 겨울이라 마음이 썰렁하다면, 연말인데 뭐 따뜻한 게 없나 싶은 생각이 든다면, 아주 천천히, 따듯하게 손과 마음에 넣어둘 수 있는 이 핫팩을 권한다.
다 같은 하루여도, 우리는 조금 더 길게 보낼 수 있다. 평범한 날들이어도 때때로 멈춰 서서 다른 시선으로 숨을 들이마실 수 있다.
작가가 말하려는 말은 분명 이 말들이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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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려 한 사람의 집이자 우주가 된다는 것. 참 따뜻한 움막이다. 뜻밖의 신비다.' p163 통째로 필사하고픈 책이 나타났다! _ 그래도 오늘은 소망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해 길항이라는 단어에까지 다다른 하루였으니 이를 생산적 난독이라 말해도 될까. '생산적 난독' 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책을 읽을때, 너무 좋아서 혹은 어려워서 곱씹고 곱씹느라 꽤 오랜시간 머무르다보면 곰곰 생각하게 되고 그런 자잘한 사유들로 인해 하찮고도 고단한 삶에 잔잔한 물결이 생기는데, 물결이 파도가 되는 책이다. 아주 천천히, 나는 꽤 오랜만에 생산적 난독을 했다. _ (p35) 삽수. 무척 생소한 단어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단어들은 다 낯설었다??) 식물체의 일부인 잎이나 줄기를 잘라 다시 심어 자라게 하는 재배 방식인 '삽목'에 쓰이는 잎이나 줄기가 '삽수'라고 한다. '삽수의 존재는 그 하나하나가 절대적으로 귀하다. 모태로부터 떨어져 나온 슬픔을 잊기도 전에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진 존재. 결과적으로 삽수가 있어야 삽목이 가능한 것이다. (중략) 신의 눈으로 보면 인간은 지구라는 화단에 심긴 삽수들일 것이다. 심는 마음이야 똑같았겠지. 결말은 예측 못 해도 누구에게나 시작은 공평한 손길, 다정한 눈길이었을 것이다. 결핍은 결핍대로 아름답다는 거, 아니 결핍이 도리어 빛나는 무늬를 만든다는 거, 평생 모르고 사는 일도 허다하겠지. (중략) 우리는 모두 신의 삽수들이란다.' _ 삶의 모습이다. 세상엔 수많은 삽수들이 다양한 생을 살아간다. 길고 짧은 여정속에 결핍은 늘 존재하기에 모양새가 변하기도 하지만 쓸모 없는 삶은 없다. 각자의 빛나는 무늬 또한 갖고 있을테니.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글이 되는 일 또한 삶의 형태라는 생각이 든다. 잘 다듬어진 글도 그렇지 못한 글도 시작하는 단어는 각자의 사연을 담은 삽수들이니까. _ 온도를 저금한다는 말. 모든 존재가 꽃이라면, 나의 피어남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까. 사람의 체온과 면역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몸도 몸이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저금해야 할까. -적산온도 中 그 피막이라는거, 사랑하고 미워하기를 반복하며 어렵게 어렵게 건너온 시간의 주름일 것이다. -피막 中 한 사람, 한 사람이 집이라면 그 집을 짓기 위해 설계된 내력벽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공평히 나누어 가진 부재의 기억 같은. (중략) 팔을 들어 슬픔을 받치고 선 모양. 나란한 두 개의 기둥.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다. 그러니 팔이 아프면 조금 꾀를 부려도 좋아. -내력벽 中 고유한 뜻을 품은 단어들이 무한하게 부풀어 손을 내민다. 만물을 사유하라고. 작지만 오밀조밀 견고한 움막을 짓고 싶어졌다. 나를, 내 소중한 것들을, 때론 생면부지 타인까지도 다정하게 살피며 따뜻한 생을 살아갈 수 있게. _ 올해 읽은 책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이러니 어찌 한겨레 출판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협찬 도서지만 내돈내산을 넘어 소중한 분들께 선물하고픈 마음을 담아 썼습니다) #단어의집 #하니포터 #도서리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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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작가의 단어의집 책을 읽었습니다. 안희연 작가는 본인을 단어생활자라고 칭했는데요. 가장 비문한적인 단어들을 가장 문학적으로 사고하는 듯합니다. 책의 목차를 보면 다 생소한 단어인데... 이를 하나씩 일상에서 건져 올린 생각의 깊이가 남달라 보였어요. 산문집은 오랜만에 읽는데 잔잔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시인은 단어를 산다'live'라고 한다던데 진짜 이 작가가 그런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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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슬픔이라고 말하는 대신 복숭아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슬픔은 안으로 감추고 복숭아 이야기만 실컷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해진다... 오늘도 나는 슬픔 대신 복숭아라고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복숭아의 외피를 두르지 않은, 슬픔의 맨살을 누설하기 위한 준비를.” (pp.234~235)
한밤중 나는 고양이 들풀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리로 와, 거기로 들어가지 마, 그거 물어 뜯지마... 잠시 멈춘 고양이 들풀은 거기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정말 가만히 쳐다본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내가 고개를 모니터로 가져오는 척하였다가 휙 돌아보면 좀전의 그 자세 그대로이다. 그러나 모니터를 향한 채 한 문단 정도를 쓰다가 고개를 휙 돌리면 어느새 또 다른 말썽거리를 찾아낸 뒤이다. 나는 다시 맨살 같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튤립의 비밀을 말해줄게. 튤립을 사다 꽃병에 꽂으면 꽃송이가 테이블에 닿을 지경으로 축 늘어져버린다? 사람 손이 닿으면 그래(임상 실험으로 몇 번 확인). 최대한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면 물을 머금고 어느새 꼿꼿하게 선다. 그때 예쁘다고 줄기에 손을 대면? 그대로 콱 죽어버리겠다고 결심한 듯 금방 푹 고꾸라져. 겨울 냉기로 스스로를 지키고, 꺾인 후에도 아무 도움도 필요 없다는 듯이 구는 튤립을 보면서 혼자 오래 감상에 젖었더래지. 그래. 너는 그렇게 살고, 그렇게 꽃피우고, 그렇게 시들거라. 응원하게 되더라. 같은 마음으로 네게도 또 한번 응원을 보낼게.” (pp.51~52, <월간 여름> 2021년 3월 호에서)
어느 때 나는 복숭아라고 말해진 것을 좋아하고, 다른 때 나는 슬픔의 맨살을 좋아한다. 과거에는 복숭아라고 말해진 것을 더 좋아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맨살 쪽을 더욱 좋아하는 것 같다. 어쩌면 《단어의 집》을 쓴 작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매달 ‘월간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보내는 독일에 사는 친구의 손편지를 향하여 진실 가득한 찬사를 보낸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매년 12월 31일에만 펼치는 노트가 있다. 무늬 없이 샛노랗고 크기는 손바닥보다 약간 작으며 겉면에는 ‘NOT TOO LATE’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한 해의 마지막 날에만 펼칠 수 있는 건 그것이 내 새해 소망을 모아둔 금고이기 때문이다. 새해 소망을 구구절절하게 적는 것도 금지된다... 딱 한 줄일 것.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일 것. 진심일 것... 새해 소망을 아예 쓰지 않겠노라 작정한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백지는 어딘가 무책임해 보였다. 말뚝에 묶인 양을 풀어주되 초원을 떠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는 내 집, 내 삶의 장소이니까... 노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까다로운 작은 소망들’을 늦지 않게 채집하기 위함이었다.” (pp.80~81)
산문집의 제목은 ‘단어의 집’이지만 실린 글들이 단어에 천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삶 전체를 아우르는데 그렇게 아우르는 주체가 시인이다보니 저절로 단어들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정도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사물을 보든 상황을 보든 사람을 보든 단어를 통하지 않고 거기에 가서 닿을 수는 없다. 거기에 이르는 적당한 길을 걷기 위해서는 누구든 단어의 호위를 받아야 한다.
“... 나에겐 예술가의 탄생을 그린 서사가 불편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예술가를 불우하거나 광기 어린 존재, 사랑에 갈급한 존재로 묘사하는 등의 서사에서. 왜 꼭 무언가를 관통해야만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하는 걸까. 드라마나 신화 없이도, 삶에 대한 건강한 충실성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 예술의 세계에 이를 수 있고 개성 있는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는데(언제나 나는 예술가는 절대적으로 제정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p.140)
적절하게 단어의 호위를 받다 보면 제대로 된 목적지에 도달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문필을 업으로 삼고 있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절한 단어의 호위를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절대적으로 제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성장에는 광기라는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다. 광기가 없는 성장은 없다. 과장된 광기와 포장된 성장이 좀더 눈에 띌 뿐이다.
“내가 쓸 수 있는 건 죽음 이후가 아니라 죽음 같은 삶으로부터 기인한 문장이다. 이 거대하고도 비좁은 묘실에서 보물인 줄도 모르는 보물들과 종종거리며 살아가는 이야기. 헛되고 헛되다는 말을 반찬 삼아 갓 지은 밥 앞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는 이야기. 고고학자나 철학자의 사유보다는 허무맹랑하겠지만 그래도 이따금 정해진 선로를 이탈해 우주 바깥으로 상상적 여행을 떠나게 하는 시의 이야기.” (p.201)
결국 말썽을 멈추지 않는 고양이 들풀을 향하여 분무기 공격을 감행했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고, 아내는 고양이에게 물을 뿌리는 나를 나무라지만 어쩔 수 없다. 정수리와 등에 물을 맞은 들풀은 잠시 나를 피해 도망쳤다가 다시 내게 다가오며 운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어 몇 번 더 꾸짖으면 풀이 죽은 채로 내 옆에 와서 앉는다. 그루밍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나는 그 사이에 얼른 리뷰를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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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는 잘 안읽는 편이라 시인이 쓴 이번 책은 어떨지 궁금했다. 주변에서 이 책을 많이들 추천해서 더 기대가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생소한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 모음이다.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어 읽다가 포기하는 일은 없었지만 시인의 글은 100% 이해가 되지않는 문제가 아직 있는 것 같다.. 이건 나의 한계… 탕종이라는 단어가 제일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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