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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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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이 모순적인 제목에 끌렸다.목차의 구성을 보니 관심 있는 분야들이 모두 모여있는 관계로 서둘러 책을 주문하고 배송받아 읽기 시작하는 순간까지 설렜다.현재 나는 읽던 책을 덮고 이렇게 리뷰를 작성하고 있다. 솔직하게, 나는 이 책에 실망했다.논리의 비약은 심하고 전개는 매끄럽지 못하다.전제 조건 자체가 다른 두 개의 사례를 동일한 주장의 예시로 놓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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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이 모순적인 제목에 끌렸다.
목차의 구성을 보니 관심 있는 분야들이 모두 모여있는 관계로 서둘러 책을 주문하고 배송받아 읽기 시작하는 순간까지 설렜다.

현재 나는 읽던 책을 덮고 이렇게 리뷰를 작성하고 있다.
솔직하게, 나는 이 책에 실망했다.
논리의 비약은 심하고 전개는 매끄럽지 못하다.
전제 조건 자체가 다른 두 개의 사례를 동일한 주장의 예시로 놓고 작가의 입맛에 맞게 이용한다. 독자인 내가 느끼기엔 수박 겉핥기 식의 논리이다.

구성과 제재가 좋아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이지만,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크다. 중간에 덮은 책을 언제 다시 펴게 될지는 모르겠다. 얕은 논리에 읽을수록 스트레스가 쌓인다.

지적 갈증을 느끼던 분야에 단비를 내려줄 책인 줄 알았는데 아쉽다.
g********9 2019.08.09. 신고 공감 3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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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의 평등을 꿈꾸는 자를 위한 책..
"결과의 평등을 꿈꾸는 자를 위한 책.." 내용보기
차별의 범주를 너무 넓히다보니 본질은 사라지고 결과의 평등에 대한 요구만 남은 느낌의 책. 한줄로 설명하면 이정도로 요약이 가능한 책이었다.인권을 이야기 하지만 정작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인들의 인권보다 소수자의 인권을 우선시해야한다는 한량스러운 주장이 이어지다가 대부분의 사람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정의하며 가르치려고 든다.본인 스스로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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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범주를 너무 넓히다보니 본질은 사라지고 결과의 평등에 대한 요구만 남은 느낌의 책. 한줄로 설명하면 이정도로 요약이 가능한 책이었다.

인권을 이야기 하지만 정작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인들의 인권보다 소수자의 인권을 우선시해야한다는 한량스러운 주장이 이어지다가 대부분의 사람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정의하며 가르치려고 든다.

본인 스스로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바뀌는 거라 말해놓고서는 정작 자신 역시 자신의 시각에서 다른 사람을 논한다.

책속에는 그 조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온 자의 노력들은 무시당하고 결론적으로 평등해야한다고 주장하며, 개그프로그램에서도 '선량한' 자신과 같은 사람이 '불량한' tv프로그램을 뜯어고쳐 한다고 말한다. '선량한'이들의 기준에 맞추고자 코미디언 등의 상상력조차 거세할 것을 요구한다.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이 재미없어진것과 같은 이치겠지.

대체 어떻게 차별을 정의하고, 어떻게 인권을 정의하면 이런 내용의 책이 나올수 있을까? 온갖 인용을 통해 신뢰성을 높이려는게 목적이었겠지만, 오히려 불필요하게 많은 인용이 전체적인 맥락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금방 읽었고, 다 읽고 난 시점에 그 어떤 감흥도 남지 않았다. 아쉬운건...좋은 소재였는데 왜 이렇게 반감만 사는 글로 변화시켰냐는 것이다.
k***h 2019.12.08. 신고 공감 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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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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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고 적잖은 충격을 느꼈다. 내가 차별주의자로의 죄책감이나 미안함보다 작가의 극단주의에 치우친 사상적인 면을 보고 진정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조언이 목적인지 사회의 양극화를 부추겨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 많은 인용과 사례를 담고 자료를 담고 있지만 이 모든 정보가 남여불평등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되고 있고 느껴진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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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고 적잖은 충격을 느꼈다. 내가 차별주의자로의 죄책감이나 미안함보다 작가의 극단주의에 치우친 사상적인 면을 보고 진정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조언이 목적인지 사회의 양극화를 부추겨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 많은 인용과 사례를 담고 자료를 담고 있지만 이 모든 정보가 남여불평등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되고 있고 느껴진다. 현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외침과 유튜버에서 떠도는 단편적 자료의 편집으로 현실을 과장하고 중폭시키는 선동적 매체물과 차이가 무엇인가. 세상은 항상 극단에 서있을때  문제가 발생한다. 제목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글에서 선량을 차별로 만드는 극단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회 자체를 혐오, 계급, 차별, 권력으로 부정해버리고 구성원을 차별주의자로 만든는 작가가 더 큰 차별을 하는것은 안닌가하는 역설적 생각이 든다. 물론 차별은 나쁘다. 하지만 차별을 이용해 극단의 끝으로 모는 선동은 더욱더 나쁜거 같다. 나는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 그러나 극단주의자는 되고 싶지 않다. 책을 읽고 읽은 걸  후회해보는 몇 안되는 책이다.

e****t 2020.03.27. 신고 공감 17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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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보이는 내 앞의 일상 [선량한 차별주의자]
"알면 보이는 내 앞의 일상 [선량한 차별주의자]" 내용보기
멜빈 러너Melvin Lerner는 사람들이 공정세계 가설just-world hypothesis을 품고 산다고 말한다. 세상은 공명정대하고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어야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믿음은 필요하다._(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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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빈 러너Melvin Lerner는 사람들이 공정세계 가설just-world hypothesis을 품고 산다고 말한다. 세상은 공명정대하고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어야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믿음은 필요하다._(P.168)

 

내 차를 사기 전에는 차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차 외형만 봐서는 차 이름이 뭔지 어느 회사가 만든 차인지 구분 못했다. 알아서 유익할 일도 없으니 몰라도 상관 없는 일이긴 했다. 그런데 차를 사고 나니 바뀌었다. 굳이 알 필요 없는데도 저 차는 '무슨 차', '어느 회사가 만든 차'하고 구분이 간다. 내게 차가 생기니 자연스럽게 관심 영역이 생긴 거다. 우리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그랬다. 도로를 다니는 차량에서 그제서야 업계 회사들 이름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이 내 관심 여부에 따라 존재 여부가 결정 난다. 없던 것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알면 보인다는 말이 맞다. 더 많이 알면 더 많이 보일 거다.

 

'차별'. 내가 차별주의자냐 아니냐를 따져묻기 힘들다. 왜냐하면 차별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관심도 없었으니 말이다. 살면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니었다. 아니 아예 다룰 일이 없었다. '차별'이란 말이 지닌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그렇게는 답할 것 같다. 일단 나는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차별하자고 마음먹고 차별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나쁜 일을 하자고 맘먹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책 제목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담은 의미가 그렇다. 차별하자는 게 아닌데 알고 보니 차별이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차별이 관심사가 아니었다면 누구나 무심결에 차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몰랐다고 선량하다 불릴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정말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한다는 건 나의 무의식까지 훑어보는 작업을 거친 후에야 조금이나마 가능해질 것 같았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_(p.10)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 않다. 차별 천지다. 그런데도 성차별, 인종차별 같은 말이 나오면 나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찾아보면 가까이서 일어나는 차별을 확인할 수 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 남성과 여성. 차별이란 관점으로 들여다 보면 보이는 게 있다. 차별이 일상이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문제는 차별 받는 사람만이 그걸 안다는 것이고,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차별에 대해 다루고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차별을 받는 사람은 있는데 하는 사람은 없는 상황. 차별하는 사람이 이걸 모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을 때 자기 확신에 힘입어 더 편향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편견에 고삐가 풀리는 것이다._(P.112)

 

나는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해버리면 더 배우지 않는 사람이 된다. 자기 생각과 달리 무지한 상태로 살게 되는 아이러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차별하지 않아, 나는 공정한 사람이야. 이러면 자기 자신을 살피지 않는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차별하지 않을까? 불공정한 건 아닐까? 이런 의혹을 아예 차단해버린다. 자기 편견에 꽁꽁 묶여 살지 않으려면 모든 가능성에 열린 마음이어야 한다. 차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태도나 행동 하나가 상대방에게 차별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 책《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다루고 있는 갖가지 차별 사례들을 보며 깨닫게 되는 사실이다.

 

내가 모르게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보다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_(P.189)

 

《선량한 차별주의자》 내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책이다. 차별이란 주제를 거창하게 접근할 게 아니라 내 주위부터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차별을 하고 있는지. 일단 무심히 하는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차별일 수 있다는 경각심만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차별이란 말이 갖는 의미,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 깊숙이 파고 들어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우리가 어떤 차별 속에 있는지 알게 된다. 조금 아니까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차별'을 아는 게 나를 차별화 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분명 달라 보일테니.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관한 상징이며 선언이다._(P.205)

YES마니아 : 플래티넘 l*****j 2020.04.18. 신고 공감 1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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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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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는 김지혜 작가의 작품이다. 그녀는 작가라기보다는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이 존재한다. 그녀는 이주민, 성소수자, 아동, 청소년, 홈리스 등 다양한 소수자들과 관련된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과 밀접한 연구를 통해 법과 정치적 대안들을 제시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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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는 김지혜 작가의 작품이다. 그녀는 작가라기보다는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이 존재한다. 그녀는 이주민, 성소수자, 아동, 청소년, 홈리스 등 다양한 소수자들과 관련된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과 밀접한 연구를 통해 법과 정치적 대안들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 현장 경험과 심도있는 연구로 인해 이 책은 훨씬 더 의미있고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이 책은 3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2부에서는 차별이 어떻게 지워지고 '정당한 차별'로 위장되는지 살펴보고 생각해보는 기회를 준다. 3부에서는 차별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 논의하고 대응방안을 알려주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나 또한 무심코 차별을 당하고,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각종 차별에 대해 생각해보고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누구나 '결정장애'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 속에 차별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잘 모를 것이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결정장애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렇듯 우리는 무심코 차별을 하고 혐오표현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왜 문제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p.6-

 나 또한 무심코 '결정장애' 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나에게는 결정장애가 있는 것 같다. 어떤 것을 결정할 때 소신있게 한 번에 결정하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화를 읽고 나서는 이 말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요즘 쓰는 '맘충', '설명충', '진지충', '급식충' 등 이런 말 또한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는 혐오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그런 혐오표현을 사용한다. 이런 혐오표현, 결정장애 같은 차별적인 말을 쓰면 쓸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더 각박해지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차별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그런데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차별을 당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많이 듣지만, 누가 차별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다. 

작가 또한 이런 이유로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연구를 하기로 했다. 우선 소수자 집단을 향한 온갖 모욕적인 말들을 수집했다. 각종 혐오표현들을 통해 사람들이 소수자 집단에 대해 어떤 식의 차별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분석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모욕적인 말의 범위가 생각보다 상당히 넓고 표현의 방식도 매우 은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8-

우리는 흔히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져라' 라고 말을 한다. '희망을 가져라'라는 말 속에는 이미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한다. 장애인의 삶에는 당연히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것은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에 대해 가치를 매기는 것은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 또한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모욕적인 의도가 포함되어 있을 줄이야 정말 몰랐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도 그 표현이 차별인줄 모르고, 모욕적인 표현인 줄 모르고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잘못과 차별을 깨닫게 해준다.


1장에서는 다수자 차별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전에는 다수자 때문에 소수자가 차별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소수자 때문에 다수자가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는 다수자 차별론이 등장했다. 그 주장의 기저에는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토크니즘은 차별받는 집단의 극소수만 받아들이고서도 차별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성차별, 이주민이나 성소수자에 관한 역차별 주장 또한 '차별은 없다' 라고 하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치별이 없다는 생각은 내가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는 간절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역설적으로 이미 차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들은 안 그럴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웹툰 『송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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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정말 평등한가? 한국 사회에서는 차별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작가는 말한다. 아직은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차별을 좀 더 찾아야 할 때라고 말이다. 


2장에서는 예멘 난민 수용 반대와 관련하여 우리가 가진 특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한 이유가 '여성에 대한 성범죄 가능성이 높다' 는 것이다. 예멘 난민을 '난민'이 아닌 '남성'으로만 보았던 것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남성 말이다. 흔히 무슬림이라고 하면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상이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여성은 소수자 집단이 아닌 주류 집단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호모 카테고리쿠스'이다. 인간은 범주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각 나라별로 각 민족에 대한 스트레오타입(고정관념)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 한국인에 대한 스트레오타입(고정관념)에는 '한국인은 감정적이다. 한국인은 참을성이 없다. '한국인은 수줍음이 많다 등이 있다. 

한국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 한국인의 특징인가? 아니면 인종차별에 의한 고정관념일꺼?

또한 이러한 편견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사자성어에도 존재한다. '남존여비', '여필종부', '일부종사'등이 속한다. 그 사자성어들은 남성우월주의가 그 기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예멘 난민 수용때는 '우리 국민이 먼저다'라며 반대했는데 올림픽 경기를 위해서는 낯선 외국인을 우리 국민이라고 하며 수용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우리'와 '그들'의 경계는 국적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를 '우리'라고 보는 주관적 관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한 개인은 동시에 여러 차원의 집단에 속하게 된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차별을 받는 집단에 속하기도 하고지만 반대로 특권을 누리는 집단에 속하기도 한다. 때로는, 차별을 받는 여러 집단에 속해 있어서 한꺼번에 복합적으로 처벌받기도 한다. 

                                                                                                                          -p.53-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p.60-


3장에서는 고정관념으로 인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분교 캠퍼스(분캠)와 본교 캠퍼스(본캠)과의 차이와 차별을 그  예로 든다. 우리가 명문대 진학을 고집하는 이유 또한 이런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러면 분캠과 본캠에 대한 고정관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분캠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분캠에 갔다.' 본캠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쟁취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이렇게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명문대 진학에 대해 온 힘을 다 쏟고 다들 명문대 가려고 기를 쓰는 것이다. 

또한 고정관념은 부정적인 영향도 미치지만 긍정적인 영향도 미친다. 소위 명문대를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은 단지 그 대학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 이라는 긍정적인 고정관념도 준다.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외부의 시선에서 시작되지만,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기 집단에 소속감을 가지면서도 그 집단을 정체서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것을 '사회적 정체성'이라고 한다. 한 개인은 집단에 속하면 되면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이 개인의 내면에 흡수되고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고정관념도 개인에게 내면화되는데 이 부정적인 관념을 낙인이라고 한다. 

낙인이론은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사회가 부여한 낙인을 자신 안에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이론이다.

이 낙인이론에 따라 타인들이 개인을 노골적으로 차별하지 않아도 개인 스스로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한 결과, 자연스럽게 차별적인 구조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자극하면,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고, 부담 때문에 수행력이 낮아져서 결국 고정관념대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다. 이를 고정관념 압박이라고 한다. 

이러한 예로, '여자는 남자에 비해 수학능력이 떨어진다.' 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수학능력시험에서 많은 여학생들은 수학 '가'형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그들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부터  아예이공계열에 진학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전공과 진로의 선택은 사회적 차별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으로서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취업에 유리하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양육할 때도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직업이 좋다. 라는 전제가 이미 노동시장과 사회구조 속에 깔려 있다.


 이러한 구조적 차별은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차별이 만연해 있어서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자연적으로 생긴다. 우리는 예로부터 여성은 어때야 한다. 여성이라면 이런 직업을 가지면 좋지 하는 얘기를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들으며 우리의 자아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해왔다. 이미 차별이 전제된 선택이었음을, 우리가 흔히 좋다고 하는 공무원, 교사 등과 같은 직업 또한 이러한 사회적 성적 차별이 만들어 낸 구조적 차별에 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차별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까? 고정관념과 편견이 없는 사회에서 자랐어도 우리의 관심과 적성이 정말 현재와 같았을까?

-p.79-


4장에서는 우월성 이론과 편견규범이론에 대해 말한다. 방송 개그프로그램에서 흑인분장을 해서 흑인비하 논란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웃자고 한 말에 왜 죽자고 덤비느냐'라고 말하겠지만, 이 기저에는 우월성 이론이 깔려있다. 

우월성이론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약함, 불행, 부족함, 서툶을 볼때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웃음은 그들에 대한 일종의 조롱 표현인 것이다.

우월성 이론에 따르면 자신의 위치에 따라 같은 장면이 웃기기도 하고 그렇기 않기도 한다. 

내가 우월해지는 장면이라면 웃기지만, 반대로 내가 깎아내려진다면 웃기지도 않다. 오히려 기분이 안 좋을 것이다. 

토머스 포드와 그의 동료들은 비하성 유머가  마음 속 편견을 봉인해제시킨다고 한다. 

즉 이 이론에는 사람들은 어떤 집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보통의 상황에서는 사회 규범 때문에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비하성 유머를 던질 때 차별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데 이것을 편견규범이론 이라고 한다. 이러한 비하성 유머의 예로 혐오펴현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똥남아(동남아시아인)', '똥꼬충(게이)', '급식충(아동, 청소년)', '틀딱충(노인)', '맘충(엄마)' 등이 있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인간을 '똥'이나 '벌레' 에 비유하여 비인격하는 말들인 것이다.  

그리고 비하성 유머라고 할지라도 '모든 집단에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슬림, 게이,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과 관련된 비하성 영상이나 방송들은 잠재적 편견들을 표출시키는 효과가 더 크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하성 발언, 혐오표현을 막기 위해 단어를 바꾸어 이야기 한다. 예를 들면 '장애자'나 '불구'를 '장애인'으로, '결손가족'을 '한부모가족'이나 '조손가족'으로, '혼혈인'을 '다문화가족 자녀'가 있다. 이 단어들은 단어 안에 담긴 무의식적 편견과 낙인을 반성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성소수자 축제인 '퀴어문화축제'라고 부르고 있고 이제는 '퀴어' 라는 단어가 성소수자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다. 내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런 표현들이 차별을 전제로 하고 있는 단어라고 생각하니 새삼 놀라웠다. 또한 과거에는 '불구', '결손가정'등의 단어를 썼는데 요즘에는 그런 단어들을 사용 안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이런 혐오표현들이 순화된 느낌이다. 


5장에서는 차별의 공정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떤 차별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

드라마'미생'에서 비정규직인 장그래는 추석선물로 식용유 세트를 받는 반면, 정규직인 다른 사원들은 햄세트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식용유 세트와 햄세트의 가격 차이는 1~2만원 정도이겠지만, 여기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시작된다. 또한 수원의 한 주민센터에서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를 '여사님'으로 불러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정규직 공무원은 '주무관'이라고 부르는데 비정규직을 똑같이 주무관이라고 부를 수 없어서 만든 호칭인데 오히려 이 호칭이 차별을 불러왔던 것이다. 

그러면 왜 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이러한 차별은 정당하다고 말한다. 차별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고 도덕적이기 때문에 차별을 해야 한다고 한다. 즉 비정규지과 정규직은 엄연히 다르고  그들의 능력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능력주의 관점에서 사회적 차별을 본 것이고 이 이론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능력주의는 누구나 능력 있고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믿음이다. 누군든지 노력과 능력으로써 높은 지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이론이다. 


능력주의가 공정한 규칙이 되려면 다음의 조건들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똑같은 조건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째, 무슨 능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둘째, 평가기준을 만들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서 아무런 편향이 없어야 한다.

셋째, 선정된 평가기준은 누군가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게, 평가를 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조건이어야 한다.        

 -p.107-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는 능력주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선발이나 채용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한 회사 채용 시험에서 토익 600점이상이라는 채용조건이 있다. 이 조건이 공정하고 능력에 따른 선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에 당신이 청각장애인이라면 이 조건은 당신에게 공정한가? 이 채용조건은 아예 장애인을 배제한 조건은 아닌가? 따라서 우리의 능력을 판단하는 많은 기준들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는지를 의심하고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고려할 때 어떤 한가지 평가 결과로 사람의 순위를 매겨 결정직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그런 평가기준으로 인격적인 대우를 달리하거나 영구적인 낙인을 부여함으로써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이야말로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일이 아닐까

                                                                                                                            -p.112-


6장에서는 다양한 차별로 인한 배제와 분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한 맥도널드 매장에서 한인 노인들 여럿이 모여 1~2달러 감자튀김이나 커피를 주문하고 오래 앉아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또한 필라델피아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흑인청년들이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리자 주인이 나가라고 요구했다. 이에 반발을 흑인청년들이 나가지 않자, 주인은 경찰을 불렀다고 한다. 

또한 거부당하는 예는 비단 인종차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에 새로 등장한 장소가 있다. 그것은 '노키즈존' , '노스쿨존', '노장애인존'이다. '노키즈존'이라는 말은 영유아, 아동의 입장을 거부하는 카페나 식당을 말한다. '노스쿨존'은 중,고등학생의 입장을 거부하는 장소를 말한다. 노키즈존이 생긴 이유는 식당이라 카페에서 영유아, 아동은 소란을 피워서 다른 손님들을 방해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렇게 특정 계층의 입장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인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왜 이들을 거부할까? 우선 그들의 계층을 잘 살펴보면 영유아, 아동, 청소년, 장애인은  상점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계층이다. 그들은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거나 다른 손님이 오는 데 방해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사회적 계층 말고도 종교난 다문화에 의해 거부 당하는 경우도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차별당하는 예로 동성애 또는 동성결혼이 있다. 동성애는 성경에서 '죄악' 행위이며 동성결혼은 '창조주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다문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원래 다문화라는 말은 다문화주의로부터 왔다. 

다문화주의는 다양한 문화의 상호존중과 공존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각자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런 다문화라는 말은 '진짜 한국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차별은 인종이라 피부색, 종교, 국적을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인종이라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이다.

-p.133-


7장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성수자들의 문화축제인 '퀴어문화축제'를 그 사례로 들고 있다. 매년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만큼이나 축제를 막으려는 사람들로 실랑이가 벌어진다. 어떤 지자체는 퀴어문화축제 장소 대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여느 축제라면 당연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그리고 보통은 축제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편이다. 하지만 퀴어문화축제는 다르다. 축제를 방해한 사람보다는 축제를 여는 사람에게로 비난이 쏟아진다. '꼭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축제를 해야 하느냐?", "성소수자인 건 받아들일 수 있는데 꼭 사람들이 많은 광장으로 나와서 해야 하느냐?, "사람이며 의상이며 모두 낯선 그 풍경을 왜 억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느냐? 등 비판이 쏟아진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다니는 공원이나 광장, 거리는 '퀴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렇듯 성소수자인 '퀴어'들은 공공장소에 입장할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러면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란 말인가? 아직도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를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아직도 동성애는 좀 이상한 것이고 동성결혼은 금지되고 있다. 

이러한 예는 비단 성소수자들뿐만이 아니다. 지난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소위 부랑인, 노숙자 들을 강제 이주시켜 격리해서 시설에 수용했다. 외국 손님들을 맞이함에 있어 한국의 경제 개발을 홍보하기 위해서 그들은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해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다니는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 즉 모든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성소수자는 스스로 숨는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기도 한다. 이것을 '패싱'이라고 한다.

패싱이란 낙인을 피하기 위해 사회가 '정상' 또는 '주류'로 여기는 정체성으로 보이는 전략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성소수자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겨야할 만큼 사회적 차별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은 단순히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발언에서 더 나아가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천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반대 시위는 단순히 말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차량을 파곤하고 사람을 밀치고 깃발을 빼앗아 부수는 범죄행위였다. 즉 성소주자에 대한 편견이 동기가 되어 증오범죄로 이어진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국적이 다르다고 사람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울 수 있을까

우리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윤리를 생각해야 한다.

                                                                                                                            -p.151-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일까?


8장에서는 법의 공정성과 부당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헌법 제 37조 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한다. 도 세계인권선언 제 29조 제 2항은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당연히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과, 민주사회의 도덕, 공공질서 및 일반적 복리에 대한 정당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만 법에 따라 정하여진 제한을 받는다." 라고 말한다.  

이처럼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공공질서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는 이 전제는 상황에 따라 강력한 효과를 가진다. 세계 역사적으로 볼 때 나치의 반유대인 정책,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등은 법을 통해 부정의한 사회질서가 만들어지고 집행된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 제 53조 제 1항과 긴급조치 1,2,9호 또한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의해 개인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시켰다. 

또한 우리는 법에 명시되어 있다고 하면 개인의 자유가 조금 침해당한다고 해도 법과 권력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20년 전까지 금지되었던 동성동본결혼은 사회질서가 무너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그 금혼규정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채 가정을 꾸리거나, 이를 비관하여 자살하기도 했다. 다행히 1997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러 폐지되게 된다. 또한 2005년 헌법재판소가 호우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이후 부계혈통주의에 기반한 가족제도가 사라졌고, 호주세 폐지로 인해 아버지와 어머니 둘다 성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하고 정의로운 행보로 이해되어야 한다.

 -p.162-

이렇듯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법도 때로는 부당하고 폐지되고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그것은 선거와 입법 등의 절차는 대개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결정되는 데 이 다수결 방식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다수의 이해관계에 의해 내려지는 결정은 소수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아직 충분히 정의롭지 않다. 그러는 우리는 멜빈 러너의 '공정세계 가설'을 믿고 세상이 언제나 공명정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이 부정의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그들에게 뭔가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별의 부당함을 보기보다 차별의 부당함을 외치는 소수자의 흠을 찾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별은 계속되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아직 충분히 정의롭지 않고, 부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p.151-

9장에서는 모두를 위한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는 여자주인공인 캐서린 존슨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비를 맞으며 달려가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흑인 여성이라 흑인 여성 전용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그 화장실은 건물 안에 있지 않고 800미터 떨어진 외부에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백인용 화장실과 유색인종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화장실이란 공간은 어떤 곳인가? 화장실은 그 사회의 평등수준을 가늠하게 하는데 훌륭한 척도가 된다. 온갖 개인적 특징이나 재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화장실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평등한 사회에서 화장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화장실이 충분히 가까워야 한다

둘째, 진입이 쉬워야 한다.

셋째, 화장실 안에서 용변과 손 세척이 가능해야 한다.

넷째, 이 과정 중에 수치감, 불안감이나 위험 없이 안전하고 편안해야 한다.

화장실이 이렇게 인간 생활에서 중요한 곳인지 몰랐고 화장실의 갯수가 평등의 척도가 될 수 있다니, 알게 모르게 나 또한 차별을 겪어온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성별,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등에서 오는 차별을 막기 위해 요즘 회사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이 실시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에서는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외모 등의 정보를 가려서 그런 구분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려 한다. 실제로 채용과 관련된 타당한 기준은 '실력' 그 자체이기 때문에 편견을 줄 수 있는 성별, 출신, 가족관계. 학력 등의 조건은 배제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평등을 형식적 평등이라고 한다. '같은 것을 같게' 평가해서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기준을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 평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실질적 평등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블라인드 채용은 평가자의 편견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지만, 개인의 편견만 없앤다고 차별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그런 실질적 평등의 일환으로 '모든 젠더 화장실'이 생겨나고 있다. 이 화장실은 트랜스젠더나 젠더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외양을 가진 사람들,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서로 다른 성별인 경우에도 사용가능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실질적 평등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블라인드 채용은 평가자의 편견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지만, 개인의 편견만 없앤다고 차별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그런 실질적 평등의 일환으로 '모든 젠더 화장실'이 생겨나고 있다. 이 화장실은 트랜스젠더나 젠더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외양을 가진 사람들,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서로 다른 성별인 경우에도 사용가능하다


10장에서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논의한다. 차별금지법은 미완의 법이다. 시작은 2007년이었다. 법무부가 제정을 시도했던 차별금지법안은 총 35조로 구성되어 있고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원칙하에 

차별에 관한 국가정책 계획을 수립하고, 영역별로 차별의 유형을 구체화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하여 차별을 시정하거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차별금지법은 헌법과 국제인권법의 원칙이 실현되도록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법률로써 구체화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러한 차별금지법은 두가지 접근 방식을 취한다. 하나는 국가가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차별을 하는 사람이게 책임을 지우는 접근이다. 차별을 하는 사람에게 차별행위를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시정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차별금지법은 우리가 차별을 하지 않게 만들자는 결단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 결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차별을 옹호하는 입장을 가지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거세게 반대하고 있고 그 반대로 인해 차별금지법 제정이 좌절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반대세력은 보수 기독교계이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동성애는 죄',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 '피담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무너진다.' 라고 주장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클수록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2019년 현재까지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제정될지도 의문인 상황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차별을 없애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의 불평등한 조건과 다양성이 고려되는 적극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평등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평등은 인간 조직이 정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는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p.206-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 주위에는 차별이 있다. 우리는 무심코 또는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을 차별한다. 그 차별이 개인 관계에서 시작하여 가족관계, 친구관계, 사회관계 더 나아가서는 나라 관계 로 나아간다. 예전에도 차별이 존재했고, 지금도 차별이 존재하고, 앞으로도 차별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차별을 당하는 피해자이자, 차별을 하는 가해자이다. 우리 모두는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의도적으로, 고의로 차별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지불식간에 차별주의자가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를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부를 수 있다.

우리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우리는 차별을 하고 그 차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차별을 하면 반드시 그 차별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피해자가 있다. 나 또한 지금까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차별을 해왔다. 나도 모르게 차별주의자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내가 차별주의자 였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내 잘못을 깨닫고 차별을 없애는 데 내 작은 노력이나마 해야겠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 성소수자, 다문화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도 사회적 편견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들을 챙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소한 이들에게 내가 행하는 행위가 차별임을 알고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차별 받는 세상에서 차별 없는 내일을 꿈꾼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s*******4 2020.10.25. 신고 공감 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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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막지)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무지(막지)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내용보기
무지(막지)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아빠, '예스키즈존'이 뭐야?" 올해로 열 살이 된 아이가 한 음식점 앞에서 물었다. 불현듯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을 일컫는 '노키즈존'의 반대말이겠거니 싶어, "어린이도 드나들 수 있는 곳이야."라고 답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당연한 얘길 왜 적어놓은 걸까 하는 표정의 아이를 보면서 나도 씁쓸
"무지(막지)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내용보기
무지(막지)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아빠, '예스키즈존'이 뭐야?" 올해로 열 살이 된 아이가 한 음식점 앞에서 물었다. 불현듯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을 일컫는 '노키즈존'의 반대말이겠거니 싶어, "어린이도 드나들 수 있는 곳이야."라고 답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당연한 얘길 왜 적어놓은 걸까 하는 표정의 아이를 보면서 나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다른 손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부 어린이의 행동을 훈육하지 않는 어른은 지적받아 마땅하지만, 노키즈존을 설정하여 어린이가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처음부터 차단하는 것은 '어른의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고 생각해서다. 여전히 많은 노키즈존 밖에 서 있는 어린이를 다시 환대하는 예스키즈존이 반가운 한편, 이 단어의 탄생에서 태생의 한계가 보여 안타깝기도 하다.

  이쯤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나오는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문장을 꺼내어 읊어본다. 여태껏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평범한 나날들을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안위하던 나에게 죽비처럼 날아든 소리이다. 아울러 부모라는 자리에 서면 꼭 보아야 할 것들과 아울러 직장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일상 속에 숨은 차별들을 찾는 데에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다. 책은 우리 사회가 평등을 지향하는 개개인으로 이뤄져 있는 듯하지만 가까이 들여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과 생각 속에 의도치 않게 차별을 조장하거나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그것을 당연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차별은 장애인, 성소수자 등 특정 집단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생활 속에서 상대적이고 중첩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른 인종이나 민족간에 다양한 문화를 서로 존중하자는 뜻이 담긴 다문화주의에서 파생된 단어를 대하는 나의 왜곡된 태도에서부터 알 수 있다. 각각 한국과 대만 국적을 가진 친구,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와 가족 모임을 자주 하면서도 이들이 '다문화 가정'임을 인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친밀한 관계여서 그렇겠지만, 평소 뉴스나 책에서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 결코 우월의식이나 배척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진 않아도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다문화'가 한국인과 한국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짓는 용도가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함께하자는 메세지를 담은 용어임을 되새기게 된다. 또한 직장 안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생긴 권력이 만들어낸 거대하거나 미세한 차별도 불편하지만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토록 다종다양한 차별이 계속되는 이유로 저자는 '특권'을 지목한다. 정치인, 기업인, 고위 공무원, 의사 등 특정 분야의 사람들이나 향유하는 '특별한 권리'라고 지레짐작하며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이 다름 아닌 특권임을 알게 된 순간, 누군가에게는 사소할지 모르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문제일 수 있겠단 생각이 스친다. 거리낌 없이 거리를 거닐며 대중교통과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특권이라는 걸 인지하는 비장애인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같은 장소를 장애인과 나누는 일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도 적지 않을 듯한데, 정작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일환으로 보급된 저상버스를 탈 때면 정작 장애인은 없고 낮아진 출입구와 넓어진 좌석 간격이 비장애인에게 더 편리하게 느껴지니 특권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으리라.  

  누구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차별 당하길 원치 않을 뿐더러 평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는 여성으로서 남성에 비해 차별을 받거나, 반대로 남성으로서 역차별을 받아 살기가 쉽지 않은데 무슨 특권이 있는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이에 저자는 다른 집단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유리함을 나타낸 것이므로 삶이 절대적으로 쉽다는 뜻이 아님을 밝혀둔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특권을 가진 사람이 차별을 받게 되면, 우월과 열등 사이를 오가며 육체적 또는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위험은 불편이 쌓여 만들어진 것으로 그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나아가 홀로 살지 못하고 다 같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타인이 안전하지 않은데 과연 내가 안전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수동적으로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차별하지 않기 위한 시도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아이와 같이 검은 스크래치북을 펼친다. 흰 스케치북과 달리 온통 검은 바탕에는 무지개를 그릴 수 없는 법인데, 다시 보니 무지개뿐 아니라 상상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이미 그려져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문득 차별에 관한 이야기도 이처럼 보이지 않았거나 아니면 애써 보고 싶지 않아서 숨겨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크래치북을 찬찬히 긁어가면서 더 이상 무지(막지)한 차별주의자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커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교과서 삼아 차별하고 차별받는 관계 속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비록 각기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귀기울이며 나눔으로써, 보이지 않는 차별과 불평등을 하나씩 긁어내어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그림 같은, 차별 없는 세상을 완성하길 바라본다.


#선량한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선량한차별주의자리뷰대회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o 2025.02.09.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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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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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저서 <왜 고전을 읽는가>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고전이란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처럼 말하는 책이다." 고전은 표지 한 번 보지 못해도 작품에 관해 몇 마디쯤 보탤 수 있다. 내용을 몰라도 의례 뛰어난 문학에 따라붙는 몇몇 레테르를 기억해놨다가 술자리에서 아는 척한다. 말하면서 죄책감이 들다가도,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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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저서 고전을 읽는가 이런 문장을 적었다. "고전이란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처럼 말하는 책이다." 고전은 표지 보지 못해도 작품에 관해 마디쯤 보탤 있다. 내용을 몰라도 의례 뛰어난 문학에 따라붙는 몇몇 레테르를 기억해놨다가 술자리에서 아는 척한다. 말하면서 죄책감이 들다가도,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이것으로 성공인 건가.' 이런 허풍마저도 책을 사랑하는 형태라 여긴다. 뉘우침 없이 희희낙락한다. 속으론 어차피 앞으로 읽을 거니까 괜찮다고 변명한다.

 비단 고전뿐만이 아니라 내게 독서는 자체로 허영이다. 의무와 성취를 기저에 두고 책을 읽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은 인간이 거라고 막연하게 믿어버린다. 문학을 과장하는 언사에 질색하지만, 내심 작품이 내게 건네줄 뭔가를 고대한다. 진득하게 읽지 못하고 긍긍하며 요행을 바란다. 단순히 흥미로워 책을 곁에 두지만, 타인에게 근사한 말을 뱉고 싶어서 밑줄 문장을 외워둔다. 어쩌면 승산 없는 인정투쟁을 위해 여태껏 불룩한 가방을 들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애를 써도 문학적인 삶은 어림도 없다.


 주말이면 서점에 문학도라면 능히 읽을만한 책을 골라 나온다. 드높은 명성과 그만큼 난해하다는 악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딱딱한 표지를 만지며 감격한다. 책을 고를 이름값을 따지다 보니 명사의 추천에 귀가 펄럭인다. '지식인의 서재' 추천 도서를 기웃거리고, 노벨문학상, 부커상, 퓰리처상, 공쿠르상으로 우열을 가린다. 알려지지 않은 책은 등한시하고, 대문호의 품에서 아양을 떤다. 그렇게 책장에 꽂아두고 방치한 책이 트럭이다. 엄마는 내가 책을 읽은 알고 의아해하신다. 책을 많이 읽으면 분명 지혜롭고 현명한 어른이 된다고 믿고 계시는데, 여전히 소파에 누워 발가락을 후비는 어리석은 아들일 뿐이다.

 나처럼 허영심으로 책을 읽는 병이 생기면 요즘 트렌디한 책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현실이 가리키는 바를 성실히 기술하는 요즘 작가와 멀어진다. 이왕이면 어디 가서 한마디 보태기 좋은 책만 고르니, 최근 떠오르는 화두를 놓치고 산다. 고매한 지성의 가르침에 정신이 벙벙해서 시대를 살피는데 게을러진다. 그런 와중에 내게도 올해 베스트셀러를 읽을 기회가 생겼다. 그것도 차별과 평등에 관해 진지하게 말하는 책이다.

 김지혜 작가의선량한 차별주의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이다. '누가 차별하지 말고 살아야 하는  모르나.'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뻔한 말을 책으로 읽긴 싫었다. 흥미진진한 문학이 읽고 싶었던 차에 하품이 절로 나왔다. '이건 어디 가서 떠들지도 못할 얘기잖아. 괜히 한마디 보탰다가 욕먹기에 십상이지.' 이런 생각으로 책을 폈고, 책장을 덮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너는 세상 모든 시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직업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오는 길에 뉴스 기사를 떠올리며 뱉은 말이었다. 기사는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직업 1"라는 제목이었다. 네가 최고라니까 얼마나 좋을까. 나였어도 좋을 같아서 스스럼없이 추켜세웠다. 딴엔 듣기 좋은 농담이라고 실실 웃으면서 과장했다. 그의 입장을 상상하지 못했다. 결혼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는 친구를 결혼을 원하는 30 여성이라는 범주로 구분했고, 더욱이 시어머니에게 보일만 신붓감으로 대상화했다. 그가 어떤 삶의 방향을 바라며 사는지도 모르면서, 모두가 좋아할 만한 스테레오타입으로 그녀를 재단했다. 지레짐작으로 사람을 세상이 정한 속에 한정시켰다. '이런 말을 지겹게 들었을 텐데, 나도 지겨운 하나가 됐구나.' 아무리 문학을 읽고 안다고 써대도 모양이다. 문제는 그가 기분이 나쁜 내색을 했음에도 ' 그리 발끈해'라는 표정으로 무안을 줬다. 사과는커녕 말이 별거 아니었다는 식으로 눙쳤다. 훌륭한 방어기제를 갖추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음 커피를 마시면서 기억을 곱씹을 뭔가가 버석거린다고 느꼈다. 이후 며칠 동안 불편한 마음이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고순(고현정) 자신의 인생과 배우자에 대해 섣불리 넘겨짚는 경남(김태우)에게 이런 말을 한다. "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이 안다고 그래요? 그냥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세요." 나은 삶을 갈구하지만, 그래서 목놓아 뭔가를 주장하지만 언제나 알지 못하는 처지다. 이해도 책을 보면서 아는 척할 뿐이지, 아는 만큼만 말하지 못해 실수 연발이다. 소설 무수한 화자들이 그렇게 실수를 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데, 연일 문학을 붙들고도 여전히 덤벙대는 보면 책이 사람을 나아지게 한다는 믿을 없는 말이다.


 시대가 지목하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젠더, 페미니즘, 난민 소수자에 관한 논의는 이제 멈출 수도, 거스를 수도 없는 시류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말미에 ' 스튜어트 '자유론 인용한 문장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을 성찰하고 습관과 태도를 바꾸어야 " 책임을 말하는 대목이다. 김지혜 작가는 이에 대해  "내가 모르고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 방어보다는, 알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내가선량한 차별주의자 읽으며 불편했던 , 민낯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은연중에 내가 초라해질까 . 무디고 무심한 일상이 도마 위에 오를지 몰라 불안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라는 말이 가진 폭력성을 알면서도 기어코 선의를 내세웠으니까. 내가 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사회의 엄연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역시 의식하지 못한 터에 다수 입장에 서서 바깥을 멸시하고 있었던 아닌지. 시대가 언어에 민감한 감각을 요구함에도, 딴청을 피우며 허영심을 채우기 바빴던 걸까. 대화에 섬세하지 못하면 많은 놓치고 산다. 결국 모든 판가름은 섬세함에 있다. 악마도 정교함에 있고, 상황을 가늠하는 예민한 감각 없이 문학은 성립할 없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첨예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쉽지 않다. 누구나 부담스러워하는 사안을 적시하는 글을 쓰기란 얼마나 지난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간결하게 정리했다. 일종의 개론서처럼 쉽지 않은 내용을 읽히게 적었다. 무엇보다 누구도 불편하지 않도록 모서리를 뭉뚝하게 다듬었다. 오해를 부르지 않도록 자극적인 묘사는 줄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에 집중했다. 답을 쥐여줘야 하는 부분에선 단호했다. 작가는 굳이 그렇게까지 차별에 신경 써야 하는지에 관한 물음에 이런 말을 남긴다. "고정된 '옳은' 삶을 규정하지 않는 해체의 시대가 버겁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인류가 지속해서 갈구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대한 정의를 부르짖는 말에 현혹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일상의 작은 것에서부터 위엄을 찾으려고 애쓴다. 지금 눈앞에 닥친 출근길이고, 커피 잔을 앞에 두고 회의 석상에서 마주할 동료가 엄연한 현실이다. 우선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 말을 시작하면 자르기 바쁜 성미를 죽이고, 팔짱을 풀고 들어봐야 마땅하다. 알지 못하니까대의를 우러르는 시퍼런 젊음도 중요하지만, 귀찮고 거슬려도 누군가의 고통을 들어보려는 끈덕진 태도를 동경한다. 맘처럼 돌아가지 않는 도시에서 제대로 생각하고 있기를 염원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g**********y 2020.01.06.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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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광장 안인가, 밖인가?
"당신은 광장 안인가, 밖인가?" 내용보기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글자 그대로 주홍글씨가 떠올랐다. 강렬한 색감, 주홍이 눈을 확 사로잡았다. 차별이 우리 사회의 주홍글씨이고, 편견이 붉은 낙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다는 것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덮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나는 내가 평소 쓰는 단어가 차별의 단어였으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평범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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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글자 그대로 주홍글씨가 떠올랐다. 강렬한 색감, 주홍이 눈을 확 사로잡았다. 차별이 우리 사회의 주홍글씨이고, 편견이 붉은 낙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다는 것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덮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나는 내가 평소 쓰는 단어가 차별의 단어였으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평범한, 전혀 악의 없었던 생활 속 이 단어와 말이 누군가에겐 크나큰 차별의 벽으로 다가왔으리라는 사실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작가가 말하듯 나 자신을 스스로 선량한 사람이라 자부했기에 더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여기까지 읽은 당신도 나와 다를 게 없다면, 이 책은 당신과 날 위한 것이다. 나와 같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위한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 


나는 어디에 서서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가 서 있는 땅은 기울어져 있는가 아니면 평평한가. 기울어져 있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이 풍경 전체를 보려면 세상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와야 한다. 다수가, 사회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잣대로 모든 것을 재기 시작할 때 편견과 차별이 생겨났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 편견과 차별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도 좋은 일이나, 그것보다 먼저 준비되어야 할 것은 내가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차별을 할 수도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차별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차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필요한 때인 만큼.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면서 이것도 차별이야? 하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하나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니 질문이 줄줄이 따라왔다. 평등의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일까 하는 것부터.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좋지만, 상대방도 나와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하면 평등하게 대할 수 있을 텐데. 평등은 파이가 아니다. 남의 평등과 권리를 챙겨준다고 해서 내 권리와 평등이 박탈당한다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불평등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불편함을 견딜 것인가?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모든’ 사람의 평등이란 아고라(광장)에 모든 사람이 입장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실현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오늘날 누가 아고라에 입장할 자격을 가지며, 누가 사적 영역에 남도록 요구되는가? 각자에게 주어진 특권을 생각해보도록 만든 <선량한 차별주의자>. 내 위치는 어디일까. 난 광장 안일까, 밖일까? 광장 안에 있다면, 혹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을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눈앞에서 일어나는 차별의 현장을 관망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결심했다. 차별의 단어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부터 볼 수 있었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그래서 차별이 없어져서 다시는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게 되기를. 



k*******0 2020.01.21.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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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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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자기 비하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접미어처럼 '충'이란 단어를 쓰고, 남혐과 여혐은 숨 쉬듯 일상화되고, 서로 편을 갈라 다투고, 자기가 속하지 않은 다른 쪽은 비하와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너무나 숨 쉬듯 '차별'을 일상화 한 나머지, 이것이 '차별'이라고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 썼던 "그런데 왜 결정장애란 말을 쓰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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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자기 비하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접미어처럼 '충'이란 단어를 쓰고, 남혐과 여혐은 숨 쉬듯 일상화되고, 서로 편을 갈라 다투고, 자기가 속하지 않은 다른 쪽은 비하와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너무나 숨 쉬듯 '차별'을 일상화 한 나머지, 이것이 '차별'이라고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 썼던 "그런데 왜 결정장애란 말을 쓰셨어요?"가 계가기 되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였는데, 저도 SNS를 통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쓴 단어가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되고 어느 쪽에는 비하가 된다는 것을 종종 배웠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 업무를 불평하면서, 어떤 여직원이 업무를 잘 못 해서 내 일이 늘어났다는 불평을 썼는데, 지인이 굳이 그걸 '여직원'으로 써야 했냐.라는 말을 남겨서 이에 대해 고치겠다고 사과하고 인정했던 바 있죠. 당연하게도, 저 역시도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조금씩 차별적인 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잘 안됩니다. 방어기제와 고정관념은 생각보다 단단한 녀석이네요.)

저자는 다양한 사례, 그리고 최신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에 차별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담담히 밝히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얼마나 사람들이 차별적인 단어와 프레임을 짜면서도 그것을 차별이라 인식하지 않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탄생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이 차별이 어떻게 지워지고 차별적인 단어가 역전되는지에 대한 사례를 들고 있고, 3부에서는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사례를 읽어보며 찔리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구조적 차별'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저 역시도 그것이 능력에 따른 평등이라고 이해한 적이 많았습니다. 공부를 못했기에, 그 분야에서 전공하는 것이 아니기에, 받아들여야 하는 불평등이라고 생각하고 인지하고 살았던 적이 많았으니까요. 이걸 깨고 싶어도 사회에서의 장벽은 너무나 단단하고 견고하게 쌓여져 있기에, 이를 깨고 넘어선 것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보니 실제로 특혜를 받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그것이 불평등한 사회인데도 말이죠.

저자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법제화를 거론합니다. 여전히 대단한 논란거리로 남아있는 '차별 금지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최근 국회에서의 논란에서 보듯, 이런 법이 어떤 '권력자'의 권력을 공고히 다지기 위한 용도로 악용될 소지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법을 견고하게 잘 쌓아야 할 텐데, 저자는 구체적인 안을 내놓기보다는 그저 '공자왈 맹자왈'하는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 사회만 놓고 본다면, 견고하게 쌓아놓은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억누르고 있고, 저성장 -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서로가 서로의 파이를 뺏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저자가 말한 대로 이 법안이 윈-윈으로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법이 만들어지면 모든 논란이 끝나고 평등으로 나아갈 것처럼 말하는 저자의 말이 전혀 와닿지 않는 이유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사회가 둘로 쪼개져서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실제 사례를 토대로 한 굉장히 잘 쓰인 책이고, 몇몇 사이트에서 이를 2019년 올해의 책으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치밀한 연구를 토대로 쓰인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 책은 결과 측면에서는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점이 아쉽습니다. 차라리 결론이 없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또 저자는 '차별'에 집중한 나머지 책에 나온 사례와 다른 결과를 보인 연구 자료는 등한시 한 경향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여학우가 수학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저자가 들고 나온 사례처럼 '성 고정관념'에 따른 것도 있지만, 성 평등이 높은 국가일수록 이공계의 여성 비율이 낮고 그 이유는 여성들이 모든 분야에서 성적이 좋은데 특히 언어영역에서 남성들보다 비교우위에 있기 때문이라는 논문도 있습니다. (2017, David Card) 저자 역시 한쪽 눈만 세상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책을 읽은 사람들이 저자가 바랬던 것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이 쓸모 있었을까 싶은 회의감도 듭니다. 당장 SNS에서 이 책으로 검색해보면,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사람들이 다른 대상, 다른 세력, 다른 소수자를 상대로 혐오 발언을 하며 때리고 있는 것을 왕왕 봅니다. 책을 읽은 것은 그냥 수단에 불과했던 걸까요. 입맛이 씁쓸해집니다. 저자는 사람들을 성선설에 기반해서 보는 게 아닐까 싶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t*****a 2020.01.01.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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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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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미 '읽고나면 불편해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렇다. 우리 사는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선량하고, 일부러 나쁜 마음으로 차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저자는 묻는다.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무죄인가?  때로 비하된 느낌이 든다면, 그건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인가?   외국인에게 "아유, 한국인 다됐어~"라는 말이, 수많은 메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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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미 '읽고나면 불편해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렇다. 우리 사는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선량하고, 일부러 나쁜 마음으로 차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저자는 묻는다.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무죄인가?  때로 비하된 느낌이 든다면, 그건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인가?  

 

외국인에게 "아유, 한국인 다됐어~"라는 말이, 수많은 메뉴들 앞에서 "으아~ 난 결정장애가 있어"라는 말이 차별이라고? 퀴어문화제에 대해 '굳이 공공장소에 나와서 대중들한테 난 성소수자요~라고 밝혀야 할까?' 하는 생각이,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 시위로 지하철 통행에 불편을 겪을 때 "나라에 고마운 줄 알아야지"라는 한마디가, 또 동남아의 국제결혼 여성에게 "돈 때문에 왔는데 나라 세금으로 지원까지  해주다니...하는 생각이 권력과 특권을 지닌 입장에서 하는  차별이라니. 

영화 <부당거래>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에서 드러나는 저의. 심리적으로 분석해보면 호의성(시혜성) 자선사업이나  정책은 그저 선한 행동이 아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주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통제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 일종의 권력행위이다. 만일 당신이 권리로서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선을 넘었다고 비난할 수 있는 권력까지 포함한다.

우리는 한 곳에만 서 있는게 아니다.  때로는 여성으로서 차별받고 (내가 밤에 공공장소에서 혼자 걷는 걸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운전을 부주의하게 한다고 해서 주위에서 나의 성별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성별이 아니니까), 때로는 한국 국민으로서 예멘의 난민들을 수용하는 것에  반대하고, 웃찾사의 흑인 분장이나  '연변에서는~'에 크게 웃으며 누군가가 따지면, "개그를 다큐로 받는다"며 무시하지는 않는지?  농담은 농담일 뿐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생각 자체가 사회적으로 약한 집단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고 우리가 누구를 밟고 웃고 있는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읽을수록 나의 언행이 '의식'되고 불편해진다. 그러나 저자의 말이 옳다.

 

(p.188) 그러니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불평등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불편함을 견딜 것인가? 이 선택은 단순히 개인의 수고로움이나 불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가치와 지향에 관한 것이다.

 

 

아이리스 영은 말한다. “무의식적이었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억압에 기여한 행동, 행위, 태도에 대해 사람들과 제도는 책임을 져야 한다. 여깃 책임이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을 성찰하고 습관과 태도를 바꾸어야 할책임을 말한다.

 

(p.192) 이미 헌법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구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차별금지법은 왜 필요한 걸까? 여기서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지 10 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 자체로 한국사회의 차별철폐 의지를 가늠하는 상징 기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p.205)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의 계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관한 상징이며 선언이다.

 

 

 

YES마니아 : 골드 n*****i 2019.10.07. 신고 공감 5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