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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어떻게 나보다 먼저 여기에 올 수 있지?" '죽음'이 묻습니다.
"저는 엄마니까요." 그녀는 말했어요. - p.21
우연히 본 드라마에서 드라마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아이들 데려가는 죽음과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모든 걸 내어주는 엄마의 모습을 담은 동화. 어떤 동화인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인어공주>, <상냥팔이 소녀>, <눈의 여왕>, <미운 오리 새끼> 등을 쓴 안데르센의 동화라는 것을 알고 새로웠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났다니.
'어머니', '모성애'...어렸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세월이 흘러 아이였던 자신이 어른이 되고, 강할 것 같던 어머니는 늙어 힘이 없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갈수록 더 애잔해지고 뭉클해지는 단어가 아닐까. 그리고 자신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 그동안 당연히 해 오던 엄마의 희생과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음을 느끼게 된다.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 이런 모성애를 가장 어둡고 잔혹하고 슬프게 드러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동화라고 하면 아름답기를 바라는데 어머니의 모성애는 아름답지만 어두운 느낌이 많이 나는 동화이다. 불안과 슬픔에 젖어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 아이의 낯빛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슬픔이 가득한 어머니에게 찾아온 누추한 노인. 그리고 독자의 가슴을 쿵 하게 만드는 이야기. 노인은 바로 '죽음'이었습니다.(-p.6) 깜박 잠이 들었던 그녀는 노인과 아이가 사라져 버린 것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아이가 없어지자 아이를 찾아 나서는 가엾은 어머니는 그녀를 가로 막는 여러 존재들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이 아이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려주는 조건으로 슬픔에 가득 찬 절망에 빠져 있는 어머니에게 그녀가 가진 것들을 빼앗는다. 아니, 빼앗다는 것보다는 그녀는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준다. 자장가를 불러주고, 피를 흘리며 가시나무 덤불을 안아주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운 두 눈을 내어주고,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준다.
어머니이기에 할 수 있었던 것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 그런데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런 것뿐만은 아니었다. 죽음과 마주한 그녀에게 죽음이 한 말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다른 엄마도 너처럼 똑같이 불행하게 만들고 싶어?"(-p.23) 자신이 아이를 잃은 슬픔을 똑같이 느끼고 있을 다른 아이의 엄마.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른 아이와 엄마를 불행하게 만들수 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슬프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사랑이 그대로 전달된다. 어머니이기 때문에 모든 걸 견뎌낸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엄마도 저렇게 힘들었겠구나 하며 어렸을 적 엄마가 견디고 포기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이 더욱 나는 요즘이다. 죽음의 물음에 "저는 엄마니까요"라는 대답, 이 한마디로 동화를 다 표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책속에 담긴 그림들이 동화이 내용과도 매우 잘 어울려 동화의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어서 더 인상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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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상파 SBS 방송국에서 <신의 선물>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중이라고 합니다. 이 드라마를 한번도 보지 않았기에 무슨 내용인지 살펴보았더니, "사랑하는 아이를 되살리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라고 합니다. 바로 어머니의 지극한 모성을 다뤘다고 하는데, 이 드라마를 모티브로 한 책이 덩달아 화제라고 합니다. 바로 덴마크의 유명한 그림책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라는 책이지요.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 작가인 안데르센은 어떤 어머니 이야기를 썼을까요? 하얀색 바탕에 검정 여인과 빨강 꽃과 검정 가시가 보여주는 강렬한 표지가 꽤나 인상적입니다. 가시덤불을 가슴에 꼬옥 껴안은 여인은 이 책의 제목처럼 어머니이겠지요~ 그런데 왜 가시덤불을 품에 꼬옥 안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어머니는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사흘 밤낮을 함숨도 못자고 아이를 간호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잠깐 잠든 사이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서 아픈 아이를 데려갑니다. 그 노인은 바로 '죽음'이었고, 어머니는 놀라서 아이를 찾아 '죽음'이 간 곳을 찾아 나섭니다. '죽음'을 찾아 나서는 중에 자장가를 불러주길 원하는 검은 옷을 입은 '밤'과 따뜻하게 녹여주길 원하는 가시나무, 어머니의 두 눈을 요구하는 호수, 죽음의 온실을 돌보는 쭈그렁 할머니를 차례로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대가를 요구하고, 어머니는 아낌없이 자신의 몸을 던져서 대가에 응해줍니다.
쭈그렁 할멈의 요구까지 들어준 어머니는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온실에서 자신의 아이의 심장소리를 찾아냅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죽음'이 돌아와 어머니에게 어떻게 자기보다 먼저 이 온실에 왔는지를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엄마니까요." 이 부분에서 정말 소름이 끼칠정도로 가슴이 먹먹해졌답니다. 엄마니까, 엄마이기 때문에 모든 고통을 참고 이겨내고 오직 아이를 찾기 위해 만신창이 몸으로 그렇게 견디어 왔을테지요. "재발 제 아이를 불행에서 구해주세요! 아니, 차라리 데려가세요! 하느님의 나라로 데려가줘요!" 마지막에 절규하듯 울부짓는 어머니의 심정에서는 살아서 불행의 꽃을 피우기보다는 죽음으로 축복의 꽃을 피우기를 원하는 어머니의 절박한 심정에 가슴이 아려왔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읽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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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수척해 보이는 한 여인이, 메마른 두 손으로 가시덤불을 온 가슴에 가득 껴안고 있다. 가시덤불에 점점이 번지고 있는 붉은 빛들은 꽃잎들일까, 핏방울들일까. 눈을 감고 이 모든 고통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이 여인은, 바로 어머니다.
널리 알려졌듯, 안데르센의 동화는 보통 동화와는 달리 늘 행복한 결말을 약속하지 않는다(어렸을 때 성냥팔이 소녀를 끝내 죽여버린 그를 원망했던 것이 떠오른다.^^;). 또한 비교적 덜 유명한 작품 가운데에는 의외로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 시대에 유행했던 낭만주의의 영향도 있었을 거고, 또 그의 굴곡 많았던 삶도 다소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안데르센의 장례식에 대한 얘기를 읽었던 기억도 난다. 덴마크 국왕과 황태자를 비롯한 수백 명이 찾아왔던 그의 장례식에 정작 그와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안데르센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딱히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 이야기>도 일반적으로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결말로 끝맺지 않는다. '죽음'이 아이를 데려간 후, 아이를 되찾기 위한 어머니의 길고 모진 여정이 시작된다. 어머니는 검은 옷을 입은 '밤'의 바람대로 아이에게 들려주던 자장가들을 빠짐없이 들려주고, 가시나무의 바람대로 가시덤불을 품에 꼭 껴안고 따뜻하게 해주고, 진주 모으는 걸 좋아하는 호수의 바람대로 자신의 두 눈을 호수에 가라앉히고(실핏줄들을 혜성의 꼬리처럼 단 두 눈알이 호수로 던져지는 삽화를 그림책에서 만난 신선한 충격!^^;), '죽음'의 온실을 돌보는 할멈에게 자신의 검고 긴 머리카락을 준다. 슬픔에 싸인 어머니가 '죽음'의 커다란 온실에서 수많은 꽃과 풀들 하나하나에 몸을 굽혀 그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그 수많은 꽃과 풀들 중에서 자기 아이의 심장 소리를 어머니는 알아차린다. 얼마나 놀라운 상상력과 비유인지.
'죽음'이 가져다 준 눈으로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된 어머니는, 그를 협박하기 위해 방금 자신이 뽑아버리려고 했던 꽃들의 일생을 보게된다. 그리고 이제껏 간절히 염원해 왔던, 아이를 돌려달라는 기도는 사라져 버린다. 대신 자신의 눈물과 기도를 부디 잊어달라고, 그리고 하느님의 뜻과 자신의 기도가 어긋난다면 자신의 기도를 듣지 말아달라는 아이러니한 기도가 이어진다. 마음이 저릿해진다. 얼마나 큰 고통과 괴로움을 참으며 이런 기도를 올렸을까. 아이를 품에 안고싶은 마음을 이기면서까지, 아이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달라는(즉 데려가달라는) 어머니의 절절한 외침.
'어머니는 자기 아이의 심장 박동 소리를 가진, 작고 파란 붓꽃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윽고 꽃에서 아이의 생명이 다시 태어났고, 둘은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기에 이 동화는 슬프다. 하지만 아이들이 읽는 동화라고 해서 죽음, 때론 아픈 삶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안데르센 아저씨가 이렇게 끝을 맺은 것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를 어쩐지 연상되는(이 책을 읽으며 자꾸,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있던 어머니를 그린 콜비츠의 작품이 겹쳐 보였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삽화와, 책 마지막에 옮긴이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까지, 가슴에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다. '죽음'이 떠나고 난 후, 남은 어머니의 가슴속에 부디 눈물만이 가득하지 않았기를. 시간이 지나 아이를 떠나보낸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간 후, 행복하게 아이 곁으로 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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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이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잔혹동화의 주인공으로서도 유명하다. 왜일까? 그의 동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석연치 않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엔 '죽음'이라는 사자가 등장한다. 사신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섬뜩한데, 어머니는 잃어버린 아픈 아이를 사신에게서 되찾고자 멀고 먼 여정을 떠난다. 보통 동화는 따뜻하고 밝은 느낌인데, 이 책의 내용은 시종일관 어두컴컴하고 음침했다. 책 속의 삽화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서운 설정은 그보다 더 큰 어머니의 모정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임을, 어른이라면 알 수 있다. 그렇기 떄문에 안데르센의 동화를 잔혹한 동화라고 하는가 보다. 어른이 읽으면 이해가 되는, 삶의 잔혹성... 그 뒤에는 결코 놓을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아픈 아이를 간호하는 어머니이다. 안데르센이 살았을 적만 해도 어린 아이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면역이 약한 어린 아이가 어른으로 잘 성장하기만 해도 기뻤을 때이다. 그래서 많은 아이를 낳고 그 중에서 살아남는 아이를 거둔다 라고 생각했던 옛날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소중한 아이이다. 어머니의 아이는 이 아이 하나뿐인 것 같았다. 그런 아이가 열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사신이 들어온다. 잠시 사신과 아이를 함께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 사신은 아이를 데리고 떠나버린다. 혼비백산한 어머니는 눈쌓인 들판을 휘저어가며 아이를 찾기 위해 뛰어다니지만, 사신이 간 곳을 알수가 없다. 그러던 중 사신의 거처를 알고 있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밤의 여신, 가시나무, 커다란 호수, 온실의 할멈.. 이들은 어머니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들을 요구한다.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자신을 안아달라는 가시나무, 어머니의 커다랗고 빛나는 진주같은 눈을 갖고싶다던 호수, 흑단같은 머리카락을 넘겨받은 할멈..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달랑 자신의 몸 뿐이었다. 누구도 돈이나 명예를 달라고 원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는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어머니의 모든것이었다. 그것을 다 주고 어머니는 사신의 거처에 당도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사신에게 아이를 되돌려 받지 못한다. 새로운 눈으로 본 세상에서 어머니는 자신이 아이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것이 아이에겐 불행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면서 아이를 모르는 세상 한 쪽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너무나 대조적인 일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어머니의 사랑도, 연인의 사랑도 이와 같을 것 같다. 너무나 함께 있고 싶지만 자신의 옆에서 불행한 연인을 보면서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하면서 보내는 절절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아이를 보냈던 어머니도.. 사랑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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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과 조승우가 열연 중인 월화 드라마 신의 선물이 인기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듣고 나니, 한 아이의 엄마인 나는 차마 그 드라마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딸이 연쇄살인범에게 납치가 되고 죽는다니.. 아니, 그 이후의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가려고 그렇게 극단적인 소재를 썼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타임워프를 통해 어머니인 이보영이 딸을 살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타임 워프, 슬립 등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소재이지만 현실적인 드라마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소재인데, 비슷한 이야기들이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종종 쓰이고 있는듯 하다. 그게 좀더 매력이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유괴와 죽음이라는 문제는 너무나 민감한 문제이다. 엄마인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머니의 선물이라는 이 동화책은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는 책이 되었는데, 드라마를 찾아 보지 않아 궁금해하지 않았다가 우연히 동화책의 줄거리를 알고, 너무나 놀라게 된 책이었다. 어릴적 내가 아주 어릴적, 그러니까 유치원생 내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봤던 세계명작동화 애니메이션에서 너무나 끔찍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나본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동화가 있을 수 있었는지..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충격이 잊혀지지 않았었는데..바로 이 책이었다. 다시 읽어보고픈, 너무나 강렬했던 책이었기에 주저 없이 바로 구입하게 된 책이기도 하였다.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해서 구입한 동화책. 다시 읽고 전율이 흘렀달까. 그리고 어린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동화의 끝 부분에 대해서, 엄마가 된 지금 다시 읽고 나니 이제서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입장에서와 엄마의 입장에서 너무나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된 동화.
놀랍게도 이 동화는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이다. 어릴적 내가 충격을 먹었던 부분은 대부분의 동화 (물론 삭제되지 않은 원작의 경우에는 성인판으로나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잔혹한 소재를 그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릴적 내가 읽은 동화는 대부분 해피 엔딩의 결말에 잔인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았다.)와 달리 그 만화에는 아이를 잃은 엄마가 아기를 되찾기 위해, 많은 고생과 어려움을 겪고 꽃으로 변한 아이를 만나는데, 그 꽃을 제대로 데려오지 않은채 그대로 슬픔만 남게 되는 줄거리로 기억을 했다. 사랑하는 아이를 찾기 위해 엄마가 자신의 온몸을 내던지는 부분은 만화인데도 너무나 슬펐다. 눈을 빼어 내주고, 삼단같이 아름다운 검은 머리를 다 내어주고, 앞이 보이지 않고, 머리도 백발이 된 채로 아이를 찾아나서는 그 과정이 어린 내게는 너무나 잔인하면서 고통스러운 그런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 때 이후로 수십년이 지나,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읽게 된 신의 선물의 메인테마 동화, 어머니 이야기. 사랑하는 아이가 사흘 밤낮을 앓았다. 아이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어머니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으면서도 아이를 살려내고픈 생각뿐이었다. 갑자기 한 누추한 노인이 집을 찾아와 어머니는 노인에게 맥주를 데워주고, 잠깐 졸음에 빠지고 말았다. 사흘 밤낮을 잠자지 못하고 병간호를 했기에 너무나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잠깐만에 눈을 다시 뜨자, 아이와 노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 '죽음'이 당신 집에 들어갔었지. 난 그가 서두르며 자네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보았더. '죽음'은 바람보다도 빠르고 자기가 가지고 간 것은 절대로 돌려주지 않아." 온세상이 눈으로 덮인 밤, 검은 옷을 입은 밤의 여인이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어머니는 죽음이 간 길을 알려달라고 말하지만, 밤은 그녀가 들려주는 수많은 자장가를 전부다 들려줄때까지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너무나 마음이 다급해하는 그녀를 보고서도 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울때까지 어머니를 놓아주지 않는다.
어쩌면 만나는 이들마다 이렇게 이기적일까 싶었다. 자신의 원하는 것을 채우기전까지는 너무나 다급한 그녀를 위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이들. 그녀는 추워하는 가시덤불을 따뜻하게 안아주느라 온몸에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기도 하고, 강을 건너게 해주겠다며 그녀에게 요구한 두 눈을 그저 있는 그대로 내어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내 아이를 찾기 위해.. 그렇게 난 이 동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울었다. 여인의 슬픔과 한이 그대로 전해져와서, 또다른 어머니의 모습으로 너무나 가슴이 아파 울고 말았다.
간신히 강을 건너 죽음의 집에 다다르자, 죽음의 온실을 지키는 할멈이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칼과 자신의 백발을 바꾸자 한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온몸을 내던져 꽃으로 변한 자신의 아이를 만났다. 그리고 죽음이 아이의 꽃을 꺾어 하느님의 미지의 땅의 낙원의 정원에 옮겨 심기 전에 자신의 아이를 살려내려고 그래서 다시 아이와 살아보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만화의 기억으로는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놓친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 모든 것을 다 내주고도 왜 아이를 구하지 못했을까? 참으로 잔인하다 싶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억지긴했지만 그녀는 다른 아이를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아이를 살려낼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죽음이 보여준, 아이의 미래, 끔찍하게 불행할수도, 혹은 행복할 수도 있는 그 미래를 보고서 엄마는 비로소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이와 살고 싶은 자신의 소망과 욕심이 아닌,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에 달린 일이라는 그러니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마시고 하느님의 뜻대로 하소서 하는 너무나 슬픈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이었다.
연쇄살인범에게 죽음을 당한 자식이 없이는 도저히 세상을 살아나갈 자신이 없었던 이보영. 자신의 눈을 빼주고, 온 몸을 다 내어줘가며 죽음의 땅까지 찾아간 어머니처럼 과거로 돌아가 연쇄살인범과 대적할 정도로 어머니의 사랑과 용기는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맨주먹으로 재규어같은 맹수에게서 아기를 구해낸 어머니의 이야기도 있지 않았는가. 온전한 정신이라면 맨주먹으로 맹수에게 덤벼들 수 없겠지만 아이를 구해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라도 무모한 용기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터였다.
이 세상 어머니의 사랑은 엄청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여자이고 그저 한 인간일 적에는 이기적인 나만 생각하였는데,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나니, 나보다 진정 더 소중한 존재, 지켜줘야할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배우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런 사랑을 어머니께 받고 자랐고, 내 아이에게도 그런 사랑을 평생을 두고 쏟아줄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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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척 즐겨보는 드라마의 테마 도서가 되면서 알려진 어머니 이야기를 쓴 작가는 안데르센이다. 너무 유명한 그 이름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동화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책에 이런 마음 아픈 이야기가 있는줄은 몰랐다. 새롭다면 새로운 자극이다. 저자가 안데르센임을 알았을때 그의 수많은 동화를 골라서 모두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동화라는 틀 안에 담은 그 많은 인생이 어떤 모양을 하고 담겨있을지 그의 시선과 생각이 궁금하다.
드라마가 첫 회 방송될때 이 책의 구절이 나왔었다. 그림자 인형극같은 화면에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내겐 제법 인상적인 부분이었기때문에 실제로 책을 펼쳐 직접 문장을 읽으니 기분이 들떴다. 죽음에게서 아이를 되찾기위해 필사적으로 쫓아가는 엄마의 마음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그림은 선이 거친 흑백이고 여정도 힘들었다. 방송된 부분이 있다고 들떴던 기분은 오래갈 수 없었다. 점점 너덜너덜해져가는 엄마가 그저 안쓰럽다.
제가 우리 아가랑 계속 같이 살 수 있겠지요? 그렇지요? 하느님이 제게서 아이를 데려가지 않으시겠지요? '죽음'은 어머니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기묘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p. 5~6)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태도의 끄덕임은 무슨 뜻일까. 마음이 불안한 상태라면 확실한 대답을 원할텐데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너무도 지친 엄마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죽음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말았다. 피를 흘리고 눈까지 뽑아내며 아이를 찾으려는 엄마의 강한 사랑이라면 하느님도 마음을 바꿀법도 하지 않을까. 그 사랑에 누가 다른 무슨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이정도의 생각이 전부이다. 그래서 생각과 다른 흐름에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하느님, 저의 기도가 당신의 뜻에 어긋난다면 듣지 마소서. 당신의 뜻이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듣지 마시옵소서, 듣지 마시옵소서. (p. 27)
오직 아이만을 생각하는 엄마는 지금이 아닌 이후의 생을 떠올리고 하느님에게 다시 빈다. 아이를 돌려달라고 했던 자신의 뜻을 굽히고 돌려버린다. 아이의 새로운 행복을 믿고 하는 기도가 내겐 서글프게 보였다. 그 행복에 더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게 없고 오직 기도만이 허락되는 그 상황을 나는 아직 기쁘게 바라볼 수 없다. 마음이 아직 덜 다듬어진걸까. 내 사랑과 미련도 놓아버리고 선한 믿음을 선택하는 엄마의 모습이 한동안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를 생각하면 드라마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무척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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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SBS 월화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신의 선물’이란 작품의 메인 테마 도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머니. 이 단어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먹먹해 온다. 무엇 때문일까. 도대체 무엇이 어머니란 단어로 하여금 나를 이토록 애석케 만드는 것일까.
이 동화는 죽은 아이를 찾아 나서는 어머니의 이야기로 이뤄져있다. 어느 날, ‘죽음’은 병상에 뉘인 아이를 데리고 가버린다. 아이의 어머니는 ‘죽음’을 쫓아 길을 나서게 되고, 그 길에서 갖은 수모와 고난을 겪게 된다. 그 수모가, 이 동화 속에 오롯이 빚어져 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어떻게 나보다 먼저 여기에 올 수 있지?” ‘죽음’이 묻습니다. “저는 엄마니까요.” 그녀는 말했어요. -p.21 이 부분이, 동화의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지 않은가 싶다. 어머니의 사랑. ‘모성애’. 그것이 바로, 이 동화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아닐까.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다. 이 동화에 나오는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강했다. 가시덤불을 끌어안아 피를 보게 되었음에도, 눈알이 뽑혀 앞을 못 보게 되었음에도 아이를 향한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결말이 다소, 밝게 끝나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 나름의 여운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동화라 하기에는, 다소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부분이 많아, 아이들보다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세대가 읽는 것이 좋을 듯 했다. 삽화 역시, 동화의 내용과 딱 맞아 떨이지게끔, 분위기의 조성이 알맞았다. 이 동화를 읽으며, 다시 한 번 느낀 바는 ‘동화를 동화로만 치부하면 안되겠구나.’ 였다. 아이들만 읽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느낀 것이 많았으며, 감동과 전율이 있었다. 이따금의 소설들보다 흡입력이 있었고, 또한 그 깊이가 상당했다. 소설이나 시만을 고집하기보다, 이러한 동화작품을 비롯한 너른 분야의 책들을 탐독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좋은 책으로 하여금, 좋은 독서가 될 수 있는 유익하고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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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동화를 빼놓지 않고 그래도 챙겨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은 생소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기도 했고, 또 드라마 메인테마소설이라는 그 소갯말이 또 큰 관심을 불러왔다고나 할까. 모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자식앞에서는 자신의 그 무엇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세상 모든 엄마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했다. 책은 아주 얇았지만 그 내용이 주는 감동은 너무나도 커서 몇번이고 끌어안게 했다. 표지그림을 비롯하여 그림 자체는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그래서 약간 섬뜩한 기운도 있기는 했지만 안데르센 작가의 특유의 문체가 엿보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지만 이미 영미유럽권에서는 영화화까지 된 작품이라니, 그 스토리라인은 무엇하나 흠잡을수 없었다. 가난한 어머니가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난해서 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사줄수도 챙겨줄수도 없지만 엄마이기에,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그 무엇보다 강했고, 그렇기에 자신의 사랑으로 끌어안으며 아이가 낫기만을 바랬을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죽음의 사자가 찾아와 아이를 데려갔고, 그때부터 아이를 되찾아오겠다는 일념하에 아이를 찾아나선 모험이 시작된다. 문득 난 우리나라 고전동화인 떡장수 엄마가 고개를 넘을때마다 떡을 내어주며 자신을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자 했던 그 내용이 생각났다. 자장가를 불러달라는 밤의 여신, 또 자신을 안아 따뜻하게 해달라는 가시나무, 엄마의 눈을 요구하는 호수, 엄마의 머리카락과 자신의 흰머리를 바꾸자고 하는 온실의 할멈들을 모두 거치면서도 그녀는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이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면 다시 아이를 만날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저의 기도가 당신의 뜻에 어긋난다면 듣지 마소서. 당신의 뜻이 가장 좋은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울컥했다. 그게 바로 모성이 부르짖는 진심어린 기도였기에. 이책에는 아이를 어머니가 얼마나 절망스러울지, 얼마나 큰 고통과 슬픔을 겪어야 하는지도 보여줬고, 죽음의 강을 넘는 아이가 얼마나 무서울지를 떠올리면서 자신의 고통과 슬픔은 뒤로 한채 아이와 함께 하겠다는 그리고 아이를 되찾고 싶다는 의지와 굳건한 마음도 함께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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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서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는 애기를 하고 싶다. 이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아픈 아이를 지키고 있다. 죽음이 아이를 데려갈까 두려워하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알리는 노인을 만나게 되고 노인과 아이는 사라져 버린다. 아이를 찾으면서 일어난 일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정말 아픈 아이를 위해서 잠도 못자고 밤을 지세고.. 가시덤불을 안아주고 자신이 아픈것조차 아이를 위해 피를 흘린다. 아이를 데려간 죽음을 찾아서 정말 정신없이 아이를 찾습니다. 나는 어떻게되든 상관없고.. 죽은 아이를 위해서..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다. 죽음이라는것은 누구나 다 언젠가는 오게된다. 하지만 그죽음을 지키기위해 또 아이를 위해 지키고 있는 엄마가 있다. 제발 제 아이를 사려주세요.. 정말 아이를 찾기 위한 어머니의 아름다운 여정이 담겨있다. 아이를 위해 두눈까지 주게된답니다. 요즘 신의선물이라는 드라마의 메인테마 도서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한번도 본적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게 정말 모성애 인가.. 두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마 내가 이런상황이면 이런 여정을 할수있었을까. 요즘 드라마를 보더라도 아..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드라마들도 많다. 비록 이 책도 끝은 정말 속상했지만.. 있을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정말 아픈 이야기..아름다운이야기이다. 아픈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을 더 많이 헤라일수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들 모두 꼭 읽어보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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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 메인테마도서 "어머니이야기" 이거 보고, 신의선물도 검색해보고 했는데.. 다운 받아 봐야할것 같아요..ㅋㅋ
영어원서 페이퍼도 있어요~ 원서 역시 5페이로 짧은 글이지만, 내용은 절대 짧지 않은....
죽음이 언제 아이를 데려 갈까.. 공포에 떨며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
죽음이 아이를 데리고 가고.. 어머니는 아이를 찾으러 나갑니다..
밤이 어머니 앞을 막습니다.. 눈물을 흘리면 자장가를 다 부른 후에야 밤을 죽음이 간길을 알려줘요.. 어머니는 피를 흘리며 가시나무를 껴안아 따뜻하게 해주고, 죽음이 간 길을 알려주었어요. 제 아이에게 갈 수만 있다면 못 내놓을게 뭐가 있겠어요.. 울고 또 울고 두 눈이 빠져 호수에 떨어졌어요.. 어머니는 검은머리를 내여주고 어디로 가야 아이를 찾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해요..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는 귀를 기우려 자기 아이의 심잠소리를 알아차려 찾아내요..
"엄마니까요"
"오 제발 제 아이를 돌려주세요" "제 아이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주세요! 차라리 데려가세요!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줘요!" 저의 기도가 당신의 뜻에 어긋난다면 듣지 마소서, 당신의 뜻이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죽음에서 되찾기 위해 가시나무, 머리카락, 눈을 빼어가며 아이를 찾으려 하지만, 아이가 살아 슬픔 궁핍 죄 불행 속에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고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슬픈 어머니이야기..
짧지만 책이지만, 한편의 영화를 본듯한 기분이였어요.. 지금 이순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하는 책이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