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작주의와는 다른... 재밌다. 전작주의와는 다른 '같은 책, 다른 버전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 첫 책으로 <시튼 동물기>를 하고 있다. 시작은 몇 권 안 되겠지..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찾으면 찾을수록 화수분처럼 책이 나왔다. 출판사도 다양하고, 뒤친이(옮긴이)도 다르며, 독자가 어린이인지 어른인지에 따라 그 맛이 모두 달랐다. 앞으로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계속 읽을 계획이다.
<시튼 동물기>는 어린이책? 확실히 <시튼 동물기>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책이다. 물론 100여년 전에 출간된 책이라 '어린이용 책'이라는 구분이 없었던 시절에 쓰여진 책이니 틀림없다. 그런데도 <시튼 동물기>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 많이 소개되고 출간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일까?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파브르 곤충기>가 어린이 눈높이로 출간되었기 때문에, 동물을 소재로 한 <시튼 동물기>도 어린이용을 만든 것일까? 굳이 동물을 소재로 한 소설이 필요했다면 더 아름답고 신 나는 이야기도 많이 있을 텐데 말이다.
내가 보기에 <시튼 동물기>는 좀 우울하고 어두운 점이 있다. '야생의 삶의 끝은 죽음'이라고 설명하는 작가의 설명 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물도 결국은 인간에게 져서 길들여지거나 비참한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으로 죽음을 묘사한 탓에, 그들의 죽음은 구원 받지 못할 것이나 인간을 도와준 고마운 동물들이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고, 되려 인간에게 해악을 끼친 동물들의 비참한 죽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비록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줘서 신기한 점이 있다하더라도 만물의 영장이자 하느님에게 선택된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우수할 수밖에 없다...라고 읽히는 부분들이 많아 씁쓸하기도 했다.
한편 작가 스스로 자신이 쓴 소설에 '과장'이 많다고 고백하고 있는 점이 '동물들의 야생적 삶'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그의 소설 속 동물들이 '의인화'되어 묘사되고 있는 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생태마저 인간의 삶처럼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말 못하는 동물들을 대신해서 '자신들의 삶'을 이해 못하는 다른 인간들에게 묘사적으로 친절히(?)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다. '동물들도 인간처럼 삶을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시튼을 '동물애호가의 시초'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파브르'처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을 하지 못한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동물 문학의 시초 다만 많은 사람들에게 '동물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끌어내는 데에는 큰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글북>을 쓴 키플링도 '자신의 책은 시튼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시튼 이후의 '동물 소설'은 모두 시튼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이 널리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글북>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동물과 인간의 아름다운 우정'이었던 것에 비해, <시튼 동물기>에서 느껴지는 점은 '동물들의 비참한 죽음' 뿐이었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인지 의문이 드는 점이다. 원작의 느낌이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뒤친이가 뒤치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는 것인지는 더 확인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서 읽은 책들에서도 모두 결말은 '동물들의 죽음'이었다. 그것이 비장한 죽음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상관없이 그저 '야생동물들은 인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는다'는 느낌 뿐이었다.
그런데도 작가는 '야생동물들의 삶'을 화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가축들의 삶'보다는 말이다. 시튼의 책에서 '인간답게 멋진 삶을 사는 동물'은 오직 야생동물에게서만 볼 수 있다. 양이나 소, 말이나 닭 같은 가축들은 그저 '멋진 야생동물들의 먹이감'에 불과했다. 특히 암컷은 더더욱 열등하게 그려 놓았다. 이런 관점은 '야생동물의 암컷'에서도 볼 수 있으나 그나마 지극정성으로 새끼를 돌보는 '모성애'를 보여주며 극복하는 이미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가축들 가운데 유일하게 긍정적인 관점으로 그려지는 동물은 오직 '개'뿐이다. 충직함의 명성 그대로 말이다.
아쉬운 점도 보이지만... 정리하면, 시튼이 그린 '야생동물의 삶'은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다. 몇몇 동물들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재주를 선보이며 선망의 대상으로 그려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야생성'은 길들여지는 순간 철저히 폄하되며 결국엔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이렇듯 '만물의 영장은 사람뿐이다'라는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동물 또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삶을 영유한다'는 것을 널리 알린 작품이라는 데에 그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시튼 이전의 작품에서는 '동물의 삶' 자체에 관심을 전혀 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튼 동물기> 탐험은 계속 됩니다.
이 리뷰는 구리시 터줏대감 구리시립-교문도서관에서 빌려 작성하였습니다 |
|
동물에 대한 감정은 다분히 아이들에게 있어 생김새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시작해 그들의 식성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통해 갖게 되는게 일반적인듯하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겐 그런것같다. 좀더 객관적으로 동물들을 바라볼순 없을까.. 평소의 이런 생각들을 비교적 잘 전달해준 책이 아닌가 싶다. 자연의 일부로 그들의 삶을 아름답게 바라 볼수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
|
동물문학의 선구자 시튼이 그려 낸 아름다운 야생 동물의 삶 시튼의 아름다운 야생동물 이야기
이 책에는 야생에서 가장 빛나는 동물의 야성과 본능을 치밀하게 관찰해 아름답게 묘사한 야생동물 이야기 8편이 실려져 있습니다. 동물문학의 선구자 시튼이 그려낸 그림들과 어우러진 각각의 이야기들은 거친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사랑, 모성애,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요.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들은 사실을 바탕으로 약간의 꾸밈이 있다는 것 입니다. 동물들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는 이 책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8편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의 2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커럼포의 늑대 왕 로보와 은색 점박이 까마귀 실버스팟입니다. 둘은 뛰어난 지력과 엄청난 힘, 그리고 지혜까지 가지고 있었던 영리한 동물입니다. 그리나 둘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죠. 그렇다면 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커럼포 지역의 목장 주인들은 골치를 섞고 있었습니다. 바로 로보의 무리때문이죠. 아무리 많은 덫이 있어도 교묘하게 피하고 먹이도 골라먹는 아주 영리한 로보가 다스리고 있는 로보의 무리는 이 곳의 왕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잡지 못하던 로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로보와 짝을 이루던 블랑카가 잡혀서 죽게 되는 사건이지요. 그 사건으로서 로보는 블랑카를 찾기 위해 온 곳을 돌아다니다 덫에 걸리고 말았죠. 로보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은색 점박이 까마귀 실버스팟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실버 스팟은 무리를 이끌고 있는 영리한 까마귀였죠. 실버 스팟은 작은 까마귀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영리하게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죠. 그러나 실버 스팟은 사악하고 악독한 수리부엉이에게 당하고 말았답니다.
이처럼 자연과 가까워질 수 도 있고 여러가지 동물들을 이해할 수 있는 책 <시튼의 아름다운 야생 동물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어요. |
|
한동안, 가슴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마음에 노란 리본을 꼬매고 꼬매어 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이들에 대한, 슬픔과 그들을 방치했던 인간들에 대한 분노에 화내다가 다시 또 울다가...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었는지.
이 책은 한 편으로는 우리처럼 잔인하고 교활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함께 걱정하고 보살피고 위로하는 우리의 모습을 닮은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미 100년도 넘은 이 책을 읽는 내내 감탄하고 탄복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보다도 더 사람같은 동물들의 이야기. 동물들에 대한 존경을 품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라는 사람의 눈으로 동물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시튼은 아마 직업이 사냥꾼인 듯 하다. 분명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전반적인 이야기의 단서로 비추어 보건데 그러하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실화이며 실제 존재했던 동물들이라고 한다. 낮에는 충실하게 양을 지키다가 밤에는 양을 물어 죽이는 황구 울리, 까마귀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던 은색 점박이 까마귀 실버스팟, 몇 번이고 시튼을 살렸던 그의 개 빙고, 잡힌 새끼에게 자유를 주고자 독이 든 먹이를 물어다 준 스프링필드의 여우의 이야기를 옴니버스형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야생마 무스탕 페이서이다. 페이서는 야생마인데 인근 목장의 암말을 꾀어 같이 산으로 달아난다. 자신의 야성을 암말에게 불어 넣으며 자유롭게 살아간다. 그러나 카우보이들은 그들을 놔두지 않는다. 끈질기게 쫒아다녀 암말들을 되찾았음에도 페이서를 계속 쫒는다. 다른 어떤 말보다 뛰어난 페이서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야생마를 잡아서 인장을 먼저 찍으면 자신의 소유가 되기에 카우보이들은 결국 암말을 이용하여 페이서를 잡았다.
'노예 12년'이라는 영화에서도 흑인이 납치되어 노예가 되었다. 동물이 아닌 사람도 이렇게 잡은 사람이 임자이던 시기가 있었으니, 동물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이 납치되어 노예가 되는 것과 야생동물을 포획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생존을 위한 사냥이 아닌 더 많이 갖기 위한 존엄성의 납치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페이서는 사람의 것이 되기를 거부하였다. 힘들게 끌려가다가 목장이 보이자 페이서는 절벽 아래로 뛰어들었다. 죽음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자신이 지켜낸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동물들에 대한 식견과 생각이 크게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동물들이 이렇게나 영리하고 지혜롭고 자유를 추구하였던가 하며 몇 번이고 놀라고 감탄하였다. 그리고 내 주위의 동물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우리의 세계에는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록 우리의 세계도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