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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당신의 안녕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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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였을 것이다. 일이 있어 한 대학을 관통했다. 때마침 방학이어서 학내는 조용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교정이 평온을 선사했다. 하지만 고요해도 너무 고요한 게 이내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이 부착한 현수막이나 대자보 등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걸려 있는 것이라곤 학교에서 업체를 통해 인쇄한 행사 홍보 현수막 등이 전부였다. 지난해 말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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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였을 것이다. 일이 있어 한 대학을 관통했다. 때마침 방학이어서 학내는 조용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교정이 평온을 선사했다. 하지만 고요해도 너무 고요한 게 이내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이 부착한 현수막이나 대자보 등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걸려 있는 것이라곤 학교에서 업체를 통해 인쇄한 행사 홍보 현수막 등이 전부였다. 지난해 말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 파업이 있었다. 시작과 동시에 4천 명이 직위해제를 당했다. 그 다음날엔 1천 5백 명이 넘는 인원이 또다시 직위해제를 당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언급하며 불법적인 선동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도처에서 파업이 있었지만 관심을 가진 이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언론이 나서 귀족 노조가 파업을 하며 부당한 이득을 쟁취하려 든다는 평을 했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수순을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려대학교에 손으로 쓴 대자보가 하나 붙으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주인공은 대학생인 주현우 씨였다.

그가 물은 것은 ‘안녕’이었다. 안녕의 뜻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이다. 이 말을 우리는 이제껏 아무렇지 않게 인사말로 사용해왔다. 불과 이틀만에 파업을 이유로 5천 명도 더 되는 인원이 직위해제를 당했는데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안녕해왔다. 사실 이는 우리의 무지였고, 스스로를 향한 강요였다. 누군가가 일자리를 잃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목격하면서도 나만큼은 그들과 동떨어진, 아주 안녕한 삶을 살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또 그래야만 한다고 우린 다짐했다. 꽤 괜찮은 대학을 졸업하고 일류 기업에 입사하거나 고위공무원이 되면 모든 문제로부터 빗겨날 수 있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로소 자각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무관심이 누군가의 희생을 키웠으며 우리 자신조차도 불행으로 몰아넣고 있단 사실에 눈을 떴다. 당장 생계를 책임질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대학생들이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젊은 계층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사회는 우려해왔다. 실제로 선거 때마다 20대의 낮은 투표율에 야당은 고전을 면치 못해왔다. 이번 움직임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유다. 그들은 결코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겁을 먹었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오래전 대학은 학과 단위로 신입생을 받았다. 나 때만 해도 학부제이긴 했으나 한 학부에 속한 학과는 4개 정도여서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서로를 알기 쉬웠다. 지금은 자연스레 모임을 갖고 얼굴을 익힐 기회를 갖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경쟁도 어찌나 치열한지, 높은 학점에 어학연수, 기업 인턴 경험 정도는 기본으로 갖추어야 한다. 어느 신문의 기사를 읽으니 보다 알래스카 횡단, 미국 도보 여행 등 극단에 가까운 경험마저도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스펙으로 쌓고 있는 대학생들이 즐비하다고 했다. 내가 살기도 바쁜 상황이기에 자연스레 학내 일에 관심을 표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큰 단위인 사회에 대해서는 더더욱. 주현우 씨의 대자보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데 익숙한 대학생들은 전지를 접고 매직을 들어 손으로 글씨를 쓸 수도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방법이었는데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진심을 담아낼 수 있었다. 이는 대자보에 담긴 내용과 만나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만약 주 씨의 대자보가 “투쟁”을 외쳤어도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켰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사실 개개인의 안녕을 물은 건 미약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는 반문을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녕’의 의미에 관심을 가져본 바 없는 젊은 층이었기에 이는 통했다. 아프다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해온 세대다. 내가 왜 아파야만 하는지를 묻지 못했던 그들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절규했다. 나는 아파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마찬가지로 너도. 우리 모두는 아파서는 안 됐다.

처음에는 철도 파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수서발KTX에 대해 심층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대자보도 눈에 띄었다. 공기업 코레일을 향한 민영화가 낳을 후속 문제들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송전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밀양에 대한 목소리도 있었고, 강정마을에 대한 관심을 독려하는 이도 등장했다. 우리의 대학생들은 결코 사회문제에 무지하지 않았다.

또한 학생들은 보다 자신의 주변으로도 시선을 돌렸다. 중앙대 학내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맞춤법도 틀려가며 학생들에게 ‘사랑한다’ ‘깨끗하게 청소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고백을 한 노동자들의 메모가 여럿의 마음을 울렸다. 성적 소수자들과 성노동자들까지. 광범위한 주제로 논의는 퍼져나갔다.

서로의 의견은 달랐다. 하지만 누가 옳고 그르다는 판단보다도 앞섰던 것은 소통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대학 내에서 파편화된 형태로 살아가던 이들이 서로의 존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건 의미심장했다. 같은 목소리를 내는 누군가가 내 주변에 있으며, 우리가 함께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은 놀라운 무언가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로부터 비롯됐다.

올해 사정은 작년보다 더 나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이 벌써 여럿 발생했다.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과연 우리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함께하지 못한 나는 부끄러움의 침묵을 할 뿐이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어린 친구들을 아주 많이 자랑스럽다.

q*****2 2014.08.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