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9.0
  • 30대 9.0
  • 40대 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기도의 유익
"기도의 유익" 내용보기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솔직히 기도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올바른 방식은 아니지만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일이 있으면 기도를 하게 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바라는 간절한 일이 있어도 기도하기 보다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곤 한다. 그것이 내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단 증거가 되는가? 어느 정도는 맞다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언제부
"기도의 유익" 내용보기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솔직히 기도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올바른 방식은 아니지만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일이 있으면 기도를 하게 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바라는 간절한 일이 있어도 기도하기 보다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곤 한다. 그것이 내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단 증거가 되는가? 어느 정도는 맞다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언제부터 내 마음 한 구석에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아시는 주님께 내 염원을 간구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주님은 이미 모두 알고 계시지 않는가." 물론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라는 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나에게 있어 즉각적인 반응과 실질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기도는 추상적이고 멀기만 했다. 그러던 와중 이 책의 이 구절을 읽게 되었다. 충격적이었다.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종의 제사로 받아들이고 있던 나이다. 그런데 기도가 하나님께 무언가 하는 것이 아닌 나를 변화 시킨다는 것을, 또한 나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라니. 잠시 생각해보니 기도를 꺼렸던 것에 두 번째 이유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도를 하지 않는 내 모습에 거부감이 들고, 그 모습을 외면하고 싶어 다시 기도를 피하게 되니. 그리고 이 굴레를 끊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받아들이고 기도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k*******1 2024.02.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음의 청결 서평
"마음의 청결 서평" 내용보기
단순히 예수 믿고 구원이 전부인양 생활하던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이 책은 은연중에 잊고 있던 혹은 잊으려했던 구원의 또다른 한 축인 성화의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고뇌에 찬 결단인지 보여준다.  키르케고르의 글은 마치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라는 구절을 연상케 할 만큼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에 대
"마음의 청결 서평" 내용보기

 단순히 예수 믿고 구원이 전부인양 생활하던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이 책은 은연중에 잊고 있던 혹은 잊으려했던 구원의 또다른 한 축인 성화의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고뇌에 찬 결단인지 보여준다.

 키르케고르의 글은 마치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라는 구절을 연상케 할 만큼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에 대한 세밀한 내면의 고뇌와 사색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중세에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이 성화의 과정에서 낮아짐과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키르케고르의 '마음의 청결'은 '선'을 품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길임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 '선'을 품는 마음의 상태와 동기에 끊임없는 다양한 각도에서의 셀프 피드백을 통해 그 '선'을 품은 마음을 테스트하고 검증해야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선'을 마음을 품은 결과는 어떠한가? 과연 대다수 현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에게 바라고 기도하는 이 세상에서의 복과 평안인가? 키르케고르는 평범한 기독교인들이 감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 길을 가야한다는 것을, 그것이 좁은 길임을 독자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성화의 길을 나서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은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미리 앞서 고뇌하고 그 길을 걸어간 선구자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책의 내용을 읽을 수 있는 자들에게 던지는 도전이다.

 

  

 

 

 

x******0 2024.02.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음의 청결 리뷰
"마음의 청결 리뷰" 내용보기
누가복음 16장 13절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위 말씀은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해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말씀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말씀을 어릴 적부터 들었고 하나님만 섬기며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지에 대해서 고민을
"마음의 청결 리뷰" 내용보기

누가복음 16장 13절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위 말씀은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해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말씀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말씀을 어릴 적부터 들었고 하나님만 섬기며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결론은 "정말 막막하고 어려운 일이다."였던 것 같습니다. 이 묵상의 깊이가 더 깊어지지 못하고 그저 어정쩡하게 머물렀던 시간을 오랫동안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놀랐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순전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고 깊이 있게 묵상했고 그 묵상을 옮긴이 분께서 읽기 편하게 잘 번역해놓으셨습니다. 일단 이 책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모두 두 마음을 품은 자들입니다.

 

 

1. 보상을 받고자 선을 품은 사람

2.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만 선을 품는 사람

3. 고집스럽게 선을 품고서 승리를 원하는 사람

 

 

이 글만 읽었을 때는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시면 논지 하나 하나에 대해서 정성을 쏟아 그의 묵상을 설명합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묵상하는 사람도 있구나하고 감탄하실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마음이 청결한 사람에 대한 서술도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을 읽으면 어느 정도 그에 대해 만족이 있는 답을 얻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j*********e 2024.02.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음의 청결' 리뷰
"'마음의 청결' 리뷰" 내용보기
"한가지만을 품는다는 것, 그때 그것은 겉보기에만 한가지인 것을 품은 것을 뜻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본질적으로 세속적인 것은 그것이 비본질적이기에 한가지가 아닙니다." / p. 61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 야고보서 4:8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의 청결을 요구합니다.
"'마음의 청결' 리뷰" 내용보기

"한가지만을 품는다는 것, 그때 그것은 겉보기에만 한가지인 것을 품은 것을 뜻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본질적으로 세속적인 것은 그것이 비본질적이기에 한가지가 아닙니다." / p. 61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 야고보서 4:8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의 청결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청결이란 두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즉, 선을 품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적으로 바라 볼 때 그것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내가 세상 그 어떤 것을 마음에 품을 때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수백, 수천개의 마음을 품은 것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품어야 하는 마음은 결코 세상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선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안에서, 진리로 말미암아 품어져야 합니다. 결코 세상에서 말하는 착하다의 의미를 초월하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보상을 바라는 선은 결코 선이 아니며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 또한 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진리를 토대로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닌 목적이 선이 되는 삶. 그것을 위하여 고난 받을 수 있는 삶. 우리의 결단을 이끌어내며 의지의 작용이 아닌 그 마음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것. 누군가의 인정을 위함이 아닌 세속적인 보상이 아닌 유한한 것이 아니라 영원 속에 그것을 갈망하는 마음. 그것이 선이며 우리는 그것을 좇아야 합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착각 속에 살고 있던 우리에게 키르케고르가 강조하고 요구합니다. 

과연 우리는 한가지만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을까요? 진정 우리가 품고 있었던 마음이 '선'이었을까요? 키르케고르의 '마음의 청결'을 통해서 내 마음에는 무엇을 품고 있었는지 점검해보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바로 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m*****3 2024.02.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리스도인이 피할 수 없는 책임
"그리스도인이 피할 수 없는 책임" 내용보기
연말이 되면 각종 시상식에서 화려한 조명 아래 하나님을 언급하는 연예인들을 보게 됩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럴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밀려옴과 동시에 나에 대한 원망과 수치심, 부끄러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올라옵니다. 시상식뿐 아니라 평소에도 소위 세상에 성공한 크리스천들을 볼 때면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속에 일렁이곤 합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피할 수 없는 책임" 내용보기

 







 

연말이 되면 각종 시상식에서 화려한 조명 아래 하나님을 언급하는 연예인들을 보게 됩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럴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밀려옴과 동시에 나에 대한 원망과 수치심, 부끄러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올라옵니다.

시상식뿐 아니라 평소에도 소위 세상에 성공한 크리스천들을 볼 때면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속에 일렁이곤 합니다.

또 때로는 그것이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일하는 방식이라고 믿으며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생기길 기대하며 기도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할 때 강함 되시고, 나의 약함으로 오히려 더 높게 하심을 오랜 교회 생활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그럼에도 내 인생만큼은, 다른 사람보다 ‘나’만큼은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획득’한 것처럼 보이는 저 사람들처럼 화려하게 되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제가 느끼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감 없이 말하는 것일 뿐, 그들의 삶과 신앙 고백은 감히 제가 판단하지도 않고 판단할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완전한 두 마음입니다.

 

여기엔 ‘영리한 회피’도 있고, ‘어느 정도로’만 믿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에게 내가 ‘완전한 사람’임을 말하고 싶은 ‘교만함’과 ‘자기기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행위를 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은 ‘보상’도 숨어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왜 마음을 청결케 해야 할까요?

왜 두 마음을 품으면 안 되는 건가요?

왜 우리는 세상을 적당히 이용할 수 없는 것입니까?

왜 고난없이 세상을 편안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책 <마음의 청결>에 있습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말씀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렇다면, 모든 성공과 욕구를 내려놓고 시골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까? 다 기부하고 그저 가난한 사람으로 이 생을 살다 가면 되는 것입니까?

키르케고르는 독자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요. 판단하고 심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유한한 시간’이 끝나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 서게될 것임을 인지하고 믿고 행동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입니다.

 

이 책은 앞서서 <마음의 청결>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유는 3부에 나오게 됩니다.

바로 우리는 ‘단독자로서의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결국 ‘단독자’로서 심판을 받습니다.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지만 군중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나 혼자, 영원의 공간에서 유일한 심판자이자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서게 됩니다.

시간에 속한 세상의 성공도, 보상도, 혹은 명예도,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은 다 사라지고 오로지 하나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하나를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바로 ‘단독자로서의 믿음과 충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만 물으실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쫓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인가요?

세상에 성공과 많은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것이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남들도 적당히 돕고 나도 평탄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까?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한’한 시간에 속한 것들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요?

 

이 논리적 모순을 키르케고르는 <마음의 청결>을 통해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청결’ : 맑고 깨끗하다. 

바다 속이 투명할 때 우리는 바다가 ‘청결’하다 말합니다.

청결한 마음으로만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고, 그럴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청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마음에 한 가지를 품는 것입니다. 

그 한가지는 진리안에서 선을 품는 것입니다.

선을 품기 위해선 모든 것을 하거나(행동하는 자), 모든 고난을 겪기 원해야(고난 당하는자) 합니다.

 

 

사무엘상 16:7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시편 51: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단독자로서 나의 믿음과 충성을 오직 요구하시는 그 분께 우리는 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은혜 안에서 그저 변명하기 급급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원’ 앞에서 ‘찰나의 유한함’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유일하시고 불멸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의 ‘책임’을 깨닫기를 권면합니다.

 

그 ‘책임’을 알려주는 <마음의 청결>이 우리의 신앙 여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k******4 2024.02.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