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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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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사이어티 출판사에서 발행한 한국 대표 작가 단편선 시리즈 190, 김동인님의 몽상록을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어머니는 잘못된 인슐린 처방으로 끝내 세상을 떠나십니다. 화자는 병원과 장례를 치르는 동안 어머니께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겨 드리고 제대로 효도하지 못한 자신의 불효를 깊이 후회합니다. 훗날 형편이 나아지면 효도하려 했지만 그 기회조차 잃은 화자는 큰 슬픔과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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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사이어티 출판사에서 발행한 한국 대표 작가 단편선 시리즈 190, 김동인님의 몽상록을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어머니는 잘못된 인슐린 처방으로 끝내 세상을 떠나십니다. 화자는 병원과 장례를 치르는 동안 어머니께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겨 드리고 제대로 효도하지 못한 자신의 불효를 깊이 후회합니다. 훗날 형편이 나아지면 효도하려 했지만 그 기회조차 잃은 화자는 큰 슬픔과 허무함을 느끼며, 시간이 지난 뒤에도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깊은 상실감을 떨쳐 내지 못합니다.

y***f 2026.07.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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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몽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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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典 :<朝鮮中央日報>, 1934年 11月5日 ~ 12月16日‘ははやまひおもしいもおと(母病重, 妹)’‘ははもどくすくこいいもと(母危篤 直行, 妹)’두 張의 電報. 나는 가슴이 선뜩하였다.이틀 前에 어느 시골 親舊의 집에 놀러갔다가, 새벽車에 돌아와서 집에 들어서는 참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電報 두 張.그 새 四十餘 時間 동안은 오래間만에 만나는 親舊와의 이야기 때문에 한 잠도 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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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典 :<朝鮮中央日報>, 1934年 11月5日 ~ 12月16日


‘ははやまひおもしいもおと(母病重, 妹)’


‘ははもどくすくこいいもと(母危篤 直行, 妹)’


두 張의 電報. 나는 가슴이 선뜩하였다.


이틀 前에 어느 시골 親舊의 집에 놀러갔다가, 새벽車에 돌아와서 집에 들어서는 참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電報 두 張.


그 새 四十餘 時間 동안은 오래間만에 만나는 親舊와의 이야기 때문에 한 잠도 자지 못하였다. 그 疲困한 몸을 좀 쉬려고 어서 자리를 찾아오느라고 집으로 뛰쳐든 때에 意外에도 이 두 張의 電報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電報의 날짜를 보매 한 張은 그저께 저녁, 또 한 張은 어제 아침이었다.

그저께 저녁에 電報를 놓고 여컷 새벽車를 기다려 보아서 안 오니까 再次 電報를 친 것이 分明하였다. 어제 아침에 電報를 놓은 뒤에는 아직 다시 電報가 안 오는 것을 보니 平壤서는 내 不孝를 辱하면서 내게는 다시 電報도 안 친 셈인 模樣이다.



아버님을 잃은 것은 내 나이가 열여덟 살 ─ 人生에 對한 勇氣와 希望으로 찬 時節이었다. 아버님을 잃는다는 일조차 그다지 크게 마음에 울리지 않았다.


只今 내 나이 서른 다섯 ─ 中年의 寂寂함을 가장 痛切히 느낄 時期다. 그 위에 어머님께 對해서는 不斷의 念이 마음에 있었다. 그 靑年 時期와 中年 時期를 아무 不自由가 없이 보내신 어머님을 나의 放蕩과 破産 때문에 老後 不安定한 生活을 하시게 하기 때문에 늘 마음이 不安하였다. 언제 좀 더 安定된 生活을 經營하게 되기만 하면 어머님을 모셔 오기로 속으로 作定하고 그 날을 기다리고 있던 中이었다. 이 위 生活이 安定된 뒤의 設計의 第一 條件으로서 住宅, 어머님의 居室의 設備의 樣式을 늘 夢想하고 있던 것이다.

아들의 放蕩 때문에 老後에 不自由한 生活을 하시면서도 한 番도 不平한 顔色을 하시기는커녕, 도리어 自己의 罪로서 不自由한 生活을 하는 이 아들을 미안한 생각으로 對하시던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저리고 하였다.


마음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도 우리 金門의 수저워하는 性格 때문에 어머님께 對하여, 기뻐하실 말 한 番도 드려 보지 못한 나였다.


이런지라 平壤서 汽車를 던지고 어머님의 계시던 집까지 뛰쳐가서 어머님이 入院하여 계신단 말을 듣고 아직 歡送하시지 않았단 말을 들을 때에 이 危篤하신 어머님을 앞에 두고 나는 도리어 가슴에 북받쳐오르는 喜悅을 禁할 수가 없었다.



病院에서 殯所로 ─ 殯所에서 四 日間 그 뒤 葬禮 때까지 내 마음을 늘 괴롭게 하고 좀 하면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한 것은 어머님께 對한 나의 不孝의 追憶이었다. 비록 끼니를 건너신다든가 하는 일까지는 맛보지 않으셨지 만 末年을 經濟的으로 不安하신 가운데 보내시게 하여 白髮이 星星하신 어머님으로 하여금 마음苦生을 하시게 한 그 나의 罪過. 더구나, 이 아들을 노여워하시거나 미워하시지 않고, 도리어 臨終에까지 四十이 가까운 아들을 걱정하시며 떠나시게 한 그 點을 생각하면 가슴이 우기어 내는 듯하였다.


이 어머님께 對하여 마음으로는 (남에게 지지 않는 精誠을 가졌건만) 겉으로는 쑥스러워 보여서 나타난 孝道도 드려 보지 못하였다.


인제 내 生活이 펴기만 하면 그때 모셔다가 孝道를 드리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生活이 필 可望도 보이기 前에 어머님은 不歸의 客이 되셨다.


平壤 驛頭에서 동생들의 傳送을 받으며 다시 京城으로 돌아올 때 나는 남의 눈도 개의치 않고 汽車에서 울었다.


七十이 가까우신 어머님의 春秋가 不足함이 없고 四十이 가까운 내가 어머님 그릴 나이가 아니언만, 마음속에 虛空을 느끼며 나는 울고 울었다.


어머님이 떠나신 지 三四 朔이 지난 只今도 때때로 將來의 安定된 生活을 夢想하다가도 그때 이 安定을 기뻐하여 주실 어머님은 인젠 없으시다는 생각을 하면 무엇인지 形容할 수 없는 寂寞을 느낀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m******0 2024.09.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