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 본 슬픔 - C. S. 루이스
나는 보통 같은 주제를 다루는 책들을 연달아 보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너무 그 주제에 깊이 매몰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그러나 이 책까지 최근에 본 3권의 책은 모두 인간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인 C. S. 루이스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을것 같다. 탁월한 작가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저자는 치밀한 구성과 힘있는 논증을 통해 기독교를 설득력 있는 종교로 이끌었다. 그런 저자가 아내를 잃고서 그 아픔을 글로 남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그의 슬픔 속에서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내기도 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돌아보기도 한다. 자신을 위로하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위로를 느끼지 못한다 고백하기도 하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내를 조금씩 놓아주면서 다시 조금씩 회복해 나간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저자는 매우 논리적인 책을 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 저자의 사고는 여기에서 저기로 일관성 없이 튀고, 저자의 슬픈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적인 논증도 안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원망스러움, 슬픔, 아픔 등의 감정이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면서 전개하는 슬픔에 대한 변증이 눈에 띈다. 그러나 그런 변증마저도 자신의 슬픔을 다스리기 위한 저자의 몸부림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저자의 아픔이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한 그의 몸부림에서 나오는 변증이 오히려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고통에 대해 바로 전에 읽었던 책-하나님의 뜻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님의 뜻에서는 고통을 통해 더 성장하기를 바라신다는 이야기가 공허하게 느껴졌는데 비해 루이스가 이 책에서 잠깐 비슷한 이야기를 할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앞뒤가 잘 짜여지지 않고 본인의 슬픔을 쏟아내는 중간에 나오는 고백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최근 박원순 시장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이 떠들썩하다. 박원순 시장 편과 피해자의 편으로 나뉘어 서로 물어뜯고 가까웠던 사이가 틀어지기도 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본다. 나도 그 사이에서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난 차마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관계가 깨어질까봐 두려워하는 나의 비겁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아파서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알수 없기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내가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세상도 멈춰 버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욱 고통과 슬픔, 아픔에 대한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다시 세상은 조금씩 움직인다. 내가 무엇을 해서 움직이는게 아니라 이 상황에 대해 조금씩 놓아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원래 고통과 슬픔 속에서는 논리적이지 못한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 자신은 깨닫지 못한다.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실망을 토로하고 분노를 쏟아낸다. 그것이 당연하다. 지식의 깊이와 상관 없이, 삶의 모습과 상관 없이 우리는 슬픔 속에서 삶을 잃어버린다. 그것이 당연하다. 나의 아픔을 그냥 쏟아냄으로써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게 아닐까? 다만, 나의 아픔을 쏟아내는 것이 다시 타인의 아픔을 더 키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C. S. 루이스가 이 책을 낸 것이 나의 아픔을 알아달라는 마음이 아니라 이 책이 다른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음을 생각한다. 나도 아프고, 너도 아프다. 우리는 모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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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하느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게는 종교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종교에 귀의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 혹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는 그 엄청난 슬픔은 기독교 신자이든 불교 신자이든 나같은 사람이든 큰 차이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주문하게 되었다. 다 읽고보니 우리가 그저 정신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물질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물론 루이스가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유한하기 때문에 존재는 가장 존재다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다소 거칠고 생생한 타인,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인 것이다. |
책을 어느 정도 읽다보면 책의 인상을 알게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