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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친구와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다르다는 말… 나만 속상한가? 누군가 '사회생활하며 만난 친구와는 진정한 벗이 되기 어렵다'고 확언한다면 수긍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럼 더이상 어리지 않은, 이제 친구는 사회에서 사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새로운 친교나 우정은 어떤 의미인가? 별일 없다면 40년은 더 살 텐데… '진짜 친구' 한명 쯤 더 만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렇게 믿어야 진정한 벗을 만날 자격도 있을 테고. 이 책은 16~17세기 동서양 문물 교류의 선구자였던 두 명의 이탈리아 선교사가 우정에 대해 정리한 <교유론>과 <구우편>의 완역판이다. 아무리 우정을 소재로 했대도 서양철학 바탕이니 어려울 것 같았고, 400페이지란 분량도 부담됐는데 속을 들여다보니 뒤에 수록한 <구우편> 영인본 (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인쇄물) 분량만 100여 페이지고, 그 외 구성은 다소 중언부언st라 의외로 책장 넘기기 수월했다. 성경이나 이솝우화 등 비교적 쉽고 친숙한 이야기도 많이 등장하니 겁먹지 마시길. 모두가 알고 있는 진리지만 평상시엔 잊고 사는, 실천하긴 어려운 통찰을 되새기기 좋다. "벗과 사귄 뒤에는 믿어야 마땅하고, 벗과 사귀기 전에는 삭펴야 마땅하다." -p.39 "벗이 벗에게 선물을 주고 나서 보답을 바라는 것은 선물이 아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바꾸는 것과 같을 뿐이다."-p.40 "벗이란 찾는 데 오래 걸리고, 얻기가 드물며, 간직하기도 어렵다. 혹 눈에서 벗어나면 바로 마음으로 그리워하게 된다."-p.78 간혹 "벗의 칭찬과 원수의 비방은 둘 다 믿어서는 안 된다."처럼 아주 작은 물음표가 뜨는 말도 있고, "벗의 물건은 모두 공유해야 한다."처럼 나로선 수긍하기 어려운 생각들도 있긴 하지만 연말에 이 책을 보며 그간 연락 없이 지낸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다. 바쁘겠거니… 잘 살고 있겠거니… 내 생각이 나면 한 번쯤 연락하겠거니…하지 말고 안부 좀 묻고 살아야지. 명절 인사도 안 하고 산지 꽤 됐는데 이번 설엔 꼭 하기로 마음먹게 해준 책.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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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고 놀라셨죠? 이 책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중반 중국에 온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1599년에 한문으로 출간한 <교우론>과 마르티노 마르티니가 1661년에 출간한 <구우편> 등 우정에 관한 두 권의 책을 하나로 묶어 변역하였습니다.
역자 정민은 책의 번역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글자 따라 옮기는 '축자역'만으로는 전달하기 힘든 난삽한 구문의 연속이어서, 인내심을 갖고 오랜 시간 거듭 보며 맥락으로 살핀 뒤에야 비로소 의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노력의 산물로 이 책을 보고 있는거죠.
교우론 중에서 '나의 벗은 남이 아니라 나의 절반이니, 바로 제2의 나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벗 보기를 자신을 보듯 해야 한다.'33쪽 이 책의 진가는 주석에서 드러납니다. 이 짧은 글을 번역하기 위해 역자가 들인 노력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실행하는 군자는 기이한 원수가 없고, 반드시 훌륭한 벗이 있다. 가령 기이한 원수로 경계를 더함은 없다 할지라도, 반드시 좋은 벗으로 서로 도움은 있다.' 38쪽
'벗의 악함을 참아주는 것은 그의 악을 가지고 자기의 악으로 삼는 것이다.' 53쪽
'좋은 벗과 서로 사귀는 재미는 잃은 뒤에야 더욱 깨달아 알 수가 있다.' 71쪽
구우편 중에서 3.3 라일리우스가 말했다. "사귐에는 두 가지 기본이 있으니, 하나는 거짓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고, 하나는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거짓은 두려움에서 나오고, 의심은 두려움의 짝이다. 만약 내가 저 사람이 나를 두려워하는 것을 안다면 저 사람을 의심할 것이다. 이 때문에 나를 두려워하는 것과 나를 사랑하는 것을 서로 이을 수 없게 되고, 인하여 나를 두려워하게 된다면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은 믿음을 없앤다." 127쪽
4. 6 번민하는 사람은 맑은 사람이 아니다. 번민은 편안한 마음의 원수이니, 음산한 비가 내리는 중에 날이 개기를 바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더불어 벗이 될 수가 없다. 131쪽
6.2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나를 벗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몸을 좋아하고, 나를 벗으로 삼는 사람은 나의 마음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벗이라는 것은 덕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몸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135쪽
<교우론>과 <구우편>은 각각 저자가 여행지에서 급하게 쓴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모두 우연한 계기로 필요에 따라 긴 준비 기간 없이 책을 지었어요. 미숙한 중국어 문장력 때문에 중국인 조력자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책이란 신기하죠. 시간과 공간을 넘어 후대의 역자가 원전을 번역하기 위해 시간과 공을 들이게 만듭니다. 가르침을 읽어보니 어떠한가요. 역자의 글을 빌어 원작자의 의도가 발현되었어요.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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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은 영혼의 절반이다" 김영사 신간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는 고전학자 정민 교수의 신작이다. 16~17세기 동서양 문물 교류의 선구였던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와 마르티노 마르티니가 각각 중국에 파견돼 서양 성현들 키케로, 세네카, 아우구스티누스 등 그리스, 로마 시대의 격언과 일화부터 성경, 이솝우화까지 우정에 대한 서양 격언을 한문으로 엮어 낸 '교우론'과 '구우편'을 다룬 우정 애찬집이다. 우정에 대한 서학과 유학이 다르지 않음을 증명해 동아시아와의 접촉면을 확장시켰다. 신앙을 전파를 토대로 마련한 책인 '교우론'과 '구우편'은 중국뿐 아니라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시야를 넓혀 조선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었다.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에서는 18세기 조선에 우정의 열풍을 일으킨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과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구우편'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고전학자 정민 교수께서 풍성한 자료를 기반으로 새롭게 번역, 해석하여 출간했다. 문화, 배경이 다른 동서양의 문헌을 찾아 번역과 해석을 거듭 반복하여 오차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 정민 교수의 수고로 사학의 지혜와 우아함이 빛나는 책이다. 두 선교사는 서학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교우론>과 <구우편>으로 진정한 벗과 우정을 생각하며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은 100개의 문장에서 참된 벗, 좋은 벗의 유익함을 논한 것이라면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구우편>에서는 참된 벗을 사귀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담아 놓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교우론>은 짧은 문장들을 나열하고 출전을 표기하여 논어를 접하는 것 같았고, <구우편>은 문장들 속에 진정한 벗됨, 참된 벗과 좋지 않은 벗의 해로움 등 편지 형식으로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룰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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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는 대항해시대의 정점이었다. 이 시기 유럽 각국은 아시아로 향했고, 이 바람을 타고 이제 가톨릭교회의 주요 조직으로 성장한 예수회 출신의 선교사들도 중국에 도착했다. 그 스타트를 끊은 인물이 바로 마테오 리치다. 오랫동안 절대군주제가 유지되어 오던 중국에서, 리치는 무엇보다 이 귀족계층과의 친분 없이 선교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방식으로 유학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저술들이 나왔는데, 그 중 초기의 것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교우론”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친구를 사귀는 일과 관련된 내용인데, 정확히는 서양의 다양한 격언이나 고전의 일부를 발췌해서 중국어로 소개하는 책이다. 그리고 약 반 세기 정도가 지난 후, 다시 예수회 출신으로 중국에서 비슷한 사역을 했던 인물이 있었으니 마르티노 마르티니다. 그 역시 앞서 리치의 작업과 비슷한 순서로 교우 관계에 관한 서양의 격언과 고전을 소개하는 책을 썼으니, 그 책이 바로 “구우편”이었다. 이 책은 “교우론”과 “구우편”이라는 두 권의 책의 전문을 그것의 원출처와 함께 실어 소개하는 책이다. ![]() 교우론이 처음 나왔을 때 당시 명나라 지식인들 사이에 크게 유행을 했다고 한다. 세계가 자기들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믿어왔던 중국인들에게 먼 서양에도 오래된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여기에 (마테오 리치의 적절한 편집이 들어갔겠지만) 서양의 격언이 유학의 그것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점도 그들에게 더욱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이었을 거고. 반면 마르티니의 책의 경우 리치의 것만큼의 유행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책 후반에 그 이유에 대해 편역자의 생각이 좀 실려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미 비슷한 책이 앞서 나와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확대 증보판만으로 눈길을 끄는 데는 무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과, 그새 중국의 왕조가 명에서 청으로 교체되었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짧게 짧게 인용을 하고 있는 리치의 글과 달리, 마르티니의 책은 좀 더 길게 설명이 붙는다. 애초에 이런 식의 격언들은 짧고 굵은 게 여운이 남는 게 아닐까 싶지만, 마르티니의 생각은 좀 달랐나 보다. 그래도 두 권의 책에 다양한 시대를 지나면서 여러 문인들이 덧붙인 서문들까지 읽다 보면, 동서양의 만남이 꽤 흥미롭다. ![]() 친구를 사귐에 관한 다양한 조언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여럿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뿐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이기도 하다. 이런 면은 역시 옛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