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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주를 진동시키는 노래- 여성 그리고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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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그림 중에 “die drei lebensalter der frau(3대의 여자)”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아이와 아가씨, 그리고 다 늙은 노파의 나신을 한데 그린 작품으로, 세 여인의 대조적인 육체가 인상적이다. 어쩐지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세 여자는 각각의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여인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한 여성 안에 잠재되어 있는 시간성을 밖으로 끄집어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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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그림 중에 “die drei lebensalter der frau(3대의 여자)”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아이와 아가씨, 그리고 다 늙은 노파의 나신을 한데 그린 작품으로, 세 여인의 대조적인 육체가 인상적이다. 어쩐지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세 여자는 각각의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여인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한 여성 안에 잠재되어 있는 시간성을 밖으로 끄집어내 보여준 것이 라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성을 몸에 내재하고 이 여성의 육체는 모든 빛과 소리를 품은 전우주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김혜순의 시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얽혀 함께 진동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이 전우주적인 어머니, 여성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클림트의 이 그림을 연상시킨다. 특히 이번 시집은 기존의 관념적인 언어들에서 사뭇 벗어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들에 밀접히 맞닿음으면서도 그 감각적인 상상력을 잃지 않고 있어 힘을 더하고 있다. 김혜순의 시는 온 사물이 진동하는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혹은 우발적인 사건으로부터, 사소한 사물로부터 영향을 받음으로써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사물은 자아와 긴밀한 연관을 맺게 된다. 그녀의 시는 다양한 세계가 함께 우는 소리를 포착함으로써, 화자 밖에 있는 것들이 화자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놀라운 소통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시집 맨 처음에 실려 있으며 소월시 문학상을 수상하게 한 "잘 익은 사과"가 그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멀리 백 마리 여치가 우는 소리도, 가을 찬바람이 빻아지는 소리도, 내 자전거 바퀴의 소리와 함께 울리면서, 화자는 비로소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 다른 시공간 속의 ‘나’ 와 대면할 준비를 시작한다. 이 시에서는 네 명의 여성 형상이 등장한다. 처녀 엄마, 아가, 나, 그리고 노망 든 할머니이다. 처녀 엄마는 아가를 낳고 나는 아가의 냄새를 맡으며 내가 깎은 큰 사과가 할머니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이 환원의 고리 속에서 각 여성의 형상은 일체화된다. 아가인 나는 어머니의 형상을, 할머니의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 할머니인 나는 다시 아가였던 시절을 소유하고 있다. 이리하여 여성 화자는 시공간성의 제약을 뛰어넘어 다양한 목소리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집은 일관적으로 이러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상상력은 감히 상상을 불허하여 더욱 놀라웁다. 시집을 읽고 나는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어머니성을 발견하는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어머니성은 단순히 아기를 낳고 키우는 아이 돌보기의 개념을 뛰어 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 나를 낳은 어머니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경종과도 같다. 이를 통해 나는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소리’를 포용하고 돌볼 수 있게 하는 생산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실상 나와 관계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내 육체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여성인 내 몸을 올바르게 긍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한다. 여자아이, 소녀, 아가씨, 아줌마, 어머니, 할머니- 이 모든 시간대의 여성 화자가 내 몸 안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지금 현재의 내 형상, 또한 어느 시간대이건에 구애받지 않고 나의 여성형에 대하여 강한 긍정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감정은 시간의 공포를 극복하는 데에 일말의 도움을 준다. (일말의 도움이라 표현한 것이 너무 미약한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어렵다는 생각에서 이 표현을 사용하였다.) 육체라는 것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이미 내 안에 젊음과 늙음이 잠재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하면 세월이 주는 두려움에서 적지 않은 평안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우주를 포용할 수 있는 진정한 어머니성.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의 육체. 김혜순의 이 시집은 이성과 감성을 절묘히 넘나드는 상상력을 통해, 그 섬세한 육체와 정신을 묘사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나 어떻게 이 숨찬 눈보라 건너가지? 사랑은 사랑이 있는 곳에서 가장 모자란다는데 - 자욱한 사랑 中 / 나는 아직 부화되지 않은 알처럼 엄마의 깃털 밑에 있게 되지요. 엄마네 집에서 꾸는 꿈은 모두 엄마네 샘에서 나오는 것, 엄마네 집 샘은 마를 날이 없지요. (...) 수면 아래에는 아직 부화되지 않은 별들 나를 애타게 부르는 별들 나는 그것들 아래 까마득한 아래 또 엄마인 내가 차가운 별들을 가득 품고 있어요 - 엄마는 깃털 샘인가 봐요 中 / 악몽이네, 하늘색 부채를 든 그녀가 벌써 골목을 들어서고 있네. 나 천년 넘게 그녀를 기다렸건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 애처로운 목탑 中
c***s 2002.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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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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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몸은 세상의 모든 말을 끌어안고 괴롭게 꿈틀거린다. "밤처럼 검은 머리칼로 묶은 이 쓰레기 봉투 속"의 쓰레기들처럼 자기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아니 자기 몸 속에서 와글거리는 그 말들을 시인은 괴로운 숨을 토해내듯 쏟아버리려 한다. 어머니의 몸, 혹은 모든 존재의 어머니인 그 몸 속을 점령해버린 말은 바로 아버지의 말이며 아버지인 말이다. [아수라, 이제하,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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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몸은 세상의 모든 말을 끌어안고 괴롭게 꿈틀거린다. "밤처럼 검은 머리칼로 묶은 이 쓰레기 봉투 속"의 쓰레기들처럼 자기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아니 자기 몸 속에서 와글거리는 그 말들을 시인은 괴로운 숨을 토해내듯 쏟아버리려 한다. 어머니의 몸, 혹은 모든 존재의 어머니인 그 몸 속을 점령해버린 말은 바로 아버지의 말이며 아버지인 말이다. [아수라, 이제하, 봄]이라는 시에서 어둡고 추운 세상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시인은 자신의 몸에 쉴새없이 달라붙는 "머리가 한 천 개쯤 되는 그것", "두 눈을 막고, 두 귀를 막고, 혀로 얼굴을 햝는", "수백 개의 손이 내 목을 조르면서 눈꺼풀에 천근같은 입을 맞"추는 그것, 그 미끈거리는 보이지 않는 아수라를 떼어내려고 몸부림친다. 미끈거리면서 시인의 몸에 끈질기게 들러붙는 아버지의 말은 그토록 집요하다. 아니, 그것은 이미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삶이다. 김혜순의 시들은 혼신의 힘을 달해 아버지의 말이며 아버지인 그 말과 혈투를 벌인다. 그녀의 시에서 신들린 듯이 쏟아져나오는 부글거리는 검은 활자들은 자신의 몸을 점령하고 있는 아버지의 말들을 남김없이 쏟아내기 위한, 그럼으로써 아버지의 말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시인의 의식의 치열한 몸부림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시인의 말은 말을 부정하는 말이며, 말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말이며, 말의 바깥을 꿈꾸는 말이다. 말의 바깥은 바로 세계의 바깥이며, 삶의 바깥, 사물의 바깥, 몸의 바깥인 모든 존재의 바깥으로 통하는 길이다. 시인은 바깥의 상상력, 그 상상적 '몸'부림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말'부림의 세계를 부정한다. 아버지의 말이며 아버지인 말은 이 세계를 기호의 세계 속에 가둔다. 모든 기호는 의미와 그 의미를 가리키는 물리적 표지인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호의 시니피앙이 가리켜보이는 시니피에는 이 세상 만물이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자리이다. 이 세상 만물은 하나로 짝지워진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대응관계를 통해 자신이 거처할 의미의 집을 분양받는다. 그것이 아버지의 법이다. 아버지의 법은 아버지의 말인 언어적 기호들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안전하게 거처할 수 있는 튼튼한 의미의 집을 하사하는 대신 그 존재를 아버지 왕국의 영원한 신민(臣民)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리하여 존재는 언어의 집 속에서 사육되는 한 마리 순한 양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만나는 존재-세계는 그 존재-세계의 실체가 아니라 그것에 부여되어 있는 의미-개념이다. 이 세계와 우리를 의미의 고리로 이어주는 말이라는 끈은 동시에 이 세계의 실존, 다시 말해 이 세계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는 보이지 않는 커튼과도 같은 것이다. 이리하여 누구 말대로 잃은 것은 존재의 몸이요, 얻은 것은 존재의 집이라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에서 시인은 무례하게도, "먼저 밤낮을 만드시고 이 지구를 세세년년토록 운항하시는 그분", 언어의 집 속에서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주재하시고 "우리들 앞에서 감독을 게을리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신 모든 아버지 공장장님들" 나라의 질서에 도전장을 던진다. 아니, "아버지 이제 그만 내 몸에서 나와주세요"라고 애걸한다. 시인은 끊임없이 아버지 왕국이 하사한 언어의 집, 그 안락한 질서의 세계를 버리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바리데기의 나라인 서천서역국을 몽유병 환자처럼 헤매어다닌다. 이 세상에서의 삼년이 그곳에서는 사흘에 지나지 않는 서천서역국은 아버지 나라의 질서를 뛰어넘는 꿈의 세계이며 바깥의 세계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언어의 집이 지워버린 존재의 몸, 아버지 나라의 미세한 틈과 갈라진 균열을 뚫고 올라오는 모든 존재의 버려진 갓난아기의 울음, 아파서 칭얼거리는 그 가느다란 존재의 울음소리를 자신의 온몸으로 품어안는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려내기 위해 바리데기-시인이 서천서역국을 헤매면서 찾아다닌 것은 바로 어두운 자궁 속에 존재의 처음을 품어안은 어머니의 몸이었던 것이다.